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방식
< 중앙일보 2020.12.09 >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삶에서 어떤 것을 움켜쥐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사람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다. 부여잡으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이 생의 이치인가보다.
사람들은 대체로 출가자라면 모든 것을 쉽게 놓아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니다.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단숨에 훌훌 털어버릴 수는 없다. 저 길가의 그 곱고 화려하던 단풍들도 이제 와 떨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워내면 홀가분할 터인데도 몸부림치며 붙잡으려는 것들 때문에, 우리 삶은 고달프다. 마치 행복한 시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어려운 시절에 고통이 가중되는 것처럼, 출가한 사람들 또한 인연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출세간에 살면서도 나는 행복과 불행이 뒤섞이는 경험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 행복과 불행은 도대체 왜 이렇게 자주 뒤섞이는 것일까? 불교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밤, 홀로 사는 한 남자 집에 절세미인이 문을 두드린다. 누구냐고 물으니, 집안에 행복과 재물을 불려주는 행운의 여신 ‘공덕천’이란다.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녀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바로 뒤에 아주 추한 모습을 한 여인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녀가 풍기는 악취에 남자는 기겁을 하며 누구냐고 물었다. 자신은 불행을 주는 어둠의 신 ‘흑암천’이란다. 남자가 깜짝 놀라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자 여인이 말했다. “당신은 어리석군요. 앞서 맞이한 여인은 제 언니예요. 우리는 늘 함께 다닌답니다. 그러니 저를 쫓아버리면 언니도 이 집에서 나와야 해요.” 남자가 공덕천에게 사실인지 물으니 사실이라고 답한다. 남자는 고민하다 결국 둘 다를 내보낸다. 행운의 공덕천보다 불행의 흑암천이 더 큰 영향을 끼쳤나보다. 그 후 두 자매는 다른 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 집 주인은 둘 다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사람마다 받아들임은 다르지만, 어쨌든 공덕천과 흑암천, 복과 화는 늘 함께한다는 얘기다.
인생에 좋은 일만 있는 사람도 없고, 나쁜 일만 있는 사람도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오거나 또는 순차적으로 오거나 간에, 우리 인생엔 분명 희로애락이 공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은 습관적으로 불행과 고통을 행복보다 더 먼저, 더 많이 인식하는 버릇이 있다. 총량만 보면 행복한 일이 불행한 일보다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온통 안 좋은 일, 아깝게 놓쳐버린 일에만 집중되어 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학위 심사가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다. 나는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가면, 가끔이라도 어머니를 만나며 살아야지 다짐했는데, 병든 모친은 출가한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세월이 무정했고 당시에는 모든 것이 야속했다. 그해 겨울은 내내 슬펐다.
학위 수여식 날, 감정이 격해지면 오히려 고요해진다던가. 굳은 표정으로 학위를 받아 든 내게 소식을 들었는지 어느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내가 살아보니 행복한 일도 불행한 일도 함께 오더라.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그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다만 지금은 이 순간의 기쁨을 즐겼으면 좋겠다. 학위 축하한다.”
고통에만 매몰되어 있던 내게 선생님은 내가 놓친 순간의 행복을 일깨워 주셨다. 물론 고통을 인식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병든 육신도 아픔을 느껴야 빨리 치료할 수 있듯 말이다. 통증 없는 병이야말로 늦게 발견되고, 그만큼 손쓰기도 어려우니 더 위험하다. 그러나 이것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삶이 온통 ‘고통’에만 집중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고통에 치여 자신이 누릴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버릴지 모른다.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이루고자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불행하다고 느끼며, 설령 꿈을 이루어도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아 괴롭다. 조지 버나드 쇼가 인생에 대해 “스스로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한 것도 비극이요, 바라는 바를 이루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비극”이라 본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생각해보면 행복도 왔다가 가고, 불행도 왔다가 가버릴 뿐이다. 부여잡고 있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거리가 생기고, 그럼 대체로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감정을 내세워 불행을 더 크게 키울 일이 아니다. 내면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는 편이 훨씬 순조롭게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혼잡한 세상에선 마음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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