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의 북벌이 남긴 것

 

 

 “강유는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고 부지런히 힘쓰며 사려가 깊으니, 그의 재능은 이소, 마량보다도 뛰어납니다. 그는 양주에서 제일가는 인물입니다.”


제갈량이 자신의 후임으로 인정하며 굳게 믿은 강유는 제갈량의 북벌정신을 이어받아 아홉 번의 북벌에 나선다. 이를 일컬어 ‘구벌중원(九伐中原)’ 이라 한다.  제갈량을 신묘한 인물로 묘사한 나관중은 강유 또한 제갈량의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2차 북벌과 4차 북벌은 묘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리를 거둔 것으로 묘사된 6차와 7차 북벌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허구다.  삼국지연의가 전반에 걸쳐 그러하듯이 나관중은 취사 선택과 허구를 적절히 가미하여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제갈량 사후에도 계속된 강유의 승산 없는 북벌은 익주파에게 전쟁을 반대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반대론자는 초주였다.


"지금은 진나라 말기가 아니라 전국시대 초기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한 고조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주문왕 정도밖에 될 수 없다. 만약 세상 돌아가는 형편과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무력에만 의지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괴멸하고 말 것이다. 그때는 신선도 우리를 구하지 못한다.”


백성들 또한 전쟁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 지출과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촉나라의 가구 수는 28만 호, 인구는 약 94만 명이었다. 군대는 10만 2,000명에 관리가 4만 명이었다. 두 집에 한 명꼴로 종군하였고, 7가구 가 1명의 관리를 책임져야 했다. 그야말로 백성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피폐한 생활은 아무리 국가보존을 위한 전쟁이라 하여도 백성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었고 오히려 원망만 높아질 뿐이었다. 오나라의 사신으로 축나라를 다녀간 설후의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제가 가서 보니 촉은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조당에는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자가 없고,논밭에는 피폐한 백성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제갈량이 다시 살아온다고 해도 위기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중시하는 것은 배불리 먹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지의 여부다. 국가는 이를 전제로 존재한다. 정치가는 권력을 중시하고 이를 누리기 위해 애쓰며 이 때문에 정권을 필요로 한다. 백성은 권력에 약하지만 정권을 바꿀 수 있다. 정권과 권력은 백성의 희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과도 같은 백성의 뜻을 읽지 못하면 백성은 새로운 정권과 새로운 권력을 찾는다. 정권과 권력을 소유하지 않되 이를 바꾸는 힘이 곧 백성이며, 이것이 바로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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