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에지 (Black edge)
실라 코하카 지음 | 윤태경 옮김 | 김정수 감수 | 서울파이낸스앤로그룹 | 2018년 07월 09일 출간
미국 월가 역사상 최강의 트레이더 중 하나로 꼽히는 SAC 캐피털 스티븐 코언은 월스트리트를 바꿔 놓았다. 그를 비롯한 헤지펀드 산업의 개척자들은 철도를 건설하지도, 공장을 세우지도, 신기술을 개발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베팅하는 투기를 했고, 틀리는 경우보다 맞는 경우가 많았기에 수십억 달러를 벌었다. 그들은 엄청난 부를 쌓았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헤지펀드는 현재 3조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 중이고, 헤지펀드 간의 경쟁이 너무 극심해 트레이더들은 무슨 짓을 해서든 비교 우위의 정보인 에지(edge)를 얻으려 한다.
코언은 모든 업계 사람이 동경하는 헤지펀드 업계 최대 성공담의 주인공이다. 1956년 롱아일랜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월가의 스타가 되길 갈망했다. 고등학교 시절 포커에 통달했던 그는 와튼 스쿨에 진학했다. 그리고 1992년 SAC 캐피털을 설립해 거의 전적으로 자신의 마법 같은 주식 트레이딩을 토대로 15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제국을 건설했다. 코네티컷 그리니치에 3만 5천 제곱피트(983평) 면적의 대저택을 건설하고 헬리콥터로 출근하고, 개인 컬렉터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컬렉션을 갖춘 엄청난 부자였지만, 은둔적 태도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월가에서 코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트레이더 중 한 명이자 천재로 숭배됐다.
그러나 SAC 캐피털이 FBI, 연방 검찰, 증권거래위원회가 7년간 벌인 광범위한 수사의 타깃이 되면서 코언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났다. 20년 동안 연평균 3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것의 기본 토대는 내부자 정보 거래이었다. 은밀하게 내부집단 내에서 돈이라는 욕망을 매개로 “에지”를, 심지어 내부정보를 의미하는 “블랙 에지”까지도 최대한 확보하도록 장려하는 기업 문화 탓에 검찰에게 “금융 사기꾼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라는 딱지가 붙은 SAC 캐피털은 결국 기소됐고, 만연했던 내부자거래 행위들과 관련된 증권사기와 금융사기 혐의에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기소당하지 않은 마지막까지 개인회사로 회사 형태를 전환하고 기존 월 스트리트로부터 이전의 최고 대우를 계속 받고 딜링을 계속하고 있다. 연방 정부는 코언은 못 잡았지만 그의 휘하 트레이더 8명을 형사 법정에 세웠고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코언에 대해서는 잘못된 기업문화와 직원에 대한 감독 책임을 물어 약 1조 6000억 원을 벌금과 제재금으로 받아냈다. 코언을 잡지는 못했지만 한쪽 팔을 잘라내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FBI 요원들은 혐의자를 잡을 때까지 직감에 따라 단서를 잡고, 통화를 감청하고, 증인을 포섭하고, 수사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는 가운데, 검사 연봉의 35배를 받으면서 능수능란한 변호를 펼치는 변호사들과 맞서는 이상주의자들인 연방 검사들의 이야기다.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부수고, 문서를 파쇄하고,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친구를 밀고하는 젊은 트레이더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직원들에게는 불법거래를 강요하면서도 경영진이 처벌받는 사태를 피하려고 SAC 같은 헤지펀드들이 어떤 편법을 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성공과 야망을 위해 사활을 다해 블랙 에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월가의 인물 군상들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월가의 역사에서 최고의 변호사, 투자은행가,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이 어떻게 내부자거래에 얽혀드는지, 그리고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 들어가는지를 마치 영화처럼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내부자 거래 반칙이 나쁘고 수용해서는 안되는 범죄라는 전제를 가지고 얘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들을 조장하는 돈 주인들이 있기에 이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좀 더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불법적인 상황을 짐작하고도 미국의 수많은 기금과 펀드들은 코언에게 돈을 맡기고 싶어 줄을 섰던 이야기 실상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높은 수수료를 챙겨갔음에도 불구하고 SAC 캐피털이 남겨주는 수익률은 다른 헤지펀드보다 훨씬 높았고 수익이 모든 것을 덮으면 되는 것인가? 정정당당하게 본인의 능력으로 놀라운 수익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현실에서 항상 상식으로 확인되어야만 했었다. 최근 ESG 투자를 지향한다는 투자 목표가 등장하고 있으나 투자하는 매니저나 돈의 주인들이 수익의 내용에 대하여 엄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애써 눈을 감고 더러운 역할을 사모펀드 매니저들에게 맡겨 놓고 본인들은 깨끗한 척 결과만 향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돈 자체가 인간의 욕망의 집합이므로 항상 우리 모두에게 직업윤리를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일하는 사람이 계속 바뀌지만, 돈 주인은 잘 안 바뀌므로 이들의 생명력이 훨씬 더 강해서 현실 개혁이 잘 안될 것이라는 상식만 확인한 것 같아 책을 읽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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