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지하·이문열, 이번엔 김훈

 


<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2023.08.17. >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소설가 김훈(75)씨를 향해 인신공격을 쏟아내는 야권 지지층을 바라보자니 중국 마오쩌둥의 참새 박멸 지시가 떠올랐다. 좌표가 한 번 찍히는 순간, 민주당 대통령 세 명이 극찬한 노(老)작가조차 양념 폭탄을 피할 수 없다. “노망이 들었다” “절필하라” “책을 다 갖다 버리겠다” 따위는 익명 악플 수준. 소위 ‘진보 지식인’들의 실명 비판은 차라리 저주였다. “측은지심이 없다니 사람이 아니야” “조국 가족에 대한 난데없는 칼부림” “야비하고 비열한 살쾡이”. 북한 통일전선부에서 집단 제작한다는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같은 표현과 비슷하다.

김씨는 2015년 1월 1일 세월호 참사 추모 글을 한 일간지(중앙일보)에 기고했다. 김씨는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특별히 재수 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어내는 ‘돈 많고 권세 많은 자’들을 지목했다. 2019년 5월 다른 일간지 칼럼에선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하는 노동자가 일년에 270~300명이라는 통계를 언급했다. 그는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국 일가의 입시 비리를 거론한 이번 기고문에서 김씨는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이 나라 수많은 권귀(權貴)들에 의해 완성됐다”고 썼다.

세월호 참사와 김용균의 죽음을 초래한 권력층의 탐욕을 김씨가 지적할 때 좌파들은 갈채를 보냈다. 당시 김씨의 펜이 대통령과 재벌을 겨눴으므로 김씨는 ‘우리 편’이었다. “김훈이 진보로 개종(改宗)했다”는 말도 나왔다. 김씨가 이 사회 기득권 목록에 강남의 50억원대 자산가이자 전직 법무부 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서울대 교수인 조국을 추가한 것은 논리적 귀결에 불과한데도 그는 ‘해로운 작가’로 낙인찍혔다. 우리 편 아니면 적(敵). 이 이분법으로 1991년 시인 김지하씨에게 변절자라고 손가락질하고, 2001년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곡학아세한다며 책을 불태웠다.

874명. 고용노동부가 밝힌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숫자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나고도 하루에 2~3명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김씨는 지난 정부 내내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자격으로 청와대와 국회를 오갔다. “참사가 왜 벌어지는지 모두가 다 안다. 갈 길이 뻔하지만 그 길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에게 손가락질하는 ‘진보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도 사람들이 현장에서 끼이고 깔리고 떨어지는데, 문서 위조 잡범 한 명 수호한답시고 온 나라를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동강 낸 것 말고 뭘 했느냐고. 김씨는 ‘남한산성’(2007)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2.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

 

< 중앙일보, 김훈,  2023.08.04 >

 

[특별기고] 소설가 김훈, 교사 집회현장을 가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에 전국 교사 3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 앞 거리에 모여서 ‘교육권 보장’을 외쳤고,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짓밟히는 교육자의 고통을 호소했다.

교사들은 교육자의 ‘교권’뿐 아니라 ‘인권’과 ‘생존권’까지도 절규했다.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10여 명이 이날 집회에 참가했고, 교수 102명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교사들은 교원단체나 노동조합이나 소속 학교의 깃발을 내세우지 않고 다만 ‘전국교사일동’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중견 교사는 참가자들에게 “배포된 피켓 이외의 구호를 외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날 집회가 정치적 당파성에 오염되는 사태를 교사들 스스로가 경계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집회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3만여 명의 교사는 선생 노릇 하기의 어려움을 일기에 써놓고 자결한 젊은 여교사의 죽음을 애도했고, 고인이 아이들과 함께 이루고자 했던 뜻을 추모했다. 이날 낮기온은 34도였고, 아스팔트 위의 온도는 50도가 넘었다. 길바닥의 주저앉은 검은 상복의 대열은 길어서 끝이 아물거렸고,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흔들렸다. 그 고통스러운 대열이 외쳤다.

 


“공교육은 죽었다” 그 배후는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



이날 교사들이 절규하는 고통은 실체가 분명했다. 요약하자면, 교육을 망치는 가장 큰 해악은 ‘악성 민원’이고 교육청, 교장, 교감 등 교육의 관리자들은 이 사태의 뒷전으로 물러서 있다는 말이다. 이날 집회에서 교사들은 ‘학부모’라는 익명의 거대 집단을 직접 겨냥해서 발언하지 않았고, 다만 ‘악성 민원’이라고, 에둘러 가는 언어를 사용했다. 교사들의 조심스러운 태도에는 어쨌거나 학부모들이 교육의 과정을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할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집회에서 정치적 당파성을 배제하고, ‘학부모’에 대해 거친 언사를 쓰지 않는 조심스러움에서 나는 교사들의 집단지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악성 민원’은 학생들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제기해 온 것이므로, 무대 조명 안으로 소환되지 않은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은 이 사태의 핵심이며 배후였다. 전국 교사 3만여 명이 도심의 거리에 모여서 교육에 가해지는 학부모 집단의 행태에 절규하고 저항하는 사태는, 아마도 세계 공교육의 역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이날, 검은 상복의 대열은 폭염 속에서 거듭 외쳤다.

젊은 여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서울 서이초등학교 주변 일대는 전국의 교사와 시민들이 보내온 조화로 도시의 한 블록이 뒤덮였다. 한 새내기 여교사의 죽음에 모이는 이 거대한 조문의 대열은 공교육이 이 사회의 저변에서 일상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붕괴되어갔던 사태를 증언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고 말이 들끓는 자리에 얼굴을 들이밀고 마이크 잡기를 좋아하는 정치세력들은 이 조문의 대열에 조화를 보내오지 않았다. 판세에 민감한 그들은 학부모 집단과 교사 집단의 갈등이라는 이 사태의 심층구조가 얼마나 두렵고 또 난감한 것인지를 알고 있고, 진영의 입장으로 여기에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득 될 것이 없다고 정세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만, 인산인해를 이룬 이 고통스러운 조문 행렬이 보여주는 탈정치, 무정치의 풍경은 정치의 부재, 정치의 실종을 느끼게 했다. 그토록 끓어 넘치는 정치는 다 어디로 갔는가. 서이초등학교의 건물과 담장에는 여러 지방에서 온 교사들이 고인이 된 여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 너도나도 당하면서 이게 우리 직업이려니 하면서 참고 살았습니다.

- 다들 당하는 걸 보면서 ‘난 운이 좋아서 안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 선생님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제가 먼저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이 슬픈 편지들의 전언은 힘없는 자들의 힘이 무수한 파편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울음을 따로 우는 소리로 들렸다. 교사들은 이 편지에서도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을 직접 호출하지 않고 있다. 나는 교사가 아니므로, 이 ‘악성 민원’의 실체를 교사들보다 덜 점잖은 언어로 말하려 한다. ‘악성 민원’의 본질은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DNA 속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내 새끼’를 철통 보호하고 결사옹위해서 남의 자식을 제치고 내 자식을 이 세상의 안락한 자리, 유익한 자리, 끗발 높은 자리로 밀어 올리려는 육아의 원리이며 철학이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의 자식이 겪게 되는 작은 불이익이나 훼손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관계망 전체를 뒤흔들어 버린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 ‘내 자식’을 편드는 부모의 싸움으로 확전돼 교사를 괴롭히는 사례는 흔하고, ‘내 자식’을 편들며 달려드는 학부모의 태도는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와 같다고 경험 많은 교사는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내 새끼 지상주의’는 자식을 명품 시계나 고가 핸드백처럼 물신화한다. 이것은 이제 이 난세의 생존술이고 이데올로기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계층의 차이가 없이 고루 퍼져 있지만, 부유층 밀집지역의 ‘악성 민원’이 더욱 잦고 사납고, 위압적이라는 일선 교사들의 고백은 이들을 행세하게 하는 부(富)의 천민성을 증언하고 있다. 사실, 이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이 나라 수많은 권귀(權貴)들에 의해 완성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너도나도 그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해 실정법을 위반해 가며 학원 좋고 학군 좋은 동네로 거듭 위장 전입을 해왔는데, 이 정도 범죄는 매우 경미한 사안이다. 위장 전입이 문제돼 공직 임명에서 탈락한 사람은 없다. 이런 위법행위들은 애끓는 모성애, 부성애, 또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미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가치는 파괴됐고, 공적 제도와 질서는 빈껍데기가 되었다. 

 

아마도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일 터인데, 그는 아직도 자신의 소행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절망과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일가가 관련된 재판의 과정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인연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미망(迷妄)일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의 무명(無明)과 마주 대하고 있었다.

새내기 여교사의 죽음과 전국 교사들의 대규모 조문 사태는 한 시대의, 전체의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내 새끼 지상주의’로 몰락해 가는 현실을 향해 ‘반성’을 말하는 것은 무력한 관념의 신음처럼 들리지만 뉘우침의 진정성이 없다면 문제를 헤쳐 나갈 추동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아동학대 처벌법을 고쳐서 ‘정당한 지도 행위는 신고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여야는 이 법안에 대해 의견이 접근해 가고 있다고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이 법안이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정당한’이라는 한마디의 형용사는 며칠 전 야당이 방탄 국회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위한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정당한 영장청구에는 면책특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정한 것과 똑같다. 이것은 언어의 농간(弄奸)이다. ‘정당한’이란 한마디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 형용사는 매끄러워서 붙잡을 수 없고 아리송해서 기댈 수 없다. 이 몽롱한 형용사 한 개로 괴물을 막으려 한다면 더 큰 괴물이 달려든다. 두 번째 괴물은 더 많은 언어와 세련된 논리를 동반하고 달려들게 되는데 이 세련된 논리는 사태를 정돈하지 않고 더욱 헝클어 버려서 수렁으로 빠뜨린다.

상처받은 교사들에게 직무 연수교육을 강화하고 심리상담과 치료를 해주겠다는 ‘대책’은 고마운 것이기는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교사들은 말했다. 교사들의 경험 부족, 자질 부족, 열정의 부족으로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며, 민원을 퇴치하는 개인기를 길러주고 상처를 힐링해 주겠다는 것은 개선책이 아니라고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말했다. 교사들은 개별적 교사 한 명씩을 이 무겁고 또 무서운 사태 앞으로 내세우지 말고, 교육청, 교장, 교감이 교사들과 함께 사태의 전면에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지위 높은 선생님들은 사태를 빙 돌아서 형용사 ‘정당한’ 뒤로 숨어들고 있다.

29일의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교직 2년 차의 젊은 교사는 이날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이초등학교 분향소에 들러 숨진 동료 여교사에게 바치는 편지를 써서 붙였다.

- 오늘 4만 명이 거리에 모여서 외쳤습니다. 교육대학교 교수님들도 함께 외쳤습니다. 다들 함께 외쳤습니다. 다들 함께 외쳤으니까 이제 무언가 달라지겠지요. 선생님.

편지는 ‘함께 외쳤다’는 사실을 희망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이 젊은 교사의 ‘희망’은 아직은 울음으로 보였다. 광화문 앞거리의 거대한 울음은 이 시대의 지층 맨 밑바닥까지 울려야 하는 울음이다. 숨진 여교사는 지금 이름도 없고 사진도 없다. 숨진 여교사가 이름 석 자와, 웃는 표정의 사진으로 돌아오기를 교사들은 바라고 있었다.

‘전국교사일동’은 8월 5일 토요일 광화문 앞거리에서 다시 모인다.

 

 

 

 

 

3.

아, 목숨이 낙엽처럼  

 

 

< 한겨레, 김훈,  2019-05-14  >

 

 


고층건물 신축공사장에서 추락사하는 노동자가 일년에 270~300명에 달한다는 정부 통계가 티브이 뉴스에 나왔다. 금년 1월부터 4월까지는 100여 명이 떨어져서 죽었다고 한다. 부상당해서 불구가 된 사람은 더 많을 터이다.


뉴스를 보다가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랐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계산해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대형참사이고, 숫자가 적으면 소형참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꺼번에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하면 대형참사이고, 동일한 유형의 사고로 날마다 한두 명씩 죽으면 대수롭지 않은 사고인가.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고 노동을 관리하는 정부관리가 와서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그다음 날 노동자들은 또 떨어진다. 사흘에 두 명꼴로 매일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왜 떨어지는가. 고층건물 외벽에 타일을 붙이거나 칠을 하려면 건물 외벽을 따라서 비계를 가설해야 하는데, 이 비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비계 발판이 무너져내리거나 비계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비계를 외벽에 고정시키는 볼트가 허술했거나, 노동자의 몸을 외벽과 연결시키는 장치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사고 원인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니까, 그 원인을 시정하는 데는 돈도 별로 들지 않고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비계바닥을 튼튼히 하고 나사를 똑바로 박아서 비계를 외벽에 튼튼히 고정시키면 되는 일이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고 갤럭시를 만들고 첨단유도무기를 만드는 나라에서 돈이 없고 기술이 없어서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는가.


돈과 기술이 넘쳐나도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다. 내년에도 또 270~300명이 떨어진다. 이것은 분명하다. 앞선 노동자가 떨어져 죽은 자리에 다른 노동자가 또 올라가서 떨어진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 그랬으니, 내년인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


왜 바로잡지 못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층에서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늘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나의 이러한 주장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권문세가나 부유층의 도련님들이 그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은 사례가 없기 때문에 나는 방증 자료를 제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나의 생각은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70년 이상을 이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의 경험칙에 입각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이 사회는 5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니 내년이라고 무슨 별 볼 일이 있겠는가.


한국 사회가 이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경영과 생산구조의 문제, 즉 먹이 피라미드의 문제다. 재벌이나 대기업이 사업을 발주하면 시공업체가 공사를 맡아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하도급되고, 이 먹이 피라미드의 단계마다 적대적 관계가 발생한다. 이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고층으로 올라가고, 고층에서 떨어진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 모든 국민이 법률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헌법의 멋진 문장이 그렇다는 얘기이고, 지금 한국 사회는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국가라는 것을 나는 이번에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 사태가 계속되는 한 4차 산업이고, 전기자동차고 수소자동차고 태양광이고 인공지능이고 뭐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앞으로 나갈수록 뒤에서는 대형 땅 꺼짐이 발생한다.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방안에서 벽에 대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급히 몇 자 적어서 신문사에 보낸다.

 

 

 

 

 

4.

[소설가 김훈 세월호 1년 특별기고] 1년째 ‘수취인 불명’ 남해의 부고… 선체 인양해 희망적 국면 열기를

 

< 이투데이,  온라인뉴스팀,  2015-04-10  >


 
곡절 끝에 두려움과 비겁함으로 빚어낸 특별법 시행령… 국민은 이런 ‘정부 합동 허수아비’를 원하는 게 아니다

 


다시 4월이다. 꽃보라가 흩날리고 목련이 피어서 등불로 돋아나고, 여자들도 피어서 웃음소리가 공원에 가득하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사람이 입을 벌려 말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지난해 4월 꽃보라 날리고 천지간에 생명의 함성이 퍼질 적에 갑자기 바다에 빠진 큰 배와 거기서 죽은 생명들을 기어코 기억하고 또 말하는 것은 나의 언설로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겨우 쓴다. 늙은이의 춘수(春瘦)는 어수선하다.

새벽의 꿈에, 배 빠진 맹골수로에도 4월이 와서 봄빛이 내리는 바다는 반짝이는 물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 바다에서 하얀 손목들이 새순처럼 올라와서 대통령의 한복 치맛자락을 붙잡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장관 차관 이사관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우는데, 바짓가랑이들은 그 매달리는 손목들을 뿌리치고 있었다. 그 바다는 국가가 없고 정부가 없고 인기척이 없는 무인지경이었다. 손목들은 사람 사는 육지를 손짓하다가 손목들끼리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하였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5월에 김영랑(金永郞·1903~1950)은 모란이 다시 피는 5월을 기다리듯이 나는 생명들이 바다 밑으로 뚝뚝 떨어져버린 4월에, 앞날에 다시 올 4월을 기다리면서 나의 악몽을 달래고 있다. 그러하되 그 새로운 4월은 봄이 오듯이 꽃이 피듯이 날이 흐려서 비가 오듯이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亡者)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 좋아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꼴이다. 삶은 무의미한 우연의 찌끄레기, 잉여물, 개평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 밑에 깔리는 티끌처럼 하찮고 덧없다. 이 사태는 망자와 미망자(未亡者)를 합쳐서 모든 생명을 모욕하고 있고, 이 공허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발적이라는 공허감, 보호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무주의로 몰아가고, 그 집단적 허무감은 다시 정치적 공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선박 불법증축, 과적, 고박(固縛) 불이행, 평형수 부족, 급변침 등이었다는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결국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배가 빠졌다는 것이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고, 심장이 멎으면 사망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 사태가 선박의 복원력을 검증하는 물리실험이라면, 정부의 발표는 나무랄 데 없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는 물리실험이 아니다. 이 사태는 한 시대 전체의 도덕적 침몰과 국가기능의 파탄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빠진 지 1년이 되지만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가로막혀서 실무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고 기능은 작동되지 않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특별법(2014.11.19 공포)’이 국회에서 입법되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의 리더십은 파탄되었다. 이 파탄은 이미 침몰한 세월호가 다시 물속으로 끌어들인 제 2의 침몰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와 여야의 정치력은 진실을 밝혀서 분노와 슬픔을 조정하는 데 무력했고, 자신들의 존망과 안위를 챙기는 사활의 생존술로 중원무림(中原武林)을 할거했다. 이 ‘특별법’의 입법과정은 사태의 진상을 규명해서 ‘안전사회 건설’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십이 작동된 것이 아니고, 이 비극이 몰고 올 무서운 파괴력의 폭심(爆心)으로부터 도망치고 벗어나려는 정치세력들이 국민과 유족들의 아우성에 몰려서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자 강고한 보호벽으로 자신들을 방호하면서 탈출구를 뚫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수사권, 기소권이 없이 조사권만을 갖는 한시적 기구로 발족되었다. 게다가 정부가 3월 27일 입법예고한 시행령에 따르면 위원회의 조사권의 영역은 정부가 이미 시행해서 발표한 결과를 분석하고 재조사하는 범위로 국한되었다. 그리고 조사 실무를 지휘감독하는 실무 부서장과 그 휘하 직원들은 모두 행정부가 시한부로 파견하는 공무원들로 충원하게 되어 있다.

이 시행령대로 위원회가 작동된다면 위원회는 정부의 조사결과를 추인하거나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뿐, 사태의 핵심부와 주변부, 심층부와 수뇌부를 향해 기획력 있는 조사를 수행할 도리가 없고, 다만 해양수산부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해서 사태를 뒤치다꺼리하고 유족들의 분노와 슬픔과 요구사항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의 곤욕을 대신하는 바람막이가 될 것이 뻔하다. 이것은 국민이 원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이것은 ‘조사권’이 아니다. 이것은 정부 합동의 허수아비다. 이석태 특별조사위 위원장과 유가족들은 이 시행령을 거부했고 위원회는 작동 불능이 되었다.

‘시행령’을 들여다보면 이 사태에 대한 정부의 두려움이 얼마나 크고 근원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사태 초기에 정부는 우선 어쩔 줄 몰라서 갈팡질팡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태의 심층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노골화되었고, 그 두려움은 다시 그 사태로부터 달아나려는, 권력 방어적인 비겁함으로 발전했고, 그 두려움과 비겁함을 이번에 ‘시행령’으로 명문화해서 입법예고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4월에 남해바다 맹골수로에서 온 부고는 수취인 불명으로 팽목항에 되돌아갔으니 탈상(脫喪)의 날은 아직도 멀었고 유족들은 광화문과 팽목항에 모여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4월이 왔다.

거칠게 말해서, 나는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추이를 3단계로 나누어서 이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제 1사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 나라에 쌓인 적폐(積弊, 나는 이 말을 대통령에게서 배웠다)가 세월호를 침몰시키기까지의 70년에 가까운 세월이고 세월호 참사의 제 2사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그해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의 7개월간이고 세월호 참사의 제 3 사태는 ‘시행령’ 이후 위원회의 활동과 인양이 논의되는 미래의 시간인데, 이 3개의 국면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며 원인으로 맞물려 있다. 그리고 제 2사태는 제 1사태에 잇닿은 또 다른 침몰이고, 제 3사태도 지금 위태롭게 기울어 있다.

이 나라의 돈은 오래전부터 가치의 저장이나 측정, 교환, 유통, 지불, 결제의 수단을 넘어서서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돈의 위상은 법의 보호를 받고 돈의 작동은 시장경제의 축복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찍’을 휘두르는 이 권력의 지배는 완벽하고도 철저해서 그 지배권으로부터의 이탈은 곧 죽음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돈은 화폐라기보다는 알파벳 대문자를 써서 DON으로 표기해야만 그 유일신다운 전능의 위상에 합당할 것이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70년에 가까운 적폐는 이 DON과 거기에 붙좇는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의 연합세력이라는 사실의 흐린 윤곽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 연합세력이 어떤 인적, 행정적 지휘-복종과 공생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 배에 작동되어서 감히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깔아뭉갰던가를 시대사 전체 속에서 밝히는 것이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기능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면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밝혀야 한다는 쪽으로 국민들의 뜻이 모아졌고, 국회는 파행을 거듭한 끝에 매우 허약한 권한만을 부여한 위원회법을 통과시켰는데, 정부가 다시 시행령으로 그 기능을 박탈하고 있으니 정부는 대체 무엇이 그토록 무섭고,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한국국민들은 오랜 세월동안 정치권력에 속아왔다. 불신은 사람들의 정치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 잡았고,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악(惡)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그 일상화된 악의 폭발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시대의 난제를 극복해본 역사적 경험이 전무하거나 매우 빈곤하다. 고통은 늘 고통을 당하는 계층에게 전가되었고 기회와 정보와 우월적 지위는 늘 강하고 러키한 자들의 몫이었다. 이 불신과 고통분담에 대한 역사적 경험의 빈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데, 정부가 제시한 이 무력하고 자기방어적인 ‘시행령’은 갈등과 불신에 기름을 부어서 불을 붙이는 꼴이다.

지금 정부는 공적 개방성을 상실하고 자장면협회나 상가번영회처럼 사인(私人)의 이익집단 같은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몇몇 고위 관리들이 문책 경질된 것은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다. 고위 공직의 자리가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고, 잘나가는 공무원의 물 좋은 취직자리가 아니며, 천하의 공물(公物)일진대 그 자리를 내놓는 것이 어떻게 사태를 책임지는 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게꾼이 지게를 진다는 말이 아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가고, 할복을 하고 분신을 해서 지옥에 간들 이미 그 해악이 세상에 퍼져버린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책임을 진다”는 행위는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말은 쫓겨났다는 뜻이고, 그 쫓겨남으로써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빈말이다. 그 공허함은 “세월호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로되, 하나마나한 말이다. “기업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말도 모두 그러한 것인데, 그 명석함에 가려진 폭력성이 세상의 강자로 행세하고 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여당의 세력이 커지자 이 비극적 사태에 오래 매달려 있는 것은 경기부양과 경제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논리가 언론의 중심부로 진출했다. 이 경제논리 역시 맞는 말이로되 하나마나한 말이고, 명석성으로 폭력을 위장하고 있다.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객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힐링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

국가개조(國家改造! 나는 이 말도 대통령에게서 배웠다)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은 좀처럼 개조되지 않는다. 다만 뉘우침의 진정성 위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뭉개다가 무너질 뿐이다.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고 여러 나라들이 줄줄이 망해가는 꼴을 보면서 그 뒤를 따라서 똑같이 되풀이하다가 망했다. 고통의 맨살, 죄업의 뿌리와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뉘우침의 진정성과 눈물의 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젊어서 기자 일을 할 때 함석헌(咸錫憲·1901~1989)의 이름에 붙은 타이틀은 종교인도 철학가도 사상가도 아니었다. 그의 타이틀은 반체제인사였다. 그 반체제인사가 말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1977. 한길사 444쪽).

쓰기를 마칠 때 정부가 세월호 선체를 인양키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조건들을 제거하고 진실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정치력으로 정치를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 선체 인양이 이 사태의 희망적 국면을 열어가기 바란다.

 

 

 

 

 

5.

세월호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서 빠져 죽어 ..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

< 중앙일보, 김훈 소설가, 2015. 1. 1.  >


나는 본래 어둡고 오활하여, 폐구(閉口)로 겨우 일신을 지탱하고 있다. 더구나 궁벽한 갯가에 엎드린 지 오래니 세상사를 입 벌려 말할 만한 식견이 있을 리 없고, 이러한 말조차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하되, 잔잔한 바다에서 큰 배가 갑자기 가라앉아 무죄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태가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몸을 차고 어두운 물 밑에 버려둔 채 새해를 맞으려니 슬프고 기막혀서 겨우 몇 줄 적는다.

 단원고 2학년 여학생 김유민양은 배가 가라앉은 지 8일 후에 사체로 인양되었다.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다.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는 팽목항 시신 검안소에서 딸의 죽음을 확인하고 살았을 적의 몸을 인수했다. 유민이 소지품에서 학생증과 명찰, 그리고 물에 젖은 1만원짜리 지폐 6장이 나왔다. 김영오씨는 젖어서 돌아온 6만원을 쥐고 펑펑 울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지음 『못난 아빠』 중에서) 이 6만원은 김영오씨가 수학여행 가는 딸에게 준 용돈이다. 유민이네 집안 사정을 보건대, 6만원은 유민이가 받은 용돈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이었을 것이다. 이 6만원은 물에 젖어서 돌아왔다.

 아 6만원, 이 세상에 이 6만원처럼 슬프고 참혹한 돈이 또 있겠는가. 이 6만원을 지갑에 넣고 수학여행 가는 유민이는 어떤 설계를 했던 것일까. 열일곱 살 난 여학생은 무엇을 사고 싶었을까. 얼마나 간절한 꿈들이 유민이의 6만원 속에 담겨 있던 것인가. 유민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 아버지, 엄마, 동생에게 사다 주려 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6만원은 유민이의 꿈을 위한 구매력에 쓰이지 못하고 바닷물에 젖어서 아버지에게 되돌아왔다.

 300명이 넘게 죽었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몸이 물 밑에 잠겨 있지만 나는 이 많은 죽음과 미귀(未歸)를 집단으로 한꺼번에 슬퍼할 수는 없고 각각의 죽음을 개별적으로 애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민이의 6만원, 물에 젖은 1만원짜리 6장의 귀환을 통절히 슬퍼한다.

 아 6만원. 유민이의 마음속에서 6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유민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사소할수록 간절했을 것이다. 이것을 살까, 저것을 살까 망설일 때 그 후보 리스트에 오른 물건까지를 합산한다면 이 6만원이 갖는 구매력의 예상치, 실현되지 못한 구매력은 몇 배로 늘어난다. 유민이의 선택에서 최종적으로 탈락되었다고 해서 그 탈락된 꿈이 무효인 것은 아니다. 배는 수학 여행지에 닿지 못했다. 죽은 많은 아이들의 용돈도 다들 물에 젖어서 돌아왔을 것이므로 그 많은 꿈들은 슬픔과 분노로 바뀌어 바다를 덮는다. 유민이의 지갑에서 돌아온 6만원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가재난 컨트롤타워에 성금으로 보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두었다. 내가 젊은 날 육군에서 힘들 때 엄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어렵고 힘들 때는 너보다 더 어려운 이 어미를 생각해라, 라고 적혀 있었다. 고지의 겨울은 맹수에게 물어뜯기는 듯이 추웠다. 엄마의 편지를 받던 날 밤에 나는 보초를 서면서 고난을 따스함으로 바꾸어놓는 엄마의 온도와 엄마의 눈물의 힘을 생각했고 자라나는 고비에서 치솟는 반항기로 엄마를 속 썩인 패악을 뉘우치면서 가슴이 아팠다. 유민이의 6만원에도 내 엄마의 편지처럼, 크고 깊은 슬픔의 힘이 저장되어 있어 세상의 불의와 세상의 더러움을 밀쳐낼 수 있으며, 말을 알아듣고 사물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줄 테지만 그렇게 말해 봐도 산 자들의 말일 뿐, 젖어서 돌아온 6만원을 위로할 수는 없다. 배 안을 수색하는 잠수사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담요를 둘둘 말아서 배 안의 창문 틈마다 모두 막아놓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최후를 맞았다. 골든타임도 에어포켓도 컨트롤타워도 다가오는 인기척도, 아무것도 없었다.

 글을 쓰면서 읽은 책을 들이대는 것은 게으르고 졸렬한 수작일 테지만 나는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별수 없이 책을 들먹인다.

 조선 성종 때 관인 최부(崔溥·1454 ~1504)는 제주도에 공무 출장 갔다가 부친상을 당해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났다. 그는 15일 동안 바다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중국 해안에 표착했고 북경을 거쳐 6개월 만에 귀국했다. 그는 바다와 대륙에서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나운 바다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은 이렇다.

 "한 채의 이불을 찢어 여러 번 둘러 동여매고 횡목(橫木)에 그것을 묶어서 죽은 후에도 시신이 배와 함께 오래도록 서로 멀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했다."(『표해록』 최부 지음, 서인범·주성지 옮김, 한길사, 2004, 62쪽)

 최부는 이불을 찢어서 배 기둥에 몸을 묶었고 유민이네 학교 아이들은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았다. 그 마지막 정황에서 인간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세월호는 풍랑에 깨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침몰했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았는데, 아직 살아 있는 몸의 동작이 생명을 향해 그렇게 작동되어지는 과정의 무서움을 최부의 글을 통해 겨우 짐작한다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세월호는 풍랑에 깨지지 않고 스스로 침몰했다. 큰 배가 스스로 뒤집혀서 가라앉게 되는 배후에는 대체 얼만큼 악과 비리가 축적되어 있는 것인지, 그리고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다가 죽은 아이들과 정치적·행정적 시스템과의 그 참혹한 단절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최부가 표류했던 조선 성종 시대의 동지나 바다는 물결이 사나웠고 세월호가 항해하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의 진도 연안 여객선 수로는 물결이 높지 않았는데, 그 인기척 없는 적막강산의 풍경은 흥망과 건국, 전쟁과 재건을 거쳐온 60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어찌 그리 똑같은지, 내가 얼마 전에 진도 팽목항에 가서 눈물도 말라버린 유가족들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니 부르는 소리는 수평선 너머로 퍼져 가는데 배 빠진 자리는 흔적이 없고, 바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國破浪花飛 (국파랑화비)
 海暮號哭散 (해모호곡산)

 

 나라는 깨지고 물보라 날리니
 바다는 저물고 곡소리 퍼진다.

 <두보(杜甫)를 흉내 내 지음>

 장한철(張漢喆·1744 ~?)은 조선 영조 연간의 제주도 선비다. 26세 때 서울 가서 과거를 보려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 그는 오키나와까지 떠밀려갔다가 중국 상선을 얻어 타고 2개월 만에 돌아왔다. 29명 중에서 22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살아서 돌아온 자들도 곧 병들어 죽었다. 부서진 배가 파도에 치솟고 잠기면서 장한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데,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삶을 기약한다. 그때 장한철의 각오는 다음과 같다.

 "만일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응당 글 읽는 일을 던져버리고 집 밖의 일도 벗어버리고 몇 고랑 안 되는 밭을 몸소 갈면서 쌍오당(둘째 아버지의 아호)의 여생을 효성스럽게 받들련다." (『표해록』 장한철 지음, 김지홍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09, 68쪽)

 임박한 죽음 앞에서 장한철은 삶의 쇄신을 각오하는데, 쇄신의 골자는 책을 버리고 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언어와 관념의 세계를 버리고 몸과 대지가 부딪치고 엉키는 직접성의 세계에 삶을 재건할 것을 기약한다.

 세월호가 기울고 뒤집히고 가라앉을 때 배에 갇힌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한 방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고유한 원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 물이 차오르는구나, 이제 죽어야겠다, 라면서 죽은 사람이 있을 것인가. 세월호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도 장한철처럼 죽음 앞에서 삶의 쇄신을 기약했을 것인데, 그들의 마음속에서 울음으로 끓어오르던 새로운 삶에 대한 각오와 동경,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과 뉘우침, 이루어야 할 소망과 사랑과 평화와 친절, 만남과 그리움, 손 붙잡기, 끌어안기 쓰다듬기….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팽목항에서 나는 기막혔고 분했다.

 장한철의 그 일생일대의 각오는 오래가지 못했다. 살아서 돌아온 그는 다시 글의 세계로 돌아갔다. 풍랑 치는 바다에서의 생각과 흔들리지 않는 땅 위에서의 생각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장한철은 살아온 지 두어 달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과거에 응시했고, 떨어졌다. 낙방한 그가 다시 배를 타고 제주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갈 때 책과 밭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장한철은 살아서 돌아왔으므로 그의 마지막 각오와 소망을 번복할 수 있었겠지만, 세월호에 갇혀 죽은 사람들은 돌아와서 번복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들의 마지막 소망은 영원히 유효하다. 그 유효한 소망들이 바다와 육지 위에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떠돌고 있지만, 소망들은 유효하다.

 세월호는 화물을 너무 많이 실었고, 선체를 불법으로 증축했고, 배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평형수를 빼냈고, 갑판 위의 화물을 단단히 묶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흔들릴 때 복원력을 상실하고 한쪽으로 쏠려서 침몰한 것이라고 검찰은 수사결과를 밝혔다. 검찰은 이 부분을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검찰의 말은, 한마디로, 세월호는 물리법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침몰했다는 것인데, 지구 중력의 자장 안에서 물리법칙을 위반하고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월호는 가라앉을 만해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졸작소설 『칼의 노래』를 쓰느라고 선박과 항해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내가 읽은 책들은 들이댈 만한 것도 아니고 내가 쓰려는 소설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바다의 질감과 선박의 작동원리를 전혀 모르고서는 글을 쓸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백면서생이 배의 작동원리를 말하는 것은 꼴 같지 않지만 무릅쓰고 가려 한다.

 20세기의 대형 선박은 모두 쇠로 만든다. 쇠가 어떻게 물에 뜨는가. 쇠건 바위건 나무토막이건 같은 용적의 물보다 가벼우면 뜨고,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이 세상의 모든 배를 지칭하는 영어 보통명사는 베슬(vessel)인데 그릇이라는 뜻이다. 그 자체에 용적을 포함하고 있는 운송수단이라는 말이다. 수만t의 쇳덩어리는 베슬을 이룸으로써 가라앉으려는 중력과 띄우려는 부력이 길항(拮抗)하면서 물에 뜬다. 이것은 소금쟁이가 물에 빠지지 않는 이치와는 전혀 다르다. 이 길항의 원리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나오는 신석기 사내들의 고래잡이용 보트(내가 좋아하는 그림!)나 생환율이 50%에 불과했던 16세기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의 범선이나 명량해전, 노량해전, 한산해전, 옥포해전에서 이긴 이순신 함대의 판옥전선이나 두 동강 난 천안함이나 방위 예산 떼어먹은 통영함이나 멀쩡히 가다가 가라앉은 세월호나 다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예외는 없고 예외는 곧 죽음이다. 무게중심과 부력중심이 서로를 피하고 또 달래가면서 기우는 배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이 양극단의 모순이 한순간의 물리현상 속에서 통합됨으로써 배는 롤링하면서 전진한다. 그러나 배가 옆으로 기울 때 이 경사각도가 모순을 통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 복원력은 순간에 소멸하고 배는 뒤집혀서 침몰한다. 배는 유(柔)로서 강(剛)을 다스리며, 유와 강의 종합으로써 롤링하고 피칭하는데, 배가 롤링과 피칭 없이 뻣뻣하게 파도를 대하면 배는 바로 깨지거나 침몰한다.

 이순신 함대의 배도 그렇지만 전통적인 한선(韓船)은 연안 항해용이기 때문에 바닥이 평평해서 큰 파도를 만났을 때는 복원력이 약하다. 그래서 한선은 무거운 화물을 배 밑바닥에 싣고, 화물이 모자랄 때는 바위를 실어 무게중심을 낮춘다. 목포해양박물관에 전시된 신안 보물선도 모든 화물을 배 밑창에 싣고 있다. 이것은 아무런 비밀도 아니고 전문지식도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갈대배에서부터 적용되던 원리다.

 세월호는 이 모든 원리와 인류의 축적된 경험을 거꾸로 했다. 그러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갑판에 과적을 함으로써 무게중심을 위로 끌어올렸고, 배 밑창의 평형수를 빼버려서 배의 중심을 허깨비로 만들었다. 이것이 침몰의 원인인가. 이것은 원인이라기보다는 침몰 그 자체다. 이것이 침몰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배가 뒤집혀지니까 가라앉았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세월호 침몰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화물을 단단히 묶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그렇게 말했다. 기울어진 세월호의 사진을 보면 갑판 위에는 컨테이너고 승용차고 아무것도 없이 빗자루로 쓸어낸 것처럼 깔끔하다. 배가 기울 때,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려 물속으로 휩쓸려 내려간 것이다. 화물을 단단히 묶지 않았다는 수사결과는 맞는 말이다.

 화물을 단단히 묶는 것을 고박(固縛)이라고 하고, 원양선원들의 전문 용어로는 래싱(lashing)이라고 하는데, 다 같은 말이다. 이것도 별것이 아니다. 지게꾼이 옹기를 묶을 때, 1.5t 픽업트럭 기사가 적재함의 짐을 묶을 때, 퀵서비스 오토바이 기사가 뒷자리의 박스를 묶을 때 그리고 앞에서 썼듯이 조선 성종 때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 최부가 이불을 찢어서 몸을 선체에 묶을 때, 이 모든 동작이 래싱이다. 래싱은 흔들리면서 길을 가는 모든 자들의 기본동작이다. 별것이 아니지만, 이탈자는 살길이 없다.

 그래서 원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갑판원들은 쉴 새 없이 갑판을 순찰하면서 컨테이너를 묶는 쇠줄(래싱바)을 스패너로 조인다. 이것이 갑판원의 기본 업무다. 컨테이너는 선체와 밀착되어 롤링과 피칭을 함께 해야 하며, 컨테이너가 정위치를 이탈해 한쪽으로 쏠리면 그 기세로 배 전체를 끌고 쓰러져서 살길은 없어진다. 운동은 복원되지 않는다. 세월호는 등짐 지는 지게문만큼도 래싱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월호가 래싱을 엉터리로 해서 침몰했다는 말도 또 다른 동어반복이다. 비를 맞으니까 옷이 젖었고, 밥을 굶었더니 배가 고프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세월호는 왜 기울었고 왜 뒤집혔는가.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발작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파탄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간직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동력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시각과 그 슬픔과 분노를 매우 퇴행적인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 혐오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4월, 5월까지는 전자의 시각이 우세했으나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적지 않은 재미를 보고, 이어 7월 30일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하자, 후자의 시각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 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 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자유당은 지금도 특별사면 중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 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나는 수감 중인 대기업 총수에 대한 가석방 결정이 법무장관의 '고유권한'이라는 언설에 반대한다. 장관이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의 고유권한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사금(尼師今)이 아니고 마립간(麻立干)이 아닐진대, 어찌 직무에 따른 권한이 그 직위에 '고유'하게 귀속될 수가 있겠는가. 장관은 다만 그 가석방이 법치주의의 원칙과 절차에 비추어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공적으로 판단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저 사람을 풀어주면 이 나라가 얼마큼 더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인가는 법무장관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장관의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없다. 자유당 때부터 지금까지 전개된 무법천지의 관례도 장관이 참조할 전례가 되지 못한다. 저 사람을 지금 풀어주면 이 나라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무엇이 무너져 내리며, 후세의 더 큰 무너짐을 어찌 감당할 것이며, 어떠한 앞날이 닥쳐올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장관의 일이기를 나는 바란다.

 지금, 그날 벌어 그날 먹거나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먹거나, 사람들은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다. 이 겨울에 살기 위한 아무런 방편도 마련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중생고(衆生苦)가 수감 중인 대기업 총수의 석방 주장을 정당화하고 세월호의 슬픔과 분노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지만, 기막히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은 정치의 악다구니 속으로 편입되었고,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편으로 갈라져서 치고받게 되었는데, 세종로에서 단식을 이어가던 유가족들 옆에서 먹성 좋아 보이는 청년들이 통닭과 짜장면을 먹어대고, 또 국회의원 명함을 내미는 웬 여성의원이 대리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짓에 연루됨으로써 이 악다구니와 악다구니에 편승하는 또 다른 악다구니들이 온 나라에 넘쳤다. 슬픔과 분노의 온전한 모습은 파괴되었고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의 의미는 실종되었다. 그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가 없어서 끔찍한 재앙을 당한 소수자의 불운으로 자리 매겨졌다. 그 소수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다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고 다수가 먹고사는 일이 해로운 결과가 된다고 힘센 목청을 가진 언설의 기관들이 힘을 합쳐서 소리 질렀다. 소리 질러서 낙인찍었고,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 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려났다.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 다른 난파선이다. 제1사태와 제2사태는 양태는 다르지만 뿌리가 같아서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는데, 과거의 제2사태가 오늘의 제1사태로 터져 나오고, 오늘의 제2사태가 미래의 제1사태를 예비하고 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제1사태 때 승객과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했다. 이준석 선장은 36년 형을 받았다. 세월호 제2사태에서도 많은 책임 있는 자들이 난파선을 버리고 탈출했거나, 탈출을 시도했고 이준석을 욕함으로써 자신들의 탈출의 오욕을 희석시키고 있다. 이 난파선은 아직도 표류 중이다. 세월호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고통과 슬픔을 향해 얼만큼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지, 어느 정도에서 발을 빼야 하는지를 놓고 다투다가 여야 합의는 거듭 난파되었고 야당의 리더십은 침몰했다. 대통령은 사건 당일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일곱 시간 동안 일곱 번이나 각급 지휘관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비서실장이 밝혔다. 그런데 현장의 구조 인력은 기우는 배에 접근하지 않았고, 해경 책임자는 구조 인력 투입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대통령의 명령은 대체 무엇인가. 명령이란, 복종되고 실현되기를 강요하는 의사 표시다. 대통령의 직무는 언어의 형식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그 명령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을 현실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명령은 직무의 발동이고 실현은 직무의 완수다. 이것이 대통령과 9급의 차이일 것이다. 명령을 일곱 번 내렸다고 해서 대통령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명령은 허공으로 흩어졌는지, 대통령의 명령이 구중궁궐에 갇힌 대왕대비의 신음처럼 대궐 담 밖을 넘지 못한 꼴이니, 그 나머지 일들은 기력이 없어서 더 말하지 못한다.

 연초에는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위원회가 결성되어 진상조사, 재난 예방과 대처, 희생자 위로 등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세월호 사태는 제3의 국면으로 접어드는 셈이다. 위원회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한시적인 기구가 되었지만, 이 같은 일에는 시한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유민이의 젖은 6만원의 꿈에 보답해주기 바란다.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바르고 착한 마음을 가진 많은 유능한 인사들이 이 위원회에 참여해주기를 나는 바란다. 삶을 쇄신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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