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쉽게 시작해 가볍게 그만두기
< 경향신문,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2022.11.24 >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모처럼 마음은 먹어도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릅니다. 먼지 쌓인 책장의 책을 꺼내 들었다가 머잖아 원래 생활로 되돌아갑니다.
이런 이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추천하며 자신도 그렇게 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삶에서 매일 공부하기를 꿈꾸며 이를 생활화한 여성 번역가입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방송대 일본어과, 중국어과, 프랑스어과를 졸업했다고 하는군요. 우리 말 번역이 나오지 않은 영문 원서를 읽다 우연히 번역가가 된 뒤에는 독일어, 에스페란토어, 베트남어도 맛을 봤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외국어 공부의 장점은 많습니다. 다른 일이나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에 맞춰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왜 쓸데없이 그걸 공부하느냐”는 타박을 듣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잘하지 못해도 흉이 되지 않고 엉성하게 공부해도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미 영어 공부로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거니와 평생 아마추어로 머물러도 비교적 덜 부끄러운 게 외국어 공부입니다.
그가 공동체를 만난 것도 프랑스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를 공부하면서였습니다. 동안인 그가 여러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보고 처음엔 40대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썼다는 책 한 권을 받고 놀랐습니다. 제목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였거든요. 40대로 보았던 분이 60대 중반이었으니 사람 보는 눈에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가 공동체에서 보여준 모습에는 노인보다 청년의 특징이 더 많았으니까요.
무언가를 늘 공부하는 모습부터가 그랬습니다. 그의 공부는 자유로웠습니다. 어렵게 시작해 싫든 말든 버티며 견디어 내는 건 대체로 나이 든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에 호기심을 가지고 덤벼들었다가 아니다 싶으면 가볍게 그만두었습니다. 모름지기 공부란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습니다. 여러 세계를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그의 모습은 아이였습니다.
그에게 공부는 취미이자 놀이였습니다. 중요한 건 목표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느긋하게 즐기며 지속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잘 놀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즐겨보자는 겁니다. 그에게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은 공부였고 공부 아닌 게 없었습니다. 몇 년이나 파고든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문법만 배운 독일어, 에스페란토어, 베트남어, 맛만 본 뒤 밀쳐둔 바느질, 태극권, 수채화,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이 그랬습니다. 그가 했거나 하고 싶은 공부는 많았습니다. 영화와 독서모임 서너 곳에 참여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배울 때도 많았습니다.
부담없이 시작했다가 하기 싫으면 가볍게 그만두기. 이런 그의 공부 원칙에는 장점도 많았습니다. 쉽게 시작했지만 재미가 나면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렇게 선택과 집중의 시기를 지나 특정 공부를 오래 즐기자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깊은 눈빛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 원칙 덕분에 직장에 다니면서도 방송대를 3개 학과나 졸업했고 영어 번역가 겸 일본어 선생이 되기도 했습니다. 두껍고 난해하기로 소문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것도 즐겁고 가볍게 공부한 덕이었습니다.
대개 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 힘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공부는 곧 수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도 이를 부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건 다른 것입니다. 뭔가 시작했다가 금세 그만둬도 괜찮으니 일단 덤벼들라는 겁니다. 대충 시작하라, 최선을 다하는 건 그 다음이다! 평생 공부를 취미로 삼아 온 그가 공부로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잘 즐길 비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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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카페서 공부하는 할머니”…방송대 4개 학사 따고 번역가로 제2인생
< 동아일보 이호재 기자, 2022-02-23 >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펴낸 심혜경 씨.
도서관 사서로 평생을 일하다 은퇴가 다가왔다. 자식들은 다 커서 집에 늦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생겼고 체력은 여전했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뒤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영어영문학과·중어중문학과·프랑스언어문화학과·일본학과 학사를 땄다. 번역가 양성 학원도 다닌 덕에 이젠 번역가라는 제2의 직업을 얻었다. 여태 번역한 책이 약 20권이다. 최근 에세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더퀘스트)를 펴낸 심혜경 씨(64) 이야기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하루 내내 집에 사람이 없지만 은퇴한 난 카페로 출근한다”며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카공족’이 바로 나”라고 웃었다. 그는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매일 3, 4시간씩 공부를 하거나 번역 업무를 한다. “매일 어느 카페에 갈 지를 고른 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요. ‘집순이’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나를 전환하는 거죠. 경복궁역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 의자, 동네 개인 카페의 창가 자리, 서울 종로구 서촌의 골목길에 있는 한옥 카페 구석이 제 방입니다.”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27년 동안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일을 좋아했지만 50대가 되자 슬슬 은퇴 이후의 삶이 고민됐다. 그때 찾은 게 외국어 공부였다. 총 8년 동안 방송통신대 학사 학위를 4개 취득했다. 학사 학위가 있으면 3학년으로 편입하는 방법을 이용한 덕이다. 그는 “두 아이가 다 크고 나서 퇴근 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기니 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었다”며 “편입해서 졸업할 때까지 4학기 동안 전공과목만 수강해서 들어 짧은 기간 안에 외국어 기초를 습득했다”고 했다.
그는 은퇴 전부터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번역가 양성 학원도 다녔다. 번역을 배우면 원서를 직접 읽을 정도로 외국어 능력이 오르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러다 우연히 번역 업무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조금씩 번역 일감을 받다간 사서 은퇴 후엔 출판 번역가로 산다. 이젠 강연회에도 불려갈 정도로 번역가로 커리어를 쌓았다.
가끔씩 바이올린, 기타, 수채화, 영화이론도 공부한다는 그. 이토록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환갑이 넘었지만 아직 전 너무 건강해요.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도 않고요. 공부야말로 삶의 권태기를 덜어내고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앞으로도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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