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닫힌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종교다원주의의 도전

 

(길희성, 출판사 휴,  2013)

 

 

 

 

  

서론〕 글을 쓴 목적

 

⑴ 종교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의문 종교의 참다운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종교를 종교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힘은 어디에 있으며종교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⑵ 종교 간의 대화와 일치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제도나 교리나 신앙 경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궁극적인 실재와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바길은 달라도 종교들은 결국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저자 길희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이후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학위를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비교종교학)를 받았다미국 세인트올라프대학 종교학과 교수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현재 서강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동서양 종교와 철학신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와 깊은 연구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원로 학자이다. 2011년에 사재를 털어 강화도에 고전을 읽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도를 찾는 공부방이란 뜻의 심도학사를 열었다저서로는 인도 철학사지눌의 선사상일본의 정토사상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사상보살 예수하나님을 놓아 주자가 있다.

 

 

 

 

1〕 영성으로의 초대

 

 

(1)왜 사냐고 묻는다면

 

□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이다그래서 누구나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고통스러운 삶을 참을 수는 있지만 무의미한 삶은 못 참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와 의식이 괴리될 수 있는 이중적·자기분열적 존재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자기존재를 의식함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을 벗어나고 초월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주체적인 존재라는 데 기초하고 있다.

 

인간 존재의 구조적 취약성을 강조하는 에리히 프롬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간 존재의 특성에서 종교의 유래를 찾는다종교는 자기분열을 안고 사는 불안정한 존재인 인간에게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을 제공하고 우리가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추구할 궁극적인 헌신의 대상을 제시함으로써 이 분열된 자아가 재통합하게 되는 기능을 수행한다.

 

 

□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주체로 살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전체주의순응주의가 판치게 된다

 

폴 발레리 : “그대가 용기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배받지 않고 살려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깨어 있는 의식깨어 있는 양심이 지키는 사회가 투명한 사회이며그래야 개인도 나라도 잘 돌아간다.

 

 

□ 의미의 위기가 고개를 들 때인간은 스스로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다

 

- “나는 정말 행복한가행복하지 않아도 가족을 위해서는 참아야 하는가인생의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어떤 삶이 정말로 좋은 삶인가?”

 

경봉 스님 : “사내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났으니 연극 한번 멋지게 하다가 가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자유다.”

 

 

□ 진정한 자기를 찾으려는 욕구그리고 두려움

 

- ‘참나를 대면하는 일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하지만인간이 인간인 이상 언제까지나 미루고 피하며 살 수는 없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전 존재를 두고 헌신할 새로운 가치새로운 목적새로운 의미를 발견해야 하고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나아 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 죽음모든 삶의 의미를 앗아가다

 

죽음은 누구나 봉착하게 되는 인생 최대의 위기이다모든 가치와 목적을 집어삼키고 의미를 무효화시키기 때문이다.

 

이 죽음의 위기를 돌파할만한 더 높고 깊은 가치와 의미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 성공전도사가 전하는 환상

 

동서고금의 영성의 대가들은 한결같이 인생의 최고 목표와 의미는 참다운 자기인식에 있다고 증언한다.

 

- ‘성공전도사의 자기계발 환상에 강박되어 있는 현대인들은 진짜 자기를 발견해서 자기다운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그것은 환상이다.

 

자기만의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답게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영성의 세계에서 말하는 참나란 인간이면 누구나 타고난 인간의 본연의 인간성 자체이다참된 인간성의 자각과 실현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인 선이며 행복이다.

 

 

 

(2) 기복신앙을 넘어선 종교

 

□ 인생에 있어 행복이 무엇인가?

 

현세구복적 기복신앙이 내세우는 종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존재해서도 안 된다차라리 신앙 없이 드러내 놓고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 못하다비신앙인들은 적어도 초자연의 무기까지 동원해서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하지는 않는다.

 

종교에서 제시하는 지고지선의 공통된 목표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실재와의 관계특히 연합 내지 완전한 합일을 최고의 선이자 행복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그것을 해탈구원깨달음은총어떻게 부르던 인간의 최고 행복과 궁극적 완성은 거기에 있는 것이지 결코 물질적 욕망을 충족하거나 유한한 피조물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물질의 소유나 신체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행복보다 정신적 행복영적 평화덕이 있는 삶에서 오는 마음의 행복이 더 항구적이고 큰 기쁨을 주는 행복이라는 평범한 사실 때문이다.

 

 

□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

 

기복신앙은 종교가 제시하는 본래적 가치를 무시하고 목적적 가치와 수단적 가치를 혼동하는 신앙이며 가치의 질서를 거스르는 신앙이다하느님만이 모든 선의 원천이고 선 그 자체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욕망과 사랑의 최고 대상이다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피조물을 하느님으로 착각하고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기복 신앙의 문제는 물질에 대한 욕망 자체가 아니라 지고선인 하느님을 물질에 대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있다목적인 신은 안중에 없고 피조물에 대한 욕망만이 영혼을 지배한다.

 

이슬람 수피 영성가 : “내가 만일 천국의 복락을 위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나를 지옥에 던지소서.”

 

 

□ 기적을 바라는 신앙

 

자신의 노력으로 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복을 얻으려는 것이 기적을 바라는 기복신앙이다. 피조물 모두의 선을 위하여 하느님이 정해 놓은 자연의 질서를 자신의 선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뜻을 앞세워 하느님 스스로 벗겨 주거나 수정해주기를 기도한다.

 

자식의 입시를 앞두거나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식을 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하지만 똑같이 기도했는데 왜 하느님은 한 어머니의 기도는 들어주고 다른 어머니의 기도는 외면하실까자식이 암에 걸린 것만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인데 어머니의 기도가 부족해 죽었다면 이보다 더 원통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그렇다고 하느님이 모든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닐 것이다기적은 본질상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극적인 치유의 경험을 듣는 것보다 차라리 지나간 고통의 세월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공감이 가고 은혜가 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세세히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함부로 특정 사건을 하느님의 뜻과 연관시키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다운 신앙적 태도가 아닐까

 

사도 바오로 : “살던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다”, “나에게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

 

 

□ 징표 없이 믿는 신앙

 

종교에서 기적과 같은 징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이 세상이 선과 행복이 정비례하는 세계이라면 강요된 선만 있고 순수한 자발적인 선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보상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도덕적 행위실로 도덕의 이름에 걸맞은 순수한 도덕적 삶은 그 결과의 불확실성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역설이 성립한다진정한 신앙도 순수한 도덕도 불확실성 속에서 감행하는 일종의 모험인 것이다.

 

한편세상에 원인 없는 현상은 없다는 대전제를 수용한다면,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분간 우리의 지식이 모자라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붙이는 일시적 이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신앙심 깊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에 기적 아닌 것은 없다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들에 핀 백합화공중을 나는 새 한 마리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고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리지 않고 내리는 비와 햇빛에서도 하늘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사랑을 보았다.

 

 

 

□ 무상한 것들의 신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무상한 것들은 우리에게 존재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우리 인간 자체가 기적 중의 기적이다온 우주보다 귀하고 위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인간은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다고통이 없으면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는 없는 것이 불가능한데한만 취하고 다른 하나를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다우리가 슬픔과 기쁨고와 낙을 느낄 수 없는 존재라면 몰라도생명체가 존재하고 고통과 슬픔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고와 낙은 항상 붙어 다닌다우주의 한 점에 불과한 이 지구라는 우주의 오아시스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날마다 기적 중의 기적을 경험하고 사는 존재들이다.

 

참된 신앙과 영성은 고통을 없애 주기 보다는 좀더 넓고 깊은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 인생을 달리 경험하도록 하는 능력을 준다고통이 초월의 세계를 열어 주는 은총의 매개체로 변한다고통과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보았는가순수한 신앙은 오히려 고난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손길을 더 가까이 느끼고 사랑하게 만든다.

 

 

□ 참된 신앙이란?

 

한국 종교계는 이제 일차원적이고 단선적인 기적신앙과 기복 신앙을 과감히 청산할 때가 되었다종교란 무엇인가자기를 변화시키고 사회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아닌가이기적이고 아전인수 격인 기복 신앙은 결코 자기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물론 사회도 변화시키지 못한다오히려 그 반대이다.

 

고통을 없애 주기보다는 고통을 안고 사는 지혜와 용기여태껏 들리지 않았고 들어도 외면했던 이웃의 고통과 뭇 생명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는 것이 신앙이다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신앙의 힘이다.

 

참된 신앙은 하느님과 전부 아니면 전무의 도박을 한다자신의 전 존재전 삶을 걸고 하느님과 빅 딜'을 하는 것이 신앙이다.

 

 

 

 





축복의 기도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 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지고 싶어 기도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주셨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 속에 진작 표현하지 못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3) 신의 암호 해독하기

 

신에 대해 사용되는 말은 모두 암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침묵이 최고의 언어이다아니침묵이야말로 최고의 암호일지도 모른다

 

성서의 언어를 비롯하여 신에 관한 언어를 모두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근본주의 신학자들을 제외하고 그렇게 보는 신학자들은 거의 없다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이 세상 사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언어의 세계를 초월하는 실재인 하느님에게 문자를 적용하는 것은 하느님을 유한한 사물로절대적 실재를 상대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비신앙적인 처사이다하느님의 계시 말씀으로 간주되는 성서의 언어도 예외가 될 수 없다성서가아무리 성령의 영감으로 씌어진 하느님의 말씀이라 해도그것이 인간이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어진 한결코 문자 그대로 하느님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신은 눈에보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신앙인들에게 피조물들의 허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그리스도교 신학 전통에 의하면하느님은 피조물을 로부터 창조하셨다피조물은 허무로부터 왔기 때문에 항상 허무의 그림자를 안고 존재한다인생무상과 죽음을 통한 무와의 대면은 우리를 허무주의로 몰아 갈 수도 있겠지만오히려 우리 자신이나 주위 사물들이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의 신비와 은총에 눈을 뜨게 해준다

 

신의 암호 혹은 신이라는 암호를 해독한다고 해서 신에 대해 어떤 확실한 지식을 얻으려는 생각은 금물이다지식은 신을 여느 사물처럼 물상화하고 대상화하기 때문에 신에 관한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신은 인간을 매개로 해서 자신을 알리며세계는 인간을 매개로 해서 신을 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깊은 영성의 소유자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신의 암호이다그래서 그들은 어디서나 신을 만난다개념과 언어는 암호나 상징이기보다는 문자적으로 이해되기 쉬운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문자의 사용이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는 신을 만나는 암호와 상징이 현대 세계에서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했다는 사실경전의 문자적 의미를 고집하는 근본주의는 놀랍게도 현대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4)마음에는 평화,세상에는 정의

 

 

□ 인식의 변화를 넘어 참으로 자기를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랑과 자비 외에 아무 것도 없다.

 

 

□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가?

 

세계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 하나 밖에 없는데종교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인생은 단 한번만 사는 것인데 또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하며물질과 육체는 누가 보아도 중요한 것인데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나 영혼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 하니종교는 현실 도피인간 소외심지어 성직자들의 사기극이라고 할 만도 하다하지만 종교는 본래 현실을 도피하려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괴로움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현실을 알되 현실만으로 문제가 잘 안 풀리기에 초월적 세계에 눈을 떠 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종교는 아편일 수도 있고 영성도 현실 도피적일 수 있다역설적이게도 현실을 폄하하고 초월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종교일수록 실제로는 물질을 더 탐하고 세상 권력과 쉽게 타협하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현대 종교는 지나치게 현실 문제에 집착하면서 시민운동 단체나 여느 사회단체처럼 사회문제에 전적으로 몰두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한다현실과 초월 중 어느 하나에 편중되거나 무시하지 않고양자 간에 긴장을 유지하면서 매개하는 자세가 종교와 영성에 요구된다.

 

평화는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의식의 변화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의당 사회적 실천이 따라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말로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이란 것이 객관적 토대를 상실하고 순전히 우리 인간의 주관적 감정이나 자의적 호불호의 문제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따라서 도덕적 상대주의 내지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평화롭기와 평화 만들기는 둘 다 필요하지만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중 하나만 선택하려는 유혹에 빠진다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둘은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마음의 치유와 사회적 치유가 함께 가는 길도피적 영성도 아니고 폭력적 행동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2〕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5) 종교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

 

 

□ 제도로서의 종교정신으로서의 종교

 

종교를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보는 과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종교를 그리스도교 또는 불교라는 일정한 경계를 지닌 제도 내지 집단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리스도교적’, ‘불교적이라는 형용사로 이해해야 한다.

 

명사화된 종교가 제도화되고 물상화된 종교명확한 배타적 경계선과 울타리를 지닌 조직체로서의 종교를 가리킨다면형용사 종교는 신자들 내면에 살아있는 정신으로서의 종교마음의 성품과 삶의 태도로서의 종교이다.

 

 

□ 그리스도 정신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

 

현대 그리스도교 선교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선교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전파하고 다니신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님 자신이 하신 것처럼 하느님나라의 구체적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선교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나라 운동을 하다 처형당했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나라는 결코 그리스도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교회는 하느님나라의 징표일 뿐이지 하느님나라 그 자체는 아니며종교를 불문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사는 사람들하늘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 자녀들이며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이라고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셨다.

 

 

□ 그리스도 향기부처님의 자비

 

종교를 형용사적으로 이해하면 종교 간의 경계가 그다지 배타적이거나 경직되지 않을 것이다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데 있을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성인은 별다른 존재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다인간의 인간성을 제대로 자각하고 실천한 존재다.

 

형용사적 종교는 종교 간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성과 속의 벽도 넘나들 수 있다모두가 참사람이 되기 위해 한 길을 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6)상생을 위한 종교 간 대화

 

 

□ 종교의 메시지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지만제도화된 종교는 항상 집단 이기주의와 독점욕의 유혹을 받는다.

 

 

□ 과학적 세계관과 역사적 상대주의의 도전

 

현대 종교가 직면하고 있는 세속적 탈종교화된 도전은 과학적 세계관 내지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의 도전과 역사적 사고방식의 도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과학적 세계관과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이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실재나 사후세계에 대해 말하는 종교와 갈등을 빚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또한 역사적 사고에 의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어느 시기어느 지역에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으며 여러 변천 과정을 거쳐 왔다.  이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할 수 있으며 변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현대인의 상식이 되었다종교도 예외가 아니다종교가 아무리 초월적 절대적 진리를 주장한다 해도 현대의 역사적 사고는 종교가 언제어떠한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했고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속속 밝히고 있다이에 따라 역사적 연구는 종래 신성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던 경전이나 교리나 제도들이 언제어떻게 형성되었고어떤 과정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는지 낱낱이 밝혀 주고 있다역사적 연구가 종교의 초시간적 신화적 권위를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절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과학적 세계관과 역사적 상대주의의 도전으로 권위를 상실하기 시작한 종교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개방되고 가치다원화 된 현대 사회이다민주사회의 혜택이자 정신적 혼란의 원인이기도 한 가치 다원화와 종교 다원화라는 현상은 그 자체로 종교들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상대화를 수반하고 있다가치관과 종교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어느 종교도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기 어렵고 사회의 통일적 가치관을 제공하기 어렵다종교의 가르침이 개인적 선택의 대상이 되어 버림으로써 사회적 보편성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 종교다원화는 순수성 회복의 기회

 

종교다원 사회가 종교에게 주는 새로운 기회는 첫째종교의 홀로서기와 이로 인한 종교의 순수성과 진정성의 회복이며둘째종교 간의 대화와 이를 통한 종교의 창조적 발전이다.

 

현대 다종교탈종교 시대의 종교는 이제 외부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순전히 메시지 자체의 힘과 영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현대 종교는 순전히 개인의 영혼과 영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역설적인 것은 홀로 서기할 수 있는 종교는 이전보다도 더 순수한 종교더 진정성 있는 신자들을 확보하는 종교가 된다는 사실이다어떤 종교든 사회에서 다수의 종교가 되는 순간 그 사회와 한통속이 되고 사회를 변혁할 정신적 힘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오늘의 종교적 역설 상황은 사실 감추어진 축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권력과 진리의 독점권 상실

 

대등한 세력을 가진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 다원 사회에서는 종교가 독점권만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독점권도 상실하게 된다모든 종교가 가진 사상의 진위나 우열을 가릴 만한 객관적 잣대를 찾기란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인간의 인식은 유한하다

 

각 종교가 상이한 진리 주장을 대하는 태도에는 첫째자기 종교만 진리를 안다는 독점적 배타주의둘째종교란 모두 다 근거 없고 믿을 수 없다는 세속주의 입장셋째모든 종교가 자기 나름대로 절대적 진리 혹은 궁극적인 실재를 경험하고 알지만 이 진리는 역사적으로 제약되고 문화적으로 굴절된 형태로밖에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다원주의 입장이 있다.

 

다원주의에서는 어느 종교도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주장을 펼 수 없고 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진리 혹은 실재 자체는 절대적이고 영원하지만이 진리를 접하고 아는 인간의 시각과 지식은 유한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 종교의 절대적인 진리 주장은 이 계시가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문화적 조건 하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어지는 한 오히려 그 종교가 지향하고 있는 초월적 실재 자체에 대한 반역이고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진리 자체 하느님은 절대적이지만 인간이 진리를 파악하고 하느님을 이해하는 것은 유한하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 민주 사회의 가치와 대화하는 종교

 

현대 다종교 사회의 종교 간 대화는 비단 종교들 사이의 대화일 뿐 아니라 민주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정신과 가치와 대화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종교 간 대화는 단지 종교 간 대화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스런 이념과 가치와도 진지한 대화를 해야만 한다각 종교는 타 종교와의 대화 못지않게 민주적 질서가 요구하는 가치와 덕목에 대해서 입장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한국 종교가 진정한 상생과 호혜의 종교 간 대화를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하나는 민주 사회의기본 질서가 요구하는 성스러운 가치와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이고다른 하나는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진리 자체는 영원하고 절대적일지 모르나 그것을 추구하고 인식하는 현실 종교는 결코 절대적인 진리 인식을 주장할 수 없다는 역사 의식과 절대적 진리 앞에서의 겸손한 자기 성찰이다.

 

 

 

(7)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 비록 산을 오르는 길이 다르고 산행 중에 가끔 다른 위치에서 산정의 모습을 힐끗 보기도 하지만결국은 같은 정상에서 만날 것이다.

 

 

□ 문자적 언어의 한계

 

신의 계시든 깊은 명상이든혹은 그 밖의 탈아적 경험이나 신비체험을 한 사람이라도 그 경험이 자신의 심적 상태를 넘어서 어떤 외적 세계객관적 사실 내지 실재에 관계되는 것이라 믿지 단지 일시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오히려 반대로 강한 종교적 경험을 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이 현실 세계보다도 더 현실 같고 참되다고 확신한다비록 객관화된 언어로 쓰인 교리나 경전의 말씀이 상징적인 언어라 해도 이 상징이 가리키고 있는 언어 너머의 실재가 엄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 존 힉의 종교다원론

 

존 힉에 의하면유구한 전통을 지닌 세계 굴지의 종교들은 인간의 유한성에서 오는 불가피한 진리 인식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기 방식으로 신 혹은 실재를 인식하고 구원을 경험한다.

 

인간은 종교적 경험을 통해 실재에 접할 수 있다다만 종교적 경험도 실재 그 자체를 있는 대로 접하지는 못하고 각 종교가 처해 있는 문화가 제공하는 인식의 틀 내지 범주를 통해 굴절된 형태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종교적 경험이 종교와 문화에 따라 다르고 그 표현이 다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종교사에 나타난 궁극적 실재를 접하는 종교 경험은 두 가지 유형에 주목한다하나는 궁극적인 실재를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같은 유일신 신앙의 종교에서처럼 인격적 실재로 경험하는 유형이고다른 하나는 불교유가도가 사상 그리고 일부 힌두교 사상에서처럼 탈인격적 실재로 경험하는 유형이다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차이는 결국 실재를 접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속한 문화적 전통과 환경의 차이에 기인된다고 할 수 있다.

 

실재 자체는 이 두 범주를 초월하기 때문에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다어떤 종교도 실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없으며 주어진 문화 전통과 환경의 영향 아래 불완전한 방식으로 접할 뿐이다종교는 나름대로 진리의 빛을 발하고 있지만 역사적 문화적 조건의 제약을 받고 굴절된 형태로 반사할 뿐이다따라서모든 종교는 진리실재의 인식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자기 종교의 진리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오히려 겸손하게 타종교와 대화하고상호 이해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심화해 갈 필요가 있다.

 

 

□ 언어를 초월하는 신비 체험은 모두 같은 것일까?

 

신비주의자들이나 영성의 대가들이 경험한 신비적 합일의 경험이 아무리 순수하고 초월적이라 해도그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고 땅을 딛고 사는 인간들인 한각자 자기가 속한 종교 전통과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아무리 신비한 영적 체험이라 해도 모두 특정 종교 전통의 틀 내에서 발생한다또 종교에 따라 그들이 익힌 수행법도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비 경험 역시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리나 사상은 물론이고 신비적 경험에서도 우리는 종교의 궁극적 일치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 모든 종교가 동일한 실재를 지향한다는 가설

 

인간의 영혼 깊이 숨어 있는 신성과 영성의 순수성을 믿더라도그것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특정한 역사적 제약 하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따라서 종교 간의 궁극적인 일치는 신비한 경험에서보다는 그런 경험을 가능케 하는 어떤 불가언적 실재’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종교가 갈망하고 접하고자 하는 경험의 대상인 ’ 혹은 실재’ 그 자체에서 종교의 궁극적인 일치점을 찾는다는 말이다.

 

이는 입증될 수 있는 이론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추측이며 가설이다즉 모든 종교가 동일한 궁극적 실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동일한 실재를 지향한다는 가설이다다양한 종교적 상징이나 경험이 모두 같은 실재에 대한 다른 반응이자 표현일 것이라는 추측이다결코 입증될 수 있는 가설은 아니지만우리는 인류 종교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해 줄 만한 상황과 개연성을 높여줄 만한 현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 길은 달라도 같은 정상에서 만나리라는 희망

 

첫째각각의 인종이나 민족이 처한 지리적 환경과 삶의 조건이 달라서 문화가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인간의 도덕적 영적 수준은 거의 동일하다둘째고대 세계의 혼령숭배나 단신숭배가 유일신 신앙과 형이상학적 일원론으로 극복된 후대다수 고등 종교들은 기본적으로 단 하나의 궁극적인 실재로 우주만물의 조화와 통일성을 이해하는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좁은 자기중심적’ 존재에서 실재중심심적’ 존재로 변화시키는데 있다세계 종교가 우주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음에도 결국은 동일한 진리동일한 실재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우리를 제약했던 각종 역사적 한계와 문화적 제약을 벗어나는 날우리가 모든 궁극적 실재를 더 완전하게 볼 수 있을 것이며동일한 구원과 해방의 경지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비록 산을 오르는 길이 다르고 산행 중에 가끔은 다른 위치에서 산정의 모습을 힐끗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같은 정상에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른다아직은 아무도 정상의 모습을 완전하게 본 사람은 없지만언젠가는 모두가 그 환희를 누리게 될 것이다어떤 사람은 가까운 길로어떤 사람은 험준한 길로어떤 사람은 평탄하고 쉬운 길로 오르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도반들로서 영적 산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가끔 등산로가 교차할 때마다 우리는 만나서 산행의 경험을 나누고 배우며 격려도 한다그러다가 다시 자신의 길을 가지만 결국 같은 정상에서 만나는 기쁨을 나눌 것이라는 희망으로 산은 오르고 있다.

 

 

□ 종교는 길이자 방편수단이자 상징

 

종교다원주의가 각 종교의 특수성과 차이를 해소해 버림으로써 역설적으로 다원주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따라서 진정한 다원주의는 종교 간의 차이를 끝까지 인정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러한 다원적 다원주의는 종교가 궁극적으로 같은 정상에서 만날 것이라는 일원적 다원주의와 달리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에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놓게 된다선택은 궁극적인 일치 아니면 궁극적인 차이 둘 뿐이다다원주의는 현존하는 여러 종교에서 비본질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남는 여러 추상적인 종교의 본질이나 보편종교 같은 것이 가능하다거나 그런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원주의자들은 인간이 지상에 발을 붙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한누구도 자기가 속한 역사적 실체로서의 종교를 떠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산정에 오르려면 누구든 자기 종교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야지 존재하지도 않는 보편 종교 같은 추상체를 통해 오르는 것이 아니다.

 

또 여러 등산로를 동시에 오를 수도 없다다원주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다른 길을 걷는다고 다툴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서로 배우고 격려하면 더 즐겁고 유익한 산행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결국은 우리 모두가 더 즐겁고 같은 정상에서 만나 구원과 해방의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그때는 물론 종교 간의 차이는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종교 간의 차이는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종교는 길이자 방편이며수단이자 상징일 뿐이다.

 

 

□ 실천적 종교다원주의

 

- Paul Knitter에 의하면 모든 종교는 내재적이고 초월적 신비의 경험을 통해서 인간과 자여의 복리를 구원으로 추구한다이 구원은 모든 종교의 공통된 관심사이고 궁극 목표이며 종교의 가치와 진리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구원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종교마다 다르지만 어느 종교든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해방 그리고 지구 환경의 보존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무시하면 참다운 종교라 할 수 없다하지만 어느 종교도 이러한 구원을 독점하거나 완전히 구현하지 못한다따라서 모든 종교는 실천적 과제와 이상을 놓고 각각의 한계를 의식하고 타종교와 협력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는 어떻게 하면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된 무수한 폭력과 증오의 문제를 신앙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온 해결책이다.

 

 

□ 종교는 신이 아니다

 

종교 비판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하나는 종교 외적 비판으로 니체마르크스프로이드 같은 서구 근현대 세속주의 사상가들의 종교 비판이다이들 화살은 주로 그리스도교를 향한 것이었다다른 하나는 종교 내적 비판으로 한 종교 내의 양심적인 신앙인이나 사상가나 영성가들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이 제기해 온 자기 종교 비판이다

 

사랑정의평화그리고 겸손과 관용은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이며 종교내의 양심적인 신앙인들은 항시 자기가 속한 종교를 엄중한 잣대로 비판해왔다종교다원주의가 추구하는 일련의 실천적 가치들은 사실상 개별 종교의 교리나 사상보다도 우선적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종교는 결코 신이 아니다종교는 어디까지나 신 또는 실재를 지향하고 가리키는 상징이다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신앙인들은 잘 알고 있다종교다원주의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면서 종교의 교리나 사상이 어디까지나 실재를 가리키는 상징이고 방편이지 진리나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입각한 이론이다.

 

 

 

□ 겸손한 신앙인의 자세

 

종교의 전통적인 절대적 진리 주장을 돌이킬 수 없게 무력화시킨 역사학문화인류학비교종교학과 같은 현대 학문들이 오히려 순수한 종교 내지 종교 비판의 소리를 명료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이다.  종교다원주의는 결코 또 하나의 종교가 아니며오히려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면서도 초월적 실재 앞에서 그 한계를 의식하는 겸손한 신앙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론이다

 

종교는 길이다길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영성은 산을 오르다가 가끔 볼 수 있는 산정의 황홀한 모습이다. 제대로 된 길이라면 그렇다물론 잘못된 길도 있다산정을 향하지 않고 가끔씩이라도 산정을 보게 하기는커녕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는 종교다그런 것을 사람들은 사교라 한다그러나 제대로 된 길이라도 여러 개가 있으며도중에 보이는 산정의 부분적 모습도 다를 수 있다하지만 우리는 같은 산정을 향해 오르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지상의 삶이 다할 때까지 구도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야 한다.

 

 

 

 

 

  

3〕 종교의 존재 이유

 

 

(8) 종교에서 영성으로

 

□ 영혼의 부름

 

외면할 수 없는 양심의 소리영성을 일깨우는 영혼의 음성 또는 신의 부름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고야 만다.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인간은 영성을 지닌 존재로서 어떤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실재를 지향하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이 영성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종교의 근본 목적이다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종교와 영성이 유리되어 따로 논다는 데 있다.

 

초월적인 실재 혹은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각새로운 차원에서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영적 본성 내지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 영성(spirituality)이다.

 

 

□ 종교와 영성은 동반자

 

종교와 영성은 같이 간다인류 역사를 통해 영성은 언제나 특정 종교의 전통 속에서 함양되어 왔다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영성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

 

개인의 발견과 더불어 주체적 인간이 출현하는 근대 세계에 들어오면서 종교는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라는 의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그에 따라 현대인들은 종교를 외면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종교는 외면당할지언정 인간의 영성이 사라지거나 무시되는 일은 없다.

 

감성이나 이성과 마찬가지로 영성이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인 한현대인이라고 영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현대인들은 오히려 종교의 전통과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짐에 따라 다종교적 영성초종교적 영성 또는 비종교적 영성을 키울 수 있는 공전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종교 간의 벽을 넘고 종교와 비종교의 구별마저 초월하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영성을 회복하고 실현할 수 있는 초유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9) 영성의 대가를 만나다

 

 

□ 영성의 대가들이 증언하는 바는 영성은 인간의 참나참자아이며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심층적 실재이다.

 

영성은 인간의 진정한 인간성 자체로서 이 본성을 깊이 자각하고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지고의 행복이다.

 

- Ken Wilber는 인간의 의식 발달 단계를 1) 인격 형성 이전의 단계, 2) 인경의 단계, 3) 초인격적 단계로 구분하고초인격적 초이성적 단계야말로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며 모든 종교 특히 신비주의 영성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구원의 세계라고 말한다.

 

근대 생물학적 인간관들의 주창자들이 인간의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위선의 가면을 벗기는 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그것을 인간 해방의 복음으로 내세운다면 곤란하다그들에게 도덕과 영성은 결국 동물적 본능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성에 대한 폭력적이고 압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신비주의 영성의 세계

 

우리나라 선불교 사상에 확고한 기초를 다져 놓은 보조국사 지눌의 선 사상중세 가톨릭 신학자이자 영성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그리고 정통 힌두교의 불이론적 베단타 사상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재현하여 현대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영성 사상이 동서양의 영성을 대표하는 사상이다.

 

이들은 각기 자기가 속한 종교 전통의 언어를 사용해서 영성이 지향하는 실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지눌은 이 궁극적 실재를 진심’ 혹은 공적영지심이라고 부르며에크하르트는 지성’, 라마나 마하리쉬는 진아’ 혹은 나의 나라고 부른다이 세영성의 대가 모두는 인간에게 감정이나 욕망이성적 사고나 분별지를 넘어서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영적 본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이 영적 본성영적 인간성의 깊은 자각과 완전한 실현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인생의 궁극 목표이자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신비주의적 영성의 핵심은 절대적 실재즉 신브라만법신혹은 진여와 인간의 본래 마음 곧 진아가 모두 하나라는 통찰에 있다.

 

 

(10) 어디서나 하느님을 만나다

 

 

□  모든 종교의 신앙생활과 영성의 핵심

 

이슬람의 한 수피 영성가는 처음 카바를 방문했을 때 카바만 보고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고그 다음에 갔을 때 카바와 함께 하느님을 보았으며,  마지막 세 번째 방문에서는 카바는 사라지고 하느님만 보았다고 말했다.

 

 

□ 상징에 매달려 초월적 존재를 놓치다

 

어떤 종교든 상징을 가지고 있다보이지 않는 실재를 매개해 주는 보이는 것들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유감스럽게도 신앙인들은 종종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상징이 실재 자체인 줄 착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상징이 상징임을 모르고 절대적 실재로 간주하면서 절대화하는 것이다

 

상징의 존재 이유는 어디까지나 초월적 실재와의 만남을 매개해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상징을 절대화하고 숭배하며 거기에 집착하면서 이것을 신앙이라고 착각한다종교에 의한 인간소외가 시작되는 것이다종교적 우상숭배는 세속적 가치를 숭배하는 우상숭배 못지않게 위험하다.

 

상징을 절대화하는 이유는 첫째는 문자주의둘째는 종교의 교리가 상징의 상징성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하느님을 만나는 법

 

어떤 종교든 전통의 권위가 신의 권위와 혼동되고 상징과 실재가 동일시되는 매우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전통을 절대화하고 고수하려는 보수주의근본주의광신주의는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상징을 상징으로 알아 상징의 고착화를 피하고 낡은 상징적 언어는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과감히 재해석하거나 바꾸는 제3의 길에 있다이것이 각 종교들의 현대주의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F. Schuleiermacher라는 걸출한 신학자 이후 현대 개신교 신학이 줄곧 추구해온 길이며이를 통해 수많은 현대 지성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톨릭의 경우도 1960년초 제2차 바티간 공의회를 통하여 신학의 문을 과감히 열어서 현대의 시대정신과 대화하는 길을 택했다현대 이슬람이 처한 근본적인 위기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이슬람 현대주의’ 내지 현대주의적 이슬람의 세력이 매우 약하다는 데 있다.

 

 

□ 상징에서 해방될 때 영성의 세계가 열린다

 

탈종교 시대의 영성은 이러한 현대주의자들의 선택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현대주의자들은 아직도 한 종교에만 머무르는 신앙에 만족하기 때문이다탈종교 시대의 영성은 현대화 작업보다도 더 과격한 선택을 요구한다.

 

수피 영성가가 발견한 카바는 사라지고 하느님만 남는 영성의 단계이다상징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하느님만 남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영성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

 

새로운 영성에서는 상징이 상징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자기 종교의 상징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상징에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자기 종교의 언어와 전통을 주로 배우고 사용하되타종교의 상징도 자유롭게 섭렵하면서 영적 자양분을 흡수하는 영성의 세계가 열린다.

 

그 뿐 아니라 종교적 상징에서 해방된 사람은 종교 다원적 영성마저 초월하여 모든 사물모든 경험이 종교적 경험이 되는 영성으로 들어가게 된다종교와 비종교성과 속진과 속세간과 출세간하느님과 세상자연과 초자연의 이원적 대립을 초월하는 문자 그대로 초종교적 영성의 세계가 열린다종교의 상징만 초월을 매개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사물과 다양한 경험들도 깨달음과 지혜를 얻는 계기가 되며 하느님과 만나는 상징과 매개체가 된다.

 

종교와 비종교의 경계가 무너지면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을 만나고 부처를 본다존재하는 모든 것이 초월의 상징이 되고 세상의 시끄러운 언어가 모두 초월의 통로가 될 수 있다하느님 혹은 절대적 실재 자체에 종교와 비종교성과 속진과 속의 이원적 구별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종교가 필요 없다하느님은 그리스도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신자도 아니다.

 

종교 아닌 종교의 세계세속을 떠나서 하느님을 만날 뿐 아니라 세속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진속불이의 경지하느님마저 떠난 하느님 너머의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초종교적인 영성의 세계인 것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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