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종교… 자식은 무슨 죈가
<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 2023.04.04. >
일본 문학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9년 대표작 ‘1Q84′에는 이단 종교를 믿는 부모에 의해 상처를 받았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의해 강제로 포교 활동에 동반되는 등 피해를 겪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29일 일본에선 ‘종교 2세’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변호사가 정부에 자녀에 대한 신앙 강제 등 이른바 ‘종교 학대’를 금지하는 법 정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종교 2세란 모태 신앙처럼 종교 신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뜻한다. 일본에선 주로 이단이나 신흥 종교 신자의 2세를 가리킨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종교 2세들은 “종교 학대의 피해자 대부분은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고 인생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는다”며 “지금이라도 사회가 나서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종교 2세 아이들의 피난 장소와 상담 지원 체제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 종교 2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해 7월 해상자위대 출신 남성에 의해 피격당하면서부터다. 살인범은 자신의 어머니가 신흥 종교에 깊이 빠짐으로 인해 가족의 해체와 경제적 피해 등을 겪었다며, 아베 전 총리가 해당 종교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일본에선 그간 신흥 종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종교의 자유’란 헌법 원칙 아래 묻혀 왔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으로 종교 2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류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넷플릭스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공개되면서 한국에서도 일부 이단 종교들의 행각과 2세들이 입은 피해가 환기되기 시작했다. 서울 유명 빵집 사장이자 인플루언서 A씨는 소셜미디어에서 “나는 JMS(해당 다큐에서 이단교회로 지목된 단체)에서 태어난 2세”라고 고백, 어린 시절 모든 미디어 및 이성과의 만남이 단절되고, 월 30만원으로 네 가족이 살아야만 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일본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JMS 등 단체의 만행을 고발한 다큐 출연진과 뒤늦게나마 피해 사실을 고백한 A씨처럼 아픔을 겪은 ‘종교 2세’들이 피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이미 겪은 아픔은 누구도 완전하게 위로할 수 없다. A씨는 JMS에 빠졌던 부모에 대해 “누구보다 착하게 사신 분들이었다”면서도, “착한 것과 진실을 보는 눈을 갖는 건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그릇된 신념에 빠진 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혹은 적어도 자녀가 입을 ‘2차 피해’를 방지할 대책의 필요성은 한국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종교의 자유 뒤에 가려진 아이들의 고통을 묵인하는 건 옳은 일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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