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

게리 S. 크로스 · 로버트 N. 프록터 (김승진 역)

동녘 (2016.10.20)

 

 

 

 

1.  쾌락 중독의 놀라은 역사

 

 

■  인간의 감각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19세기말 신기술의 등장 


   19세기 말경에 여러 가지 신기술이 쏟아져 나와 우리가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내면서 인간의 감각 경험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현대인은 감각을 포착하고 증폭시키는 법,감각을 보존하는 법, 감각을 휴대하기 좋고 내구성 있게 만들어 광범위한 계층과 지역에서 접할 수 있게 하는 법을 알아냈다.  19세기 말, 광범위한 종류의 쾌락을 압축하고 상품화하고 운송할 수 있게 만든 테크놀로지들이 대거 등장하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산업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어떻게 먹는지, 무엇을 입으며 그것을 왜 입는지,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듣는지까지도 재구성했다. 또 우리가 일싱의 수많은 측면을 경험하는 방식과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방식까지도 바꿔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인 단절을 하나 가져왔다. 오랫동안 인간의 신체적 욕망은 그 욕망을 충족시킬 기회가 희소하다는 사실에 제약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의 변화는 현대인의 삶에서 이 오랜 길항 관계를 깨뜨렸다 담배말이 기계, 녹음 기계 등 수많은 신기술들은 만족의 강도만 높여준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이 훨씬 쉽게,그리고 끔찍하게 과도한 정도로 충족되게 만들기도 했다. 

 

 

 

■  무한정 가능해진 인간의 식품 섭취와 비만의 등장 

 

   인간 욕망의 확장의 첫번째 명백한 사례가 식품이다. 한 세기 전쯤부터 인간은 기계를 이용해 설탕 범벅 식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됐고 결국 오늘날 건강과 도덕상의 위기에 봉착했다. 언론은 이 위기의 원인을 식품업계의 무책임함과 좌식 생활의 증가(일터에서도, 여가에서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왔지만, 이 문제는 다르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매우 쉽고 빠르게 열량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변화의 뿌리는 매우 깊다. 1만여 년 전 신석기 혁명으로 인간은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기를 수 있게 됐고, 상류층에서는 '비만’이라는 전에 없던 현상도 나타났다. 그런데 19세기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도래하자 훨씬 많은 수의 소비자들이 그러한 과잉을 경험하게 됐다.  산업화된 식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지방,당분,염분을 농축해서 먹기 좋은 크기로 뭉쳐 담는 법을 알게 됐고, 이런 식품을 싸게 제조하는 방법과 멀리 운반하기 좋게 포장하는 법도 알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때는 사치품이었던 먹을거리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흔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두 번째 사실은 인간이 열량이 높은 먹을거리를 추구하도록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희소하던 선사시대에는 그런 음식들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높여줬기 때문이다. 진화의 과정은 인간이 고열량 음식을〔절제하는 것이 아니라〕추구하도록 만들었고, 이런 습성 때문에 인간은 고열량 음식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도 그런 음식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잃어 버렸다


   산업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와 자연의 희소성 사이에 존재했던 균형을 끊어내고 무너뜨렸다.  초코바는 우리의 유전자의 명령에 의하여  당근을 몰아냈고 심지어 사과까지 몰아냈다. 제조된 쾌락의 완벽한 사례인 초코바에는 가공하지 않은 과일,곡물, 야채에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설탕과 훨씬 다양한  맛이 응축되어 있다.  초코바는 안에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고 눈길을 끌게끔 포장도 되어 있으며 가격대가 낮고 구하기가 쉬워서, 몸에 좋은 정도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게 되기가 쉽다. 즉 이제 생물학적 욕망은 우리에게 유용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지침으로 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됐다. 희소한 세상에서 생겨난 욕망이 풍요로운 세상에서도 우리를 건강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니다.

 

 

 

■  인간의 다른 감각 세계로의 확장 


   욕망과 희소성 사이에 존재했던 길항 관계의 단절은 비단 먹을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들도 응축되고 포장된 형태로 제공됐을 때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우리는 음식 이외의 영역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다른 것들에 비해 특히 더 끌리는 형태나 소리가 있다. 냄새나 동작도 마찬가지다 더 끌리는 것들은 진화 과정에서 무수한 생존의 위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다. 신체의 감각기관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도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밝은 색이나 특정한 형태, 특정한 동작 등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먹을 것, 위험한 것, 짝짓기 상대 등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야 했던 선사시대의 필요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그런 쾌락들은 여가와 휴식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집안을 정적이고 동적인 여러 가지 시각물로 채운다. 그러한 시각물이 제시하는 광경과 색과 모양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계들을 그려보도록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간단히 말하면 한때는 희소했던 감각들을 이제는 신기술의 힘을 통하여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은 시각, 청각, 동작적 감각의 소비도 증폭시켰다. 1839년에 등장한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는 미니 ‘카메라’ 안에 있는 금속판에 화학적으로 상을 고정시켜 그 이전에 존재했던 카메라 오브스쿠라cameraobscura에 혁명을 가져왔다. 초창기 다게레오타이프는 상을 고정시키는 데 긴 노출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19세기에는 노출 시간이 극적으로 짧아져 1888년경에는 아마추어용 스냅사진 카메라가 출시됐고 3년 뒤에는 활동사진 카메라가 나왔다. 그 결과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회상하는 방식이 대대적으로 달라졌다. ‘소리’ 의 포착, 그리고 보존과 판매가 가능해진 것도 이 시기다. 1877년에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발명한 축음기는 이후 성능이 개선되고 기업용이  가정용으로 바뀌면서, 소리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1887년에는 에밀 베를리너Emile Berliner가 ‘레코드판’ 을 내놓으면서 소리를 원반에 찍어 대량생산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제 연주회나 강연은 2, 3분짜리 레코드에 담겨서 적합한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게 됐다.

   1884년에는 미국 중서부 출신 라 마커스 톰슨La Marcus Thompson 이 기계화된 롤러코스터를 선보이면서 감각 경험에 대한 접근성과 속도가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진짜 기차였다면 위험이나 죽음까지도 경고하는 것이었을 신체 감각이 ‘자유낙하 선로’ 위에서는 2, 3분짜리의 신나는 모험이 됐다. 1886년에 개발된 ‘톰슨의 유람용 꼬마기차 Thompsons scenic  railroad’는 이국적인 자연 풍경과 환상적인 광경을 그려 넣은 인공 터널까지 만들어 유쾌한 긴장의 수준을 한 차원 더 상승시켰다. 이는 응축된 쾌락의 새로운 형태였다. 전에는 며칠이고 ‘실제 여행'을 해야만 경험할 수 있었던 광경과 소리들을 한데 추출해놓은 것이다. 다중 감각적인 볼거리들과 놀이기구들이 특정 공간에 밀집된 ‘놀이공원’은 일종의 ‘포장된 레크리에이션’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공원에는 1890년대에 등장한 교통수단인 전차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었다. 초창기 놀이공원들로는 뉴욕 브루클린 남단의 코니아일랜드에 있던 공원들이 유명하다. 

   이러한 종류의 혁신은 감각의 속도,강도,접근성에서 전에 없던 새 세계를 가져왔다. 거리와 계절은 더 이상 제약이 아니었다.  

 

 

 

■  포장이라는 최고의 신기술


   특히 주목할 부분은 포장된 쾌락이 감각 경험의 강도를 크게 높였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사례로 아편을 꼽을 수 있다. 예전에는 씹거나 연기로 피우거나 차로 마셨던 아편이 모르핀으로, 그 다음에는 헤로인으로 정제됐고, 이어 1850년대에는 새로 발명된 주사기를 통해 혈관에 직접 주입됐다. 화학적으로 정제된 강렬한 감각을 실어 나르기 위해 주사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튜브’들이 개발됐다는 점은 이 시기 테크놀로지의 주요 특성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치명적인 사례는 종이담배다. 1880년대에 제임스 본색 James Bonsack이 발명한 담배말이 기계가 나오고 담뱃잎을 가공하는 새로운 기법이 개발되면서, 담배는 저렴해졌을 뿐 아니라 '순해졌다'(이는 치명적으로 해로워졌다는 의미다).  본색의 담배 기계는 제조 비용을 자릿수가 달라질 만큼 낮춰주었고, 화력 건조와 같은 새로운 가공법은 알칼리도를 낮춰 연기 맛을 순하게 만들어서 담배 연기를 폐 깊숙이 흡입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대중 소비재 하나가 시장에 등장했고, 대중의 중독과 (폐, 심장 질환이 야기한) 대중의 사망이 뒤따랐다.

 

   담뱃잎이 종이담배로 ‘튜브화’되었듯이, 다른 상품들에 대해서도 넣고 담고 포장하는 테크놀로지들이 대거 등장했다. 원통형 깡통에 음식을 담는 통조림 제조의 기계화는 1904년 이중권체 방식을 적용한 '위생 깡통’ 기계로 정점에 올랐다. 1890년대 말에는 병과 병뚜껑 제조가 기계화됐다. 탄산음료가 발명되면서는 새로운 형태의 설탕 소비가 시작됐다. ‘코카콜라'는 1886년에 약국잡화점의 음료수대에서 처음 판매됐고 병 제품으로는 19세 기 말에 나왔다. 1890년대에는 쓴맛 나는 초콜릿에 설탕을 다량 섞은 초코바가 등장했다 . 이러한 종류의 포장된 쾌락, 즉 원료를 정교하게 계량해서 편리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분량씩 뭉쳐놓은 종류의 제품들을 만들면서, 제조업체들은 천상의 감각적 즐거움을 능가했노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또 자연이 창조한 맛과 냄새와 모양을 넘어서는 합성 식품과 합성 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화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나타났다 '마케팅marketing’이라는 단어 자체가 1884년에 생겼으며,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들을 소화하기 위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마케팅의 임무였다. 포장된 쾌락들은 귀에 감기는 슬로건과 눈길을 끄는 컬러 상표로 점점 더 강렬하게 치장됐다.

 

 

■  포장된 쾌락의 세계

   새로운 테크놀로지 중 어떤 것은 싸고 위생적이고 다양한 먹을거리로 영양분을 제공하면서 건강을 증진시켰다. 또 어떤 것은 편리하고 효능이 큰 약품과 위생용품을 제공했다. 음악과 새로운 종류의 ‘시각 예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유례없이 확장한 것도 있었다. 놀이기구들은 위험함이 주는 흥분과 황홀을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며 가상의 여행 경험까지 제공했다. 사진은 찰나의 광경을 포착해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규모와 거의 완벽한 정확성으로 이미지를 보존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포장된 쾌락은 전례 없는 건강과 도덕상의 위험도 야기했다. 극단적인 사례로 취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농축되면서 중독의 문제가 생겼다. 중독이란 일정한 효과를 유지하려면 점점 많은 양을 흡수해야 하고 끊었을 때 상당한 신체적 괴로움을 수반하는 신체적 의존증을 일컫는다. 정제된 아편을 주사기로 주입하는 것이 중독의 전형적인 사례고, 담배 중독과 알코올 중독도 일반적인 중독의 범주에 포함된다. 

 

    농축 고열량 식품도 이들과 완전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지방과 당분이 많이 든 식품은 에너지뿐 아니라 엔도르핀도 생산한다. 엔도르핀은 모르핀과 비슷한 진통제로, 안락함과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그런 먹을거리들을 ‘컴포트 푸드comfort food’(‘안락올 주는 식품’이라는 의미)라 부르기도 한다. 지방과 당분이 농축되어 있는 식품은 뇌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교란해 우리 몸이 그런 식품을 계속해서 원하게 만든다. 이와 달리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얻는 신체적 쾌락은 우리 몸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중독성이 훨씬 적으며, 어느 정도의 ‘과잉’ 은 신체를 더 건강하게 하기도 한다(여기에서의 괴로움은 곧 이로움이다).

   포장된 쾌락에 대한 의존증이 전부 화학적 작용만인 것은 아니다.  제조된 쾌락은 처음 접할 때는 놀랍고 즐겁지만, 자극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자연 경관이나 보조적 자극이 없는 사회적 모임과 같이 '포장되지 않은’ 자극에는 우리를 무뎌지게 만든다. 녹음된 소리,포착된 이미지, 놀이기구와 전자 게임 등이 주는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는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포장된 쾌락 밖의 세계에 대한 흥미는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망원 렌즈와 영상 편집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삭막해 보이게 만들거나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으로 만든다.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에서 압축된 형태로 경험할 수 있는데, 아니면 아이맥스나 고화질 평면 TV로 볼 수 있는데, 폭포나 숲에는 굳이 왜 간  말인가? 이러한 종류의 포장된 쾌락은 신체적 의존증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경험의 기대치를 점점 더 높이거나 응축도가 낮은 종류의 경험을 가치 절하한다.

    포장된 쾌락은 흔히 탈사회적인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장된 쾌락은 종교적 환희, 신체적 움직임, 사회적 상호작용, 성적인 상호작용 등이 유발하는 것과 비슷한 신경 반응을 일으킨다. 즉 이런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포장된 쾌락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약한 와인과 순한 자연 환각제는 영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을 고양시켜주었지만, 현대의 포장된 쾌락은 충족을 개인화시키고 군중으로부터 고립시킨다. 휴대 가능한 MP3 플레이어가 공공장소를 개인화하고 TV가 고립의 효과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오기 이전의 세계와 매우 다르다. 포장된 쾌락의 혁명으로 광범위한 영역의 감각적 쾌락이 병에 담기고, 캔에 들어가고, 응축되고, 증류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강화됐다. 이러한 변화가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가 우리의 감각적 세계를 크게 바꾸었으며 우리가 아직 그 영향에 대해 조금밖에 모른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미치는 영향은 전 지구적이다. 그리고 전 지구적 영향은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이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문제(특히 가공 당분과 종이담배를 통해)라든지 과다한 소비의 문제 등도 생겨날 것이다. 응축된 감각의 인공적인 세계가 지구 곳곳의 새로운 영역에, 그리고 신체와 사회의 새로운 영역에 속속들이 퍼져나가면서, 포장된 쾌락의 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이 멋진 신세계를 빠져 나오거나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세계를 떠오르게 한 전제 조건들을 파악하고 그에 맞서는 일은 필요하다.

 

 

■  양적 확대에 그치지 않고 '최적화'로 진화하는 쾌락 제조 산업 기술

   ‘응축 주입된 재미’는 접할수록 지루해지기 때문에 쾌락 제조자들은 감각의 강도를 계속해서 높여왔다. 단순한 초콜릿에 땅콩과 누가가 들어갔고,니코틴을 더 효율적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담배에 향료와 화학물질이 첨가됐다.  영화는 점점 더 빠른 컷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빼놓았다. 녹음된 소리의 정확성과 음역 범위도 대폭 커졌다.  롤러코스터는 더 높아지고, 더 빨라지고, 그러면서도 더 안전해졌다. 포르노도 점점 더 보기 쉬워져서 오늘날에는 누구든 인터넷만 있으면 거의 공짜로 볼 수 있다. 오페라 애호가들마저도 이제 좋아하는 아리아를 유튜브만 클릭하면 듣고 볼 수 있다. 돈도 안 들고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으며 ‘지루한 조각’들을 꾹 참고 다 듣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근성’ 없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라고 말할 수도 있을 법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가져온 또 하나의 결과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감각적 경험이 점점 더 정교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감각 경험을 정교하게 재구성하는 과정의 핵심은 만족을 ‘최적화’하는 기법들인데, 포장된 쾌락이 연구 개발과 마케팅 부서를 갖춘 기업에 의해 상품으로서 제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1930년대에 담배를 약초로 되돌린다는 개념에서 멘톨이 첨가됐고, 이후에는 암모니아,레불린산, 그리고 단맛이 나는 향료들이 첨가되어 니코틴의 쾌감을 증강시켰을 뿐 아니라 나이가 어린 사람들까지 담배 맛을 알아버리게 만들었다. 향미 화학자들은 카페인과 당분의 양을 정교하게 조절해 '소프트 드링크’의 자극을 조절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과자업체들은 정밀한 ‘맛의 프로필’을 개발해서 옛날식의 딱딱한 사탕을 뛰어넘는 감각의 복합체(가령 스니커즈)를 만들어냈다.

   최적화와 계량화는 놀이공원에서도 볼 수 있다. 1890년대에 코니 아일랜드에서 선보인 ‘루프 더 루프’ 놀이기구의 스릴은 곧 ‘테마형’ 놀이기구가 제공하는 다중적인 감각에 밀려난다. 그러는 한편으로 롤러 코스터는 구토나 상해를 일으키기 직전까지 흥분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이는 도박장에도 적용되는 원칙으로, 도박장은 사람들이 지면서도 게임을 계속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따는 순간들을 주기적으로 제공하도록 조건화되어 있다. 게임 분야에서도 쾌락 제조자들은 초보자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도 숙달된 사람도 흥미를 잃지 않을 만큼 복잡한 게임을 개발했다. 가상공간에서 벌이는 게임이 신체와 사회성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일자 게임 업체들은 신체적 움직임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수 요소로 포함된 게임을 만들기까지 했다(‘위wii’ 게임이 그런 사례다).

 

 


■  쾌락 제조 기술의 발달사의 핵심 요약  


   이 책은 포장된 쾌락이 어떻게 부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에서 매스 마케팅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로 독특한 상품 집단이 등장한 과정을 다룬다. 이는 ‘현대 소비사회의 부상’이라는 더 큰 주제의 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 측면은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한 세기의 기간을 빨리감기로 돌려 보면 윤곽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본 상품들은 당시에 떠오르고 있던 ‘소비사회’의 일부였다. 즉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구매하게 되고,또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물건을 소비하게 된 ‘쇼핑 문화’의 일부였다.  한때는 쾌락이 희소한 것이었고, 대개 사회적인 성격을 띠었으며,심지어 공짜였지만, 기계화와 매스 마케팅을 거치면서 상품화되고,대량생산되고, 개인 용량 단위로 판촉되고, 개인적 차원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돼, 우리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방식과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재구성했다. 나아가 소비사회는 우리의 감각 경험도 변모시켰다.


   거대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감각 경험의 변화는 여전히 새로운 현상이며 그것의 장기적인 영향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이후부터는 크게 봐서 두 가지 과정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하나는 강화intensification다. 쾌락 제조자들은 질리고 지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감각의 강도를 계속해서 높여왔다. 이는 업계에서의 경쟁에서 이기는 데도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소다 병은 더 커졌다. 핀볼 경기는 빛처럼 빠른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으로 바뀌었다 영화는 점점 더 놀라운 영상을 선보였다. 롤러코스터 엔지니어들은 기구를 신체적, 심리적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강렬함은 더 큰 강렬함을 낳았다. 새로움과 스릴은 금세 평범함과 지루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고객을 끌기 위해서는 한층 더 새롭고 스릴 있는 것을 내놓아야만 했다.

   강화는 포장 안에 전보다 더 많은 감각을 우겨 넣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는 포장을 꾸미고 포장된 제품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표와 같은 새로운 마케팅 기법들은 포장된 쾌락을 전에 없이 매력적이고 구매와 사용 면에서 훨씬 편리하게 만들었다. 마케팅의 원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이 맥락에서다. 상표의 로고가 우리 머릿속에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말보로’나 ‘코카콜라’의 로고를 못 알아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테크놀로지 덕분에 소비가 더 쉽게, 종종 더 “즉각적/직접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이제는 많은 상품(좋은 것이건 안 좋은 것이건)을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구매할 수 있어서 점원이라는 매개를 통할 필요가 없어졌다. 접근의 즉각성(직접성)과 편리성은 사진, 종이담배,통조림이 초창기에 가지고 있던 매력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아이팟에서 자동 셔플되는 수천 개의 곡과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가 그와 비슷한 매력을 발한다. 이제 일회용 분량으로 팔리지 않는 것은 거의 없으며 대체로 그 일회용에는 점점 더 많은 자극이 담긴다.

   이러한 변화의 많은 부분이 새로운 테크놀로지, 그리고 공격적이고 과학적인 마케팅의 결과다. 19세기에 벌어진 기계와 전기 분야에서의 혁신은 20세기에 전자 레이저, 그리고 무엇보다 디지털 분야의 기술 발달로 이어졌다. 재생된 소리는 더 커졌고 더 원음에 충실해졌으며  점차로  “초고도로 진짜 같아”졌다. 영상은 점점 해상도가 높아졌고 때로는 빛처럼 빨라졌으며 3차원의 형태까지 띠게 됐다. 개인용 컴퓨터, 그리고 이제 휴대용 컴퓨터들은 쾌락을 위해 기다려야 할 필요를 거의 없앴고 쾌락의 희소성도 거의 없앴다. 전에는 레코드나 스냅사진이나 잡지를 통해 얻던 청각적,시각적 자극을 이제는 에디슨과 이스트먼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쉼 없이 쏟아지는 감각적 자 극의 흐름 속에서 얻는다 또한 컴퓨터 공학과 선형 동기 모터는 놀이 기구를 인간이 유쾌함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요컨대 포장된 쾌락은 개인이 경험하는 삶의 속도를 높였 고, 그에 따라 우리 삶은 자연의 느린 속도가 주는 불편함이나 다른 사람들이 끼치는 방해나 지연에 영향을 덜 받게 됐다. 삶의 지루한 부 분들을 견뎌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너무나 익숙 해져서 스마트폰에서 음악, 사진, 영화, 비디오 게임, 우편, 텍스트, 음 성 등 어느 것이라도 나오는 데 1, 2초 이상 걸리면 안달을 낸다. 그래 서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제품들이 ‘기대’나 ‘추억’이 주는 즐거움을 앗아간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포장된 쾌락이 일으킨 두 번째 장기적 경향은 최적화 optimization다. 이는 얼핏 보기에는 첫 번째 경향인 '강화’와 반대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은 무작정 강도만 계속 높이는 것보다는 간접적이고 섬세한 감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성공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강화’에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쾌락 공학자들은 쾌락을 최적화된 상태로 전달함으로써 판매를 극대화하는 방법들을 개발했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려는 제조업체와 마케팅 전문가들의 가열찬 노력 덕에, 소비자들은 초코바, 소다 인기 곡, TV 시트콤 등을 날마다, 달마다, 계절마다의 일상적인 리듬에 없어서는 안될 양념으로 여기게 되었다. ‘강화된 쾌락’과 달리 ‘최적화된 쾌락’은 일상의 흐름에 잘 맞아 들어가도록 계량돼 있어서 노동 윤리를 저해하는 것 같지 않았고오히려 노동 윤리를 강화하는 듯했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해가 되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최적의 방식으로 전달된 쾌락은 우리의 두 번째 본성이 됐고 계량화된 현대인의 삶에서 핵심이 됐다.

 

 

 

 

2.  이 책의 상세 서술하고 있는 영역   

 


   이 책은 여러 포장된 쾌락 가운데 종이담배, 초코바, 청량음료, 축 음기와 레코드, 사진, 영화, 놀이공원 등을 다룬다. 물론 튜브화되고 포장되고 휴대성이 커지고 내구성이 높아진 모든 것을 ‘포장된 쾌락’이 라는 범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포장된 쾌락은 다음과 같은 상호 연관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1. 포장된 쾌락은 감각적 만족을 강화하고, 보존하고, 옹축하고, 용기에 담아서 인위적으로 만든 상품이다.


2. 대개 값이 싸고 바로 구할 수 있다. 또 대체로 휴대와 저장이 가능하며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다.


3. 일반적으로 포장재에 싸여 상표가 붙어 있고 브랜딩 활동을 통해 마케팅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 의 형태지만 특정한 공간에 쾌락이 담긴 놀이공원의 경우처럼 '공간’에 브랜드가 붙은 형태도 있다.


4. 꼭 전국적이거나 전 세계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기업이 생산한다. 이로써 ‘개인 소비자과 ‘기업 생산자’의 관계가 분명하게 발생한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소비재 중에도 이런 특성들을 일부(혹은 전부) 갖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 의복, 자동차, 책, 시리얼, 코카인, 포르노, 백화점 등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 초기에 포장된 쾌락의 핵심적인 특성을 보여주었던 것들, 특히 용기화 압축, 강화 동원, 상품화의 요소를 포함 하고 있는 것들로만 이 책의 소재를 한정했다. 압축되고 증강되고 포장된 쾌락들을 모조리 담으려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령 포르노나 향수의 역사는 다루지 않았으며 마약성 물질과 술은 간략하게만 다뤘다. 

   우리는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욕망을 강화 하는 방법이 점점 더 정교해짐에 따라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기억 해야 한다.

 


3.  쾌락 중독 제조 시대의 핵심 포인트  


   욕망의 만족이 증가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좋은 삶’에 대한 인간 본연의 추구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포장된 제품들이 사회적 영향이나 신체적 영향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만 제조되고 판촉됐다는 데 있다. 또 쾌락거리를 상품의 형태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재가 아닌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쾌락은 부차적인 것이 되거나 아예 밀려나버렸다. 쾌락 제조업체들이 꼭 극단적으로 밀어부치는 전략만 쓰는 것은 아니다. 업체들은 상업화된 감각적 새로움을 일상으로 밀어 넣었다 뺐다 하면서 그것들을 우리 삶에 통합시키려 한다. 물론 핵심은 언제나 이윤의 극대화다.

   담배 이외의 다른 포장된 쾌락들도 습관을 형성하거나 크고 작은 중독을 일으킨다. 복합 감각적인 호소력을 가진 정크푸드뿐 아니라 고도로 제조된 소리, 광경, 동작의 자극도 마찬가지다. 금단 증상이 있든 없든 간에,현대인이 더 사회적인 형태의 여가를 즐기겠다고 포장된 쾌락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손이 닿는 곳에 비디오 게임이나 아이팟이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현대의 쾌락 제조자들이 강렬한 감각들을 제조해 내면서 그와 동시에 소비자들이 그런 쾌락을 반복적으로 추구하게 할 '단서’들 또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다른 종류의 욕망들은 밀려나버렸다. 가령 케슬러는 ‘컴포트 푸드'에 대한 욕망이 다른 감정을 몰아낸다고 지적했다. ᅳ어느 한 시점에 뇌가 집중할 수 있는 자극의 양에는 한계가 있는데, 컴포트 푸드에 대한 욕망이 뇌의 작동기억을 온통 차지해버리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유혹에 잘 맞서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대 세계를 가득 메운 현혹적인 포장과 광고들은 우리를 포장된 쾌락으로 이끄는 ‘유도적 환경’을 조성한다. 

   포장된 쾌락을 더 접근 가능한 것, 더 호소력 있고 궁극적으로는 더 습관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제조업자와 마케팅 전문가들의 가열찬 노력으로, 이제 우리에게 포장된 상품들 너머에 있는 세상은 너무 멀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돼버렸다. 자연의 매력은 쉽게 감지하기가 어렵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연에서는 대개 갈색과 녹색, 회색이 주를 이루고 그 가운데 아주 약간의 붉은 산딸기가 있다. 그런데 포장은 우리에게 산딸기를 사시사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이는 미세한 종류의 즐거움과 경험을 대체한다. 고화질 화면이 저화질 화면을,편리함이 수고로움을 대체하는 것과 같이, 초코바는 당근을 대체해버린다. 또한 스릴 있는 볼거리와 놀이 기구는 런던 호수 지구를 산책하면서 느끼는 장엄함이나 그랜드 캐니언을 고요히 바라보며 숙고하는 경험을 대체한다. 그리고 자연은  광고를 하지 않는다. 아이팟에서 나오는 수 천 개의 곡은 일할 때나 여행할 때나 놀 때나 쉬지 않고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면서, 우리가 듣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 때의 보고 듣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포장된 쾌락은 가장 저항이 덜한 경로로 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도로 제조된 형태의 포장 제품이 주는 편리함을 포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이든 뭐든 간에)에의 방대한 접근,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수많은 기기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 우리는 전자레인지용 냉동식품, 야채 통조림, 때로는 스니커즈와 같은 좀 더 일상적인 포장 제품들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어떻게 선을 그어야 할까? 물론 담배처럼 심하게 중독적이고 해로운 물질은 별도의 범주로 떼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포장된 쾌락들은 그것이 미친 도덕적 영향이 더 복잡하기 때문에 좋고 나쁘고를 명쾌하게 선 긋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나쁜 것에 저항하고 나쁜 점과 받아들일 만 한 점을 구별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가지각색의 역사가 존재해왔다.



4.   현재 할 수 있는 우리의 노력 방향  


   우리가 포장된 쾌락들을 다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명확해졌을 것이다. 포장된 쾌락들이 미친 영향은 각기 다르며, 따라서 그에 대한 태도와 조치도 각각 달라야 한다. 담배 같은 것은 중독성이 너무나 크고 치명적이므로(또 사람들이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으므로),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실제로 법원은 종이 담배가 결함 있는 제품이며 제조업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영리를 올 리고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면 포장된 쾌락 중에는 담배보다 위험성이 덜하거나 실질적인 위협을 제기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많은 것들이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더 많아 더 많은 사람에게 주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누그러뜨려준다. 뒤쳐지고 배제되었다는 모멸 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포장된 쾌락 중에는 문제점을 가진 것들도 있으며 사용해도 좋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것들도 상당수 있다.


   고과당 시럽에 기반한 식품,아니면 그냥 평범한 설탕에 기반한 식품들을 생각해보자. 논란은 있지만 식음료에 첨가된 설탕에 세금을 부과하는 소위 ‘트윙키 세’ 도입이 논의된 적이 있다 트윙키 세는 1980 년대 중반에 예일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켈리 브라우넬Kelly Brownell이 정 크푸드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처음 제안했다. 트윙키 세로 거둔 조세 수입은 설탕이 잔뜩 들어간 식음료를 제조, 가공 판매하는 강력한 기업들의 공격에 맞서 건강한 식품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종류의 조세를 지지 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음료 용기의 크기를 제한하거나 학교나 식당에서 취급하는 소다를 제한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또 메뉴에 음식의 칼로리를 제시하는 식당들도 생겼다.


   한편 포장된 쾌락 중에는 위험 수준이 이보다 약한 것들도 있다. 포장된 쾌락들은 감각을 응축해서 자연이 거의 혹은 전혀 제공하지 못하는 광경과 소리와 감각을 제공하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넓혀준다. 하지만 20세기 초 ‘볼거리로서의 영화’가 감각의 밀도를 높이고, 오늘날 비디오 게임이 한층 더 강렬하게 감각의 밀도를 높이면서, 우리는 덜 강렬하고 배워가면서 누려야 하는 종류의 쾌락은 무시하거나 경멸하게 됐다. 가령 산책은 감각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가하지만 우리를 압도하거나 지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복잡한 삶의 미세한 측면들을 통해 즐거움을 주며 많이 하면 할수록 가공 되지 않은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운동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고도로 프로그램되어 우리를 온통 에워싸는 종류의 쾌락 꾸러미들은   심리적 의존증을 낳는 경향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짐 블라스코비치jim Blascovich와 제레미 베일린슨jeremy Bailenson의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의존성이 있는 약물을 사용할 때와 의존성이 덜한 것들을 사용할 때 뇌에서는 몇몇 동일한 보상 중추가 반응 한다.


   살펴보았듯이 포장된 쾌락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한때는 부유 한 사람만 누릴 수 있었던 감각의 만족을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1910년이면 일반인도 카루소의 레코드를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있게 되어 기뻐했고, 새천년에는 MP3로 최신 테크노 음악을 내려받아 들을 수 있게 되어 기뻐했다. 접근성을 약속한 것이야말로 소비자들이 애초에 포장된 쾌락을 구매하게 한 요인이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쓱 밀거나 마우스를 한두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인터넷에서 사실상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감각적 탐닉의 잔치를 (유료로든 무료로든)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편리함은 우리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에 편견을 일으킨다 우리 선택은 가장 쉽고 빠른 것, 그리고 즉각적인 충족이 가능할 것 같은 쪽으로 점점 치우친다. ‘좋은 것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소 숙명주의적인 이 경구는 자라기를 기다려야만  농작물을 얻을 수 있고,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려야만 교역을 할 수 있고, 명절이 오기를 기다려야만 축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시절에나 통하던 말이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들은 이러한 기다림을 필요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더라도 즉각적인 만족은 금세 물리고 지루해져서 새로운 만족을 더 자주 추구하게 만든다. 음악 평론가 사이몬 레이놀즈Simon Reynolds는 오늘날의 지루함은 누릴 만한 거리들이 부족한 허기의 상태가 아니라 시간과 관심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과다함 때문에 문화적 식욕이 상실된 상태다”라고 말했다. 쾌락을 만드는 사람들은 만족의 즉각적인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사실상 행복을 방해한다. 심리학자들이나 신경과학자들이 발견했듯이 , 행복은 쾌락을 자주 주입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고 계획하고 만족을 노력으로 얻어내는, 더 연장된 시간 동안의 관여에서 온다. 즉 목적지는 더 적고 여정은 더 길어야 하는 것이다.


   포장된 쾌락은 사회적인 경험이었거나 공유된 경험이었던 것을 개인화할 위험성도 있다. 개별 포장된 초코바나 음료수 캔을 가정의 식사와 비교해보라. 혹은 미국 원주민의 평화의 파이프를 오늘날의 아메리칸 블렌드 종이담배와 비교해보라. ‘나만의 방’으로 가는 경향에는 물론 장점도 있다. 한 방에 모두 모여 억지로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든지 교회나 축제가 부과하는 공동체적 의무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렇게 얻은 자유를 누릴 수도 있게 한다. 포장된 쾌락 중 어떤 것들은 분명 우리 모두가 바라는 자유의 실현을 돕는다.  또 어쩌면 우리는 불편함과 성가심을 없앤 상태로도 '군중의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MP3 플레이어를 좋아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화 테크놀로지들은 사회성을 함양할 기회를 없애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는 것에 서툴러지고 불편함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를 버리고 아이팟을 택하는 것이 꼭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더 매혹적이어서겠는가? 누구도 이어폰의 고립적인 즐거움에 완전하게 잠길 수는 없다. 또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와 공유 기능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성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과 MP3 플레이어는 개인주의적인 근시안을가져오고 타인과 가치를 공유하거나 대면적인 접촉을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넓게 보면 포장된 쾌락은 풍부함과 접근성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포장된 쾌락은 값이 점점 싸지고 있는데다 이제 실질적으로 제한 없이 많은 양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쌓여간다. 고르고 쌓는 것은 원래 축음기 레코드가 가지고 있던 핵심적인 매력이었지만, 레코드를 계속 구매하다 보니 저장이 어렵다는 문제와 수집해놓은 것 중에서 원하는 것을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겼다. 성가신 원통형 대신 쉽게 저장할 수 있는 원반형을 택한 것은 초기의 한 가지 해결책이었다. 또 상표가 붙은 앨범이 봉투형 케이스에 담겨 나오면서 원하는 것을 선반에서 찾아 쉽게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이보다 훨씬 훌륭한 해결책도 나왔는데,MP3 플레이어로 무제한의 곡을 쌓으면서도 원하는 것을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쌓이는 것의 양 자체가 너무나 많아지면서 디지털화는 또 다른 심리적 문제를 낳았다. 이제는 잘 알려진 딜레마인 ‘선택의 과부하overchoice 와 데이터 안개data smog 로 이는 선택지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생긴 문제다. 유튜브 같은 인터넷 사이트는 거의 무한한 양의 동영상에 즉각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억의 자원’을 방대하게 확대했고,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좁혔다. 그리고 디지털 서핑과 멀티태스킹이 일반화되면서 리처드 포먼Richard Foreman이 “팬케이크 인간”이라고 부른 “경험의 얄팍함”이라는 문제가 생겼다.  팬케이크 인간은 “넓고 얇게 퍼져서 방대한 정보의 네트워크에 버튼 터치 하나로 접하는 인간” 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에는 물건을 획득하는 데 자연적인 제약은 거의 없고,경제적인 제약은 더욱 없으며,도덕적인 제약도 분명하게 그어져 있지 않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축적인 ‘수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노래, 영화, 게임은 물론, 인형, 장난감,자동차, 또 그 밖의 셀 수 없는 다른 사물들은 소유자 자체를 소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 해당 수집품 중심의 배타적 커뮤니티가 등장해 그 외 사람들과의 또 다른 단절을 일으킨다. 


   이러한 ‘쌓기’는 또 하나의 명백한 질문을 제기한다. 어떤 사람이나 계급, 혹은 국가가 마땅히 소유해도 좋은 양이란 어느 정도일까? 포장된 쾌락이 불평등, 자원 고갈,탄소 오염을 심화시키는 상황에서, 이는 특히나 중요한 문제다. 이런 문제의 상세한 내용들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제약받지 않는 소비를 민주적이며 존엄한 종류의 행위로 여기게 만든 것이 그런 문제의 한 원인일 것이다. 물론 이는 일자리와 소득이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 기계를 추동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보수주의자들과 경제자유지상주의자들이 ‘소비자 선택’을 근거 로 들면서 쾌락 경제의 계속적인 확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도 일자리와 좋은 삶에의 보편적인 접근이라는 이유로 할인점이나 쇼핑몰에서 무제한의 소비가 이뤄지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자 문화에 대한 진지한 도전은 좌우파 모두에서 잔소리하는 설교꾼들의 말 정도로만 축소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더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출발점은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쾌락이 드물고 얻기 어려운 것이었던 1900년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욕망을 확장하고 충족시켜준 것이 과학과 기업의 위업이었다. 그 결과로 나온 제조된 욕망의 혁명은 놀라운 성취, 즉 수많은 상품을 널리 분배한 20세기의 민주적인 소비자본주의를 가져왔다. 더 많은 상품은 더 많은 일자리를 의미했고 동시에 더 많은 소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20세기 소비자에게는 잘 작동했던 것이 21세기의 소비자에게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 도 있다.  무한해 보이는 상품들은 미국인을 전 지구적인 식충이이자 욕망의 노예가 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반대자들은 미국인들을 조롱하고 경멸하고 위협한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접근이 더 넓은 세계로 퍼지면 어떻게 될까? 나머지 지억 인구에게로 퍼지면? 우리 미래는 환경과 에너지의 위기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환경 자원과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포장된 쾌락을 만드는 데 원료로 들어간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이 경로를 지속할 수 있을까?


   과잉 소비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데이비드 케슬러는 패키지 식품의 유혹을 이기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습관적인 과식을 불러오는 단서에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는 '조건 반사적인 과잉 섭취의 코드를 만들어서 우리 식생활을 정확하게 조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것은 우리가 그에 대해 지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식품을 어느 정도 탈정서화해야 하고 “조건 반사적인 과잉 섭취가 생물학적인 문제이지 성격적인 결함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식품뿐 아니라 제조되고 마케팅된 다른 쾌락들의 자극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는 이런 즐거움들을 어떻게 접하게 해야 할까? 혹은 접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쾌락거리에 접하는 습관이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것이라면, 해결하기가 더 힘든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쾌락이 아동 발달에 건강하고 해가 없는 즐거움일까? 또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역량과 감상의 기회들을 몰아낼 우려가 있는 것일까?  


   포장된 쾌락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비만이다. 일반적으로 비만은 부모나 교사의 책임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제조업체와 정책결정자,그리고 더 광범위한 사회 전체가 신경을 써야 마땅한 문제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장된 쾌락이 아이들을 달래거나 돌보는 방편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디오 게임이 교육적이라거나, (사탕과 TV 보는 시간 처럼) 착한 일을 했을 때에 보상으로 적합하다는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에 ‘아이들에게 스넥과 짜릿함을 그치지 않고 판매하는 광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짧게나마 나왔던 것도 다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어른들의 경우에는 인이 박힌 포장된 쾌락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역량을 훼손시키는 종류의 만족을 대체할 새로운 만족의 원천을 찾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이는 설탕과 지방을 단백질과 섬유질로 바꾸는 것처럼 간단할 수도 있다(물론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이라 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 테지만). 새로운 습관은 당과, 담배, 비디오 게임 등을 향해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일으키는 단서들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다. 또 새로운 의례들(특히 사회적 의례들)을 발견해서 포장 제품들이 독려하는 고립적인 습관을 깨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감각을 재훈련시키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가령 숙련과 경험으로 만족을 느끼게 되는 취미를 통해 포장된 쾌락이 해주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감각을 넓게 분산시키는 것, 쾌락을 기대하고 계획하는 것, 그리고 추억을 보존하는 것이 '자극’ 자체보다 더 중요해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단순함과 고상함을 설파했던 옛 비관주의자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체와 감 각을 다시 훈련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금욕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지루하게 들린다면, 어느 정도 그것은 금단 현상 때문이다(지루함 자체가 포장된 쾌락 의 혁명 이전에는 잘 사용되지 않던 단어라는 것을 기억하자).  《추구의 행복The Happiness of Pursuit》에서 심리학자 시몬 에델만Shimon Edelman은 수세기 동안 인문주의자들이 주장해온 바를 신경과학으로 증명했다. 행복은 단지 어떤 목표를 실현하는 데서가 아니라 정신적,육체적 활동 속에서, 경험을 추구하는 속에서, 그리고 미래를 기대하는 노력 속에서 얻어진다.  


   포장된 쾌락의 문명이 떠오르기 전의 인간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자. 우리 조상들이 살던 생물학적 세계는 쾌락을 ‘빠르게’ 얻어야 했던 장소였다. 쾌락이 지속적으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각의 공학자들은 여기에 착안해서 감각을 제조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조한) 포장된 쾌락도 사라지기 쉬운 자연적인 쾌락이 탐닉되듯이 빠르게 탐닉된다. 빠른 만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핵심을 짚고 있다. 현대 쾌락의 테크놀로지는 대체로  본능을 강화하는 것이지 육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빠른 쾌락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육성을 필요로 하는 종류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공간, 시간,욕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식사, 함 께 부르는 노래, 풍경(흑은 풍경 그림)의 관찰,스포츠나 취미 생활이나 사교 파티의 참여, 이 모든 것이 포장된 쾌락의 논리에 도전하는 것들이다.


   '상황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포장된 쾌락의 논리에 도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웬디 파킨스Wendy Parkins와 조프리 크레이그Geoffrey Craig 는 그들의 책《슬로 리빙Slow Living》에서 이를 “감각적 경험의 역사성에 기반을 둔 쾌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장은 쾌락을 사회적, 자연적,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낸다 이 경향을 뒤집는 것이 아이들이 방학을 농장이나 자연에서 보내게 하는 것의 핵심이다. 사물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자신과 연결되는지를 보면서 인공적이지 않은 삶의 경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의 언어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모호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칼 오너리Carl Honere가 말했듯 이 “차분하고, 조심스럽고, 포용적이고,정적이고, 직관적이고, 서두르지 않고, 인내하고, 성찰적인” 접근 방식은 빠르게 내달리는 삶을 (대체 하지는 못한다 해도)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미국인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들이 나오곤 한다(한 조사에 따르면 1980년에 35퍼센트였는데, 2006년에 34퍼센트였다).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행복을 지상에서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행복의 추구가 기본적인 권리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행복에 대한 주장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인들이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물질적 진보(포장된 쾌락을 포함해서)는 이 점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어떤 포장된 쾌락은 우리를 원치 않는 습관에 묶어놓는다. 또 어떤 것은 우리가 더 좋아했을지도 모를 경험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렇게 포장된 쾌락이 우리에게 해준 것뿐 아니라 우리에게 저지른 것이 무엇인지도 보아야 한다. 그리고 포장된 쾌락을 넘어선 즐거움들도 찾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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