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달래는 슬픈 노래들

 

 

< 조선일보,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3.02.23  >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타히티섬은 높은 자살률로 종종 거론된다. 자살률이 높은 것은 슬픔을 느끼는데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다 보니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비감, 비애, 비참, 비탄, 애수 등 슬픔을 표현할 다양한 단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는 달라도 우리의 종착지가 죽음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슬픔으로 가는 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언젠가 우리 모두 헤어질 운명이라는 걸 떠올리면 모든 인연은 슬픈 인연이다.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사랑과 슬픔의 노래인지라 ‘슬픔의 노래’는 차고 넘친다. ‘사(死)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정사(情死)’로 삶을 마감하면서 광복 이전 ‘슬픔의 가수’로 불렸다.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 선우일선도 윤심덕을 잇는 슬픔의 가수로 지목되었다. 이난영을 잇는 ‘엘레지(elegy)의 가수’로 이미자도 언급되는데, 그들의 창법과 음색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밝은 동요마저 슬프게 들리게 하는 백지영도 슬픈 노래에 일가견이 있는 가수다.

슬플 때 우리는 아예 슬픔에 침잠하거나 역으로 기쁜 일로 슬픔을 희석시키곤 한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며 눈물 콧물 빼는 것이 ‘눈물로 눈물 닦기’라면, 오히려 기분 좋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은 ‘웃음으로 눈물 닦기’다. 슬픔을 소재로 한 노래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이현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신해철), ‘슬픈 바다’(조정현),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이상우), ‘슬픈 선물’(김장훈) 등 대중가요 속 슬픔은 대체로 연인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이다.

슬픈 노래의 백미는 역시 나미의 ‘슬픈 인연’(1985년)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반주에 박건호의 아름다운 가사가 나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애절하게 어우러져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려지곤 한다. 밴드 ‘015B’의 장호일은 대학생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에 매료되어 운전을 멈추고 노래를 끝까지 듣고서 언젠가 그 노래를 다시 부르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1994년에 객원 보컬 김돈규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다짐은 현실이 되었다.

 

https://youtu.be/4h4ZLDvpwOQ


슬픔의 시대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으로 현재까지 4만7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오늘 뉴스는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박세현의 ‘행복’이란 시처럼, 사건 사고 뉴스가 없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싶다. 이미 닥친 슬픔은 공감과 애도와 연대를 통해 조금이나마 사그라질 수 있으니, 지금 이 순간 슬픈 모든 이에게 위로의 마음을 건넨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