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2013)
1. 줄거리
고등학교 시절 완성체처럼 여겨왔던 친구들과의 그룹으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추방당한 채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그러면서 이미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사망한 상태로 살고 있는 다자키 쓰쿠루. 16년 동안이나 사형선고 받은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추방당한 이유를 알게 됐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봐 차마 용기도 내지 못하는 다자키 쓰쿠루는. 마음을 열고 만나기 시작한 사라의 조언으로 다자키 쓰쿠루는 정지된 채 머물러 있고 자신만이 훌쩍 떠나와 버린 과거의 시간 속으로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룹에 속해 있던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켜켜이 쌓인 과거의 시간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기 위한, 그래서 고난이 될 수도 환희의 순간이 될 수도 있는 순례의 길을.
‘시로’는 어째서 동무였던 다자키 쓰쿠루를 강간범으로 몰아 그룹으로부터 추방시켰을까.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은 다자키 쓰쿠루가 결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째서 그를 추방시키는 선택을 하게 됐을까. 그들에게 남겨질 것이 죄책감과 상실감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결국 16년 동안 지옥과 삶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했던 것은 다자키 쓰쿠루 뿐만이 아니라 그들 전부였다는 사실이 암흑과도 같은 시간을 견뎌 온 다자키 쓰쿠루에 대한 위로이자 보상이 된다.
길을 떠나기 전 다자키 쓰쿠루는 결코 기쁨과 환희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 순례자의 마음이 그러하듯 고난과 고통을 짊어질 각오로, 다만 그 고난과 고통의 무게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이기만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순례자의 마음이라면 응당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다자키 쓰쿠루는 온전히 자신의 잘못 때문에 추방당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결정되어진 고육지책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명한 색채를 지닌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된다. 두려웠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면서 과거로부터 놓여나고 자의식까지 회복하지만 그리웠던 과거로 돌아갈 수도, 친구들과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도 없다는 체념 또한 그의 몫이었다.
2. 다자키 쓰쿠루가 16년 만에 친구들을 다시 만나 지난 일에 대하여 나눈 대화와 상념
(p.229) 사실이란 모래에 묻힌 도시 같은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쌓여 점점 깊어지는 수도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모래가 날아가서 그 모습이 밝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p.290) 그들은 둘 다 어느 시점에서 쓰쿠루의 인생에서 사라져 갔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참으로 갑작스럽게. 아니 사라져 간 것이 아니라 그를 잘라 버리고 내팽개쳤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쓰쿠루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고 그 생채기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지만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상처를 입은 것은 또는 부서진 것은 쓰쿠루가 아니라 그들 두 사람이 아니었을까. 쓰쿠루는 최근에 이르러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p.291) 자신이 끌어안은 게 깊은 슬픔이며 결코 무거운 질투의 멍에가 아님에 새삼 감사했다.
나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이 없기에 설령 일시적이라 해도, 거기서 쉴 자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밤에 활동하는 고독한 새가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집 지붕 뒤편에서 한낮의 안전한 휴식처를 구하듯이. 새들은 아마도 그 텅 비고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이다. 그렇다면, 쓰쿠루는 자신이 공허하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
(p.308) 사람의 마음은 밤의 새다. 조용히 뭔가를 기다리다가 때가 오면 일직선으로 그쪽을 향해 날아간다.
(p.340) 우리 모두는 온갖 것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 하나의 일은 다른 여러 가지 일들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정리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따라와. 그렇게 간단하게는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몰라. 너든, 나든. 그렇지만 기억은 감출 수 있어도 역사는 바꿀 수 없어.
(p.363)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p.369) 유즈가 끌어안은 문제를 우선시하다가 죄도 없는 다자키 쓰쿠루를 잘라버릴 수밖에 없었어. 나 편리하자고, 너한테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만 거야. 너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
(p.370) 나에 대해서는 이제 마음에 두지 마. 난 그럭저럭 가장 위험했던 시기를 이겨냈어. 밤마다 혼자 헤엄쳐 건널 수 있었어. 우리는 제각기 있는 힘을 다하여 각자 인생을 살아 왔었어.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 때 혹시 잘못 판단하고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 해도, 어느 정도 오차가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지금과 같은 자리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 느낌이 들어.
(p.371) 지금까지 나는 계속 내가 희생자라고 생각했어. 이유도 없이 가혹한 짓을 당했다고 생각해왔어. 그 때문에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내 인생의 자연스러움을 비틀었다고. 솔직히 말해, 너희 넷을 원망하기도 했어. 왜 나 혼자만 이런 참혹한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희생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칼날이 나를 벤 건지도 몰라.
(p.378) 쓰쿠루. 우리가 우리였다는 거, 절대로 헛된 일은 아니었던 거야. 우리가 하나의 그룹으로 일체감을 가졌다는 것 말이야.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p.382) 역을 만드는 일하고 마찬가지야. 그게,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져 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p.404) 인생은 복잡한 악보 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 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올바로 해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올바른 음으로 바꿔 냈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사람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리란 보장도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것일까?
(p.436)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3. 감상
색채 없이 무난한 성격의 쓰쿠루가 이름처럼 개성 넘치는 색채를 가졌던 친구들로부터 16년 전에 받았던 추방의 낙인의 고통이 리스트 “르 말 뒤 페이(순례의 해)” 피아노 선율 속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순간의 절망감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기 때문인지 작가는 이 소설을 더없이 따뜻하게 써 내려간 것 같은데, 이번에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그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젊은 날의 친구들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혼자 설 수밖에 없다. 세월은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때 이름처럼 개성 넘치는 색채를 가졌던 쓰쿠루의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면서 저마다의 빛을 잃어 간다. 처음부터 빛나지 않던 것보다 한순간 빛나다가 그 빛을 잃는 것이 더욱 슬픈 것 같다. 그러나 찰나의 행복한 세월이었다 해도, 그것이 이윽고 상실되고 고통으로 변질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를 지탱시켜 준 그 시간들은 충분한 가치 있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애도하고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16년이 지나서 비로소 가슴 속에 담은 이야기를 꺼내어 서로 나눈다.
친구들을 만나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여전히 혼란스럽고 풀리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쓰쿠루는 자기가 처한 상황 안에서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을 결심한다. 아직 완벽하게 ‘납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기로 한다. 그 자신이 무색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투영된 빨강, 파랑, 하양, 검정 친구들을 담고 그렇게 또 걸어간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성실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고, 길을 걷는 자들은 함께하던 길이 갈라졌다 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쓰쿠루’가 일본어로 ‘만들다’라는 의미의 단어라는 것은 상징적이다. 우리의 삶은 각자가 만들어 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처가 힘이 되기까지, 우리는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하루키의 여행법」에서 작가는 ‘아무리 멀리까지 가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그저 나 자신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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