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완벽한 부모 될 수 없다는 걱정…‘그럭저럭 좋은 부모’면 된다”


“사소한 좌절 극복하며 회복 탄력성 키워야 하는데
학업·취업·경제 문제로 겪는 좌절 너무 거대해져”
“심리적 자원 소진된 청년들, 출생을 기피하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없고 완벽하기 어렵다는 염려도”

< 조선일보, 홍다영 기자,  2023.07.27 >


한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지난 3월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대체로 보조비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경제적 부담은 젊은 세대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이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비단 경제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심리적 요인도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선비즈는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저출산의 숨은 이유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0.78명이라는 뜻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다. 상황은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태어난 아이는 1만8988명으로 1년 전보다 1069명(5.3%) 감소했다. 2015년 12월부터 7년 6개월 연속으로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며 지난 16년간 28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들은 왜, 출생을 기피할까.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걱정이 저출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을 경험한다. 좌절을 극복하며 회복 탄력성을 키운다. 그런데 학업, 취업, 집값 등 개인이 겪는 좌절이 너무 거대해졌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도 어렵다. 심리적인 자원이 소진된 청년들은 출생을 기피하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고 염려한다. 이것이 허 교수가 진단한 저출생의 원인이다.

허 교수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선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는 없고, ‘그럭저럭 좋은 부모’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출산율 꼴찌 오명을 벗으려면 우선 아이를 낳지 않는 20~30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허 교수는 임상심리학과 뇌과학을 연구한다. 저서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이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18일 고려대에서 허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출생의 원인은 무엇인가.

“전 세계 청년 3~4명 중 1명은 정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구가 있다. 청년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기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예상되고 ‘굳이 저렇게까지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 그냥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다.

청년들은 동시에 완벽에 대한 기준이 높다. ‘내가 좋은 사람인가?’ ‘가족을 이룰만한 사람인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이 이렇게 힘든데 아이를 낳아도 될까?’ 이런 것들이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건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출생을 기피하는 청년을 탓하면 안 된다. 청년들은 오히려 다른 세대보다 이타적이다. 나의 아이를 위해 출생하지 않는 것이니까. 흔히 MZ세대가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다른 세대보다 자기 중심적이지 않다는 연구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고,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세대다. 시민의식, 인권 감수성, 공감능력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서 그렇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미리 신경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타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가족을 꾸리고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우자고 접근하는 게 조심스러운 것이다.”

─청년들이 학업, 취업, 높은 집값 등으로 좌절을 겪으며 출생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소소한 좌절을 극복해야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다. 좌절을 극복하고 이전의 마음과 기능을 회복한 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람들이 겪는 좌절이 너무 거대해졌다. 학교 폭력, 입시·취업 경쟁, 집값 폭등,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좌절을 극복하는 경험 자체가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절망하고 냉소적으로 변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소진’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세상이 너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서, 에너지를 잃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최적의 좌절을 극복하는 경험이 없고 회복 탄력성도 학습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소진된 상황에서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청년들이 소진을 극복하고 에너지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냉소주의와 정서적 소진은 사람들과 연대할 때 회복된다. 꼭 소울메이트, 단짝을 찾을 필요는 없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사회적인 지지가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의 에너지가 회복된다. ‘남들도 힘들어’ ‘너만 유별나게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것보다 ‘너만 겪는 고통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같은 길을 걷고 있고, 그럭저럭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개인의 의사 결정의 폭이 커지고 행동 반경이 넓어지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고통의 일반화’다. 저출생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성 세대가 인정해야 다음 단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 청년이 출생을 기피하는 마음을 부인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개인의 심리적 불안정도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다.

“불안정 유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타인에게 거부당할까봐 불안한 불안-불안정 애착, 대인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회피-불안정 애착, 불안한 상황에서 무관심하고 사소한 상황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양가적-불안정 애착이다. 흔히 불안정 유형은 심리적인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어렵고 아이도 양육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정은 인간이면 누구나 있을 수 있다. 육아 전문가처럼 완벽하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출생에 대한 염려를 높이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안정과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역량은 별개의 것이다. 개인이 불안정해도 배우자, 아이와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에게 더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 높은 통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and(그리고)’로 생각해야 한다. 개인이 잠시 불안정할 수 있지만, 출생과 양육을 위한 준비를 했고, 스스로 삶을 즐길 줄 알기 때문에 아이에게 여러가지 것들을 해줄 수 있다는 마음을 키우면 된다.

많은 사람이 아이에게 미안해서 출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정도의 통찰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이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부모의 역할과 별개로 아이는 본인이 갖고 태어난 재료로 잘 살아간다. 부모의 역할을 과도하게 인지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아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 온 힘을 다해 웃어주고,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훈육하는 정도의 노력이면 된다.”

─완벽한 부모가 돼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완벽하게 좋은 부모라는 것은 사실 세상에 없다. ‘그럭저럭 좋은 부모’면 충분하다. 부모가 개인의 결함으로 좌절하고, 그래도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아이는 부모가 힘든 역경이 있어도 다음날 자신을 보며 웃어준다는 것을 학습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고 욕구를 즉시 충족시켜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가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유발한다. 아이가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무기가 뭔지 깨닫고, 심리적 유연성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것을 발달시키도록 해야 한다.”

─법적으로 묶인 부부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는 붕괴된 지 오래다. 서로 다른 지역, 국가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아플 때 멀리 있는 가족보다 옆집에 있는 이웃이나 직장 동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1인 가구, 비혼 커플, 공동 거주, 사별 후 재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노인 커플 등 가족의 유형이 다양해지며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아낌없이 베푸는 형태의 공동체가 나타나고 있다.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다. 결혼하면 원(原)가족, 부모나 형제 자매보다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투입하게 된다. 반대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어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타인에게 헌신하는 경우도 있다. 출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으로 혼자 재미 있게 살려고 저런 선택을 한다고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저출생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만 고르라면.

“지자체가 주거 공간이나 양육비를 준다고 갑자기 저출생 심화 속도가 둔화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자기만 알아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인식이 저출생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청년들이 이런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하는구나, 눈높이를 맞춰가는 정도에서 다음 정책 단계를 밟아가는 게 필요하다.”

 

 

②“우리 뇌가 ‘한국은 아이 키우기 좋지 않다’ 인식…공동체 신뢰 회복이 우선”

 

“출산율 집착 의미 없어…개인이 아이 낳도록 선택 유도해야”
“옛날에는 대가족이 아이 돌봐줬지만 지금은 도와줄 사람 無”
“기업이 자녀 양육 지원하면 충성심 높아지고 성과도 좋아져”

 

< 조선일보, 홍다영 기자,  2023.07.28 >

 


예나 지금이나 아이가 태어나면 기쁨을 준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 어려워도 아이를 많이 낳았다. 그런데 요즘은 상대적으로 먹고 살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에서는 부모가 바빠도 아이를를 돌봐줄 사람이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에게 아이와 놀아달라고 맡기면 됐다. 그런데 핵가족화가 이뤄지며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 됐다.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환경이 변하자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믿음이 깨졌고, 개인이 출생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공동체가 키우도록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이것이 공동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최 교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도와주면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아지고 업무 성과도 좋아진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임상신경과학을 연구하며 현재 한국심리학회장직에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21일 서울대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심리적 원인은 무엇인가.

“전통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고 대가족을 이루는 게 중요했다. 아이가 부모의 노후도 책임지고 일종의 사회보험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 부모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면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사촌 등 친지들이 품앗이처럼 도와줬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되며 핵가족화가 이뤄졌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 때 조부모나 친지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졌다. 하다못해 과거에는 바쁜 일이 있으면 아이를 잠깐 옆집에 맡기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부모에게 온전히 책임이 돌아간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직장까지 다니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 지금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친화적인 사회가 아니다.”

ㅡ아이를 낳는 일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가 변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한국이 아이를 키우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뇌가 인식하게 됐다. 동시에 염증 반응도 올라오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어젠다가 될 수 있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내가 왜 국가를 위해 출산을 선택해야 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한국은 1960~1970년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해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기성 세대는 산아제한을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여겼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국가를 위해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공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적인 선택일 뿐이라고 여긴다. 무조건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다. 행동 과학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를 키우기에 우호적인 환경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우선 출산율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국가는 개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선택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대답은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믿음, 공동체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출산율을 이야기하기 전에 공동체에 대한 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젊은 여성은 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조직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있다. 평생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를 낳는 것을 피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선택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때 기업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 물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다. 개인의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가족 친화적인 문화를 주도할 때, 직원이 회사에 충성심과 애사심을 갖고 성과를 창출한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마초 문화가 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고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대학원 실험실에 있던 학생이 출산 휴가를 사용한 적이 있다. 출산 후 돌아와서 더 열심히 하고 잘 하더라. ‘이 조직은 내가 힘들 때 도와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삶에는 발달 과업이 있다. 그런 걸 존중해줘야 조직의 결과가 좋아진다. 나에게 배려해주고 대접해준 만큼 나도 돌려주고 싶기 마련이다.”

ㅡ한국은 주로 아이를 낳으면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 필요한 저출산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육아를 가족이 해야 된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공동체에서 같이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직장을 셧다운(봉쇄)했지만 학교 문은 쉽게 닫지 않았다. 학교 문을 닫으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동체가 아이를 돌보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공교육도 중요하다. 돌봄 공백이 없도록 육아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캐나다처럼 복지가 잘 된 국가를 보면 지역 사회에서 학교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학교가 입시나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귀결되는데,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지역 사회의 자원이 되도록 발전해야 한다.”

ㅡ지난해 초·중·고등학생 사교육비는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였다. 과도한 교육비가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교육을 없앨 수는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사실 사교육이 많지는 않다. 공교육을 믿고 이용한다. 우리는 자원 없이 성장한 국가기 때문에 사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공교육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ㅡ한국은 주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 위주로 육아 정책이 이뤄진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다채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유교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렇다. 한국은 아직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 귀한 게 아니다. 싱글맘, 싱글대디도 혼자서 충분히 아이를 잘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은 것은 단순히 개인이 아이를 안 낳는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뜻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개인에게 저출생의 책임을 돌려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출산율은 높아지기 어렵다.”

 

 

 

 

③”육아 예능은 인기지만 ‘돈 많이 든다’고 안 낳아…부모 인식 변해야”

 

“비극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부모 모습 본 자녀들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생각하기 어려워”
“가족이 물질 때문에 망가지는 경험 해…물질이 전제조건 돼”
“‘아이에게 해주지 못할 것 같아 안 낳는다’ 바람직 안해”

< 조선일보, 홍다영 기자,  2023.07.30  >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21년 전 세계 17국 성인 1만88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신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응답은 ‘물질적 행복’이 1위(19%)였다. 이어 건강(17%), 가족(16%) 순이었다. 반면 14개 국가는 ‘가족’이 1위였다. ‘물질적 행복’이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저출산 대책을 말할 때에도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라거나 ‘아이를 둘 낳으면 임대료가 공짜’, ‘출산한 부모에게 월 100원 지급’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정책이 논의된다. 이런 지원책은 매년 늘어나지만, 출산율은 매년 최저를 경신 중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가족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화심리학자인 한민 교수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인기를 끌지 않나, ‘랜선 이모’ ‘랜선 삼촌’이란 말도 있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욕구는 있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않게 하는 원인으로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인식’을 꼽았다. 한 교수는 “내 아이는 ‘스카이’ 보내고 의사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며 “그렇게 내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못 낳는다. 부모가 조금 놓으실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문화와 사회 현상을 접목해 한국인의 마음을 읽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고려대, 서강대, 우송대 등에서 10여년간 학생을 가르쳤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한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ㅡ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동아시아가 유독 출산율이 낮지만, 심각하다는 대만(0.98명, 2021년)보다도 크게 낮다. 원인이 경제적인 것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사회를 만든 심리적 원인은.

“저출생에 경제적인 요인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심리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시대가 바뀌며 결혼·출산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추세가 가파르다는 건 한국적인 특징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배경이다. 그런데 한국은 굉장히 격동적이고 비극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냉전, 권위주의 정부, 살만하다 싶으니 IMF 외환위기. 부부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던 시기들이 꽤 길었다.

세대가 이전될 때는 전통적인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도 이전된다. 그러나 1950~1960년대 여성들은 ‘여자가 무슨 공부냐’ ‘결혼하면 살림해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등이 많았다. 엄마의 좌절을 그들의 자녀들이 많이 봤다. 그렇다고 아빠가 편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집은 전쟁에 끌려가서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 IMF로 사업이 망하는 불행을 경험했다. 그 자녀들은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ㅡ그래도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나.

“인간이라면 가족을 이뤄 나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없지는 않다. 연인이나 배우자, 자녀를 안으면 몸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유대감과 사랑, 행복한 감정과 관련이 있다. 출산율이 굉장히 낮아졌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인기를 끈다. ‘랜선 이모’ ‘랜선 삼촌’ 이야기도 한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욕구를 한다.

본인의 커리어나 사회적 삶만 보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 시기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후회할 수 있다. 한 세대에서 한 세대 반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대 움직임이 나타날 것 같다. 출산율이 지금처럼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추세는 아닐 것 같다.”

ㅡ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을 가지기 이전에, 일단 결혼을 잘 하지 않는다. 애착관계를 형성할 배우자 자체가 요즘은 잘 없다.

“결혼을 할 조건을 준비할 때까지 미루게 되는 것도 있다. 직장에 들어가 당장 집을 사지는 못해도 둘이 살 집을 마련할 정도까지는 미루는 것이다. 빨리 결혼한다는 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본인의 삶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삶이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커리어를 쌓고 삶이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커리어를 놓을 수 없으니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ㅡ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로 출산·육아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경력이 단절된다는 점이 지적을 받는다. 일·가정 양립이 안 되니 커리어를 쌓으려 아이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이런 걸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일을 하면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맡겨야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회식하는데 아이를 언제 돌보나. 가족과 저녁에 식사하거나 주말에 손을 잡고 놀러 다니기 힘들다.

보통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부모가 늦게 퇴근하고 어린이집에 가면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아이들끼리 모여 있다가 누군가 자녀를 데리러 오면 우르르 나간다. ‘우리 엄마, 아빠일까?’ 아니면 실망한다. 아이를 조금만 늦게 데리러 가도 표정이 뚱하고 좋지 않은데 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은 편하겠나. 그렇다고 조부모에게 황혼 육아를 부탁하자니 그분들도 힘들다. 가족에게 집중하고 미래를 그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ㅡ어떻게 변해야 하나.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지금 님을 볼 시간도 없다. 업무 시간을 늘린다는데, 저출생이 문제라고 하면서 모순된 이야기 아닌가. 또 해외에서는 직장에 어린이집이 많아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 데려간다. 한국에선 그게 가능한 직장이 많지 않아 문제인데, 특정 직군이 몰려 있는 산업단지가 있으면 단지별 어린이집을 만들거나, 사무지구 블록마다 하나씩 마련해주면 좋을 것 같다. 리더의 생각이 바뀌면 제도가 바뀌고 문화가 달라진다.”

ㅡ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인은 물질적 풍요를 중요한 삶의 가치로 꼽지 않나.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풍요롭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시대가 있었고, 가족이 물질 때문에 망가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물질이 행복한 가정의 전제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안 낳는다는 생각도 한다. 소중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만큼은 못 키울 것 같아서 아예 안 낳는 프로세스가 아닐까. 학원에 몇 백만원, 뭐에 몇 백만원,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건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울 것이냐는 기준을 너무 높게 잡는 측면이 있다. ‘내 아이는 스카이 보내야 한다, 의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교육비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러나 아이가 공부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까지 성적이 나올지 부모는 안다. 부모님들도 조금 놓으실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ㅡ그런데 요즘 대치동에서는 초등학생이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 부모들은 ‘남들도 하니까’ 같은 논리로 학원을 보내고, 불안해한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아이들도 심리학적으로 걱정이 된다. 초등학생 의대반은 (부모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부작용이 있을 거다.

내가 내 삶에서 찾는 내 삶의 이유는 다른 사람의 이유가 필요 없다. 지금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 아이에게 해줘야 한다’라고 삶의 이유를 외부에서 많이 찾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몇 백만원짜리 학원에 보내고 아이에게 비싼 레스토랑에 가는 것을 보면 ‘그런가보다, 맛있겠네’라고 반응하면 되는데,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미안할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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