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은 왜 시인을 필요로 하는가: 시인의 시정신
<피렌체의 식탁, 최광임 시인, 2023.12.25 >
[2023년의 책] #7. 이재훈 시집 《돌이 천둥이다》
《돌이 천둥이다》,이재훈 지음, 아시아, 2023
이재훈 시인은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생물학적인 눈물》 등의 시집을 펴냈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시적 세계를 확장해온 시인이라고 평가받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꿈을 유령화하고 분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도록 유혹’하는 마법 같은 함정이 있다. 개인은 그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 자발적 무한경쟁 속으로 뛰어든다. 세상은 감성보다 이성을 우대하고 가치보다 물리적 합리성을 존중한다. 기계적인 세상은 인간에게서 느림의 여유를 앗아가고 유희를 박제시켰다.
이런 세상에 내박쳐진 이재훈 시인은(혹은, 시의 주인공들인 돌들은) “자본주의에서 남은 것은 두려움밖에 없습니다.”, “몸부림치는 작은 사람들만 허다하죠.”(「볼트」)라고 말한다. 얼결에 세계의 함정에 빠졌으나 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들을 땅 위의 하고많은 ‘돌’에 비유한다.
이재훈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돌이 천둥이다》는 자신의 언어를 내주어 우리 사회 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 ‘돌’들의 말을 받아 적은 공수*이다. “위대한 말은 꿈을 나눠 갖는 것”(「돌의 재난사」)이라는 게 이재훈의 시정신이다.
*공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을 대신 해주는 영매의 말.
이 땅의 돌들은 “평생 구르는 노동”을 통해 “몸을 벼리는 일”과 “침묵”하는 일을 가장 잘한다. 그런데도 이 돌들이 가난한 것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고 게으르기 때문이며 인맥이 없기 때문이라는 모종의 문화를 조장하여 “이 땅의 온갖 죄를 돌에게 담당시”키고 “던지고 차고 묻고 깼다.”(「눈물로 돌을 만든다」)
헤겔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이 땅 돌들의 노동으로 축적된다. 그러나 이 돌들이 뭉쳐 거대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게 될 때 주인이라고 여기던 자본주의는 지배력과 자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주인의 자본을 축적하는 실질적 주체는 돌들의 평생 구르는 노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까닭이다. 자크 아탈리도 자본주의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시민단체나 비영리단체 또는 NGO 등을 통해서 관계 위주 경제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고 한다. 관계의 경제가 세계 총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했을 때 자본주의의 힘은 빠지게 될 것이다.
이재훈 시인은 말한다. “세상은 늘 크고 강한 것들만 원했”으나, “정작 강한 자는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녹색우주」)이며, “사라지지 않을 물과” “사라지지 않을 공기와 나무” 그리고 “저물녘과 새벽만 바뀌지 않는다.”라는 것을 아는 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 땅의 돌들이다.
시는 영혼이 상한 사람들이 읽는 것이라고 이재훈 시인은 말한다. 시 또한 기쁨보다 슬픔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슬퍼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시인은 “눈물의 사제”가 되어 곡비가 되어 시를 공수해야 한다. 세상에 시인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시를 좋아하지 않고 시인을 돌로 여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경계하고 무시하는 ‘가치’를 시인이 세이렌처럼 노래해서다. 노래에 빠진 사람들이 이성보다 감성을 되살리고 유희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우울증 환자가 2018년과 비교해 30% 급증했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우울증을 치료하지 못한다. 그럴수록 시인은 지상의 돌들의 슬픔을 목놓아 운다.
2.
이재훈 시인의 『돌이 천둥이다』, K-포엣 시리즈 서른다섯 번째로 발간
하종기 기자
이재훈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돌이 천둥이다』가 K-포엣 시리즈 서른다섯 번째 출간됐다. 이재훈 시인은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동안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생물학적인 눈물』 등의 시집을 펴냈고,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현대시작품상, 한국서정시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재훈 시인하면 떠오르는 게 신화적 상상력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를 ‘거울’처럼 보여주면서, 그런 현실을 살아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들의 이면을 알레고리화해서 보여주곤 했다.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선택한 ‘거울’은 돌이다. 수록된 작품들 속에서 돌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돌. 주인이 없는 돌. 천시하는 돌. 숭배하는 돌. 버리고 모으고 감추고 숨기는 돌”을 오래 매만진 이재훈 시인. 아주 작고 사소한 것, 그래서 어쩌면 소외될 수 있는 것에서 번쩍이는 시원을 발견해내는 힘이 공감과 실감을 자아낸다. 그런 발견의 안쪽에는 세계의 근원과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시인 노트〉와 〈시인 에세이〉를 통해 시인은 어떻게 해서 돌과 만나게 되었는지, 돌에 대한 접근 방법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언술한다. 시를 실제로 읽게 되면 “돌에 대한 상상력”이 “시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머물면서 시인에게 말을 걸어오는 장면이 떠오른다.
사소하게만 보였던 돌 속에도 어떤 비밀이 깃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일에 시인은 여러 날을 탕진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이재훈 시인은 “이 세계의 시스템에서 배제되거나 낙오된 상태”인 존재들, “침묵하는 존재들”에게 귀를 달아주고 입을 열어주었다. 그들의 슬픔을 헤아리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오은 시인은 같은 맥락으로 “이재훈의 시편에서 돌은 약자를 대변하는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여기 돌을 정성껏 어루만진 시,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시가 있다. 『돌이 천둥이다』를 통해 독자들은 오랜만에 돌처럼 단단한 시와 만나게 될 것이다.
한편, 아시아 출판사는 2012년부터 근현대 대표 작가를 총망라한 최초의 한영대역선집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2014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K-픽션〉 시리즈를 출간하며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안도현, 백석, 허수경을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시편을 모아 영문으로 번역하고 출간하여, 해외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한국소설과 한국시가 세계적으로 뻗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한국 문학의 저변확대가 이루어지도록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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