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론’으로 본 한국 사회
< 경향신문,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3.04.04 >
한국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누군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는 하루가 멀다고 언론에 등장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도, 가난을 견디지 못한 모녀도, 학교폭력 피해 학생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도 목숨을 버린다. 도덕적 흠결이 드러난 정치인도, 횡령 혐의를 받는 기업인도,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연예인도 목숨을 버린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 야당 정치인의 주변 인물들 중에는 벌써 다섯명이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무엇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이리도 서둘러 목숨을 버리도록 하는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국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지 이미 오래됐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4.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위다. 2등인 리투아니아가 20.3명, 3등인 슬로베니아가 15.7명이니 한국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80세 이상의 경우 10만명당 61.3명이고, 70대에서도 41.8명이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보여준다. 청년들의 자살도 증가하는 추세다. 학계와 언론이 꼽는 자살의 위험요인은 정신건강, 경제적 어려움, 혼인상태, 사회적 고립, 총기와 같은 자살도구에 대한 접근의 용이성, 술이나 약물 의존성 같은 것들이다. 하나하나 일리가 있는 분석이지만 여전히 무언가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무엇, 더 깊은 곳에 어떤 요인이 있다는 예감 같은 것이다.
미국의 자살방지 캠페인에 등장하는 한 중년 남자는 자살 충동이 드는 순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면서 생각해요. 이걸로 충분해. 더는 못하겠어.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 이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충동이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격히 높아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뇌는 일반인에 비해 훨씬 유연성이 떨어지고 부정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지금의 괴로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거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까. 아마도 한국 사회의 어떤 정신적 위기와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살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라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떠올리게 된다. 뒤르켐은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이 그것이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홀로 고립됨으로써 택하게 되는 이기적 자살은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한국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특히 노인의 경우 평생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가족의 연대가 붕괴하고 가난과 병마 속에 홀로 남은 자신을 발견할 때 이기적 자살이라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
슬픈 것은 노인층에서 이타적 자살조차 나타난다는 점이다. 자식 세대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유교적 관념에서 벗어난 지 오래건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끝내 저버리지 못한 노인들은 자식의 부담이라도 줄여주고 싶어서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모든 것이 압축적으로 변해온 한국 사회에서 규범의 혼란으로 인한 아노미적 자살도 많은 것이 당연하다. 개인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규범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동하는 사회에서는 어제 당연했던 것이 오늘은 당연하지 않게 되고, 그 도덕적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아노미적 자살을 택한다. 코로나19와 경기침체의 와중에 하루아침에 달라진 처지를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과도하게 강요된 규범으로 인한 숙명적 자살은 아노미적 자살의 반대말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 앞에 발가벗겨진 사람들의 경우 공인이라는 핑계로 잔인하게 사생활까지 들춰내며 무결점을 강요하는 세태는 숙명적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동시에 피해자이다. 한국에서 당신이 40세가 되기 전에 혹시 사망한다면 가능성 높은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전 연령 평균을 내더라도 자살은 5번째 원인이다. 당신은 당뇨나 알츠하이머,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자살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 “이걸로 충분해.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라는 생각은 당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올 수 있다. 잠시라도 미움을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보자.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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