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과 민주주의

 

 

 

< 경향신문,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3.02.21  >

 


더불어민주당의 스텝이 자꾸만 꼬이는 것은 민주화운동 경험에서 얻어진 정치적 자산에만 매몰되어 매일 실천하는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쟁취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천하는 민주주의 말이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손을 들어줄 생각도 없다.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민주화는 오랜 세월 민주당의 주력 상품이었다. 민주주의적 소양이 부족하다면 더 큰 비판은 민주당 몫이 되어야 한다.


민주화운동의 분기점이라면 역시 1987년이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정권을 내어줄 때 87년에 태어난 아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래도 열 살은 넘어야 그 시절이 기억난다고 가정하면 서른 살까지는 87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말로 서른 살만 넘으면 온 국민이 87년을 기억했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정치적 특권은 지속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나이를 먹었고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생각지 못한 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민주 진영’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인데, 좀 잘못된 부분이 있기로서 사람들이 ‘법’과 ‘절차’와 ‘공정성’ 같은 걸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독재에 부역했던’ 자들에게 이로운 일이 되면 어쩌려고! 

 

87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2017년에는 마흔이 되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나온 이유이다. 87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2023년에는 마흔여섯이 되었다. 적어도 40대 중반까지의 한국인들에게 민주화운동 출신의 ‘까방권’ 따위는 없다. 선진국답게 매일같이 실천하는 민주주의로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내내 “우리 편인데 그럴 리가 없다”는 논리로만 일관했다. 당연하게도 내로남불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 까방권 : 까임방지권(-防止券 혹은 -防止權)은 인터넷 등지에서 사람들에게 까이는 것을 한 번에 한해서 막아주는 일종의 증권(證券) 혹은 그런 권리(權利)를 말한다. 줄여서 까방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업적에 따라 2~3번까지 막을 수도 있다고도 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불체포특권을 놓고 봐도 민주당은 40년 전 인식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표는 불과 1년 전 후보 시절 불체포특권을 없애자고 제안했던 것 때문에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니 여당은 신난다고 공격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런데 말이 달라진 것을 따지기에 앞서 이 대표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작년에 그런 주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선거에서 폐지 주장해서 인기 끌기 좋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이 대표하는 유권자들이 대표될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고심 끝에 만들어져 온 역사가 있다. 다른 대안 없이 불체포특권만 덜렁 폐지하면 국회의원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대표해야 할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헌법에 보장된 불체포특권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에 대해 판례를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게 가볍게 선거 때는 없애자고 했다가 본인에게 체포동의안이 날아오니 검찰독재라서 불체포특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민주당이 자주 헷갈리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사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속한다. 

과거 윤석열 검사가 자신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왜 커다란 울림이 있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독재에 항거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독재가 있으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맞지만, 독재에 항거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독재 타도가 아직도 중요한 의제라는 시대착오가 또 다른 하나이다.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귀 기울일 국민이 있겠지만, 검찰독재라는 말에 공감할 중도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불체포특권을 함부로 폐지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국회가 불체포특권을 원래의 취지에 맞는 경우에만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체포동의안 표결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이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