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 한겨레,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2-10-16 >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고 싶지 않을까?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했다는 반론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논쟁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어떤 성찰의 말도 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불평등을 키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비판일 게다. 특히 진보진영 내부에서 많이 나온 비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 10년간 불평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정말 민주정부 10년 때문이고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란 말인가?
민주당 정책통으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은 최근 출간한 <좋은 불평등>에서 그건 잘못된 속설이라며 “진짜 이유는 중국의 급성장과 한국 대기업의 수출 대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출=좋은 것, 불평등=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독자들께서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실 걸 권하는 뜻에서 왜 그렇게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건너뛰겠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 경제 불평등에 관한 기존의 잘못된 통념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신선하거니와 흥미진진하다. ‘통념 뒤집기’ 사례를 하나 더 감상해보자. 일부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좌파적’이어서 실패했다고 공격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진단엔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겠지만, 2022년 대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민주당 경선 후보 6명 가운데 소득주도성장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최병천이 주목하는 건 실패한 원인이다.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 있지 않다”며 “진짜 하층은 오히려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실제 불평등 구조와 진보세력이 인식하는 계급론의 틀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음에도 진보세력은 비노동(노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짜 하층’과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병천은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대기업의 성공 원인을 ‘약탈’의 결과로 보는 기존 시각에도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정경유착과 정권의 특혜,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만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상층이든 하층이든 ‘상향 이동’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상층이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반대하는,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주는 억강부약 시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주장이다.
최병천의 이런 일련의 ‘통념 뒤집기’에 반론을 펼 사람들이 많을 게다. 아니 많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했다는 반론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논쟁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다시 전의를 불태우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만 치중할 뿐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주장엔 아무런 오류가 없었다는 듯 어떤 성찰의 말도 하지 않는다.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기존 ‘진영 전쟁’ 모델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상대편이 잘못해서 이기는 것”과 “우리가 잘해서 이기는 것” 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은 필요한 게 아닐까?
최병천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일 1망언’을 하는지 알고도 그를 뽑았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을 더 들어보자.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왼쪽으로’ 가거나, ‘더 많은’ 현찰을 나눠주는 게 아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 시기 민주당이 자체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30세대의 65%가 기본소득을 반대했다. 현재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신뢰감을 주는’ 정책 행보다.”
탁견이다. 평범한 상식으로 여겨져야 마땅하겠건만, 민주당엔 대선에서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탁견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때리기’에만 집중할 뿐 ‘더 신뢰감을 주는’ 정책 행보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공격을 위해 신뢰를 훼손하는 일마저 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내부의 ‘충성 경쟁’이 신뢰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었을까? 많은 유권자가 염증을 낸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바로 신뢰의 문제임을 직시하면 좋겠다.
2. “소주성, 선했지만 실패해”…진보 인사의 냉정한 ‘고백’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 “진보경제도 개혁해야”
“한국 진보경제, 로빈후드 세계관 닮아…주류 되려면 균형 갖춰야”
< 조선일보 전태훤 선임기자, 2022.11.22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유치환 시인의 ‘깃발’은 이렇게 시작한다. 떠들썩한 외침에 소리가 없다니…. 역설법의 대표이지 싶은 이 짧은 시 구절에 견줄 만한 또 하나의 역설적 화두가 던져졌다.
최근 진보 진영의 정책 전문가가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소득 주도 성장론(소주성)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진보 경제에 대한 반성을 담아 쓴 신간 ‘좋은 불평등’. 민주당 등 진보 야당에서 정책 전문가로 활동해온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좋은 불평등’을 통해 진보의 경제 정책이 실패한 원인과 진보가 앞으로 나가야 할 혁신을 이야기했다.
보수가 ‘까는’ 게 아닌, 진보 진영 안에서부터 나온 자기반성이라 화제다. 진보의 발전을 위해 내는 그의 ‘작은’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다.
진보 경제에 대한 자기반성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성인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보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전 정부에 대한 반성도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보세력의 주장을 대체로 수용했다. 물론 공과(功過)가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를 넘어 한국 진보 전체에 대한 평가를 수반해야 한다고 본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했다. 선한 취지를 갖고 시작한 정책이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특히 최저 임금 1만원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는데, 그 부작용을 냉정하고 충분히 평가해야 앞으로 제대로 된 유능한 경제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이왕이면 진보 내부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 생산적일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언론도 학계도 진영화 돼 있다. 진보도 보수도 서로 상대측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 더 나은 진보로 가려면 내부에서 비판이 나와야 한다. 반성과 토론을 통해 진보가 혁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거다.”
좋은 원인이 빚은 불평등
-불평등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경제학에서 불평등은 ‘격차’다. 하층 소득 대비 상층 소득의 격차다. 임금 불평등은 임금 격차, 소득 불평등은 소득 격차, 자산 불평등은 자산 격차로 나타난다. 불평등은 ‘결괏값’이다.
좋은 불평등은 ‘좋은 원인’ 때문에 불평등이 증가한 경우를 말한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논리적 경우의 수는 3가지다. 상층이 오르거나, 하층이 떨어지는 경우, 그리고 중간층이 얇아지는 경우다.
198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임금 불평등 추이를 보면, 수출이 증가할 때 불평등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할 때 불평등이 감소하는 패턴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그럼 수출이 증가해서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우, 이를 나쁘게 볼 문제인가? 반대로 수출이 감소한 결과로 불평등이 줄었다면, 이를 좋게 봐야 하나?
‘좋은 불평등’이라는 표현은 결과만을 주목하는 게 아니라, 원인을 인수분해 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좋은 불평등 vs 나쁜 평등
-둘 중 어느 쪽이 나은가?
“한국 경제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좋은 불평등’과 ‘나쁜 평등’이 어떤 경우였는지를 놓고 이야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우리나라가 이른바 중국 수출로 대박이 날 때, 한국의 불평등이 증가했다. 이 시기 한국의 대중국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30%에 달했다. ‘좋은 불평등’의 대표적인 경우다.
‘나쁜 평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교역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국의 수출도 줄고, 고용과 투자도 줄었고, 불평등도 줄었다. ‘나쁜 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진보 경제, 불평등 해소에 실패
-실패 원인은 뭔가?
“불평등의 하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이 노인이다. 노인 소득을 올리는 정책을 사용할 때, 불평등은 대체로 줄었다. 기초연금 인상과 노인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경우, 2018년에는 ‘임금 주도 성장론’의 성격이 더 강했다. 저임금 노동자가 주요 타깃이었다. 특히 2018년에는 고용 충격이 왔다. 2019년에는 ‘노인 주도 성장론’의 성격이 더 강했다. 노인이 주요 대상이었다. 고용도 상대적으로 늘고, 불평등도 더 개선됐다.”
경직된 정책 추진으로 부작용 생겨
-소득 주도 성장은 실패한 정책인가?
“소득 주도 성장이 완전히 실패한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소주성은 크게 ‘진보적 노동정책’과 ‘진보적 복지정책’으로 구성돼 있었다. 진보적 복지정책의 경우 순기능이 더 많았다고 본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나 치매 국가책임제 등이 대표적이다.
진보적 노동정책의 경우,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든지 국민취업지원제도 등은 긍정적 측면이 크다. 다만, 최저임금 1만원이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경직되게 적용한 것이 부분적으로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본다.”
진보 경제, 로빈후드 세계관 닮아…이분법적 사고의 한계
-진보 경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한국의 진보세력은 오랫동안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진보 경제학도 ‘저항이론’ 혹은 ‘문제 제기’를 주요 책무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진보 경제도 앞으로 ‘주류’가 되려면 경쟁력, 계층 사다리, 수출, 불평등, 사회통합의 문제를 종합적이고 균형감각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진보 경제는 로빈후드적 세계관과 닮았다. 자본가나 부자는 나쁘고, 노동자, 서민은 좋은 집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 이미 사회주의는 망한 이념인데, 아직도 진보 측 사고는 여기에 멈춰있다. 진보의 사고도 개혁해야 한다.”
보수, 사회 안전망과 계층 사다리 등 사회통합 신경 써야
-불평등을 대하는 보수 쪽의 문제는 없나?
“한국 보수는 사회통합의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사회 안전망과 계층 사다리가 대표적이다. 세계화의 양상 변화, 기술의 변화 등에 따라 경제구조 자체가 더 복잡해지고, 경쟁 격화가 심해지고 있다. 사회 안전망과 계층 사다리에 대한 과감한 사회투자가 중요한데, 이런 부분을 챙겨야 한다.”
임금∙자산∙노인문제 불평등 해소 시급
-한국의 가장 큰 불평등은 무엇인가?
“임금 불평등, 노인 문제, 자산 불평등이 모두 꼽힌다. 임금은 전체 가구소득의 약 70%를 차지한다. 다만, 임금 불평등은 ‘역량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역량의 불평등에는 부모의 사회∙문화적 자본, 교육 기회에 대한 접근성과 또 연동되어 있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계층 사다리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노인 문제에선 노인 빈곤 문제가 핵심이다. 다만, 한국의 초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초고령화 문제라는 더 넓은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산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선 책에서 다루지 않았는데, 실제 생활에서 매우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불평등 원인 인수분해로 답 찾아야
-불평등을 최소화할 방법은 없을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불평등은 ‘결괏값’이다. 원인을 따지지 않는다. 불평등의 원인을 인수분해 해야 한다. 좋은 원인과 나쁜 원인으로 나눠야 한다. 특히 나쁜 원인 때문에 생기는 나쁜 불평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노인 빈곤과 연결된 노후 소득보장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계층 사다리 정책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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