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나에게 기대려고 하면 짜증이 나요 -
<법륜스님의 행복 톡톡, 2021년 7월 24일>
“저는 누군가 저에게 의지를 하면 귀찮고 화가 납니다. 최근 저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후배 직원이 못마땅해서 냉랭하게 대하고, 돌아서면 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잘 살펴보니, 저는 누가 저에게 기대려고 하면 질색을 합니다. 더 살펴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더 살펴보니, 저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대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런 경우를 한마디로 ‘기지도 못하는 게 날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중생의 특징이 의지하는 겁니다. 부처의 특징은 일체 의지하는 바가 없는 거예요. 즉,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라는 뜻입니다. 중생은 돈에 의지하고, 권력에 의지하고, 부모에 의지하고, 가족에 의지하고, 안 되면 신에게 의지하고, 이렇게 뭐든지 의지합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거기서 뭔가 도움을 얻고자 한다는 뜻이에요. 그것이 경제적인 도움이든, 보호든, 위로든,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끼고 즐거워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이 생기고 괴로워하는 게 중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의지처를 불태워버려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말은 ‘모든 것의 주인으로 살아라’ 이런 얘기예요. 부처님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천상천하의 모든 사람과 신들 가운데 우뚝 서신 분, 가장 존귀하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과 신들이 더 큰 힘에 의지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의지처가 없어요. 의지처를 불살라버렸습니다. 그래서 ‘대웅(大雄)’, 큰 영웅이라고도 부릅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라고 해서 ‘세존(世尊)’이라고도 하고, 사람과 신들의 스승이라 하여 ‘천인사(天人師)’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우리도 부처님처럼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책임자가 되어야겠죠. 잘못했으면 기꺼이 손실을 감수하고, 과보를 받고, 또 필요하다면 자기가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바라는 게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바라는 게 있으면 자기가 바라는 만큼 노력해서 이루면 된다는 얘기예요. 누군가가 공짜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아직 중생인데 벌써 부처님 흉내를 내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기지도 못하는 게 날려고 한다’ 이렇게 말한 겁니다. 본인이 중생인 것을 먼저 인정하세요. 중생이니까 의지심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 다음에 의지심이 없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고 이런 걸 갖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하는 것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해요. 그러나 이것은 목표이지 지금 당장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반면에 부처님은 중생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건 없지만 오히려 중생이 나한테 의지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의지처가 되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중생은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의지해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불법승 삼보에 의지한다’, ‘부처님께 의지한다’ 이런 말은 영원히 의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래에게 의지하는 건 좋다. 그런데 수행자의 목표는 의지하지 않는 경지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여래에게 의지하더라도 잠시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의지해라. 여래의 가르침은 지팡이와 같다.’
다리가 아플 때는 잠시 지팡이가 필요하지만, 고맙다고 영원히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다리 아픈 환자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다리가 나으면 지팡이를 버려야 하지만, 다리가 낫기 전에는 지팡이가 필요해요. 그러니 중생의 상태인 지금은 의지처가 필요한 거죠. 그러나 다리가 나은 뒤에는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부처님의 역할은 지팡이와 같습니다.
부처님은 의지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한다면 의지처가 되어줍니다. 그런데 의지처가 되어줄 때 영원히 기대야 하는 의지처가 되어주면 종교가 되어버려요. 우리가 지금은 비록 의지하지만, 불교의 목표는 의지하는 않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목표로 가는 동안에 잠시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보살도 부처님처럼 중생이 필요로 할 때 잠시 의지처가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질문자는 아직 부처가 아니니까 의지심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처의 길로 가겠다고 발심한 수행자, 즉 보살이니까 다른 사람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두 가지를 모두 거꾸로 하고 있어요. 자기가 의지심을 가진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의지심이 없어야 할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 수행을 하면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에게 잠시 의지처가 되어주는 걸 기꺼이 해야 하는데 의지처가 되어주는 건 싫어하고 있습니다. 단지 의지만 하고 싶어 해요.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중생에 해당합니다.
‘나는 의지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타인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은 기꺼이 수용한다.’
관점을 이렇게 잡으면 됩니다.”
“네, 스님. 그래서 질문드렸어요. 저는 제가 굉장히 독립적이고 의지 안 하고 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살펴보니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반면에 남이 저한테 의지를 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짜증이 올라오고요.”
“속마음은 의지하고 싶지만 의지할 데가 없는 것만 해도 속상한데, 나한테 덤터기로 다른 사람들이 의지하니까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짜증이 나는 거예요. 질문자는 의지처는 되어주기 싫고, 의지만 하고 싶다고 하니까, 가장 하층인 범부 중생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을 굳이 상중하로 나누어 표현해 본다면, ‘나는 의지하지 않지만 중생의 의지처가 되어주겠다’ 이러면 상급에 들어가고, ‘내가 의지처는 못 되어주더라도 의지하지는 않겠다’ 이러면 중급에 들어갑니다. 질문자는 그 밑에 하급에 속합니다.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그래요. 주기는 싫고 받고만 싶어 합니다. 그다음 단계가 ‘주는 것도 싫고 받는 것도 싫다. 내 인생은 내가 살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다음 단계가 ‘나는 받지 않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주겠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바로 보살입니다.
첫째, 의지처를 버리는 공부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지처를 버리는 공부를 한다는 말은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지금은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세상 사람들은 다 의지하고 싶어 하는 심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후배 직원이 나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의 의지처가 되어줄 건지 말 건지는 내가 결정하면 돼요.
그런데 후배 직원이 나에게 의지한다고 해서 짜증을 내는 것은 좀 잘못됐어요. 상대가 의지하면 ‘나는 의지처가 되기 싫어요’ 이렇게 표현하면 되잖아요. 누가 나더러 ‘사랑해요’ 이러면 ‘노 땡큐’라고 하면 되지, 짜증을 내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누가 나한테 ‘돈 빌려주세요’ 이러면 안 주면 되지, 성질을 내는 건 올바른 행동이 아니에요. ‘없어요’라고 하든지 ‘빌려주기 싫어요’라고 하면 되지, 성질은 왜 내느냐는 거죠. 짜증을 내는 건 잘못된 행동이에요.
“상대가 의지를 하면 성질은 내지 말라는 거예요. ‘나도 의지하고 싶듯이 저 사람도 의지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렇게 알면 됩니다. 의지처가 되어주고 안 되어주고는 내 선택이에요. 의지처가 되어주든지, 안 그러면 이렇게 말하면 돼요.
‘나 살기도 힘들어. 그래서 네 의지처가 되어줄 수준이 안 돼. 나를 좋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내 수준이 그 정도가 안 된다. 알았지?’
이렇게 웃으면서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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