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다큐멘터리 ‘헤어지기 전 몰래 하고 싶었던 말-이어령의 백년 서재에서’
1. 요약
”나는 6살 때부터 죽음 느꼈다“ 이어령의 36억86번째 설날
<중앙일보 2020.01.24 양성희 기자>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7)을 JTBC가 만났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여권의 저작을 통해 한국사회의 앞날을 제시해온 그다. 평생의 족적과 젊은이들에게 주는 말을 담은 JTBC 다큐멘터리 ‘헤어지기 전 몰래 하고 싶었던 말-이어령의 백년 서재에서’는 26, 27일 오전 9시 30분 2부작으로 방송된다. 인터뷰는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이 했다.
(1) 4기 암 선고에도 적극적인 치료 대신 글쓰기를 택했다.
“암이란 얘길 듣는 순간 ‘어쩌지 아직도 글 쓸 게 남았는데’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죽어야지’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사람이니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죽음을 글로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절대로 병원에서는 안 죽겠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숨을 넘기겠다, 그게 내 마지막이자 최고의 희망이다.”
(2)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 인생은 자궁에서 무덤으로 가는 과정
“아이러니하게 죽음 아닌 탄생, 생명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인간, 한국인,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얘기다. 인생은 아기집 ‘자궁(womb)’에서 ‘무덤(tomb)’으로 가는 과정이다. 어머니의 배 속에 바다(양수)가 있었고, 최초의 나는 거기서 물고기였다. 그리고 그 이전 36억 인류역사가 있었다. 내 나이 36억86세다.”
(3) 일찍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말로 큰 울림을 줬다.
“‘메멘토 모리’엔 두 가지가 있다. 이왕 죽을 거 먹고 마시고 즐기자. 술꾼들의 자세다. 기독교의 메멘토 모리란 어차피 죽으니 죽음을 생각하며 경건하고 착하게 살자다. 오늘 하루만을 생각하는 찰나주의냐, 영원한 죽음 앞에 짧은 생명을 가치 있게 살 것이냐다.
내가 죽음을 처음 느낀 건 6세 때였다. 쨍한 대낮에 혼자 굴렁쇠를 굴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두려움, 불안을 처음 느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행사로 기획한 굴렁쇠 소년도 여기에서 나왔다.
떠들썩한 축제(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찬란한 대낮에 죽음의 어둠이 있고, 이처럼 생과 죽음이 등을 마주 댄 부조리한 삶. 내 평생의 화두였다.”
(4) 전방위로 활동한 문화 아이콘이었다.
“교수, 언론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안 해 본 직업이 없고 시, 희곡 등 안 써본 글이 없다. 나를 어떤 프레임에 가두지 않았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평생 우물을 팠다. 시라는 우물, 평론이라는 우물, 심지어 원하지 않았지만 행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이란 우물도 팠다. 마지막 우물이 죽음이라는 우물, 무덤이겠지.”
(5) AI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디지로그’ 개념을 선창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디지로그’가 돼야 비로소 후기 정보화 사회가 온다고 10년 전부터 주장했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매장을 지으며 온·오프가 합쳐지는 게 디지로그다. 디지털 맵 구글 어스가 모든 길거리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그게 GPS가 돼서 자율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게 디지로그다. 우리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고 외쳤건만 아쉽다. 빨리 사람들이 캐치해서 대응했으면 알파고도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인간보다 잘 뛰는 말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라타야 한다. 뒤쫓아가면 뒷발에 차여 죽는다. AI도 마찬가지다. AI에 올라타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과 기계가 못하는 걸 합쳐야 한다. 알파고가 아무리 똑똑해도 이세돌한테 한 방 먹었다. AI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올라타면 너는 천리마가 된다. 이제는 AI 탄 사람이 세계의 지도자, 지배자가 된다.”
(6) 젊은이들에게 하고픈 말은 - 메멘토 모리 … 젊을수록 죽음 더 생각해야
“우리 때는 총성이 들리는 전쟁이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총성이 들리지 않는 전쟁을 치르며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아리고 쓰리다’에 ‘랑’자를 붙이면 ‘아리랑 쓰리랑’ 천국이 되듯 아픔을 창조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다. 젊은이들한테만 꿈꾸라고 해서도 안 된다. 꿈을 사회가 같이 꿔줘야 이루어진다. 혼자서 꾸면 꿈으로 끝나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된다. ‘메멘토 모리’도 들려주고 싶다. 죽음만큼 절박하고 중요한 게 없다. 그래야 산다는 게 뭔지 안다. 사막의 갈증, 빈 두레박의 갈증을 느낀 자만이 물의 맛, 삶의 맛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젊기 때문에 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게 삶을 인식하는 가장 빠른 길이고, 앞을 찾아갈 수 있는 올바른 길이다.”
2. JTBC 다큐멘터리 ‘헤어지기 전 몰래 하고 싶었던 말-이어령의 백년 서재에서’
<2020년 1월 26, 27일 오전 9시 30분 2부작으로 방송 - 티빙 https://www.tving.com/player/E002925482>
(1) 이어령의 몰래 하고 싶었던 말들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내 가슴속에 들어온다
오늘이 전부라는 걸 알았을 때
삶이 가장 농밀해진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가장 환한 대낮에도 죽음이 있고
탄생 속에 죽음도 있고
축제 속에도 죽음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우물을 파라.
저항의 문학, 부정, 항거, 저항의 정신은 젊음의 상징이다."
"만년필은 쓰는 붓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글을 쓸 때마다 조금씩 키가 작아지고 닳아 없어지는
그 몽당연필의 생명이다. 그 향기이다."
(2) 젊은이들에게 주는 말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남을 좇지 말고 360도로 뛰어라
-생명, 터전, 새것에 대한 사랑이 미래의 동력
-넙치, 참치, 날치 특성의 입체적 인간이 돼라
-끊임없이 새로운 우물을 파라
-언어의 유산을 남겨라
-상생의 힘을 믿고 꿈을 두 손으로 잡아라
-프레임 속에 갇히지 말라
-인공지능이라는 말에 올라타라
(3) 이어령의 마지막 인사말
"이별의 자리에 술잔이 있고
슬픔이 있는 곳에 시(詩)가 있다
깃털이 자라 떠날 때가 되었구나
바람이 불어도 숨지 말고
둥지가 따뜻해도 머물지 마라"
"그대는 생각하는 사람
쓰면 지우고 지우면 쓰고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야윌지라도
흰 종이 위에서 꿈을 꾸어라"
"아직은 손을 들어 인사하지 마라
너희들 기억이 한 방울의 술이 되고
헤어지는 슬픔이 한 줄의 시가 될 때까지
조금은 더 곁에 있어라
맛이 든 과일은 가지에서 떨어진다
대지를 향해 우리 모두 떨어질 때까지
술잔과 시가 있는 이 자리에
조금만 더 있어라
이별의 자리에 술잔이 있고
슬픔이 있는 곳에 시가 있다"
“내가 살던 곳에서 아는 사람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말 ‘메멘토 모리’
강철문을 두드리는
절박한 죽음을 기억하라
퍼내고 퍼내도 끝없이 비어 있는
두레박의 갈증을 느끼는 자만이
삶의 맛을 안다
기쁜 일만 삶이 아니란 것
고통 역시 살아 있는 보람이란 걸
알 때가 된 것입니다.
‘잘 있어!’라고 누구에게
손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혼자 가는 길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맙시다
촛불 하나 켜고 '생일 축하합니다!‘
해마다 듣던 노래를 불러 주세요.
이것이 내가 헤어지기 전
몰래 남기고 싶었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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