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구정을 지나 2주 건너뛰고 둘레길을 나섰는데, 미세먼지로 인하여 오전 내내 안개가 끼어 답답한 날씨이었다.
- 기온은 완연히 봄을 예고하고 있으나, 보이는 풍경들은 여전히 겨울의 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눈여겨 봐도
식물들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을 아직은 거의 보지 못하였다.
- 오늘 역시 둘레길에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신륵사나 캠핑장, 한강문화관에는 나름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붐비었다.
- 여주시 이호리에서 양화나루까지를 남한강 부분을 여강(驪江)이라 하고 여주8경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늘 내가 구경한
곳은 신륵사, 영월루 마암 등 두 곳이다. 그래도 금은모래캠핑공원부터 공원을 지나 우만리나루터, 소무산 참나무 산길도
가을 단풍이 아주 멋있을 것 같아 가을에 다시 오고 싶을만한 길이었다.
- 둘레길을 다니면서 오늘 역시 대중교통수단이 변변치않음을 탓하였는데, 탓을 하려면 기실 그것을 선택한 내 탓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지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단순하게 살고 있고 대중교통은 남의 얘기처럼 건성으로 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2. 오늘 걸은 경기둘레길 코스
- 여주 33코스 (11.2Km) : 강천면사무소~가야1리 마을회관~목아박물관~차본 본사앞~신륵사
- 여주 34코스 ( 6.6Km) : 신륵사~영월근린공원~금은모래캠핑장~금은모래강변공원~한강문화관
- 여주 35코스 (10.2Km) : 한강문화관~남한강교~여주카라반캠핑장~여주 푸른달~도리마을회관
* 경기둘레길 누적 현황
- 출정 회수 : 14회차
- 완료 코스 : 1~11코스, 44~60코스. 31~35코스 (총 33개 코스)
- 완료 거리 : 500 km (58%)
3. 교통편
- 출발지점 : 왕십리(05:14) - 이매역(05:54) - 여주(06:02~06:48)- 여주130버스(08:50탑승)
- 강천면사무소 시점 도착(09:15)
* 빨리 출발하고자 첫차를 타서 여주역에 6:50분에 내렸으나, 목표로 한 07:10분 출발 995번이 대순진리회로 가지 않는
다고 버스기사가 주장하는 바람에, 목표지점으로 출발하는 것이 08:50분으로 1.7시간 지연되는 사태 발생
- 귀가 : 사곡1리마을회관 110번 버스(17:15) - 여주역(18:45) - 이매역 - 왕십리 (20:30)
* 도리마을회관에 15:45분 도착하였으나 버스간격이 너무 길어, 3.9Km 거리를 도보 이동하여 사곡1리마을버스정류장
에서 17:15분 110번 버스 탑승
* 사곡1리에서 여주역까지 110번이나 120번 공히 버스 노선은 동일하고 18.7Km, 50분 소요
- 일출 07:23, 일몰 18:03
- 날씨 : 오전 맑음, 오후 흐림
- 일중온도 : 최고 +8도, 최저 -4도
4. 둘레길 실행 기록 : 7.5시간, 34.5Km 소요 (09:15 시작 - 16:45 종료)
* 소무산 우회노선으로 인하여 실제 둘레길 거리는 30.6Km 소요
5. 경기둘레길 양평 33코스 : (강천면사무소~대순진리회~목아박물관~신륵사)
(여강에서 부는 바람 나그네 옷자락 휘날리네)
강천면사무소를 떠나면 오래지 않아 편안하고 조용한 마을 길로 접어든다. 마을은 산기슭에 남향으로 안온하게 자리 잡았다. 마을 길을 따라 끝까지 나가면 ‘여강’이다. 여주 사람들은 남한강 여주 구간을 여강으로 부른다. 강물을 따라가던 걸음은 강천보가 보이면 여강과는 잠시 이별하고 대순진리회라는 생뚱맞은 건물군들이 길에 자리잡고 있다. 이어 목아박물관을 지나면 다시 여강이다. 금당천이 여강에 몸을 맡기는 두물머리는 강변으로 길이 없다. 금당천으로 우회해 숲길을 따라 신륵사로 간다. 여강길 3코스와 노선이 같다.
<주요 Site >
목아박물관
1990년 개관한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의 불교 문화를 보여 주는 불상, 불화, 불교 목공예품 등의 유물과 자료 6,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보물로 지정된 3점의 전시품도 관람할 수 있다.
신륵사
신라 진평왕(579~632)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신륵사는 드물게 강을 바로 앞에 둔 사찰로서 국가 지정 보물 8점, 경기도 지정 문화재 5점, 총 13점의 문화재를 보유한 유서 깊은 절이다.
"신륵(神勒)"이라는 절 이름의 유래로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신이한 미륵(彌勒)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신륵사의 륵(勒)자는 말을 다스린다는 뜻이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는 고려 우왕 때 왕사 나옹(王寺懶翁)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를 신비한 굴레를 씌워 얌전하게 다스렸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 사나운 용마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승려 인당(印塘)이 나타나 고삐를 잡아채자 순해졌다는 이야기이다. 설화에 나타난 신력과 굴레에서 신륵(神勒)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신륵사에서는 고려의 고승인 나옹이 머물러 절이 크게 확장되었다. 나옹은 1376년(우왕 2)에 신륵사에서 사망하여 이색이 이곳에 대장각을 짓고 《대장경》을 봉안했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지난 번 못찍은 여주역 입구이다. 여주역은 여주 도심의 남서부 외곽에 위치하고 있고 새로 건립된 아파트 단지가 멀리 있고 역 주변 상가는 전혀 없다.
- 목표로 한 995번 버스를 07:10에 타려 하니 강천리 방면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버스는 130번 버스로 08:50분까지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해당 버스회사에 전화로 물어보니 강천리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맞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살다보면 이런일이 가끔 있기는 한데, 원래 타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평균적인 반응이나, 여주는 전체적으로 침체된 느낌으로 버스기사들로부터 친절한 느낌을 받지 못하였다.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이겠지만 그럴수록 더 살기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언제나 깨달을 지 모르겠다. 이런 교통 시스템에서는 빡빡한 대중교통 여행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뭏든 원래 시간보다 1시간 40분 출발이 늦다보니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생각보다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다가 겨울 특유의 안개 낀 갈색의 풍경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어 편안하지는 않았다.
- 야산의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뭘 하려는지 궁금하다.
- 건너편이 대순진리회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병원이라 한다. 시설이 대형급이다.
- 가야1리라는 마을에 폐허가 된 천주교 공소(수원교구 북여주성당 가야리공소)가 외로이 서 있다. 농촌인구 감소로 모든 시설이 낡아지고 없어져 가는 것 같아 쓸쓸하다.
- 마을 입구를 지나면 남한강변에 드디어 도달하게 된다.
- 바로 건너편이 강천보 한강문화회관이다.
-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강변을 따라간다.
- 강둑끝, 강천보 북쪽 건너편은 대순진리회 소유 땅이라 강변길이 끊어지고, 대순진리회 중앙도로를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건물 외곽 오른쪽으로 진입한다.
- 전통식으로 지은 건물들의 관리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조경도 훌륭하다.
- 종교단체라 일요일이어도 건물 정면에 안내하는 사람들이 상주하고 나와있다.
- 대순진리회를 말하자면 증산도 얘기가 나오는데 참 복잡한 종교이다. 최준식의 <한국 종교사 바로 보기 : 유불선의 틀을 깨라>를 보면 한국의 전통종교를 유교, 불교 이외에 무교를 들고 있다. 대순진리회는 구한말 난세 상황에서 나온 강증산에서 파생된 수많은 유파 중의 하나로서 신도가 되면 모든 재산을 헌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재산으로 이 지역에 종교시설을 설치하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재단법인 '대순진리회'는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의 대순진리를 종지로 하고, 인간 개조,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을 위하여 1987년 12월 8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 강증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교파들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다른 증산계통 교단들이 분파는 많으나 대부분 교세가 미미한 상황과 대비된다. 한때 신도수 400만을 주장했다. 이는 과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영생교, 천부교의 최대 신도수를 합친 것보다 크고 320만 명의 신도 수를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리고 인구주택총조사 종교항목에서 명시된 8개 항목 중 하나를 차지한다.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통계는 10년마다 실시하는데, 1995년부터 대순진리회가 정식항목으로 들어갔다. 2005년에는 대순진리회 대신 '증산교'로 되어있는데 '증산교'라고 하면 증산계열 종교를 모두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심지어 교명이 '증산교'인 교단까지 있다. 결국 증산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신도가 모두 이쪽으로 잡히는 문제점이 있었고, 반대로 대순진리회 신자들이 증산교가 아닌 '기타'를 고르는 일도 왕왕 있었기에 당시 통계가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인지 2015년에는 '증산교' 대신 '대순진리회' 항목이 부활했다. 그러다가 2015년부터 종교통계가 전수조사에서 표본조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다시 전수조사를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신도수 파악은 어렵다. 대순진리회 측에서는 현재 신도수가 꾸준히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 드디어 대순진리회 타운을 벗어나 출구에 도달하였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야 목아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다.
- 목아박물관 가는 길은 차도, 보도 구분이 없는 길이다.
- 목아박물관 앞을 지나간다. 목아박물관은 불교 조각가인 박찬수(朴贊守)가 1989년 2월 28일 박물관 건립공사에 착공하여 1990년 4월에 본관 전시관을 완성하고 목아전통공예관으로 임시 개관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다. 이후 학예연구실을 비롯한 부속 건물과 야외 조각 공원이 완성되면서 1993년 6월 12일 목아불교박물관으로 개관하였고, 개관 기념행사로 ‘미륵삼존대불의 봉안식’, ‘문화재 수리기능 보유자전’, ‘미륵사상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목아(木芽)는 설립자인 박찬수의 법명을 빌어 온 것으로 나무의 싹이 트듯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불심이 돋아나는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붙인 이름이다. 2014년 목아불교박물관에서 목아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목아박물관을 지나 다시 강변길을 따라 간다.
- 이 강은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금당천이라는 지류인데 강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하얀색 부유물은 물론 지난 해 홍수 때 떠내려온 각종 부유물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어지러져 있다.
- 이런 곳에서 두 사람이 낚시하고 있다.
- 반대편 논에는 철새들이 바닥에 앉아 휴식하고 있다.
- 금당천을 건너기 위해서 다리(금당교)를 건넌다.
- 금당교 건너 왼쪽 강변길 따라가다 보면 신륵사 오르는 길이 나온다.
- 둘레길은 전체적으로 강을 따라가는 길이나 주로 전원주택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을 만나면 아래와 같이 이를 비켜서 지나가야 한다.
- 경기도 안 좋다는데 경기둘레길에서 수시로 보는 이 수많은 전원주택, 팬션을 누가 사는 지 참 궁금하다.
- 신륵사 가기 전에 약간 도로를 따라 가다 왼쪽길로 접어 들어야 한다.
- 신륵사 후문이다.
- 신륵사 정문이다. 안보이는 왼쪽에 입장권 받는 안내소가 별도로 있다.
- 오른쪽 건너편에 경기둘레길 33코스 종점이 나온다.
6. 경기둘레길 양평 34코스 : (신륵사~영월근린공원~금은모래캠핑장~금은모래강변공원~한강문화관)
(달맞이 언덕에 올라봐도 밥 짓는 연기는 간 곳 없고)
신륵사는 여강변에 바투 붙여 지은 사찰이다. 오래된 절집답게 경내에는 나라에서 보물로 지정한 문화재가 여럿이고 입장권을 구입하여 들어가는 절이다. 관광버스도 여러 대 드나들고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신륵사를 떠나 여주대교 옆 연인교를 건넌다. 보행교인 연인교 끝 왼쪽 언덕 위에 영월루가 있고 6.25기념탑들이 있다. 시원시원한 여강 풍광은 영월루가 주는 선물이다. 강 건너 밥 짓는 연기가 오르는 모습이 여주팔경 중 하나였다지만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잘 정비된 금은모래강변공원을 지나면 강천보가 보이고 한강문화관이다.
<주요 Site >
황포돛배
여주를 흐르는 남한강은 삼도의 물산을 수송하는 나룻배와 상선 등이 다니던 물길로, 옛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황포돛배를 타면 시원한 강바람과 남한강과 여주의 풍광까지 즐길 수 있다.
출렁다리
역사 테마의 신륵사와 레저 테마 관광지인 금은모래유원지가 서로 반대편 강변에 위치한 신륵사관광지를 지역 간 자유롭게 강을 오갈 수 있는 출렁다리로 연결하여 여주시의 새로운 명물로 기대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다리는 연장 515m, 폭 2.5m로써 교량 자체에 체험형 관광상품도 설치되며 2021년 3월 총사업비 280억원이 투입하여 2023년 10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신륵사 지나쳐 주변 공원의 메타세콰이어 나무
- 여강을 가로지르는 국유하천 최초의 출렁다리가 내년 완공예정으로 건설 중이다.
- 완공 후 모습 (조감도)
- 여주박물관
- 여주도서관
- 여주대교를 걷너면 여주 시내가 나온다.
- 다리 건너면 외쪽에 바로 6.25기념 및 그리스군 참전비가 나온다.
- 여주를 조망할 수 있는 영월루이다.
- 영월루에서 여주 시내 방향으로 내려다 본 정경
- 이제 가고자 하는 동쪽 강천보쪽을 내려다 본 정경
- 여주대교 북쪽 신륵사 방향
- 현충탑
- 다른 전망대에서 강천보를 쳐다 본 정경
- 강을 바라보는 카페의 규모가 엄청나다.
- 황포돛배가 지나간다.
- 영월루를 지나 동쪽으로 길을 시작하면 금은모래캠핑장이 바로 나온다. 사람들이 많다.
- 폰 박물관
- 금은모래강변 입구이다. 이곳을 지나면 다채로운 설치물들이 나온다. 겨울이라 사람이 없다.
- 오늘 처음으로 본 푸른 빛깔의 잎들. 철쭉잎인 듯 하다.
- '갑순이와 갑돌이' 테마파크
- 공원 끝나는 곳이 이호대교 밑을 지나는 길이다.
- 강남쪽에서 본 이호대교'
* 이호대교 : 경기도 여주시 여흥동(연양동)에서 여주시 강천면을 잇는 길이 910m, 왕복 4차선의 교량이다. 1995년 중반에 착공해 1998년 6월에 준공됐으며, 42번 국도가 이 다리를 지나간다. 다리의 이름은 여주시 강천면 '이호리'가 이 다리의 시점이라 하여 이호대교라 하였으며, 여흥동(연양동) 사람들은 연양 교차로를 통해, 강천면 사람들은 이호 교차로를 통해 이 다리와 42번 국도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 이호대교를 지나면 강천보가 보이기 시작한다.
- 경기둘레길 34코스 종점 강천보에 도착하였다.
- 한강문화관에는 각종 전시관과 휴게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 강천보 댐을 넘어 흐르는 한강의 물결들. 수력발전은 별도로 시설이 되어 있다.
- 강천보 위에서 내려다 본 자전거길 (경기둘레길도 같다)
- 강천보 건너편 대순진리회 건물.
7. 경기둘레길 양평 35코스 : (한강문화관~남한강교~여주카라반캠핑장~여주 푸른달~도리마을회관)
(조선 선비 꿈꾸던 길에서 우리도 꿈을 꾼다)
한강문화관에서 새로운 길을 연다. 걸음은 여강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마을 길을 돌아 강변으로 나오면, 이제는 쓰임이 다한 부라우나루터다. 강 건너 강천면을 잇고 남한강을 오가던 배들이 쉬어가던 곳이다. 부라우나루터를 지나면 포근한 숲길이 한참 이어진다. 들판이 있고, 물이 흐르고, 물가에는 나지막한 산이 있고, 사람살이에 완벽한 조건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곳이 흔암리 선사유적이다. 아홉 번 굽이치는 ‘아홉사리과거길’은 조선 선비들이 꿈을 꾸며 걷던 길이다.
<주요 Site >
강천보
강천보(康川洑)는 경기도 여주시 단현동과 강천면에 있는 남한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황포돛배와 백로를 형상화한 강천보는 총 연장 440m로 이 중 350m가 필요에 따라 수문을 여닫을 수 있는 가동보이며, 보 주변에는 문화관, 잔디광장, 강변산책로, 생태공원이 있다.
강천섬유원지
강천섬은 가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4대강 공사로 잃어버린 정취를 살리기 위해 여주 시민들의 노력이 깃든 곳이다. 그 노력이 서서히 빛을 내면서 사계절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 중이다. 은행나무길은 가을이면 온 세상을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남한강 상류지대로 청정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아카우월드, 캬약, 수상스키, 수상자전거 등 다양한 종류의 수상 액티비티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이다.
흔암리 선사유적지
총 16기의 주거지가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특히 발굴 당시 남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탄화미와 토기류, 돌도끼, 돌화살촉 등의 석기가 출토되는 등 우리나라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 둘레길 주변 사진 >
- 강천보 지나서 길을 나서자 마자 6.25 전사자 기념비가 나온다. 먼 이국땅에서 산화한 이의 명복을 빌어 본다.
- 단현1동 마을회관 건물과 정자 사이로 길을 간다.
- 의류회사인 '형지'의 연수시설이 이런 곳에 있었다.
- 이제 우리 전통의 참나무 숲이 이어지는 나루터길이다. 가을 단풍이 아주 멋있을 것 같은 길이다.
- 브라우나루터이다. 부라우나루터는 여주읍과 강 건너 강천면 가야리를 잇던 나루였다. 나루터 부근 바위들이 붉은 색이어서 붉은 바위, 붉바우로 부르다가 부라우라는 이름을 얻었다. 주로 강천면 사람들이 여주장을 가기 위해 이용하던 나루였다. 70년대 중반까지는 명맥을 유지했으나 세월과 함께 이야기로만 남았다.
-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남한강교가 나오면 옛날 우만리나루터이다.
- 우만리 나루터에 서 있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보호수
- 우만리 나루터에서 바라본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남한강교이다.
* 남한강교 : 경기도 여주시 여흥동(우만동)에서 여주시 강천면을 연결하는 길이 약 540m, 왕복 4차선의 교량이다. 영동고속도로가 이 다리를 지나간다. 다리의 이름은 당연히 남한강에서 따왔다.본래 남한강교는 1971년 3월에 착공해, 1971년 12월에 준공한 왕복 2차선의 다리였다. 그러나 영동고속도로에 통행 차량이 늘어나고, 다리도 왕복 2차선으로 좁아서 1991년 12월에 착공해서 1994년 12월에 준공됐다. 영동고속도로 남한강교의 남쪽에 있는 구(舊) 영동고속도로의 남한강교는 현재는 일반도로이다. 주변 지역 주민들은 여주IC를 통해 이 다리와 영동고속도로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과 달리, 구 남한강교는 시점이 지금 남한강교와 달랐다. 구 남한강교의 시점은 여주시 여흥동(멱곡동)이다.
- 경기둘레길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남한강교 옆의 구 교각을 횡단하여 맞은 편 산으로 올라간다.
- 야산이라 하더라도 경사가 심하다.
- 둘레길을 가다 보면 곳곳이 전원주택으로 개발이 되고 있어 이런 곳을 만나면 우회하게 된다.
- 잠깐 야산을 지나가다 보면 마을이 나와 마을길로 들어선다. 한쪽에서는 신축 주택 공사가 한창이다.
- 목련의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고자 하는 힘을 모으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 이런 마을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이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곳이다. 외지인들로만 마을이 구성되는 것도 특징이다.
- 차량이 다니는 길가에 선사유적지 안내 팻말이 서 있다. 유적지는 마을 안으로 한참 들어가 산을 오르는 초입에 갑자기 나타난다.
- 야산에 경사가 좀 있다.
- 출입금지 및 길 안내 현수막이다.
- 다시 마을로 내려 왔다. 잠시 후에 앞에 저 멀리 보이는 두 봉우리 중 오른쪽 뒤쪽 봉우리가 소무산이고 이곳을 넘어야 오늘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빨리 온다고 왔지만 지금 시간이 14:40분이어서 도리마을회관에서 120번 버스가 출발하는 15:10 시간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 소무산을 오르기 직전에 나타나는 의문의 공실 건물이다.
- 공실 건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산길에 들어 선다.
- 생각 이상의로 가파른 길을 오른다. 그리고 좀 오래 가야 한다.
- 이곳에서부터 3.7Km를 더 가야 한다고 한다.
- 20분만에 정상에 도착했지만 내려갈 길이 3.2Km나 더 남아 있다.
- 산의 고도가 금방 낮아지지 않고 200m 이상을 계속 유지한다.
- 정상에서 내려 오는 시간이 40분 정도 걸린 듯 하다.
- 산에서 내려오면 왼쪽 길이 도리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이다. 멀리 왼쪽에 동네편의점이 하나 있어 식료품 구입과 휴식이 가능하다.
-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 드디어 경기둘레길 35코스 종점이다. 15:47분인데, 15:10분 버스는 떠나 버리고 다음 버스는 18:10분이라 대책이 필요하였다.
- 도리는 여주시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남쪽에 위치한 점동면에 위치하고 있고 인근 삼합면에서 여주 중심부로 다니는 110번 버스가 인근 사곡리로 지나가므로 사곡1리마을회관으로 3.9Km 도보 이동하였다. 소요 시간은 1시간 걸린 듯하다. 소무산에서 내려온 반대인 남쪽 방향으로 장안 1리, 장안 2리, 장안일반산업단지를 지나갔다. 도리에서 기다리면 2시간 20분 소요되나, 1시간 걸어와서 30분 기다려서 110번 버스를 타고 귀경길에 오른다. 그동안 여유롭게 둘레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은 해왔으나, 최종 50분 차이가 아니라 몸이 느끼는 2시간20분 대비 30분 차이를 기준으로, 시골길에서 고립되는 느낌이 싫어서 몸은 계속 걷는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 그래도 편의점에서 다음 버스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8. 여주팔경 소개
(1) 神勒暮鍾(신륵모종) -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신륵사는 여주읍 천송리에 있는 전통사찰로, 낮고 부드러운 곡선의 봉미산(鳳尾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절 앞으로 ‘여강(驪江)’이라 불려지는 남한강이 유유한 자태로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신륵(神勒)이라는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신기한 미륵(나옹선사, 혹은 인당대사)이 신기한 굴레(勒)로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고 전한다.
신륵사가 유명해진 시기는 고려 말부터이며, 1376년(고려 우왕 2)에 나옹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조선시대에는 예종 원년(1469), 본래 경기도 광주 대모산에 있던 세종의 영릉을 여주군으로 천장하면서 신륵사의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로 바꾸게 하고 세종대왕릉의 원찰(願刹)로 삼았다.
(2) 馬巖漁燈(마암어등) - ‘마암 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여주읍 상리, 영월루 바로 아래의 절벽 바위는 예로부터 ‘마암’이라고 불리던 유서 깊은 곳이다. 여주를 대표하는 관성(貫姓) 중의 하나인 여흥 민씨는 마암 바위의 구멍에서 시조가 탄생했다 하여, 이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다.
또 신라 경덕왕 때 마암 바위 아래의 푸른 물결에서 황룡마와 여룡마(검은 용마)가 출현하여 고을 이름을 황려현(黃驪縣)으로 고쳤다고 하니, 가히 여주를 대표할 만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평한 바위면을 골라 ‘마암(馬巖)’이라고 세로로 크게 써서, 배를 타고 오가던 행인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으나 지금은 관리소홀로 잡풀이 무성한 실정이다.
마암 글씨의 위쪽과 좌측에서 각각 ‘이인응(李寅應)’과 ‘…시월(十月) 일각(日刻)’이, 그리고 우측의 또 다른 바위에서 ‘신현태(申鉉泰)’라는 글씨가 확인되고 있으며, 전후사정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3) 鶴洞暮煙(학동모연) -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학동은 오학리 학동과 현암리 학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옛날에 많은 학들이 이 고장에 와서 쉬었다하여 학동이라 불린다.
(4) 燕灘歸帆(연탄귀범) - ‘제비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남한강 양섬 앞으로 제비여울(燕子灘:연자탄)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물살이 매우 빠른 곳으로 옛날에는 여주팔경 중 하나를 차지했다.
임진란 때 제비여울 전투가 치러진 곳이 이곳이다.
(5) 洋島落雁(양도낙안) -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양도(羊島)는 여주읍 하리의 아랫동네 북쪽 한강 가운데 있는 섬이다.
조선시대 가축 방목지로 이용되었던 섬으로 훗날 양을 길렀다고 하여 양섬이라고 한다. 원래는 벌섬인데 벋은섬으로 변하고 다시 버들섬으로 변하여 일시 양섬(楊島)이라 하다가 현재 이름 양섬(羊島)으로 쓰이게 되었다.
(6) 八藪長林(팔수장림) -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팔대숲은 현암리의 수촌(남한강 옆에 있는 부락) 앞에 있는 숲이다. 길이가 7리가 되어 '바다같다' 하며, 여주 팔경의 하나이다. 정조대왕 때 벌채가 이루어져 농경지로 개간돼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다.
(7) 二陵杜鵑(이릉두견) -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영릉(英陵, 사적 제195호)은 능서면 왕대리의 세종대왕릉이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世宗)과 그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합장릉(合葬陵)이다.
1469년(예종 1)에 결국 한강의 수로를 이용하여 여주 서쪽의 북성산(北城山)으로 천릉(遷陵)하였다.
녕릉(寧陵, 사적 제195호)은 조선의 제17대 왕인 효종(孝宗)과 그 왕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의 쌍릉(雙陵)이다. 1659년(효종 10) 건원릉(健元陵)의 서쪽 능선에 병풍석을 갖춰 모셨으나, 1673년(현종 14) 석물에 틈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영릉(英陵)의 동쪽 홍제동(弘濟洞)으로 천장(遷葬)하였다.
(8) 婆娑過雨(파사과우) -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파사산성(婆娑山城, 사적 제251호)은 대신면 천서리와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의 경계에 있는 파사산(婆娑山, 해발 230.5m)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발달한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삼국시대 이래의 석축 산성이다.
성곽의 전체 둘레는 935.5m이며, 현존하는 성벽의 최대 높이는 6.25m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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