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23. 6. 17 (토)   09:20 - 10:20 / 11:00 - 15:00   (5시간)

 

 

2.  오늘 걷기 거리 :    강화도 남쪽 지역의  파란색 줄친 구간  9.0 km

 

 【 1구간 】  강화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선두4리    분오리돈대)   3.9 km  

 【 2구간 】  마니산 등산  (정수사  마니산→단군계단로)   5.1 km   

3. 일기

 

- 날씨 : 맑음 (기온 최저 19도, 최고 23도)

- 천문 : 일출 05:12, 일몰 19:58

 

 

 

4.  강화나들길 걷기  

 

- 오늘 둘레길은 혼자가 아니고 친구들과 함께 간다.  걷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강화나들길 특정 구간 걷기에 맞추지 않고 자유롭게 강화나들길 8구간 일부도 걸어보고, 마니산도 올라 가본다.  원래 둘레길 마지막에 그곳의 가장 높은 산에 올라 보기도 하니 마니산 등산도 나름 의미가 있다. 오늘 날씨는 기온은 높지 않은데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게 땀이 많이 나는 날씨이다.  

 

- 시작 지점 강화나들길 8구간은 <철새보러 가는 길>인데 철새 오는 계절인 겨울이 아니라서 갯벌에 드문드문 있는 새들로 대신한다.  자세히 보니 강화의 상징인 저어새인 것 같다. 

 

- 날씨가 맑아 마니산 등산 중 맞이하는 능선길은 최상의 전망을 선사한다. 강화에 와서 올랐던 상주산이나 화개산처럼 평야 위에 우뚝 솟은 마니산은 멋진 조망을 주기도 하나, 여기에 단군의 역사를 더하니 여기 살았던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간절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 한영우의 < 다시 찾는 우리 역사>를 읽으면서 단군 사상과 아사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본다. 한국인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는 단일민족의식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생각이라는 것이다. 단일민족 의식은 한국인을 단결시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필요에서 만든 종교적 민족주의로 당시에는 실천적 의미가 큰 것이었지만 역사적 진실과는 다르다. 하늘과 태양을 숭상한 단군족이 한국인의 주류임에는 틀림없지만, 역사를 보면 조상이 다른 수많은 아사달 이주민과 위구르인,베트남인,아라비아인 등이 뒤섞여 오늘의 한국인을 형성한 것이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모두 피가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은 사실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키울 우려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왕조국가의 시조들은 대부분 한계인 집단에서 나왔다는 것도 중요하다. 하늘에서 내려와 태백산에 신시를 세운 환웅도 장자가 아닌 서자이며,고구려 시조 주몽, 신라 시조 박혁거세, 가야 시조 김수로는 모두 알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알 수 없으며,백제 시조 온조는 맏아들이 아니다. 고려태조 왕건도 중국과 왕래하던 국제무역상의 아들로서 혈통에 중국 피가 섞여 있으며,조선태조 이성계도 여진족과 혼인관계를 가진 함흥의 변방 출신이다. 왕건과 이성계를 임금으로 추대한 개국공신 세력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은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지도자들도 비슷하다. 이들은 서민층과의 연대의식이 강하여 개혁의 추진력을 얻게 되며,  서민층의 고통을 완화하는 개혁에 열성을 보이게 된다.  한국사의 왕조가 장수한 비결은 왕조마다 백성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변화를 가져오고, 왕조교체 자체가 국민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 강화도는 남한의 최북단이라 북한과의 통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북한은 최악의 상태를 전전하고 있다.  북한이 그동안 걸어온 길은 결과적으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실패한 역사라는 증거다. 한 국가의 성패는 주민의 생활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인데,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이유로도 정권의 정당성을 변명하기 어렵다. 북한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보다 주민의 생활 힝상보다 권력의 안보에만 총력을 기울여온 지도층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는 남북통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대치상황이 오래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또 어떤 굴절과 파행이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에 온 힘을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먼저 하나로 뭉치고, 북한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그런 지혜를 가져야 할 것같은데, 어떻게 이것이 현실에서 구현될 지는 미지의 과제이다.

 

 

 

 

5. 구간별 풍경

 

 

 【 1구간 】  강화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  (선두4리    분오리돈대)   4.0 km  

 

 

- 선두리 이야기 

 

. 선두 마을은 배가 닿는 나루이므로, 배머리나루, 배머리 또는 선두포라 하였다가, 선두 마을로 이름이 개칭되었다. 비석거리 마을은 비석이 있었다 하여서 유래된 지명이다.
. 마을을 관통하는 2.5km의 ‘철새 보러 가는 길’ 또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걸을만하다. ‘철새 보러 가는 길’은 강화나들길 8코스 구간으로 아름다운 강화도 남단의 선두리 갯밭마을을 가로지르는 나들길에 편안하게 쉬엄쉬엄 산책을 즐기며 힐링 할 수 있도록 친환경 흙포장 보행로와 세계적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 및 두루미 등 조망을 위한 관찰쉼터 조성, 수목 식재, 야간 볼거리 제공을 위한 경관조명시설 등이 조성돼 있다.
. 선두리 갯밭마을은 2015년 5월 국토해양부에서 주최한 ‘2015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경관어촌 경관부문 우수상(작품명 : 쉬엄쉬엄 선두리 산책)을 수상한곳이기도 하다.

 

- 시작 지점의 선두리 해변 강화나들길의 모습

- 강화나들길 8코스 선두리 구간에는 아까시나무 숲길이다. 그늘이 있어 좋다. 

- 선두리 해변의 갯벌의 모습

-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 저어새의 겨울 깃은 몸 전체가 흰색이며 부리와 다리는 검은색이다. 눈 주위에 검은색 피부가 드러나 있으며 부리의 기부와 폭넓게 연결된다.  
. 저어새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번식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서만 서식하는 종으로 2010년 기준으로 약 2,400여마리만 서식한다. 주로 한국, 홍콩, 대만,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 분포한다. 그 중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서해안의 무인도서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저어새는 생김새가 독특하여 멀리서 보고서도 단번에 구별할 수 있다. 저어새란 이름에서도 나타나지만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얕은 물속에 넣고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특별한 습성 때문이다. 꼭 그 모습이 나룻배의 사공이 노 젓는 모습과 흡사하다. 영어 이름도 ‘black-faced spoonbill’이라 불리는데 ‘검정색 얼굴을 가진 숟가락 부리’라는 의미다.
. 저어새는 홍콩과 대만 그리고 베트남, 일본 등에서 월동하는데 한국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 앞 양어장에서도 20여마리 이내가 월동한다. 제주도가 저어새 월동지의 북방한계선에 해당한다. 번식은 3월 중순부터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안에 도착하여 3월말경에 둥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4월 중순에 흰색으로 흐린 자색과 갈색의 얼룩점이 흩어져 있는 2-4개의 알을 낳는다. 작은 물고기, 개구리, 올챙이, 조개류 등을 잡아먹는다.
.  2010년 이전까지 저어새는 뚜렷한 생태연구가 어려웠다. 정확한 번식지의 발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로 갯벌과 농경지에서 채식하는 저어새는 서해안의 넓은 갯벌과 경계심 때문에 조류전문가도 탐조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2000년 7월 6일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재청에서 강화군일대 저어새 번식지로 추정되는 강화갯벌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여의도의 53배에 해당하는 약 435,016,325㎡(약 1억 4천만평)의 강화갯벌을 지정한 것이다.  현재의 강화갯벌은 저어새를 비롯한 수많은 물새들의 보금자리로 남았다. 강화갯벌은 저어새만의 자리가 아니고 동북아시아의 물새들의 주요한 먹이 터와 쉼터, 번식지가 되고 있다. 많은 개발 진통과 보존의 논리 가운데 지금의 강화갯벌이 존재하는 것이다.
. 번식기가 되면 강화도 일원의 농경지에서 채식하는 어미들의 모습을 간혹 관찰할 수 있다. 저어새의 주요 활동 무대는 역시 경기만 일원의 갯벌이다. 그 중에서도 강화남단 각시바위, 요도(역섬), 수리봉, 인천 송도 남동유수지 등 주로 경기만 일대의 면적이 넓지 않은 무인도서가 주요 번식지다. 김포시 유도는 100쌍 이상이 번식하는 국내 최대 저어새 번식지였으나, 이제는 강화남단의 작은 섬으로 이동하거나 인천 송도 남동유수지에서 번식 하는 등 저어새의 모습을 유도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 갯벌의 매립, 해안도로 건설 및 확장, 공사에 따른 각종 오염물질의 갯벌 유입 등으로 번식지 및 먹이활동지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그 외 각종 보호구역 설정 후 관리부실로 번식기 동안 사람들의 잦은 출입도 번식지 이탈, 번식실패 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 분오리저수지

분오리저수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위치한 해안가 각지형 저수지이다. 바다 바로 옆에 자리하며, 주로 낚시터로 쓰이고 있다. 배스와 붕어가 많고, 겨울철엔 빙어 낚시로 유명하다.

- 분오항 가기 전에 새우 양식장이 보인다. 펌프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 분오항 가는 길은 해변을 지나가는 길이다.

- 썰물이라 분오항에는 배가 다니지 않는다.

- 분오항에 횟집들이 있는 곳의 반대편에 전망 장소가 있다.

- 분오리 돈대를 가는 길은 데크 길이다.

- 분오리 돈대 가기 전에 동막해변의 모습이 보인다.

- 분오리 돈대 (分五里墩臺)

. 숙종 5년(1679) 축조된 최초의 돈대 48개 중 하나인 분오리(分五里)돈대의 가장 큰 특징은 최고의 전망과 아름다운 초승달 모양의 돈대라는 점이다. 분오리는 강화 본섬 남쪽 동검도(東黔島)의 동검북돈대를 제외하면 강화돈대 중 최남단의 요충에 위치한 돈대이다. 남쪽 해안의 중앙, 동막 해수욕장 동쪽 끝에 자리한 분오리돈대는 바다를 향해 돌출한 능선의 끝부분, 곶을 이룬 지형에 앉혀져 있다.
. 이곳은 좌우로 깊게 만곡(彎曲)된 갯벌을 이룬 포구를 끼고 있어 시야가 매우 넓다. 또한 육지에서 진입할 때는 평지에 가깝지만 해안은 절벽과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해안 방어의 요충지다.
. 또한 평균조차가 8m에 달하는 바닷물이 빠지면 한없이 너른 갯벌이 펼쳐져 천혜의 방어벽을 형성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분오리 돈대는 강화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 파견해 직접 관할했다. 서쪽의 송곶돈대까지 거리는 3.1km이다.
. 원형이거나 사각형으로 쌓은 여느 돈대와는 달리 분오리돈대는 특이하게도 바다 쪽으로 약간 살찐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북면만 제외한 삼면의 자연 절벽을 활용해 성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그 위에 석벽을 쌓아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성벽은 거칠게 다듬은 네모난 면석을 안팎으로 쌓았는데, 높이는 평균 4-5m, 둘레는 113m이며, 안쪽 둘레는 약 70m, 너비는 12.8m이다. 구조는 다른 돈대와 마찬가지로 내외를 석축한 협축의 석벽을 이룬다. 돈대의 문은 좌우에 화강석을 투박하게 다듬어 만든 커다란 무사석(武砂石)을 쌓고, 그 위에 보 형식으로 장대석을 건너지른 형태이다.
. 특별하게 생긴 지형에 맞추다 보니 문의 위치가 돈대의 동벽 끝부분으로 치우쳐 있다. 게다가 문은 낮고 폭은 매우 좁아 보인다. 분오리돈대는 큰길 가에 있어 가장 많이 찾는 돈대의 하나다. 돈문 안쪽에는 문짝을 설치했던 흔적으로 빗장에 해당하는 장군목(將軍木)을 끼웠던 구멍이 선명히 남아 있다. 현재 돈대의 평균 높이는 2.62m, 입구 부분의 최고 높이는 약 4m이다.
. 초지진의 외곽 포대 기능을 갖고 있었던 분오리돈대는 4개의 포좌가 모두 바다를 향해 앉혀져 있다. 성벽 위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쌓은 성가퀴인 치첩(雉堞;여장)도 37개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1994년에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아쉽게도 불완전 복원으로 여장은 복원되지 않았다.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고, 강화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 강화의 돈대들 중 가장 아름다운 돈대의 하나로 꼽히는 이 분오리돈대에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보면, 탁 트인 강화 남쪽 바다가 270도 광각으로 조망된다. 그래서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 2구간 】  마니산 등산  (정수사  마니산→함허동천)   5.0 km  

 

 

- 분오리 돈대에서 정수사 입구까지 잠시 버스를 타서 이동하여 정수사 입구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정수사로 향하는 길에는 해병공작대 기념비가 서 있다.

- 버스 정류장에서 정수사 가는 1km 길은 포장도로이나 경사가 심하다.

정수사 (淨水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회정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639년(선덕여왕 8) 회정대사(懷正大師)가 창건하였다. 회정은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을 참배한 뒤 그 동쪽의 지형을 보고 불제자가 가히 삼매정수(三昧精修)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고 절을 창건하였다.  당시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산령각·대방·노전(爐殿)·요사채 등이 있었으나, 현존 당우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산신각·요사채만이 있다.  

- 정수사 코스 출발하자 마자 만난 '사랑의 하트석'이다.

- 정수사 코스와 함허동천 코스가 만나는 지점의 모습이다.

- 묘한 모습의 바위가 등산객들을 맞이 한다.

- 드디어 능선에 올라 나무 사이로 북쪽 석모도 방향을 바라본다.

- 이번에는 남쪽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장봉도, 모도, 시도, 신도의 모습이 보인다.

- 같은 방향을 가까이 강화 화도면 평야지대의 모습이다. 

- 길가에 나리꽃이 피어 있다.

- 마니산 가기 직전에 만난 참성단 중수비의 모습이다.

 

마니산 (摩尼山) 

.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 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 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사적 130)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1977년 3월 산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 단군로계단길로 하산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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