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평범을 산 비범한 이야기] #1. 2군 선수로만 7년째, 프로축구 선수 임민혁

 

 

< 피렌체의 식탁, 천안 시티 FC 임민혁 선수,  2023.12.09  >

 


"1등은 아니지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악착같이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진짜 주인공"
"결과는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의 보너스,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삶은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삶은 그 자체로 주관입니다. 그러나 우린 늘 얼굴 모를 대상, 혹은 언론에 노출된 위대한 상대에 억눌려 쪼그라듭니다. 승리는 물론 고통마저도 누구보다 더 해야만 주목받는 세상. 그럴 필요 없어요. 한해를 돌아보게 되는 이때, 올해도 참 수고했어, 잘 살아냈어! 나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가져봐요. 



저는 7년 동안의 프로 선수 생활 중 30경기 남짓밖에 출전하지 못한 만년 후보 프로축구선수입니다. 주전선수들이 1년에 평균적으로 40경기 가까이 소화하니 제가 얼마나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한 선수였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겠죠. 그러던 저에게 지난 2022년 여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주전선수의 부상으로 4년 만에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경기를 마친 후 기자회견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리 긴 터널도 끝은 있다고 생각했다. ‘산을 만나면 넘고 강을 만나면 건너자’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라고 인터뷰했습니다. 봄눈처럼 잠깐이긴 했지만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오래 기다렸던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저의 2023년은 더 많은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올해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죠. 하지만 프로의 무대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전선수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수많은 난관을 여전히 뚫지 못한 채 2023시즌 역시 후보선수로 1년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목표했던 경기 수를 채우지 못했고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올해가 그저 불행하고 아프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후보선수로 있으면서 ‘과정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각기 다른 뛰어난 ‘주전선수’들을 상대로 고전하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입니다. 죽을 만큼 애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저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은 그 과정만으로도 위대한 여정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오늘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또 한 번의 실패가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각박한 세상에서 특출난 것 하나 없지만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적은 횟수지만 열정적인 팬들 앞에서 부상 없이 몇 차례 내가 가진 실력을 뽐낼 수 있었던 한 해를 보낸 사실만으로 나 자신을 충분히 칭찬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2군 선수일 가능성이 큽니다. 운동을 그만두는 날이 오더라도 사회에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1등은 아니지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악착같이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 이 세상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목표했던 일이 잘 안된 하루여도, 또 원하던 것을 다 이루지 못했던 한해여도 괜찮습니다. 결과는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보너스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열심히 땀 흘려 분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꾸준히 소신껏 잘 해내다 보면 보너스는 언젠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의 내일은 여전히 희망찹니다. 메마르고 모진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잘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자주 격려합시다. 잘하고 있다고, 수고했다고!



글쓴이 임민혁은 1994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2014년 고려대학교에 입학 후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17년 K리그 전남드래곤즈에 입단했다. 당시 등번호는 에이스 골키퍼의 상징인 1번. 현재 천안시티FC, 등번호 36번을 달고 골키퍼로 활동중이다. 패널티킥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방 출신이라 지방 소멸 위기에 관심이 많고 평소 말은 부질없다 생각해 글쓰기를 취미로 한다.  이제 서른을 맞는 임민혁 선수는 건강하고 맑다. 몸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눈이 그렇다. "악착같이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 이 세상의 진짜 주인공이다. 목표했던 일이 잘 안된 하루여도, 또 원하던 것을 다 이루지 못했던 한해여도 괜찮다. 결과는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보너스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열심히 땀 흘려 분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꾸준히 소신껏 잘 해내다 보면 보너스는 언젠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 진짜 이기는 삶을 사는 임민혁 선수는 응원받아 마땅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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