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를 거절하는 용기

 

 

< 중앙일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2023.09.08  >

 

 



오늘은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J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부인 키티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녀는 최고의 순간부터 최악의 순간까지 오펜하이머의 곁을 흔들림 없이 지킨다. 그에게 원폭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라고 한 것도, 그가 사랑하던 연인의 죽음에 괴로워하자 “정신 차리고 당신 자리로 돌아가라”고 일갈한 것도 그녀다.

그녀는 오펜하이머가 매카시즘의 타깃이 된 후 모호한 태도를 취하자 “분연히 맞서 싸우라”고 독려한다.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도 그즈음이다. 동료였던 에드워드 텔러가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뒤 악수를 청한다. 오펜하이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민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키티는 넌더리를 낸다. “순교자인 척하지 말라고!” 세월이 흐른 뒤 오펜하이머가 공로 메달을 받는 행사장에서 그녀는 텔러가 내민 손을 무시한다.

오펜하이머는 왜 악수에 응한 것일까. 조건반사로 나온 행동이라고? 예의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청문회 관계자들의 눈을 의식한 거라고? 어떤 이유에서든 악수는 정답이 될 수 없다.

악수는 상대를 선의로 대하겠다는 신호다. 이미 상대가 적의의 이빨을 드러낸 상황에서 악수는 그 상황을 인정한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믿음을 저버린 자에게 손을 내밂으로써 그의 배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키티는 말한다. “사람들이 부당하게 취급하도록 놔둔다고 해서 당신이 용서받을 거 같아? 아니. 그렇지 않아.”

어색한 미소로 모든 일이 끝나지 않는다. 

 

감정도, 상황도 철저한 정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악수를 거절할 용기가 없는 자의 인격은 그 누구도 존중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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