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 경향신문, 김재윤 수의사, 2023.02.23 >

 

 


물끄러미. 지그시. 약간은 애처롭게. 우리집 나비는 큰일을 보는 내내, 저만 바라봅니다. 개와 함께 산책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장소에서, 외부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시간. 개들은 자신을 지켜줄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신뢰입니다. 눈빛에다 신뢰를 듬뿍 담아, “믿어도 되죠? 꼭 지켜줄 거죠?” 그들의 조상인 늑대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동물들이 무리를 이루는 목적은 생존이고, 그 근간은 신뢰입니다. 신뢰가 곧 생존입니다. 인간도 똑같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인데, 우리들 사이에도 믿음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을까요?


해마다 유엔에서는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합니다. 1위는 5년째 핀란드의 차지였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신뢰를 꼽습니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는 훌륭한 사회안전망과 성실한 납세로 이어지고,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신뢰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생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행정학에서는 신뢰를 ‘사회자본’이라 정의하더군요. 

 

한국은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는 20% 내외, 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는 30% 내외이고,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신뢰 또한 20% 내외로 낙제점입니다. 고위 관료들이 법과 제도를 준수한다고 믿는 사람은 7.6%, 정치인의 말을 믿는 사람은 6.1%뿐이라고 합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가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만도 못합니다. 

 

믿어달라 소리치는 정치인을 믿고 표를 주었다가, 나라 같지 않은 나라를 마주했던 경험들. 믿고 찾은 의사, 변호사, 수의사에게 바가지만 썼던 경험들.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도배된 신문을 받아든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불신의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신뢰를 받는 쪽의 잘못입니다. 신뢰를 받으면 상응하는 믿음으로 화답할 의무가 생깁니다. 그 의무를 게을리했기에, 우리는 정글 속, 무리 지은 동물들보다 더 외로워졌습니다.

신뢰의 반대말은 불신입니다. 불신의 원인은 배신입니다. 생존이 목적이기에, 동물들은 서로를, 또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배신은 인간만의 종특이성 행동일까요? 인간이 만든 사회에는 배신과 불신이 팽배하고, 사람이 손을 대면, 전래동화 속 토끼, 만화 속 사자, 모두가 배반을 일삼습니다. 그래서인지 곁에 있는 동물들에게서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는 사람이 늘어갑니다. 사람들 사이에 감히 기대하기 힘든 신뢰를 경험하는 것이 그 위로의 본질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들의 무조건적인 신뢰마저 쉽게 저버리는 일이 많아, 유기동물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갑니다. 

 

함께 살던 개를 고속도로에 버리고 가는 차를 향해,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따라가야 하는 의무만 있는 양,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개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한한 신뢰와 그에 대한 배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신뢰에 믿음으로 답하는 비결이 혹여 있다면, 그마저 동물들에게서 배워야 할 지경입니다.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또한 무리 지어 살게 된 최초의 목적은 생존이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 또한 신뢰가 곧 생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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