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릉대전, 천하삼분을 위한 필연의 전쟁

이릉대전, 천하삼분을 위한 필연의 전쟁

 

관우의 죽음과 형주 상실은 촉오관계를 급속도로 악화시켰고, 이러한 가운데 조비는 제위를 찬탈한다. 유비에게 있어서 형주 상실은 천하삼분 전략의 결정적 파탄을 의미한다.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자 익주를 차지한 유비는 한나라를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촉한을 건국하고 황제에 올랐지만, 의형제를 잃은 유비의 마음은 더없이 아팠다. 게다가 급변하는 정세는 유비를 더욱 급하게 만들 었다. 유비의 선택은 오직 하나. 동맹관계를 깬 오나라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의형제들과 맺은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융중대책을 실천하는 길이 었다.

조운은 나라의 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고, 위나라를 멸망시키면 오나라는 저절로 복종한다며 유비의 친정（親征）을 말렸으나 유비는 듣지 않았다. 제갈량 역시 유비의 생각을 바꾸려 했다. 순망치한과도 같은 오나라와의 동맹이 아직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유비 또한 형주 없이는 제갈량의 계책을 달성할 수 없으며, 나아가 형주 상실은 곧 촉나라의 목숨을 끊는 것과 다름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유비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은 것도 익주만으로는 촉나라의 멸망을 피하기 어렵다는 냉철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릉대전은 이처럼 촉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유비를 의형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인정적인 인간으로 각색했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 축적된 신의를 중시하는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손권이 제갈근으로 하여금 유비와 강화를 맺으려고 형주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이는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정녕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주겠다고 했다면 유비도 필요 없는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 급박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권은 형주는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비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형제들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형주를 탈환하는 것, 이것이 유비의 이릉대전 전략이었다.

형주탈환에 관한 한 제갈량은 어느 정도 희망을 가졌다. 그러므로 제갈량은 생애 최대의 도박과도 같은 유비의 동정（東征）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비는 형주공략의 주역인 오나라 장수 육손의 전술에 말려 이릉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청나라의 학자 전진굉은 유비의 서툰 용병술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유비가 어째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패배했을까? 교만함은 독단과 방심을 낳고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다. 역사가 누누이 지적하고 항상 경계하라고 타이르건만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천하의 유비도 독단과 방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