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찾는 우리역사 
출판사 : 경세원발행 : 2017년 10월 28일

 

 

1. 두 번째 개정판을 내면서


1997년에 발행된 《다시찾는 우리역사》가 2004년에 전면적인 개정판이 나오고 또다시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도합 51쇄가 간행되었고, 외국어본으로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본이 간행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커진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더없는 광영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대중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중심국가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나 대외관계는 10년 전과 다르다. 이웃 중국이 G2에서 G1을 향해 급성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시대착오적인 100년 전의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가 낙후된 북한이 핵에 매달려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통일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지켜야 할 우리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나라도 적이 될 수 없으나, 현실은 어떤 나라도 진실한 친구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할수록 국력을 더 키우면서 이웃과 평화공존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균형외교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의 과제를 외면하기 어렵다. 객관적 진실을 찾으면서 그 진실이 현재와 미래를 밝게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객관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한국사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은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르지만, 객관성과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다같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서구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다. 이보다 더 높은 평화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찾아서 한국인이 수천 년간 살아왔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선비정신이고, 선비정신의 핵심은 공동체사상이다. 우주와 사람이 하나의 생명공동체이고, 사람과 사람이 홍익인간으로 또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 공동체 속에 자유도 있고, 민주도 있고, 평화도 있고, 계급도 녹아 있다. 다만, 그 가치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왔으며, 미래에는 더욱 다듬어져서 세계인이 공유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역사의 큰 흐름은 동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명의 가치를 창조할 때라고 본다. 여기에서 서양문명이 창조한 개체존중의 가치와 동양문명이 창조한 공동체존중의 가치가 높은 차원에서 융합된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한층 더 따뜻해지고, 국제적 갈등은 한층 더 완화될지도 모른다.

한국사는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의 역사가 아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사는 매우 왜소하지만, 문화가치로 본다면 한국사는 크나큰 세계사와 맞닿아 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사를 국제적 시야에서 보아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지만, 국제적 시야라는 것을 단순히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한국사는 수천 년간 군사강대국 역사의 종속적 존재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지켜온 문화가치와 주체성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한 번도 경제나 군사강국으로 세계사를 주도한 일이 없다. 주변 강대국의압박과 영향을 크게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세계 문화강국의 하나로 살아왔다. 

 

한국인의 조상인 ‘아사달족’의 문화가 중국문화의 뿌리가 되었고, 아사달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명을 꽃피웠다. 공자가 고조선을 ‘군자국’이라 칭하면서 건너오고 싶다고 했고, 그 뒤에도’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문화를 다시 수용하여 문화를 살찌웠지만, ‘군자국’과 ‘동방예의지국’의 이미지만은 한국이 더높았다. 그래서 동아시아문명의 중심에 한국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만든 것도 한국이고, 교육과 관련되는 금속활자와 인쇄술에서 세계 최첨단을 걸어온 것도 한국이며, 교육입국으로 나라를 키워온 것도 한국이다. 검소하고 겸손한 왕실문화를 바탕으로 백성을 끌어안고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꽃피운 것도 한국이다. 물론, 기나긴 역사의 행로에 어두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한국사의 본질이었다면 어떻게 500년이나 1,000년의 사직을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문화의 힘은 경제나 군사력보다도 큰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나 석가나 공자는 맨손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인물은 없었지만, 이들의 가르침을 누가 모범적으로 실천했느냐를 따진다면 한국인은 아마도 우등생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의 진실한 모습이고, 바로 그것이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는 한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인이 ‘군자국’과 ‘동방예의지국’의 모범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아니 그 모습을 너무나 많이 잃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 역사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의 거울로 우리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이런 시각에서 집필되었지만, 이번 개정판을 통하여 그 모습을 좀 더 새롭게 다듬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많이 추가되었지만, 그것이 두 번째 개정판을 내는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 담고자 하는 필자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려 주시고 읽어 주기를 당부한다. 책의 부족한 부분을 깨우쳐 주신다면 더 없는 바람이다.

2014년 1월 관악산 호산재에서
한영우 씀

 

 

2. 개정판을 내면서  (2004년 전면개정판 서문)

 

 

《다시찾는 우리역사》초판이 1997년 봄에 발간되어 벌써 6년 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세기가 바뀌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가 등장했으며,미국에서도 클린턴 정부가 끝나고 조지 부시 정부가 등장했다. 길지 않은 세월임에도 국내외 정세가 크게 바뀐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의 발달로 문화계의 변화도 급한 물살을 타고 있다. 1 년의 변화가 과거 100 년의 변화보다 클지도 모른다. 이런 시기에 시대에 뒤지지 않는 역사를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대사를 신속하게 보완해야 하고, 역사서술방식이나 책의 편집도 새로운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학계와 각종 언론매체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결과 지난 6년간 중판을 거듭하면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필자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한국사교재로 이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국어 번역본의 필요성이 점차로 커지고 있다. 일본어판이 동경대학 요시 다 교수에 의해 출간되었으며,러시아어판이 모스크바대학 박미하일 교수에 의해 진행 되고 있다. 영어판은 연세대학교 함재봉 교수에 의해 머지 않아 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성원이 클수록 필자의 어깨도 상대적으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을 거듭할 때마다 부분적인 수정을 수십 차례 거듭해 왔다. 컴퓨터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한 셈이다. 하지만 일취월장하는 학계의 연구성과에 비추어 보거나 애독자들의 기대를 고려할 때 이러한 부분적인 수정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전면적인 개정판을 내 게 된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도 역사해석의 큰 골격이 바뀐 것은 없다. 그러나 설명이 크게 보완되었 다 우선 총설이 거의 두배로 늘어났다. 본문 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것은 고대사와 고려사 부분으로 내용을 한층 자세하게 보완했다. 특히 고대 한일관계사에 새로운 연구성과를 많이 수용했다. 조선시대 이후의 역사도 새로운 학설을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특히 대한제국의 근대국가로서의 위상을 한층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현대사에서는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에 이르는 과정을 새로 넣었다. 최근에 발행된 참고문헌도 물론 추가되었다.


이 책의 주요 특징의 하나인 도판fi弼도 새로운 것으로 많이 바꾸었다. 전체적으로 근현 대사 서술과 문화사의 비중이 높은 것이 이 책의 특징으로 평가되어 왔는데,그 특징을 이번 개 정판에서도 최대로 살리려고 노력한 셈이다.


돌이켜 보면, 초판을 내고 나서 필자는 회갑을 맞이했고, 이번 개정판은 정년과 시기가 필자는 앞으로도 체력과 시간이 허용하는 한 이 책을 계속적으로 보완해 갈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배전의 성원과 애정어린 질책을 기대한다.


2003년 2월
봉천동 호산재에서 저자 한영우 씀

 

 

3. 책을 펴내면서 -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반성할 때 성장한다.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반성할 줄을 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발전하는 시대에는 반드시 옛것을 숭상하면서 현재를 고쳐나갔다. 서양의 근대가 그리스•로마 문명을 고전古典으로 부활시키면서 열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다. 중국인은 하 •은•주 삼대의 문명을 고전으로 내세우고 혁신을 거듭해 갔으며, 우리나라는 중국의 삼대를 숭상하면서 동시에 고조선이나 그밖의 고대국가를 이상시대로 그리면서 왕조를 세웠다. 옛날을 사랑하면서 현재를 극복해 가는 자세가 서로 다름이 없다. 이를 서양사람들은 ‘르네상스’라고 불렀고, 동양인은 온고지신 혹은 법고창신이라고 했다.


지금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세기가 바뀔 뿐 아니라 천년대가 바뀌는 역사의 대전환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렇듯 중대한 시기에 우리는 지금 얼마나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현재를 얼마나 반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미 미래의 세계가 우리에게 반드시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조짐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발족이 경제적으로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미 그것은 20세기와는 다른 모습의 경제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지난날 패권주의 시대의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라서 강자의 길을 가야 하는 가.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사는 공생공영의 길로 가야 하는가. 일방적으로 힘을 키우느냐, 아니면 도덕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느냐. 지금 그 기로에 서 있고,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힘의 길을 간다면,아마도 그 길의 끝은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힘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힘을 과도하게 믿는 사람은 오히려 힘 때문에 파멸할 수 도 있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여기서 우리가 선택할 길은 공생공영의 인도적 사회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사실, 지난 20 세기는 공생공영을 고민하기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세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 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1 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부국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니,도덕이니,문화니,복지니 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민주주의가 문민정치라는 것을 알면서도,문민정치를 해 본 일이 없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었고, 도덕과 기강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끊임없는 사건 사고로 이어지고, 잘 나가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사람이 일류가 되지 않으면서 경제만 일류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열어가야 할 사회가 진정 문민시대라면,진정한 문민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문민의 모델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서양도 문민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델을 우리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역사에서 문민전통을 애써 외면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민문화가 절정에 다다랐던 조선왕조를 문약에 빠져서 망했다고 흔히 말해 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해석이 힘을 숭상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유교입국의 조선왕조가 고도의 문민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519년의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강포한 도적은 탓하지 않고 도적맞은 선량한 주인만을 탓하는 것과 다름없다. 패권주의시대에 패권을 쥐고 흔들었던 일본과 독일도 불과 반세기 만에 연합국에 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패권을 거부했던 조선왕조만을 원망하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물론 지난날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고, 생존을 위한 힘의 축적이 절실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이 반드시 미래에도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열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비단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수천 년의 민족사를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는 21 세기를 맞이 하기 전에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힘을 중심에 놓고 보면,아마도 만주를 끌어안았던 고구려가 얼핏 빛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지나치게 힘을 숭상하고 전쟁을 선호한 데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볼 때,우리역사는 새롭게 쓰여져야 할 대목이 너무나 많다.


나는 20세기를 60년간 살아왔다. 유년기에 태평양전쟁을 경험했고, 소년기에 6-25 전쟁을 만났으며,청장년기를 최루탄 가스 속에서 살아왔다 크건 작건 간에 모두가 전쟁이다. 이것은 우리 국민 다수의 경험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의 삶의 체험과 역사의 과거 사이를 무수히 오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역사는 무엇인가 왜 우리역사와 문화는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역사와 문화의 약점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인가.


우리역사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숨겨진 보석’을 우리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모르는데 남이 알아 주기를 바랄 수 있는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남모르는 행복을 누리고 살아왔다. 더욱이 최근 규장각 도서를 관리하면서 나의 행복감은 절정에 달했다. ‘잃어버린 역사’와 ‘숨겨진 보석’을 되찾는다면 우리의 생존능력은 몇 배로 커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역사에서 자신감을 찾고, 그 자신감을 가지고 21세기를 연다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세계화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밖으로만 관심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균형감각을 갖춘 지식은 지피나 지기의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손자의 가르침도 있지 아니한가. 모든 지식은 자기 역사에 뿌리를 두고 남을 이해할 때 주체성과 실효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편협한 국수주의와 주체성 없는 세계주의는 모두가 위험하다.

 

내가 우리나라 통사를 쓰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소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마 이 책은 그러한 정서에서 쓰였다는 것을 독자들은 금방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나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앞머리에 실은 ‘총설'은 나의 그러한 시각이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특히 조선왕조의 문민전통을 새롭게 보는 시각에 따라 전반적으로 시대구분 방식이 통념과는 달라졌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 책을 쓰면서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은 전문가를 위한 통사가 아니라,일반국민을 위한 통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의 고ㅈ을 찾고 전통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고 있으나, 평이하고 친절한 역사책이 별로 없다. 권위 있는 학자들이 이러한 작업을 피해 온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한자를 병기하여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도록 하였고, 많은 지도와 도판을 넣어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자 하였다. 특히 문화재와 관련된 지도와 그림을 되도록 많이 넣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최근의 학문적 성과를 가능한 한 수용하여,대학생이나 그 이상의 전문가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각주를 최대로 활용한 것도 이 책의 특색이다. 본문에 넣기는 곤란하지만, 좀 더 깊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에서이다. 그리고 최근 국민의 관심이 문화와 생활 그리고 지방사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고려하여 이 방면의 서술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이후의 서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역사는 가까운 시대일수록 중요하다는 원칙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해방 이후의 현대사도 1996년 말까지 다루었다 다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나 현존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엄밀한 평가를 유보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데 치중하였다. 특히 북한의 역사는 정보 부족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엄연한 민족사의 일부로서 가능한 한 편견 없이 쓰려고 노력하였다. 남한과 북한은 외형상 대립관계에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깊은 인과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왔음을 유념하였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시각과 형식을 시도하였기 때문에 집필과 편집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집필에 착수한 것은 14년 전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시간을 다른 일에 빼앗겨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더욱이 새로운 자료와 연구성과가 속속 등장하고, 주변환경이 바뀜에 따라 개고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미흡한 점이 많은 대로 우선 세상에 내놓 기로 하였다. 이 책이 독자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모르겠으나 개성이 살아 있는 통사, 국민에게 다가서는 통사, 시대의 고민을 담아 보려는 통사로 이해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자한다.


그동안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동료 교수와 후학들이 격려를 보내고 도움을 주었다. 특히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발해관계 서술에 자료와 조언을 주었으며, 배우성 박사는 편집에 따르는 갖가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원고의 교정은 강석화(규장각 학예사, 박사), 고경석(강사),김문식 (규장각 학예사,박사),나희라(많사》,도면회(강사),박재우(강사), 박태균(강사),신병주(규장각 조교),연갑수(이하 강사), 윤경진, 윤선태, 윤해동, 최연식, 등 여러분이 분담해서 맡아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또한 이 책을 아담하게 꾸며준 것은 경세원의 김영준 사장님 및 편집부 고현석 부장님, 편집부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 자리를 빌어 평소 필자를 격려해 주고 도와 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뜻을 전한다


1997년 1월 

신림동 서재에서 

저자 씀

김어준 '정치 무당' 빗댄 강준만 "포섭된 1호 신도는 文일 듯"

 

 

 

< 중앙일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3.02.23  >



 


친(親) 더불어민주당 성향 방송인 김어준과 주진우 전 시사인 기자가 지난달 11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선거법 위반 관련 2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입장 표명 없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들은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4월 8번에 걸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집회를 개최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원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민주당에게 유리한 일이라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도 조롱과 모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용인되는, 아니 그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몹쓸 표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큰 죄를 지은 거죠.”

더불어민주당 진영을 대변해 온 방송인 김어준씨를 향한 강준만(67)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날 선 비판이다. 지난 10일 출간한 책 『정치 무당 김어준』(인물과사상사)에서 김씨를 “한국 정치를 타락시킨 정치 무당”이라 규정한 강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내가 김어준을 ‘정치 무당’이라 부르는 건 그가 논리와 이성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를 비판하는 일은 “상식과 양식의 문제”라고 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정치·사회 비평을 해온 강 교수가 한 인물을 집중 해부하는 비평서를 낸 건 오래간만이다. 강 교수는 특히 정치 개입 이전의 김어준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자신의 2012년 글까지 그대로 실으며 시간 흐름에 따른, 김씨에 대한 자신의 시선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1998년 딴지일보 창간 당시 김어준은 “주류의 전복을 통해 명랑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명랑 사회’ 구현의 선구자”였으나, 2011~2012년을 기점으로 “증오와 혐오 정치의 선동가”가 됐다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Q. 김씨는 오랜 시간 민주당 진영의 스피커였다. 하필 지금 시점에 그에 대한 책을 쓴 이유는.


A. ‘공영방송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대전제는 그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던 것인데, 김어준에 이르러 유린됐다. 한국의 지성을 대표해온 정계·학계 인사들마저 자신의 당파성에 따라 그런 김어준의 행위를 옹호하는 광기가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이는 2021년 서울시장 재·보선과 지난해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후에 더욱 크게 불거진 문제다. 김어준과 TBS는 그런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친(親) 민주당 방송을 계속 하겠다고 버티면서 그렇게 하는 게 ‘정치적 독립’이라는 궤변을 일삼았다. 그런 광기를 비판해온 내가 현시점에 책을 낸 건 당연한 일이다. 이건 좌우나 여야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상식과 양식의 문제다.

 


Q. 무당의 사전적 정의는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하는 사람’이다. 김씨를 무당에 빗댄 이유는.


A. 내가 그를 ‘정치 무당’이라고 한 건 그가 더 이상 논리와 이성의 영역에 있지 않다는 의미다. 김어준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가 어려운 사안도 쉽게 전달하는 ‘대중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좋아하는 이유로 꼽는다. 나 역시 그런 점이 그의 가장 탁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원하는 건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한 토론이 아니라 ‘신앙 부흥’이라는 게 문제다. 그는 사이비 선지자와 같은 음모론을 퍼뜨리고, 그 음모론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돼도 사과하지 않는 등 신흥 종교 교주 같은 면모를 보인다. 이런 일련의 모습이 내겐 ‘정치 무당’으로 다가온 것이다.

강 교수는 김씨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로서 제기한 숱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조목조목 책에 기록하며 “그에게 공영방송의 마이크를 넘겨준 시스템이 문제였다”고 거듭 지적한다. 예컨대 김씨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우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했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해선 “누군가 왜곡된 정보를 준 것 같다”며 ‘배후설’을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 진영이라는 ‘부족’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 김씨가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이라는 게 강 교수의 생각이다.

 


Q. 김씨가 제기한 음모론, 가짜뉴스 중 최악의 사례를 꼽는다면.


A.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누군가의 편을 드는 당파성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김어준의 당파성은 공적 영역에서 맹목적으로 이뤄졌다. 자기 부족의 이익을 위해 이용수 할머니, 미투 피해자들, 피살 서해 공무원 등에 대해 잔인할 정도의 조롱과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소중히 여겨온 가치마저 훼손하는 본말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어떤 사례가 가장 해로웠는지는 굳이 내가 순위를 매기기보다, 독자들이 각자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Q. 그런 해악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이토록 오래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A.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섰던 김어준은 문재인 정권 시절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사실 ‘정치 무당’ 김어준에 가장 먼저 포섭된 1호 신도는 문재인일지도 모른다. 문재인이 강성 지지자들의 악플마저 옹호할 정도로 ‘팬덤 정치’의 신봉자였다는 점도 그의 김어준 사랑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절 민주당 대표 이해찬도 김어준을 ‘민주당의 브레인’으로 여겼다. (권력 실세) 넘버원, 넘버투가 김어준의 열혈 팬이니 민주당 의원들의 입에서 아부 경쟁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의 김어준 찬사가 양산된 것이다.

 


Q. 정치와 극렬 팬덤이 결별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김어준은 계속해서 등장할 텐데, 제도적 해결책이 있을까.


A.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승자독식 정치’ 청산을 위해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대안이 제시됐지만, 기득권자들의 반대와 중대선거구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치열한 공론화 과정과 함께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Q. 책에서 “김어준 문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문제”라고도 했는데.


A. ‘방심위 문제’의 핵심은 늘 여당에 유리한 결정이 나오는 구조인 정당별 배분 방식(※방심위원 9명은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소관 상임위가 3명씩 추천)에 있다. 방심위뿐 아니라 공영방송 사장 선임도 바로 이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다. 나는 2006년부터 사회 각계를 대표하는 시민들로 이뤄진 이른바 ‘방송의회’를 구성해 방심위원과 공영방송 사장 인사권을 넘겨주자고 주장해왔지만, 아무 반향이 없었다.

 


Q. 김씨는 지난해 12월 30일 TBS 라디오에서 하차했지만, 유튜브를 통해 영향력이 여전해 보인다. 앞으로 그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A.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지금처럼 대결 구도를 지속하고, 이 대표가 민주당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탄용’으로 이용하는 데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면, 김어준에겐 계속 ‘따뜻한 봄날’일 것이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김어준은 참 복도 많지”라고 하길래, 나는 “복(福)인지 화(禍)인지는 더 두고 봐야지”라고 답해줬다.

Q. 책 머리말에서 “김어준이 ‘명랑 사회’ 구현을 위해 애쓰던 시절로 복귀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직접 접촉은 하지 않나.


A. 따로 연락을 한 바는 없다. ‘정신적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던 김어준으로서는 ‘정치 마약’에 이미 중독된 상태라, 과거에 부르짖던 ‘명랑 사회 구현’은 소꿉장난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그가 예전의 김어준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물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자신이 15년 전에 한 말을 돌려주고 싶다. “정말 비겁한 건 자신이 비겁하다는 걸 인정 못 하는 거다.”(김어준의 2008년 책 『건투를 빈다』, 137쪽)

"예수는 언제 행복했을까…묻지 않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2023.01.12  >

 



9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최원영(68) 작가를 만났다. 그는 2년 전 『예수의 할아버지』라는 장편 소설을 내놓으며 화제가 됐다. 신학계에서 치열하게 오갔던 논쟁을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과감하게 제시했다. 당시 소설가 김훈은 추천사에서 “하느님과 교회를 교리로부터 해방시켜서 현세의 생활 속에서 살아 있게 한다”고 평할 정도였다.

최근 최 작가가 두 번째 소설 『예수님의 폭소』(좋은땅)를 내놓았다. ‘예수’와 ‘폭소’를 합한 제목. ‘예수의 할아버지’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이유부터 물었다.


뜻밖의 제목이다. 왜 ‘예수님의 폭소’인가.  
“늘 궁금했다. 성경에는 왜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대목은 하나도 없을까. 우셨다는 대목은 세 번 나온다.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 앞,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면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였다. 그런데 왜 웃으시는 장면은 없을까. 오래전에 목사님에게 그걸 물어본 적이 있다.”

 


목사님의 대답은 어땠나.
“예수님이 한 번도 안 웃으신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거룩하신 분이고, 엄숙하신 분이라고 했다. 목사님은 그렇게 쉽게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흔쾌하지 않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항상 어린아이들을 좋아하고,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까. 그때마다 예수님은 웃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목을 ‘예수님의 폭소’로 정했다. 예수님은 언제 가장 크게 웃었을까. 그런 오래된 생각의 씨앗이 소설의 시작이 됐다.”


예수님의 폭소. 예수님이 가장 좋아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다섯 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지만 책은 쉼 없이 그걸 찾아간다. 예수께서 가장 크게 웃는 순간, 그건 예수님이 이 땅에 온 이유와 닿아 있을 테니 말이다.

『예수의 할아버지』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며 개혁을 꿈꾸는 젊은 목사의 외침을 다룬 장편소설이었다. 반면 『예수님의 폭소』는 다섯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우화적인 느낌을 준다. 이유가 있나.


“기독교를 향해 질문과 대답을 자유롭게 던지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간 제약 없이 베드로와 도마도 등장해 문답을 주고받는다. 종교 이야기다. 너무 심각하고 엄숙한 쪽보다 자연스럽고 유머가 있는 쪽을 택했다. 그걸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좀 더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 작가는 원래 모태신앙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 중학생 때는 주일학교 학생회장을 하며, 등사기로 교회 주보도 만들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당시 제가 알던 신앙은 이랬다. ‘하늘 높은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분은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 저는 어쩐지 하나님이 하나님답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라면 좀 더 통이 크고,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큰 지진과 해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어떤 목사님은 ‘그 나라는 예수를 안 믿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른 교회를 다녀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강원용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됐다. “놀라웠다. 제게는 충격이었다. 강 목사님은 ‘예수 믿어서 천당 가는 것’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점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이 미국 유니언 신학대에서 세계적 신학자 폴 틸리히에게 배우셨더라.”

 


책에서는 한국 교회의 ‘묻지마 신앙’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대개 ‘묻지마 신앙’이 훌륭한 신앙으로 생각된다. 저는 그게 답답했다. 한번 뿐인 우리의 삶에는 진정성이라는 게 있다. 종교의 ‘종(宗)’자는 근원, 즉 뿌리를 뜻한다. 종교는 자기 삶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여기에 대해 묻지 말라고 하면 결국 해결이 되겠나. 그게 중세 때 종교와 무엇이 다르겠나. 종교에도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뭔가.
“기독교의 모태에 해당하는 유대교에는 원죄(原罪) 개념이 없다. 구약성경에도 원죄라는 용어는 없다. 원죄가 유전된다는 말도 없다. 기독교의 원죄 개념은 4세기에 성 오거스틴(354~430)이 만들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했다는 대속(代贖)의 개념도 1세기에 사도 바울이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당시 시대적 필요성이 있었으리라 본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시대정신은 또 다르다. 2021년 작고한 존 쉘비스퐁 주교(미국 성공회)는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기독교, 어떻게 변해야 하나.
“기독교가 처음 등장한 1~3세기는 ‘신앙의 시대’였다. 초기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느냐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느냐를 중시했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됐다. 예수의 신성, 원죄, 삼위일체 등의 교리가 생겨났고,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믿음의 시대’가 열렸다. 4~20세기는 그런 믿음의 시대가 공고히 진행됐다. 지금은 21세기다. 이제는 새로운 ‘깨달음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소설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루었다.”

 


깨달음의 시대가 왜 필요한가.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답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의 틀.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도 그렇다. 거기에 담긴 뜻을 깨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도 철이 든다. 깨달음을 통할 때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다.”

 


『예수님의 폭소』에 담겨 있는 마지막 단편의 제목이 도전적이다. ‘끝장토론 : 하나님은 있는가?’. 과학자와 신학자가 TV에 나와서 김동근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하는 뜨거운 논쟁이다. 그렇다고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의 기계적이고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니다.

소설 속 신학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실재적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하나님을 독특한 방식으로 인류에 나타내셨지요. 동시에 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습니다. ”

과학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보험을 들듯이 하나님 믿고 교회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삶의 목표는 오직 세상에서 잘 되고, 죽어서는 천당 가는 것이다. 이 땅에 널려 있는 ‘밑져야 본전 교회’와 ‘순보험 교회’를 다니면서 귀중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결단이다. 자기 삶의 진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끝장토론’에서는 시종일관 종교에 대한 성숙함을 강조한다. 이유가 뭔가.  

 

“‘묻지마 신앙’과 문자주의에 갇혀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면 대화와 상생이 어렵다. 반면 종교를 바라보는 성숙함이 있으면 달라진다. 성숙한 유신론자와 성숙한 무신론자는 서로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생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종교에 대한 성숙한 태도라고 본다. 소설을 통해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최원영=고려대에서 경영학,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음악대학원 기악학 석사, 직접 창작한 가곡도 여러 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원 국제외교학 석사, 뉴카슬 대학원 정치학 박사. 동아그룹 사장과 예음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고전음악 감상실 ‘필하모니’를 만들고, 음악공연예술지 ‘객석’과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을 창간했다.

1. 

 

최고 종교학자 길희성이 꼽은 영적휴머니스트는

 

 

 

< 한겨레, 조현 기자, 2021-08-10 >

 

 

 

 


종교는 모든 가르침의 근원이다. 또한 종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살육하고, 전쟁을 일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사회와 남북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갈등과 적개심을 가장 부추기는 것도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운 이들이다. 따라서 종교는 가장 고귀한 인간을 지향하지만, 평균적인 인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중세적 억압을 넘어 인류 진보가 얻어낸 ‘휴머니즘’과 이상적 종교성인 ‘영성’이 만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길희성(78) 서강대 명예교수가 <영적 휴머니즘>(아카넷 펴냄)이란 책에서 제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길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신학으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거쳐 학술원 회원이기도 한 그는 2011년부터 강화도 고려산 자락에 ‘심도학사―공부와 명상의 집’을 지어 영성적 고전공부를 이끌어왔다. 지난 6일 심도학사에서 만난 길 교수는 평생을 씨름해온 종교적 여정을 마치고 정자에 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무려 900여쪽의 이 책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길 교수는 크리스천이다. 외조부를 비롯해 집안에 목사와 장로들이 많다. 한완상 교수 등과 힘을 모아 새길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보조지눌의 선사상을 연구해 불교를 가르쳤고, <보살예수>나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같은 다원주의적 저작과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라는 책을 썼다. 부드러운 성품과 달리 독선적인 기독교에 대해서는 예언자처럼 매섭게 비판해와 보수개신교계에선 그를 반기독교인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종교적인 책을 ‘최후의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기독교와 종교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해오다 왜 말년에 ‘영적 휴머니즘’을 들고 나왔나?
“목욕물이 더럽다고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릴 수는 없다.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종교는 외피고 본질은 영적 휴머니즘이다. 이제 종교적 인간보다는 영적 인간을 말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전지구적인 문명 위기의 탈출구는 무종교도 아니고 세속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영적 휴머니즘에 있다는 것이 종교를 두고 평생을 씨름해온 내가 도착한 정착역이다.”

 


―‘영적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모두 하느님의 고귀한 자녀라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에 근거한 휴머니즘이다. 이런 영적 인간관은 불교, 힌두교, 그리스도교, 유교 등 세계 모든 주요 종교 전통의 공통적인 핵심이다.”

 


―‘세속적 휴머니즘’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이유는?
“중세적 신본주의를 깨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쳐 자유와 인권을 중시한 게 ‘세속적 휴머니즘’이다. 그러나 예수를 근대적 의미의 휴머니스트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세속적 휴머니즘이 지향하는 자유가 절대적 가치가 될 수는 없다. 맹목적인 자유를 위한 자유가 되는 순간 에리히 프롬의 예견대로 독재나 전체주의로 도피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힘차게 외치고 출발한 프랑스 혁명 뒤에 공포정치가 도래한 것을 보라. 도덕과 공정한 정의, 영성을 상실한 근현대 서구문명의 한계를 세속적 휴머니즘이 보여주고 있다.”

 


―‘세속적 휴머니즘’에서 ‘영적 휴머니즘’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는?
“전통사회의 부조리한 사회제도와 관습에서 수많은 사람을 해방시켜준 계몽주의 이전이나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질서를 유지하던 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 휴머니즘의 토대가 되는 이성과 상식에 반해선 안 된다. 하나의 종교 전통에 고착되거나 매달리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고 포용적이며, 자연계를 감싸면서도 초월하는 따뜻한 인간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개신교 신앙인으로서, 철학자로서 가장 큰 고뇌는 무엇이었나?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주의적인 신앙과 정통 교리가 인간의 상식과 지성에 반하는 면이 너무 많고 크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지성에 부담을 주거나 상식에 폭력을 가하지 않고, 종교가 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면 안 되나’ 하는 의문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철학자든 신학자든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내가 아는 서구 사상사를 장식한 위대한 사상가 치고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영적 휴머니즘’이 그 고뇌에 대한 답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신앙을 유치하게 만드는, 신과 인간을 유사하게 생각하는 신인동형적 사고, 그리고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근본주의다. 많은 신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묻지마 신앙’에 빠지거나, 아예 종교에 담을 쌓고 세속적 삶에 자신을 맡긴다. 이 불행한 양극단의 선택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고뇌는 젊은 날 교회에서 시작됐나?
“그렇다. 영락교회 신자로서 한경직 목사의 설교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러나 전혀 감동이 없었다. 한국 개신교 주류를 복음주의라고 하는데, 말로는 죄인 죄인 하지만, 실제로는 죄의식이라는 게 없다. 차라리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면 낫겠는데 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승리주의에 젖어 타종교를 무시하고, 미국을 할아버지쯤으로 여겨 역사의식이라는 게 없다. 기본적 이성과 상식을 무시해 세속적 휴머니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신학적 상식조차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상징이고 ‘아날로지’(유비)다. 그게 신학의 가장 기본이다. ‘저 친구는 곰이다’는 말은 ‘인간이 아니고 진짜 곰’이라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데 문자주의, 근본주의에 빠진 한국 개신교 목사와 신자들은 ‘진짜 곰’이라고 한다. 성서에 그렇게 쓰여있다는 것이다.”

 

 

―이성 없는 신앙은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교회와 신학계는 이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만, 이성 없는 신앙은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욕망과 생각을 하느님의 뜻으로 둔갑시키기가 너무 쉽다. 중세를 대표하는 토머스 아퀴나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이어 신앙과 이성을 종합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철학적 이성보다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기술혁명시대다. 또 고대 그리스 철학보다 더 서양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을 매료시키는 불교나 노장사상 등이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상대성을 초월하지 못하는 다원적 세계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토머스 아퀴나스의 사상적 한계도 분명하다.”

 


대표적인 영적 휴머니스트로 예수와 중국 선불교의 임제 선사, 독일 수도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제시한 이유는?

 

예수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곧 인간에 대한 사랑임을 보여준 참된 인간이었다. 

 

에크하르트는 내가 아는 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와 우리 인간들 사이에 조금의 차이도 없다는 것을 대담하게 가르친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임제는 불교 냄새도 풍기지 않고, 어떤 특정한 이념과 관념조차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이 당당하게 사는 벌거벗은 참사람이었다. 

 

최시형은 경천, 경인에서 나아가 경물까지 가르쳤다. 슈바이처보다 훨씬 먼저 인간중심주의까지 넘어선 것이다. 

 

 

길을 잃은 문명의 앞길을 비춰주는 이들이 바로 이런 영적 선각자들이다.”

 

 

 

 

 

 

2. 

 

종교학 석학 길희성 교수 "영적 휴머니스트, 예수외 3명 있다"

 

 

<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2021.07.29 >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78) 명예교수가 최근 책을 냈다. 서문에서 그는 “나의 학문 인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저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비장’하고 무거운 심정으로 썼다”고 밝혔다. 922쪽, 두툼한 책의 제목은 『영적 휴머니즘』이다.

실제 그랬다. 어찌 보면 ‘마지막 고백’ 같았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 자리를 내놓고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갔을 만큼, 그는 좋아하는 종교학을 한평생 파고들며 살았다. 그 길의 후반부에서 길 교수가 내리는 마지막 고백과 결론은 어떤 걸까. 23일 강화도의 심도학사(尋道學舍)에서 그를 교수를 만났다. 길희성 교수에게 ‘나의 삶과 종교’를 물었다.

 


젊었을 때 신앙은?
“집안이 개신교였다. 외조부는 목사님이었다. 황해도였던 외가에 교회 장로도 여럿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랐다. 그런데 나의 마음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지 않더라.”

 

 

왜 생동감이 없었나.
“무언가 답답했다. 전통적 신학의 틀이 왠지 갑갑했다. 그때 부목사로 오신 홍동근 목사님이 물꼬를 터줬다. 그분은 카를 마르크스 이야기도 하고, 사회정의도 이야기했다. 성경 해석도 자유롭고 진보적이었다. 나는 거기서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길희성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신학을 하기 위해서 철학과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당시 홍 목사님과 주위 여러분의 조언이 그랬다. 신학을 하려면 철학을 먼저 하라고 했다. 그건 신학의 경직된 울타리 안에 갇히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 조언, 지금 돌아보면 어땠나.
“결국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입학하던 시절, 철학과에는 논리실증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 언어 분석적인 메타 윤리학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거기에는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등 삶에 대한 큰 물음이 빠져있었다. 대신 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심취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무엇을 찾았나.
“플라톤은 본질주의자다. 사물에는 본질이 있다. 책이라면 책의 본질이 있고, 대학에는 대학의 이념이 있다. 그게 본질이다. 나는 플라톤의 개념 철학, 본질 철학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나의 기독교 신앙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향점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거다. 이건 지금까지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진리다.”

 


길 교수는 학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예일대 대학원 신학부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3년간 신학 공부를 했다. 석사 과정이었다. 당연히 박사 학위도 신학으로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심적인 변화가 생겼다. 뜻밖에도 그는 하버드대 비교종교학과에서 불교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크게 방향을 바꾸었다. 심적인 변화는 무엇이었나.
“예일대에서 공부하며 깨달았다. 서양 사람들은 데카르트나 칸트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그들의 사고가 철학적이구나. 동양 사람들은 공자와 노자를 공부하지 않아도 사고의 밑바탕에는 동양철학이 흐르는구나. 특히 와인슈타인 교수의 학부 불교사 강의를 수강하면서 불교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를 하게 됐다. 나는 기독교가 세계 종교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하버드 대학에는 켄트웰 스미스 교수라는 세계 종교학의 거장이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슬람학에 정통했다. “그분의 세계 종교사를 보는 눈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미스 교수의 학부 강의 조교도 했다. “그때 나는 이슬람과 유일신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됐다. 기독교 신학을 넘어서서 세계 종교를 이해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켄트웰 교수의 안목 중 가장 놀라웠던 대목은 뭔가.
그분은 세계 5대 종교를 이렇게 꼽았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마르크시즘, 세속적 휴머니즘(Secular humanism). 그는 마르크시즘과 세속적 휴머니즘도 하나의 종교로 봤다. 이런 견해에 나는 깜짝 놀랐다. 종교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건 궁극적 삶의 의미와 토대에 관한 인간의 모든 게 종교적이라는 깊은 통찰이었다.”

 

 

세속적 휴머니즘이 뭔가.
인간은 인간이란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어떤 종류의 차별도 없이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 있는 존재다. 종교적 차별마저 넘어서는 휴머니즘이다. 서구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비판을 받았고, 그 결과 인간의 이성과 윤리에 중심을 두는 탈 종교화한 휴머니즘이 생겨났다. 그게 세속적 휴머니즘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인가.
세속적 휴머니즘에만 머물면 삶의 의미, 삶의 토대가 공허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세속적 휴머니즘이 아니라 영적 휴머니즘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영적 휴머니즘, 그 핵심은 뭔가.
“데카르트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고, 세계는 물질과 정신으로 돼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세계를 이분법으로 쪼개고 대립적으로 봤다. 기독교를 위시한 유일신 신앙의 종교들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영향을 극복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본다.  

 


유일신 신앙의 이분법은 어떤 건가.
“신을 초자연적 존재로만 본다. 그래서 초자연과 자연이 대립한다. 신과 인간, 성(聖)과 속(俗)이 이원적으로 대립한다. 게다가 자신들처럼 그걸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 다른 종교를 범신론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유일신 신앙의 배타성이 나온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걸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둘로 쪼개져 있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유일신 신앙이 살 수 있다. 그걸 나는 ‘포월적 신관(包越的 神觀)’이라 부른다. ‘포월’은 감싸면서 초월한다는 뜻이다. 만물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한다. 자연적 초자연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의 종교 전통들에는 이런 안목을 갖고 살았던 영적 휴머니스트들이 실제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길 교수는 네 명의 영적 휴머니스트를 꼽았다. 예수와 중세의 수도자이자 신학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 중국 선불교의 임제 선사(?~867)와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98)이다. 그는 먼저 예수를 꼽았다.

예수는 말과 행동으로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대변인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하늘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 닮았다고 하여,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예수는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이자 진정한 사람의 아들이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어땠나.
“그런 예수를 알아보고 가감 없이 말했던 신학자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예수는 하느님의 외아들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입양된 양자라고 말한다. 독생자는 예수님뿐이라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이런 장애를 완전히 넘어서신 분이었다.”

 

 

에크하르트는 뭐라고 했나.
예수와 우리가 모두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라고 했다. 에크하르트는 그사이에 한 치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유일한 신학자였다. 그는 기독교의 공고한 신학적 장벽과 교리의 장벽을 속 시원하게 돌파해 허물어 버린 수도자이자 신비주의자다.” 

 


임제 선사와 해월 최시형은 왜 영적 휴머니스트인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ㆍ다다른 곳마다 주인이 돼라,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을 강조한 임제 선사는 참다운 인간의 주체성을 거침없이 설했다. 또 사인여천(事人如天ㆍ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다)을 주창한 해월 최시형은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했다고 말하라’고 할만큼 영적 휴머니스트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심도학사 진입로까지 배웅을 나온 길 교수가 맑은 눈으로 말했다.

영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숲멍하는 시간
   

 

고전번역원

고전산책

하지영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1. 번역문


   내가 남쪽 교외에서 한가로이 지낼 때에 맑고 화창한 날을 만날 때면 언제나 술 한 병 가지고 높은 산에 올라가 바위에 걸터앉아 눈길을 먼 곳으로 흘려보내곤 하였다. 구름 안개는 퍼졌다 걷혔다 하고 숲 속 나무는 흔들렸다 고요해지며 날짐승 들짐승들은 날아가거나 달려가며 울고 부르짖고, 물고기와 자라는 뜨고 잠기며 흩어졌다 모였다하는 백가지 천 가지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내가 앉은 자리 사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구별해 보면 구름 안개와 숲 속 나무, 새와 짐승의 즐거움은 산에 속하고 물고기와 자라의 즐거움은 물에 속하지만, 합하여 하나로 보면 산에서 구름 안개와 숲 속 나무, 새와 짐승이 능히 퍼졌다 걷혔다 흔들렸다 고요해졌다 날아가다 달려가다 울다 부르짖고, 물속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능히 뜨고 잠기며 흩어졌다 모인다. 내가 산수 사이에서 한가로이 자적하면서 만물과 그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늘에서 얻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것으로 하늘의 광대함을 알았다.


한가로이 혼자 술을 마시다 거나하게 취하면, 저 퍼졌다 걷혔다 흔들렸다 고요해졌다가 날아가고 달려가다 울고 부르짖고 뜨고 잠기고 흩어지고 모이는 것이 각각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내 즐거움을 즐기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안다. 저들이 그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면서 나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도 내가 내 즐거움은 즐길 줄 알면서 저들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도 답을 얻을 수가 없어서 팔을 베고 잠이 들었는데 조금 뒤에 잠을 깨고 보니 눈과 귀로 보이고 들리는 것도 실로 그대였고 나의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었다. 얼마 지나 구름은 산으로 돌아가고 새와 짐승은 숲으로 달려갔으며 물고기와 자라는 물속에 잠겼다. 나 역시 지팡이 짊어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니 석양은 아직도 울타리 아래에 있었다. 이것으로 해가 길다는 것을 알았다.

 


2. 원문


余閒居南野, 遇淸和日, 輒挈一壺陟崔嵬, 跂石而坐, 流目遠眺, 雲烟之舒卷, 林樹之動靜, 鳥獸之飛走鳴號, 魚鼈之浮潛散合 變態百千, 不離吾几席之間. 區以別之, 則雲烟林樹鳥獸之樂, 屬乎山, 魚鼈之樂, 屬乎水. 合以一之, 則雲烟林樹鳥獸之能舒卷動靜飛走鳴號于山, 魚鼈之能浮潛散合於水. 吾之所以優遊自適乎山水之間, 而與萬物同其樂者, 盖皆得乎天而然耳, 是以知天之大也. 悠然自酌, 陶然以醉, 不知夫舒卷動靜飛走鳴號浮潛散合者, 果各有其樂, 而知吾之樂吾樂否. 彼之自樂其樂而不知吾之樂, 亦猶吾之能樂吾樂而不知彼之樂否. 思之不獲, 曲肱以睡, 俄然覺則耳目之所聞見者固自若也, 而吾之樂又無窮矣. 旣而雲歸山鳥獸趍林, 魚鼈沉于水, 而吾亦負策詠歌, 徐步而歸, 則夕陽猶在藩籬之下矣. 是以知日之長也.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뇌연집(䨓淵集)』 권13 「자암의 글씨에 붙인 발문(自庵大筆跋)」

   
 

3. 해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에는 바삐 구경하고 다니는 것보다 한곳에 머물며 산이나 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선호한다. 최근에 ‘불멍’, ‘숲멍’, ‘물멍’과 같은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나만이 즐기는 독특한 여행법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산이나 물, 불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어떤 즐거움을 주냐고 묻는다면 딱히 뭐라 대답할지는 모르겠다.

   남유용의 「자암의 대필에 붙인 발문(自庵大筆跋)」도 일종의 숲멍에 대한 경험을 쓴 글이다. 자암의 대필은 16세기 명필 김구(金絿)의 “고요함 속에 하늘은 광대하고, 한가한 가운데 해는 길다[靜裏天大 閒中日長]”라는 글씨이다. 원래부터 하늘은 광대하고 해의 길이도 일정할 텐데, 왜 고요하고 한가한 가운데서 새삼 느낄 수 있다는 것인가. 

 

남유용은 “오사모에 띠를 두르고 길에서 호령이나 하며 달려가는 자와는 하늘의 광대함을 말하기에 부족하다. 부지런히 잇속이나 챙기면서 자신의 처자식을 돌아보며 있네 없네 말하는 자와는 해가 긴 것을 말하기에 부족하다.”라는 형 남유상(南有常)의 말을 떠올리며 김구의 글씨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당장의 이익과 권력을 좇느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광대한 하늘과 장구한 시간을 돌아볼 여유란 없다.

   남유용은 이어 산에 올라가 풍경과 만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내려왔던 한가한 어느 날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산속의 변화무쌍한 만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자신 안에 충만해지는 즐거움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만물이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광대한 하늘 아래 함께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여느 유학자의 격물치지 공부처럼 만물에 내재한 심오한 이치를 찾으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숲멍’과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자신과 만물에 밀도 있게 집중하고 나니 하루 해가 길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남유용으로서는 어쩌면 자신을 둘러싼 우주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경험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조정의 고위 관료로 누구보다도 바쁜 삶을 살았을 남유용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보낸 시간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2022년 한해도 이제 저물어간다. 이맘때면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돌아보니 순식간에 일 년이 지나간 느낌이다.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왔으니 올 한해도 그리 잘못 산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바쁜 것은 잘살고 있음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아니던가. 하지만 때로 바쁘게 살면서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유용의 글은,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광대한 하늘과 긴 시간 속에 놓인 자신을 한 번쯤 멍하게 응시하기를 권한다. 삶의 의미와 같은 거창한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속으로 충만해지는 즐거움은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주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멍한 시간은 그저 멍하게만 낭비해버리는 시간은 또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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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맹자)의 告子章(고자장)  (0) 2022.02.14

인생에 관한 새빨간 거짓말
 - 타인의 말에 속지 않고 나로서 결정하는 법

 

( 윤성식 저, 21세기북스, 2022)

 

 

 

1. 책 소개

 


우리는 왜 매번 선택하고 후회하는가!
초불확실성 시대, 나를 지키는 뉴노멀 생존 법칙
고려대 윤성식 교수가 파헤친 ‘인생에 관한 새빨간 거짓말’ 해부서


어떤 학교 혹은 어떤 학과로 진학해야 할지, 어느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지, 지금 집을 사는 게 좋을지 등 앞으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선택부터 내일은 어떤 옷을 입을지,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면 좋을지, 당장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등 아주 작고 사소한 선택까지 우리는 매순간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잘 결정하고 잘 행동할 수 있을까?


고려대학교 최고의 강의에 주는 ‘석탑강의상’을 수상하며, 다양한 2030 청년들에게 ‘진짜 인생 멘토’로 통하는 윤성식 교수가 신작 《인생에 관한 새빨간 거짓말》을 출간했다. 누구나 타인과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인생에 맞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을 담았다. 지금, 주위의 수많은 첨언으로 선택을 망설이고 결정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은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이 되어줄 것이다.

 

 

 

2. 저자(글)  :  윤성식

행정/정책학자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사,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사, 일리노이대학교에서 회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버클리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한 뒤 텍사스대학교(오스틴 캠퍼스) 경영대학원 교수와 미국 공인회계사로 활동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강의에 주는 ‘석탑강의상’을 받았으며, ‘믿고 듣는 교수’로 통한다.
성공적인 학자의 길을 걷던 그는 진정한 행복의 답을 찾고자 위파사나 명상을 실천하며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경영·회계·행정에 이어 마음공부까지 자타가 인정하는 전방위 스페셜리스트 학자인 그는 잘 결정하고 잘 행동하기 위해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않는 법을 알리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지은 책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부처님의 정치 수업》 《부처님의 부자 수업》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 등이 있다.


 

 

3. 목차

 


프롤로그 | 인생의 선택을 잘하기 위한 5가지 방법

1장 욕망에 충실할 것: 삶은 욕망과의 계약이다
- 전공과 직업에 관한 거짓말
- 꿈과 소망에 관한 거짓말
- 돈과 이익에 관한 거짓말
- 사랑, 겸손, 감사라는 거짓말
- 삶이란 욕망과 맺는 관계다

2장 논리는 견고하게 쌓아둘 것: 당연한 것은 사실 당연하지 않다
- 진리, 객관, 사실에 관한 거짓말
- 인간에 관한 거짓말
- 의사결정에 관한 거짓말
-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삶의 논리와 이론은 나의 평온을 위해 필요하다

3장 단단한 몸과 마음으로 상황을 직시할 것: 긍정은 때로 긍정적이지 않다
- 주인, 주인공이라는 거짓말
- 긍정과 낙관이라는 거짓말
- 나와 세상에 관한 거짓말
-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은 세상의 약자가 기댈 수 있는 언덕
- 삶은 즐거움과 생존의 장소인 세상과 유리될 수 없다

에필로그 | 진부하고 상식적이고 너무나 가벼운 거짓말
부록 | 실생활에 적용하기 1 - 진로 결정의 기술
          실생활에 적용하기 2 - 인간관계의 기술

 


4. 출판사 서평


꿈, 사랑, 겸손, 감사, 소망, 진리…
거룩하게 포장된 거짓말에서 벗어나 내 안의 진짜 욕망을 마주하라!

◆ 현명한 선택을 만드는 5가지 기본 원칙 ◆


1. 사회나 제도권이 심어놓은 집단 무의식에서 벗어날 것
2.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삶의 논리와 이론을 가질 것
3. 조건, 환경, 상황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것
4. 욕망을 직시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질 것
5. 삶의 주인이 아닌 관찰자가 될 것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말했다. 세상에 태어나서(Birth) 죽을 때까지 (Death) 살면서 수많은 선택(Choice)을 직면하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학교의 어떤 학과로 진학해야 좋을지, 어느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지, 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 앞으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아주 큰 선택들부터 오늘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할지, 내일은 어떤 옷을 입을지, 당장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와 같은 아주 작고 사소한 선택들까지 매순간 새로운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똑같은 고민이라도 누군가는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누군가는 냉철하지만 현실적인 정보를 준다. 이렇게 상반된 조언과 수많은 정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때 제도권 힐링이 심어놓은 ‘가짜 힐링’의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였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각자의 인생에 맞는 의사결정을 하려면 자기 안의 진짜 욕망을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꿈보다 생존이 급급한 시대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라”는 말에 넘어가선 안 되고, 지금 모험을 앞두고 있을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에 착각해선 안 된다면서 말이다.

“완벽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딜레마, 모호함, 모순이 가득한 인생에서 완전하지 않아도 최선·최적의 선택을 만드는 의사결정의 기술!

● “진로 의사결정을 잘하려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 같은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말자.”_〈실생활에 적용하기1. - 진로 결정의 기술〉중에서
● “갈등의 표면에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이 잔뜩 나열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다. 욕망을 직시하자.”_〈실생활에 적용하기2. - 인간관계의 기술〉중에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선택하지 않은 쪽의 장점이 더 좋아 보이고, 내가 선택한 것의 단점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은 선택을 위해 제공되는 정보가 많아졌으나 오히려 선택 후 남는 후회는 더 커졌다. 각각의 장단점을 따져 신중히 선택하는데도, 우리는 왜 매번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는 것일까.


어느 것도 예측하기 어려운 초불확실성 시대다. 기존의 제도, 윤리, 기준이 매일 새롭게 재정립되는 세상에서는 절대 진리와 객관적 사실도 어느새 딜레마, 모호함, 모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완벽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생존 법칙으로서 욕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최선·최적의 선택을 만드는 힘은 수많은 거짓말에서 벗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으로 만들어진다.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본 인생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딱 맞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지금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화려하게 포장된 거짓말에 속지 않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5. 책의 주요 내용

 

 

 

 ■ 프롤로그 ■ 

 

【 인생의 선택을 잘하기 위한 5가지 방법 】

 

  -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자

  - 좋은 의사결정은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 수많은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기르자

  -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이 필요하다

  - 나 스스로 관찰자가 되면 내가 변화하고, 나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면 세상이 변한다

 

  - 나의 정신 세계는 상당 부분 누구를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맺고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는가에 달려 있다.대화, 관계,

    공동체는 장수와 행복의 비결이고 삶에 대한 나의 논리와 이론이 격상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 인간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제1장  욕망에 충실할 것 - 삶은 욕망과의 계약이다

 

 

 1. 전공과 직업에 관한 거짓말

 

  -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속지 말라.  수많은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을 고려해 전공과 직업을 결정해야지 좋아하고 잘한다는

    기준만으로 직업이나 전공을 선택하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의사결정을 잘하려면 제일 먼저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 노동의 종말, 기본소득의 시대가 오면 우리의 꿈의 방향과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꿈보다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아닐까?

 -  우리나라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다. 따라서 실패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손실회피보다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려면

    그에 걸맞는 노력과 끈기를 가져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손실최소화가 이익극대화보다 낫다. 어떤 것을 추구할 지

    는 먼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았는데도 모험할만하면

    모험해도 된다.

  - 먹고 사는 일과 이익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2. 꿈과 소망에 관한 거짓말

 

  -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론다 번의 베스트셀러 <시크렛>은 거짓말이다.   단 몇가지 요인만으로 가능하다는 성공

    학은 패스트푸드와 같다. 인간은 게으르기 때문에 성공을 위해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해야 인기를 끌 수 있다. 

    성공을 위해 많은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내 실망한다.

  - 따라서 꿈을 꾸려면 꿈이 가져올 결과만 상상하지 말고 꿈의 과정과 방법, 자질까지 꼼꼼히 검증해야 한다. 

 

    첫째, 내가 꾸는 꿈이 적합한 지,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창조적 긴장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인지 사유하고 성찰

             하자. 상상이 아니라 사유하고 성찰하여야 한다.

    둘째, 꿈을 이룰 과정과 방법이 있는지, 있다면 과연 그것이 현명한지 사유하고 성찰하는 단계이다.단순한 상상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행에 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상상하여야 한다.

    셋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바람직한 자질을 상상하자. 인간은 틈만 나면 게으른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기에 꿈의

             결과만 상상하면 노력하기는커녕 게을러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성공할 확률이 지나치게 낮으면 결국 포기하게 되고, 너무 높으면 무사안일에 빠질 위험이 있다. 쉽지도 않지만 어렵지

    도 않은 창조적 긴장을 유발하는 수준 이상의 꿈을 소망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말리고 싶다.  손정희는

    성공확률 50%에 투자하는 사람은 바보이며 자기는 70%에 투자한다고 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 꿈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면 그 이후의 노력은 허사다. 돈과 에너지만 축낸다. 차라리 게으르면 자산과 에너지가 절약

    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꿈 자체를 사유하고 성찰하여 꿈의 방향이 올바르게 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3. 돈과 이익에 관한 거짓말

 

  - 누구나 최종적으로는 돈을 좋아한다.  모두가 돈을 좋아하면서 아직도 우리는 돈은 최고가 아니다,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 즐거운 것, 소중한 것 모두 돈으로 살 수 있기에 돈은 가장 중요하다. 학벌도 권력도 돈과 시장으로 힘이 넘어 갔다.

    조사에 의하면 소득이 높을수록 더 건강하고 수명도 길다.

 

  - 돈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연구방법에 따라 행복도는 증가한다

    는 상반된 연구도 있다. 설령 돈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해도 우리가 주관적으로 생각하

    는 일정 수준이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 시장자본주의의 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은

    바로 돈이다.  형제자매, 친구, 동료, 선후배가 배반해도 돈은 결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돈은 많을수

    록 좋다.

 

  - 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건 넘어서지 않건 모두 불행하다면 그놈의 일정 수준은 별 상관 없다. 모두가 똑같이 불행하다

    면 차라리 돈이 많은 게 낫다. 어차피 다른 것에 의해 행복해지지 못할 바에는 행복도를 조금은 높여줄 수 있는 돈이 최고

    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돈은 최고이고 전부다.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 사랑도 욕망에 기초한다. 사랑만으로 결혼한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

    라 사랑이라고 하는 느낌이다. 오늘날은 사랑이 실종된 시대라고 한다.  오직 이익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결혼도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다보면 사랑은 더욱 설 자리가 없다. 

 

  - 결혼 상대는 사랑보다 살기에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라. 결혼은 같이 생활할 룸메이트를 선택하는 일이다. 만약 사랑하지

    만 같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면 사랑이 식은 후에 사는 일이 무서워질지 모른다. 사랑만을 기준으로

    결혼상대를 선택한다면 길어봐야 3년에서 7년짜리 결혼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사랑과 결혼조건이라는 양극단

    에 치우쳐 의사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 결혼과 관련된 모든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결정해야 한다.

    삶도 결혼도 한두 가지에 의해 결정할 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4. 사랑, 겸손, 감사라는 거짓말 

 

  - 스스로를 너무 많이 사랑하면 문제가 된다. 인간은 이미 충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자기애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에 자기도 손해지만 남에게도 해를 끼친다. 자기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만족을 모른다는 점이다. 사랑으로

    자기애를 불사르지 말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 온통 사랑을 강조하는 풍조에서 겁 없이 사랑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우리가 고통을 좀 더 잘 견디기 위해서이다. 자기애

     가 부족한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며, 강한 사람이란 생각하는 힘이 강하고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진정 자기를 위하고 싶다면 자기를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 말의 내용이 아니라 태도, 말투, 분위기로 겸손할 수 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나타냄에 있어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고 반발을 유발하지 않으며 건방지다고 느끼지 않도록 섬세하게 살피면 된다.  말투가 부드럽거나 거부반응을 유발하

    지 않거나 유머러스하면 자기를 드러내도 문제 없다.

 

  - 겸손도 지나치면 자칫 인위적인 감정의 덧칠이 된다. 자기자신에게 겸손하면 된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나타내는 방법

    으로 겸손하자.

 

  - 힘들 때 하는 감사는 피난처일 뿐이다.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매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매사를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매사에 감사하는 것도, 매사에 불평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지 않은

    것에는 감사하지 않아야 한다.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인기가 높고 매사에 불평하는 사람은 기피하게 된다.

 

    매사에 불평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보는 사람은 주변에서 예사롭지 않은 사람

    으로 생각하게 된다. 인기보다도 존중받는 사람이다. 감사한 일은 감사할 일이 아니면 감사하지 말자. 남보다 자기 자신

   에게 먼저 정직하면 된다.

 

 

 5. 삶이란 욕망과 맺는 관계이다

 

  -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고 운명이다. 인간은 생존확률을 극대화하며 진화해왔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우리의 생존

    과 관련된 일이다.  돈이 많으면, 좋은 음식을 실컷 먹으면, 이성과 사귀면 후손을 남길 확률이 높다. 우리는 돈, 음식,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의 후손이다. 욕망은 내 본성이고 내 운명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너무 늦게 알았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수많은 인생에 관한 거짓말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 욕망에 충실한 것이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동력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거룩한 척해도 우리

    는 욕망과 생존의 두 바퀴를 굴리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자연, 타인, 세상이 우리를 어른으로 키운 것이다. 나의

    욕망에 따라 살면 타인의 욕망, 세상의 명령과 충돌한다. 따라서, 우리는 남의 욕망과 거래하고 세상의 명령과 타협한다.

 

    '내가 싫은 일을 남에게하지 말라'는 윤리의 황금률은 남과 거래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첫 번째 기준이다.

 

    생각하는 힘이 강한 사람만이 욕망을 잘 선택하여 좋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욕망과 계약을 맺은 후에는 그 계약을 충실

    히 이행하는 것이 최고이다. 내 욕망은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이 키우고 태어난 후에는 타인과 세상이 키웠으니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인간적이다. 

 

  - 세상사는 수많은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의 조합에 의해 흘러 간다. 예상과 어긋날 때마다 좌절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건 인정하지 않을수록 삶은 힘들어진다. 인생의 관찰자는 수많은 요인, 조건, 환경, 상황과

    싸우지 않고 순응하지도 않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물흐르듯이 간다.  욕망에 충실한 삶은 바람 부는 대로 낙엽 지는 대로

    사는 삶이며, 욕망이 부는 대로 욕망이 지는 대로 사는 삶이다. 인위적 조작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야 죽을 때

    후회가 적다. 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욕망만 지고 가면 욕망이 나를 덮치는 일은 없다. 삶에 큰 방향과 흐름이 있다면

    욕망대로 살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욕망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욕망이

    부는 대로 욕망이 지는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바람 부는 대로 낙엽 지는 대로 사는 인생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물 흐르듯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 삶이란 나의 욕망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의 문제이다. 나의 욕망이란,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에 의해 태어난 욕망,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 욕망, 세상의 훈육에 의해 길러진 욕망의 결합이다. 

 

  - 우리는 남에게 하는 거짓말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합리화도 거짓말이다. 현상을 외면하는 낙관은 자신

    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욕망 앞에 정직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도 부단히 거짓말하게 된다. 삶의 의사결정과 집행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싶다면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그런 종류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내 욕망이란 거대한 혼란과

    모순의 세계이다. 자기의 욕망을 정확히 모른다면 자기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욕망을 알아 차리고 관찰하면 욕망이 자리

    를 잡는다. 욕망이 사라지면 사라진 대로 남아 있으면 남아 있는 대로가 나의 운명이다.

 

    욕망과 싸우지도 말고 욕망에 굴복하지도 말자. 금욕도 탐닉도 아닌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욕망만 지고 가자.

 

 

 

 제2장  논리는 견고하게 샇아둘 것 - 당연한 것은 사실 당연하지 않다

 

 

< 우리는 인생이 거짓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예쁘고 거룩한 말을 반박할 논리와 이론이 없으면 또다시 설득력 좋은 사람의 말에 넘어간다. 결국 인생에 관한 거짓말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관한 최근의 자연과학적 ·사회과학적 연구 결과를 습득하고 생각하는 힘이 강해져야만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잘 결정하고 좀 더 잘 활동할 수 있다. >

 

 

 1. 진리, 객관, 사실에 관한 거짓말

 

   - 뉴턴과 아인슈타인도 결국 틀렸다. 과학철학도 지난 수십 년간 연구를 통해 절대 진리는 없고 '항상 수정될 수 있는

     이론'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설 검증을 통과한 이론은 언제든지 다시 수정될 운명을 안고 있다. 절대

     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세상사 고정된 정답은

     없다.

 

  - 절대 진리가 없는 모호함, 딜레마, 모순의 세계에서 기존의 제도, 윤리, 기준은 모두 재정립되고 있다. 삶의 논리와 이론

    이 과학 지식에 근거하지 않으면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위배되기에 정당성이 없다.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이 정당성을

    찾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없고 비난에 직면한다. 생각하는 힘이 강한 사람은 논리와 힘이 뒷받침

    하고 있기에 생각, 말, 행동이 힘과 설득력을 갖는다.

 

  - 또한 계속 변화하는 요인, 조건, 환경, 상황에 대응하여, 기존의 관념을 버리고 신속하게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나이가 들면 생리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한 사고와 세계에 갇혀 유연하게 대응하길 거부하게 된다.

    완고한 노인도 노인이지만 젊은이들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 늙어가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뇌가 유연하게 열려 있어야

    지혜로운 의사결정과 진행이 가능하다.

 

  - 합리적이고 일관적이기만 한 인생은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할 일이다.세상이 바뀌면 우리 생각이 바뀌는 것이 당연

    한데 바꾸지 않고 그대로라면 '혹시 나는 도그마에 빠져 있거나 다른 이유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모순을 관리해나가는 것이다. 절대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인생이란 모호

    함, 딜레마, 모순을 관리일 수밖에 없다.

 

  -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중도적인 삶이다. 모호함, 딜레마, 모순을 수용하는 말은 합리성, 일관성, 도덕성, 명료성이라는

     또 하나의 극단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다. 인생은 나의 욕망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이며, 중도적 삶이란 쾌락

     과 금욕의 양극단을 피하고 해결책을 찾는 행위이다. 중용이란 평균이나 중간값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끝없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 '사실'이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다. 인간의 기억은 주기적으로 재구성되며, 뇌신경회로에 저장된 기억은 계속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주관적 견해만 남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 기억의 불완전성을

     인정해야 성숙한 사람이다.

 

 

 2. 인간에 관한 거짓말

 

   - 인간은 자연, 타인, 세상에 의하여 날마다 변화한다.

 

  - 선악의 개념과 욕망도 자연, 타인, 세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나로부터 한발 물러나 관찰자가 되어 나의 생각을 보면 그것

    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과연 모든 해답이 내 안에 있을까? 내면의 소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면의 소리로부터 해답을 찾으려

    는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과대평가하는 도박이다. 삶이란 선택과 행동의 연속이다. 자기로부터 한발  물러나 자기의 생

    각과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 차리는 관찰자가 되면 모든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기에 의사

    결정의 오류와 행동의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 관찰자가 되면 나를 떠나기에 자기로부터 해답을 찾는 것도 아니고, 남

    에게 휘둘리지도 않으니 밖으로부터 해답을 찾는 것도 아니다.

 

  - 뇌 역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속성을 가지고 작동한다.  내면이란 자연, 타인, 세상이 나의

    몸과 마음 속에 서 만든 모자이크이자 비빔밥이다. 관찰자는 내면이라는 비빔밥에 가미된 편견, 아집, 독선, 선입관, 도그

    마라는 양념을 있는 그대로 본다.

 

 

 3. 의사결정에 관한 거짓말

 

  - 행동경제학, 뇌과학, 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삶의 결정과 집행을 정하려면 이런 과학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 인간의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은 역시 대부분 실패한다. 여러 연구결과로 나와 있다.

 

  - 의사결정은 대부분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결단이다. 완벽한 것은 없다. 의사결정의 오류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생각하는 힘이 강해야 하며 관찰자가 되어 관련된 요건, 조건, 환경, 상황

    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말고 자신의 욕망 앞에 정직해야 한다.

 

  - 나이 들면 자기가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도 했었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터득하였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관찰자가 되어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의사결정과

    집행의 오류를 최소화했다면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도 동일한 의사결정과 집행을 할 것이다..

 

  - 불확실한 세상에서 의사결정은 집행단계에서 수시로 변경이 불가피하다. 의사결정이 끝나고 집행만 있는 상황은 없다.

    우리의 삶을 회고해보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된 일은 거의 없다. 항상 의사결정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직면하고 수정과

    보완을 거쳐 전혀 다른 행로로 흘러갔다. 잘못된 의사결정도 집행과정에서 얼마든지 만회할 기회가 있다.  일류 집행은

    삼류 의사결정을 일류 의사결정으로 바꿔놓는다.

 

  - 삶이 힘들다고 역술과 기복종교를 믿지 말라. 차라리 모든 요인과 조건, 환경,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의사결정을 하는

    게 더 낫다.

 

 

 4.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있는 그대로 보며 사유하고 성찰하면 명상이 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좋은 의사결정과 집행은 모든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며 생각하는 힘으로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그대로 보는 역량과 생각하는 힘으로 문제

    해결을 사유하고 성찰하면 명상이 된다. 조건반사가 아닌 해결책을 원한다면 있는 그대로 보고 살피며 지식과 경험을

    가공해야 한다.

 

  - 지식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꾸는 꿈은 일장춘몽일 가능성이 크다.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독서

     와 다양한 체험이다. 두 번째는 좋은 친구, 선배, 부모, 멘토와의 관계를 통해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내가 사용하는 것이

     다. 세 번째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통해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내가 사용하는 것이다. 

  - 생각해야 생각하는 힘이 강해진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강한 사람을

    만든다.  

 

  - 독서와 대화, 토론, 글쓰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가성비 끝판왕이다. 운동과 호흡명상도 생각

     하는 힘을 기르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5. 삶의 논리와 이론은 나의 평온을 위해 필요하다

 

  - 논리와 이론이 있어야 욕망을 당당하게 추구할 수 있다. 나의 욕망은 남의 욕망, 세상의 명령과 충돌한다. 나의 논리와

    이론을 다른 사람이 수용하지 않으면 내 욕망을 포기하거나 갈등을 각오하여야 한다.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내 욕망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윤리의 황금률만 준수해도 내재가치가 높기에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된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이니 당당하게 살자. 언젠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발전하여 정직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는 착하거나 여린 사람은 잘 버텨야 한다.

 

  -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라면 살아 생전에 생각을 읽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제3장  단단한 몸과 마음으로 상황을 직시할 것 - 긍정은 때로 긍정적이지 않다

 

<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하는 고민은 모두가 세상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삶이 세상과 유리될 수 없다면 나도 세상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세상을 외면하고 나만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치야말로 세상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바꾼다. 지금은 정치가 필요한 시간이다.  >

 

 

 1. 주인, 주인공이라는 거짓말

 

  - 내 삶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하여야 한다. 신세계가 높은 사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사유와 성찰에 이를 정도로 생각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대한 확고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내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강자이다.

 

  - 뇌과학 연구 결과 인간의 자유의지 영역이 너무 좁기에 애초부터 우리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 뇌

    신경 회로, 호르몬, 장내 미생물, 경험, 교육, 환경, 상황들이 어우러져 선택한 것을 자신의 자유의사에 의해 선택했다고

    착각한다. 우리는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을 뿐이다. 어떤 과학자는 심하게 인간은 좀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 인간은 인간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인지 잘 모른다고 증명하였는데, 그렇다

    면 자기에게 무엇이 이익인지도 모르는데 주인이 되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의 자유의지는 좁지만 사람마다

    자유영역의 넓이는 다르다. 정신세계가 높은 사람이란 결국 자유영역이 상대적으로 넓은 사람이다. 자유인이 되고 싶다

    면 나의 자유영역을 넓혀야 할 것이다.관찰자가 되면 감정의 인위적인 조작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기에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영역이 조금은 넓어진다. 삶의 수많은 의사결정을 잘하고 싶다면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

    야 한다.

 

  -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의지가 없으니 범인은 쉽게 교화되지 않고

    바뀔 때까지 교도소에 살아야 한다. 악하거나 억센 사람은 평생 여리거나 착한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며 산다. 악하거나

    억센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자란 사람이다. 자연, 타인,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접할

    수록 인간이란 사랑할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 지혜란 체력, 지식, 경험, 생각하는 힘,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역량, 넓은 자유의지의 복합체이다.

 

  -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욕망을 감추고 욕망을 감추는 내숭과 눈치의 삶

    을 산다. 교육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자신의 욕망을 남의 욕망과 세상의 명령에 맞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교육의 실패로 우리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산다.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모든 욕망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남의 욕망과 거래하고 세상의 명령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욕망,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 정해진다.  이때 약자는 많이 포기하고 강자는 조금 양보한다. 욕망이 부는 대로 욕망이 지는 대로 살고 싶다면

    강자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약자라면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이라는 다른 차원의 강자가 되는

     게 좋은 전략이다. 높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이다. 

 

 

 2. 긍정과 낙관이라는 거짓말

 

  - 긍정은 힘든 상황에서 실패의 위험성을 높힌다. 아주 소수의 운 좋은 사람은 평생 힘든 일을 겪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살면서 여러 번 힘든 일을 겪는다. 힘든 상황이 오면 절대 긍정과 낙관으로 대응하지 말자. 당신이 낙관

    한다고 해서 긍정과 낙관이 당신 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긍정과 낙관이 당신을 배신할 수 있다. 긍정, 낙관 같은 인위적

    인 감정의 덧칠에 흔들리면 관련된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자칫 방심하게 되고 세상사 무엇이든

    쉽게 생각한다. 긍정하고 낙관하면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될 것 같다.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아서 반드시 장애물에

    직면한다. 낙관하고 긍정하는 사람은 장애물 앞에서 더 크게 좌절하고 더 크게 실패한다. 과학은 긍정과 낙관이 결코

    우리에게 이익이 아니라고 말한다.

 

  - 낙관과 비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극단을 피하고 있는 그대로 보려면 온갖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처리해야 할 정보

    가 급증하여 우리의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뇌는 컴퓨터보다 더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결함이 있기에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중도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의 양극단을 떠나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이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 당신이 병에서 치유된 것은 긍정과 낙관 때문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도권의 가짜 힐링에

    조심해야 한다. 과학적 지식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생각하는 힘은 과학 지식과 결합하여 우리에게 각성을 준다.

 

  - 연구에 의하면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진하는 것이다. 근면과 성실을 긍정과 낙관

    에 의해 지탱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인간이 부정적 정보, 위험 신호에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최악

    의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고자 함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날 길이 있다는 것을 알면 담담하고 차분

    하게 대처할 수 있다. 아직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더욱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살 길을 찾아

    놓자. 이 최악의 대비책이 나를 흔들리지 않게 돕는다. 내가 결정을 잘 하고 잘 집행할 수 있으려면 감정에 들뜬 상태보다

    담담하고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

 

 

 3. 나와 세상에 관한 거짓말

 

  - 몸과 마음은 구별할 수 없으니 '몸마음'이라고 하자. 너무 마음, 마음 하지 말자. 몸이 마음에 갖는 위력도 대단하다.

 

  - 마음이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행동이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처음에는 강제로 하는 행위가 나중에는 습관이 되고 습관

    에 의해 마음이 바꾸게 된다. 깨달아서 부처가 아니라 부처의 행을 하니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내 안의 문제이다 라는 말은 세상의 강자가 약자에게 건네는 일종의

    마약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 말고 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 나와 세상은 별개가 아니다.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 문제가 문제된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도 않고 세상으로부터 시작되지도 않고 수많은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이 어우러져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가 없이는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없다.

 

  - 악하거나 억센 사람은 세상에 빚을 진 채무자이다. 여리거나 착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받을 것이 많은 채권자이다.

    채권자가 채무자를 괴롭히는 동물의 왕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강한 사람이 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세상도 변해야 한다. 좋은 사회란 약자가 덜 억울한 사회이다. 나도 세상도 변해야 한다.

 

  -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후에 때론 돈이, 정치권력이, 종교권력이 지배하였지 한 번도 정의가 지배했던 시절은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정의사회는 오지 않는다.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지만 정의사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제법 정의로운 사회'로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자유인이 아니다. 좋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다

    면 세상을 움직이는 돈과 힘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을 지배하는지 그 방법과 기술을 파악해야 한다.

 

  - 과거보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훨씬 많은 세상에 사는 현대인은 욕망의 엄청난 좌절로 위축되고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 일시적 위안이 될 수 잇는 성공학이나 기복신앙, 제도권 힐링은 그만 제쳐두고 나와 세상의 변화에 보다 관심

    을 가져 보자. 지금은 위로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제도권 힐링이 심어놓은 무의식에서 벗어나면 패러다임이

     전환한다.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해야 한다.

 

 

 4.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은 세상의 약자가 기댈 수 있는 언덕

 

  - 돈, 학벌, 직업, 외모의 약자가 갑자기 강자로 바뀌기는 매우 어렵지만 흔들리지 않는 '몸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

    상대적으로 쉽다. 체력, 지식과 경험, 생각하는 힘, 있는 그대로를 보는 역량, 넓은 자유의지의 영역 등으로 구성된 건강

    한 '몸마음'은 의사결정과 집행오류를 최소화하기에 사회생활을 더 잘할 수 있다. 건강한 몸마음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 필요하지만 그중 하나가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관찰자가 되면 있는 그대로 보는 역량, 생각하는 힘이 강화되고 자유

    의지의 영역이 확대된다.

 

  - 긍정, 낙관, 사랑, 감사, 겸손 등은  인위적인 감정의 덧칠이고 감정을 들뜨게 하는 약이며 술이다. 나의 주인이 되려 하지

    않고 관찰자가 되면 나는 더 이상 감정의 좀비가 되지 않는다. 고통과 즐거움은 강렬한 감정이라 집중하기 좋은 대상

    이므로 관찰자가 되는 훈련의 기회로 삼자. 관찰자가 되면 있는 그대로 보는 역량과 생각하는 힘이 강해지기에 투자에

    관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의사결정과 집행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할 때에는 팔이나 다리에 힘을 주고 호흡과 근육에 집중하자. 호흡과 명상은 일상생활 속에서 현명

    하게 둔해지는 방법이 필요할 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5. 삶은 즐거움과 생존의 장소인 세상과 유리될수 없다

 

  - 대화, 관계, 공동체를 통해 정신세계가 성장한다.

 

  -  세상의 약자는 정치에 대해 슈퍼 리치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선한 공동체와 좋은 정치가 있으면 세상을 바꾸기 훨씬 더 쉽다.

 

  - 할 수 있는 일에 순서 없으니 되는 대로 하자

 

 

 

 ■ 에필로그 ■ 

 

 [ 진부하고 상식적이고 너무나 가벼운 거짓말 ] 

 

  - 용서하는 자비로운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의 긍정,낙관, 사랑, 용서, 감사, 겸손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착하거나 여린 세상의 약자일수록 인위적인 감정의

    덧칠에 휘둘리면 자신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 지혜, 자유, 평온을 얻은 사람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중도의 길을 간다. 

 

  - 건강한 '몸마음', 흔들리지 않는 '몸마음'을 위하여 일곱 가지 실천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호흡을 알아 차리는 관찰자가 되기

     둘째, 운동과 호흡명상을 결합해 실행하기

     셋째, 생각하는 힘 기르기

     넷째,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논리와 이론 정립하기

     다섯째, 법의 테두리 내에서 윤리의 황금률을 준수해 내재가치, 즉 사회적 가치가 높은 사람 되기

     여섯째, 대화와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욕망, 나아가 세상의 명령과 조화 이루기

     일곱째, 공동체와 정치 참여로 내재가치 높은 사람을 위한 세상 만들기

 

  - 우리 모두 함께 집단 무의식에서 벗어나자. 진부하고 상식적이고 너무나 가벼운 거짓말에 영향 받지 말자.

 

  - 이 책의 내용도 절대 진리가 아니다. 세상의 진리처럼 이 책의 내용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맞지 않은 말이기도 하며,

    맞지 않은 말이 아니기도 하다. 주어진 한도 내에서 임시적으로 타당할 뿐이며, 그것도 확률론적으로 타당하다는 의미

    이지 절대 진리는 아니다.

 

- 책을 읽으면서 한 자 한 자 엄격하게 해석하고 따진다면 전체를 잃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주었으면 한다. 책을 읽고

   무언가 떠오르거나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직관으로 나타나면 더욱 좋겠다.

 

  - 삶의 지혜란 모름지기 모호함, 딜레마, 모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이 책은 자식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정직한 조언이라는 점이다. 

 

 

 

 

(부록1) 실생활에 적용하기 I :  진로결정

 

■  진로결정의 기술  ■


어떤 젊은이가 내 원고를 다 읽고 자신의 진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진로 의사결정에 적용될 수 있는데도 막상 책을 읽을 때는 그와 연결시키지 못한다. 책의 내용과 현실 사례가 따로 노는 것이다. 독자를 위해 진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다음 내용을 읽고 ‘아이 내용이 있었는데 왜 생각이 안 났지?’라고 할 거다. 여러 상황에 적용되는 일반 원칙은 구체적으로 응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진로 의사결정에 연관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두 번 읽는 게 좋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자신의 구체적인 고민을 염두에 두고 읽자. 다음은 이 책의 일반적인 내용 을 진로 의사결정에 구체적으로 응용한사례 분석이다.

 

 

1 . 매사에 정답은 없다. 진로 의사결정 역시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결단이다. 선택한 뒤 결과가 좋으면 진로 의사결정을 잘한 게 되고, 운이 나빠 잘 안 풀리면 진로 의사결정을 못한 게 된다. 

2. 수많은 요인,조건,환경,상황을 고려해 결정해야지 한두 가지에 꽂혀 의사결정을 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장학금에 혹해 선택한다거나 지방 근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3. 관련된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이 바뀌면 진로 의사결정도 바뀌어야 한다. 이미 진로를 선택했더라도 아직 늦지 않았다면 진로를 바꾸는 것을 고려하자.


4. 삶은 딜레마, 모호함, 모순이기에 진로 의사결정 역시 그것들 속에서 결정되는 불완전한 의사결정일 수밖에 없다.


5. 세상의 흐름과 방향을 무시하고 좋은 진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불과 10년 전의 인기 직업과 지금의 인기 직업은 다르다. 100세 시대의 직업 선택은 10년 후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남은 70년을 위한 선택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의 진로 의사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자. 


6. 생각하는 힘이 약하면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장밋빛 시나리오를 쓰기에 진로 의사결정 후에 반드시 후회한다. 회색빛 시나리오를 써보면 진로 의사결정 후에 후회하지 않을 거다.


7. 직장을 옮긴 사람의 절반이 후회한다. 전공이나 직업을 선택한 후 후회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8.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도 살아날 길이 있는가를 모색하고 대비해놓 으면 최악의 경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건으로 바뀐다. 진로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대비하자.


9. 마음이 들뜬 상태에서는 절대 의사결정을 하지 말자. 감정이 요동 치고 있다면 선택을 미루자.


10. 바람 부는 대로 낙엽 지는 대로 물 흐르듯 담담하고 차분하게 의사결정을 하자. 때로는 기다리는 즐거움이 더 큰 기회를 주기도 한다.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인 것은 일단 거부하자.


11. 진로에 관한 꿈만 꿀 게 아니라 내가 진로에 관해 꾸는 꿈 자체, 꿈의 방향과 성격 , 꿈을 이룰 과정과 방법 ,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바람직한 자질에 대해서도 사유하고 성찰하자.


12. 진로에 관한꿈이 과연 적합한 꿈인지, 비현실적인 꿈은 아닌지, 꿈의 방향이 올바른지,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창조적 긴장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의 꿈인지 면밀하게 살펴보자.


13. 손정의는 성공 확률 50%에 투자하는 사람은 바보고 자기는 70%에 투자한다고 했다. 당신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하면 성공 확률이 얼마일까?


14. 진로 의사결정을 잘하려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 같은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말자.


15. 좋아하고 잘한다는 기준만으로 직업이나 전공을 선택하기엔 인간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모든 곳에서 내 실력을 동등하게 평가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직장이 나를 가장 높이 평가해주고 경제적 • 비경제적 이익을 가장 많이 줄까?


16. 가정, 학교,사회에서 욕망을 억압하다 보니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욕망을 모른 채로 성인이 되어 욕망의 지배를 받으며 산다. 진로 선택은 내 욕망과 맺는 계약이다. 진로 의사결정의 첫걸음은 자신의 욕망 앞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17.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욕망만 지고 가야 한다.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을 포기하는 진로 의사결정이 과연 현명할까?


18. 어떤 사람은 돈이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이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삶이 중요하다. 나를 알아야 진로 의사결정을 잘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마치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듯이 직장이나 직업에 관한 정보만 수집한다. 고통스러울지라도 나를 해부하고 남에게 나를 설명해보자.


19 . 돈 이외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언인가를 고민하며 진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진로 의사결정에 관한 고민에 은퇴 이후의 삶이 빠져 있다면 100세 시대에 크게 실수하는 거다.


20. 인간은 자유의지의 영역이 매우 좁기에 진로 의사결정에서 나의 의지가 작용할 영역은 매우 좁다. 가장 먼저 나의 가정환경, 내가 자란 사회 , 내 친구 등이 나의 진로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하자. 내가 유난히 끌리는 대안이 누군가의 말에 너무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21. 과거의 경험은 유용한 정보지만 꼭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핸다. 과거의 경험이 내 손발을 묶지 않도록 하자.


22. 장밋빛 꿈에 취하지는 않았는지, 너무 위축되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중요한 정보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23.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관련된 수많은 요인, 조건, 환경,상황을 있는 그대로 고려해 진로 의사결정을 하자. 낙관과 비관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내게 무엇이 이익인지도 모른다.


24.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지식 섭취 못지않게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


25. 나의 지식과 경험은 한계가 있다. 친구, 선배 , 멘토와의 대화나 인터넷에 있는 타인의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 나의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자. 인터넷에 있는 직장 내 갑질과 각종 부조리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자. 내가 고려하는 직업에 대한 경험담을 수집하자.


26.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면 진로 의사결정에 대해 고민하며 호흡에 집중해보자. 내 몸으로부터 유체이탈해 관찰자가 되자. 혹은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진로에 대해 조언하는 것처럼 중얼거려보자.


27. 진로 결정에 필요한 모든 조건 중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치우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


28. 편견, 아집, 독선,선입관, 고정관념,분노, 슬픔,사랑, 미움, 낙관, 비관, 긍정, 부정 등의 감정에 영향을 받거나 인지 능력의 한계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29. 진로에 대한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보자. 반대할 것 같다고 대화를 기피하면 의사결정 오류의 확률이 높아진다. 부모와의 대화가 싫다면 나보다 더 똑똑한 대화 상대를 찾아보자.


30. 어떤 진로가 좋을지 막막하다면 만사 제쳐놓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처럼 무작정 걷자. 하체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으로 인해 머리가 맑아져 의사결정을 잘하게 된다. 너무 ‘마음, 마음’ 하지 말자. 몸이 마음에 갖는 위력도 대단하다.


31 . 운동 직후 즉시 진로 의사결정에 대해 고민하자. 이때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운동 직후 두뇌 활동이 최고 수준이 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무시하지 말자.


32. 진로 결정을 앞두고 갑자기 생각하는 힘이 강해질 리 없다. 평소에 생각하는 힘을 강화해야 한다. 체력,지식과 경험 , 생각하는 힘 , 있는 그대로 보는 역량, 넓은 자유의지 영역 등으로 구성된 건강한 ‘몸마음’은 진로 의사결정 오류를 최소화한다. 평소에 독서와 대화, 토론 그리고 글쓰기와 운동, 호흡명상을 하자.


33.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작을 떠돌며 삶이 힘들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너무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진로 문제는 결국 나와 세상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만은 아니다. 

 

 

 

 

(부록2) 실생활에 적용하기 II :  인간관계의 기술

 


■  인간관계의 기술  ■  



1. 우리는 삶을 단순화하지 않고 복잡한 삶 속에서 생기는 온갖 문제에 잘 대응하려고만 한다. 과연 우리가 모든 문제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문제를 너무 많이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삶을 가지 치기 하자.


2. 삶이란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다. 인간관계 갈등은 각자의 정신세계가 대결하는 욕망끼리의 전쟁이다. 상대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정신세계가 한 수 아래라고 실감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3. 지혜로운 사람이 갈등관계에서 승리한다. 지혜란 체력, 지식과 경험 , 생각하는 힘,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역량,넓은 자유의지의 영역 등으로 이루어진 정신세계의 산물이다.


4.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이란 생각하는 힘이 강한 사람,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 인간과 세상의 본잘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5. 높은 정신세계가 있는 사람은 중구난방,허둥지둥이 아닌 지혜와 체계를 가지고 대응한다.


6. 휘둘리지 않으려면 인간과 세상의 본질에 대한 확고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대안을 생각해내야 하고, 내용을 알아야 하며,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힘이 약하면 상황 파악도 못하고 대안도 없이 질질 끌려 다닌다.


7. 내 고민과 유사한 고민을 가졌던 사람의 경험담은 큰 도움이 된 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인터넷에는 있을 거다.


8. 기존 제도, 윤리, 기준이 모두 재정립되는 시대에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이론을 구축해야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9. 여리거나 착한 사람이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악하거나 억센 사람이 되려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다. 다른 사람과 세상보다 더 높은 정신세계를 갖는 것이 지혜로운 전략이다. 돈, 학벌,직업, 외모의 약자라도 높은 정신세계가 있으면 기댈 언덕이 있다.


10. 독서와 대화, 토론, 글쓰기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가성비 최고의 비결이다.


11 . 갈등 상황을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나로부터 유체이탈하거나 혹은 나를 친구로 보고 조언한다고 생각하자. 한마디로 관찰자가 되자.


12. 몸을 위해서는 운동을 하고 마음을 위해서는 명상을 하자.


13. 고민이 있을 때 고민 속에 파묻히지 말고 차라리 운동을 하자.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때로는 뼈와 근육에서 나온다.


14. 인간 때문에 힘들다면 차라리 몸이 지치도록 운동을 하자.


15. 세상의 약자는 억울하고 힘들수록 운동을 하자. 운동과 호흡명 상을 결합하면 운동이 명상이 되고 명상이 운동이 된다. 호흡을 관찰하면 평온해자고 좋은 해결책도 나온다. 호흡은 우리의 몸 도 건강하게 하지만 마음도 건강하게 한다.


16. 호흡을 지렛대 삼아 관찰자가 되자. 나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알아차려야 자극과 공격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다. 상대의 말에 말려드는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자.


17. 상대가 소리를 지르고 강압적으로 나올 때는 절대 즉각 대응하지 말고 하나,둘, 셋… 하며 들숨에 잡중하고, 하나,둘, 셋… 하며 날숨에 잡중하자. 호흡에 잡중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알아차리고 관찰자가 되어 대응하자. 


18.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의 대응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대응 또한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결단이다.


19. 잘못 대응했다고 느낀다면 수정할 기회는 또 있다. 인간관계는 종결이 없기 때문이다.


20. 운동 직후 쉬지 말고 즉시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을 명상하라. 가장 좋은 대안은 이때 나온다.


21. 밤에 자다 깨어 하는 고민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다. 잠이 안 오면 차라리 호흡명상을 하자.


22. 몸이 피곤한 상태, 너무 바쁜 상태에서는 절대 대응하지 말자. 잘못 대응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23. 마음이 께름하거나 불편하고 불안할 때 팔, 다리,어깨, 허리에 힘을 주고 하나, 둘, 셋!… 세며 호흡과 근육에 집중해보자.


24. 상대와의 갈등이 떠오를 때마다 호흡에 집증하자. 당신을 괴롭힌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운동과 호흡명상을 하자.


25. 인간관계로 갈등할 때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팔, 다리, 목, 어깨, 허리 등에 힘을 주어 근육의 긴장 을 15초 정도 유지하는 아이소메트릭스 운동을 하며 호흡에 집중하자. 호흡에 집중하면 고민은 명상이 된다.


26. 분노, 슬픔, 좌절, 편견, 선입관, 고정관념 등으로부터 벗어나 인간관계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자존심,수치심, 고집, 오기를 떠나면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된다.


27. 나는 못 보는 것을 남은 잘 볼 수 있다. 부모는 내 편이기에 잘못 볼 수도 있고 나를 잘 알기에 잘 볼 수도 있다. 부모, 형제자매 이
외에 옆에서 있는 그대로 보아줄 사람이 있으면 든든한 자산이다.


28. 흔들리지 않는 몸마음,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날마다 조금씩 변화한다면 언젠가 나는 다른 사람과 세상보다 더 똑똑한 사람으로 바뀐다.


29. 생각하는 힘이 약한 사람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갈등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때로는 ‘생각 멈추기’가 도움이 된다.


30.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자꾸 상상력을 발휘하면 갈등 상황은 왜곡되고 해결 불가능한 소설이 된다. 생각하는 힘이 약할수록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자. 상대가 하루 종일 연락이 없으면 그냥 연락이 없는 거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화가 나서, 자기 가 잘못해서,교통사고가 나서…’ 등등의 이유를 만들어낸다.


31. 때로는 모범생이 갈등관계에 있어서는 아주 곤란한 상대일 수 있다. 모두 그를 믿지만 그도 이상하고 틀린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만 나쁜 놈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과 타협하기가 더 쉽다.


32. 갈등에 관한 삶의 논리와 이론이 과학 지식에 근거하지 않으면 정당성이 없고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논리와 이론은 과학적이어야 강한 힘을 발휘한다.


33. 나의 생각, 말, 행동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이론이 없으면 어떻게 남의 생각,말, 행동에 설득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내 삶의 논리와 이론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다듬어져야 한다.


34. 인간관계 갈등에 대한 고민을 의논할 누군가가 내게 없다면 내 세계에 갇혀 잘못 대응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터넷 고민 상담에 익명으로 자기 사연을 털어놓기도 핸다.


35. 고민을 의논할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털어놓고 싶지 않다면 이미 잘못 대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혼자만의 생각은 어리석기 쉽다.


36. 억세거나 악한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반드시 누군가를 데리고 가자. 나와 내 편이 공동체를 이룬다.


37. 억센 사람은 자기가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에 의도하지 않은 잘못을 수시로 저지른다. 억센 사람은 의도치 않게 나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38.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사람도 필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고 담담하게 조언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39. 생각하는 힘이 약하면 삶의 논리와 이론을 정립하지 못한다. 갈등에 직면했을 때 갑자기 생각하는 힘이 강해질 리가 없다. 평소에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40. 나는 상대와 갈등하면서 나도 모르게 상대의 영향을 받는다.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갖자. 


41. 인간은 비합리적, 비이성적 • 비논리적이며 갈등하는 와중에도 대부분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인지 모른다.


42. 갈등의 표면에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이 잔뜩 나열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다. 욕망을 직시하자.


43. 모두가 과장하고 있기에 있는 그대로 말하면 당신은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44.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인기가 좋다. 매사에 불평하는 사람은 기피 인물이다. 감사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주위의 존경을 받는다.


45. 인생에 관한 거짓말에 속지 말자.


46. 있는 그대로 보고 사건을 재구성하자. 생각하는 힘으로 사유와 성찰에 이를 정도로 사건을 재구성한 뒤에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결정하자.


47. 내가 기억하는 사건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구성된 임시 저장물이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 다. 지나치게 내 위주로 기억된 사건은 아닌지,지나치게 ‘내 탓 이요’라는 관점에서 기억된 사건은 아닌지 살펴보자. 이런 관점은 상대에게도 적용되는데 그는 이런 생각조차 못할지 모른다.


48. 인간의 인지 능력은 한계가 많다. 기억나는 것,눈으로 본 것을 너무 자신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런 인간의 한계를 알아도 상대가 이런 사실을 모르면 대화가 힘들다.


49.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상대의 말 하나하나를 너무 따지지 말자. 내가 상대의 말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고, 내 말을 상대가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50. 모든 관련 요인, 조건, 환경, 상황을 파악하자. 보고 싶은 것만 추려서 보지 말자.


51. 때로는 관련 요인, 조건, 환경 ,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변명하기 불가능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꼼짝없이 나쁜 놈이 되는 거다.


52. 어떤 오해는 풀려고 할수록 더 쌓인다. 그럴 때는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자.


53.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 나쁜 사람으로부터도 좋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니 문제가 아닐까?


54. 내게 최악의 대비책이 있으면 나는 그만큼 흔들리지 않는다.


55. 잘못 대응했다고 느낀다면 몇 번이고 수정하자. 어차피 정답은 없다. 삶은 딜레마, 모호함, 모순이기에 합리성, 일관성, 도덕성 , 명료성을 너무 추구하지 말자.


56. 때로는 내가 겪고 있는 인간관계 갈등을 남이 납득하기 쉽게 설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57. 인간관계가 한쪽만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엇이 승리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어차피 인간관계도 딜레마, 모호함, 모순이기에.


58. 내가 엄청 손해 보았다고 생각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별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


59. 인간은 자기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이익인지 모르기에 이익을 본다고 생각하면서 실은 손해를 본다.


60. 조금만 양보했으면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자꾸 양보만 하지는 말자.


61. 일이 해결이 안 돼 잠 못 자며 고민하는 기간이 길어져도 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내공이 깊은 사람이다. 만사에는 때가 있다. 서두르지도 질질 끌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대응하자.


62. 어떤 지혜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터득할 수 없다. 독서도 친구의 조언도 직접 겪기 전에는 내 것이 되기 어렵다. 사람으로 인한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63. 착하거나 여린 사람은 양보 지향적이고 악하거나 억센 사람은 독점 지향적이다.


64. 인간관계 갈등에도 절대 진리는 없으니 내가 옳다고 너무 자신하 지도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옳다고 너무 기죽지도 말자.


65. 케인스나 제프 베이조스처럼 항상 변화 가능성에 열려 있자.


66. 어차피 일방이 100% 잘하고 100% 못하는 사건은 없다. 내 작은 잘못을 침소봉대해 ‘내 탓이요’ 하지 말자.


67. 인간관계는 딜레마,모호함, 모순의 관리일 수밖에 없다. 인간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고 찜찜하다면 정상인 거다.


68. 생각을 읽는 기술, 뇌를 스캔하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사는 젊은이는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정직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은 아니나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힘든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


69. 인간관계에서 윤리의 황금률은 반드시 지키자. 하지만 너무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말자. 소시민적으로 살아도 내재가치가 높은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70. 인간관계도 바람 부는 대로 낙엽 지는 대로, 욕망이 부는 대로 욕망이 지는 대로.


71. 윤리의 황금률을 지킨다면 내재가치가 높은 사람이기에 욕망에 충실해도 당당할 수 있다.


72.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내가 양보할 때 상대는 비로소 공정하다고 여긴다. 인간의 심리는 대부분 그렇다.


73. 대화가 안 되는 사람과는 법으로 대화하는 게 좋다. 중재자나 변호사를 활용하자.


74. 인간관계 갈등의 이면에는 세상이 있다. 강자와의 갈등이란 세상과의 갈등이다. 강자가 나를 짓밟아도 세상이 눈을 감는다.


75. 정치에 참여해 세상을 바꾸자. 정치가 밥 먹여준다.


76. 좋은 세상이란 여리거나 착한 사람이 받아야 하는 몫을 잘 챙겨 주는 사회다. 세상의 약자는 선한 공동체와 좋은 정치에 참여해 세상의 강자를 이길 수 있다..

 

 

Golden Rule Poster presented to the United Nations
 

United Nations gets the Golden Rule Poster

 


The Scarboro Missions Golden Rule poster is now on permanent display at the United Nations headquarters in New York City. On January 4, 2004, Mrs. Gillian Sorensen, Assistant Secretary-General of the UN, accepted the poster as a gift from the North American Interfaith Network.

 


The presentation was part of an interfaith ceremony in which it was pointed out that the Golden Rule is not just a moral ideal for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but also for relationships among nations, cultures and religions.

In presenting the poster to the Assistant Secretary- General, the following a statement was read by a representative of the North American Interfaith Network (NAIN).

 


Statement read at the Presentation of the Golden Rule Poster to the UN

The framed Golden Rules poster was presented to Mrs. Gillian Sorensen, Assistant Secretary- 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on January 4, 2002. It was presented by the Board of the North American Interfaith Network (which has sixty-five member organizations) and Scarboro Missions, on behalf of the people in the many religious, spiritual and humanistic communities who honour these Golden Rules. In presenting the poster, the following statement was read:

 


The Statement — Golden Rule for a Culture of Peace

Because the United Nations is a home for our highest human ideals, and because the world’s religions have a duty to articulate and promote those ideals, we are honoured to present you with “The Golden Rule.” In this poster, thirteen religious and spiritual traditions state a universal principle in elegant and distinctive forms.

These Golden Rules are evidence of a Global Ethic that transcends nations, civilizations, and religions. Yet no other statements so clearly summarize the simple practices of kindness and sustainable human conduct. In recent years, gatherings of religious and spiritual leaders have confirmed that “this ancient precept is found and has persisted in many religious and ethical traditions of humankind for thousands of years. . . [and] should be the irrevocable, unconditional norm for all areas of life, for families and communities, for races, nations, and religions” (Toward a Global Ethic).

The United Nations provides a unique forum where the subtleties of this universal principle can be translated into the realm of international affairs. We are inspired by key United Nations documents such as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nd its premise that those rights we wish for ourselves shall be granted to others as well. Equally challenging is the principle that no nation will find peace until it wants for others the same peace and security it seeks for itself.

We believe that these Golden Rules, also known as the “law of reciprocity,” must be obeyed by all nations, and that, in the interests of global security, no nations or leaders may exempt themselves. Whatever is hateful or injurious to ourselves, we must not do to others.

Failure to adhere to these moral principles brings great hazards to all, ranging from unsustainable development practices to environmental crises and nuclear threats with their inherent potential for catastrophe. Nations must treat other nations as they wish to be treated.

Together, these precepts remind us that our diversity can flourish within a greater and simpler unity – the human family, with its common origins, needs, and aspirations. The Golden Rules teach that no one – no nation, culture, or religion – is an island unto itself. Drawing on time- tested wisdom and experience, they presume our interdependence and declare our personal responsibility for the common good.

Presenting a framed Golden Rule Poster to the Secretariat of the United Nations on January 4, 2002 were leaders from the North American Interfaith Network (NAIN) and some of its member organizations and friends: Rev. Deborah Moldow from United Religions Initiative at the UN and World Peace Prayer Society; Sister Joan Kirby, Representative to the UN from Temple of Understanding; Father Terrence Gallagher, from Scarboro Missions in Toronto; Joel Beversluis, Editor of the NAIN newsletter and CoNexus Multifaith Media; Mrs. Gillian Sorensen, Assistant Secretary- 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for External Affairs; Jonathan Granoff, from Temple of Understanding, Bawa Muhaiyadeen Fellowship, and Global Security Institute; Ralph Singh, Secretary of the NAIN Board, from Gobind Sadan-USA; and Dr. Elias Mallon, a founder of NAIN and Dean of Auburn Seminary.

 

 

 

The Golden Rule mosaic is based on a painting by well-known American artist Norman Rockwell (1894 – 1978). The painting served as the illustration for the cover of the April 1961 issue of the Saturday Evening Post, a popular magazine. Rockwell’s most well- known work is the series of oil paintings called Four Freedoms, which was inspired by a 1941 speech by USA President 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 – 1945). The speech centered on the idea of a postwar world based on four basic freedoms; freedom of speech, freedom of religion, freedom from want, and freedom from fear. Another recurring theme in Rockwell’s work is tolerance.  
 
The mosaic depicts people of every race, creed, and color, with dignity and respect and touches on the theme of human rights. Inscribed on the surface of the mosaic is the Golden Rule: Do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Unto You. It depicts a common experience and a shared aspiration to unify the world’s religions and philosophies. In the mosaic, people of all traditions and cultures of the world are in united harmony. The artist said, “When I decided to attempt a picture illustrating the Golden Rule and, remembering this charcoal, hauled it out of the cellar and looked at it, I immediately felt that in the grouping of the peoples of the world behind the delegates was the basis for my picture illustrating the Golden Rule.”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resented this gift to the United Nations and Secretary-General Javier Perez de Cuellar received it. It was presented by the USA’s First Lady, Nancy Reagan (1921 – 2016),  on 21 October 1985, in celebration of the 40th anniversary of the United Nations. The Thanks-Giving Square Foundation arranged for the creation and finance of the mosaic.

Donor Region:  Western European and Other Groups
Donor:  USA
Classification:  Architecture & Mosaics
Materials:  Glass
Medium:  Murano glass tile mosaic
Location (Building):  Conference Building (CB)
Location floor:  3rd Floor
Donation Date:  October 21, 1985
Artist or Maker:  After Norman Rockwell by Coop Mosaic Artistico Veneziano
Dimensions:  H: 125 ½ x W: 108 ½ x D: 13 ½ in.

누구나 ‘자유’를 말하지만, 누구의 ‘자유’가 우선인가
“노예 해방” vs “남부 자치권 보장” 1860년 당시 美대통령 후보였던 링컨과 브레켄리지의 ‘자유’ 대립

<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철학 전문위원,  2022.12.03  >

 

 



자유주의

에드먼드 포셋 지음 | 신재성 옮김 | 글항아리 | 828쪽 | 4만5000원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주의자일까? 지난 5월 10일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외쳤던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윤석열은 자유주의자다”라는 문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자유와 자유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적 역량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자유주의(liberalism)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언어적, 개념적 혼란 때문이다.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보자. 지난 대선을 앞두고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던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그는 민주당 당대표가 된 후 지난 23일 윤석열 정부를 향해 “언론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헌정 질서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재명은 자유주의자일까? 자유주의자라면 어떤 자유주의자일까?

영국의 시사·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에서 30년 넘게 활약한 정치 전문 기자 에드먼드 포셋의 이 책에 따르면,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자유주의는 ‘이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이 자유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비자유주의자들 역시 자유를 옹호한다고 이야기한다.

미국 워싱턴 D.C.의 링컨 동상. 저자는“링컨에게‘리버티(liberty)’란 노예 해방이었지만 그와 대선에서 겨룬 남부 후보 존 브레켄리지에겐 주(州) 자치권을 뜻했다”고 말한다. 


1860년, 남북전쟁을 앞두고 있던 미국. 혼란 속에 치러진 대선에 나온 네 명의 후보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리버티(liberty)’와 ‘프리덤(freedom)’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같은 단어를 제각각의 용법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리버티’란 노예 해방을 뜻했지만, 남부의 후보 존 브레켄리지에게 ‘리버티’란 각 주가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뜻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유’를 둘러싼 견해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허버트 후버는 ‘질서 잡힌 리버티’를,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네 가지 프리덤’을, 마틴 루서 킹은 인종차별에서 ‘마침내 자유로운’ 국가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유’라는 단어나 개념에 집착하는 식으로는 자유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보다는 역사 속에서 활약한 수많은 자유주의자 정치인, 사상가, 문인, 언론인들의 생각과 행동, 판단과 실수 등을 구체적으로 짚어보는 편이 효과적이다. 마치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보통법을 알기 위해서는 법의 조문이 아니라 판례를 읽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 판단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에 ‘어느 사상의 일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포셋은 자유주의를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관행’으로 이해한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으로 인해 정치 질서가 뒤집혔다.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구체제 질서를 뿌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자유주의는 그런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처음에는 전제군주의 자의적이고 억압적인 통치에 맞섰지만, 나중에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로 분출되는 대중의 진보적 요구마저 포용하는 유연성을 과시하며, 21세기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통사적인 관점으로 조망해보면 자유주의’들’이 지닌 공통점이 드러난다. 

첫째, 사회 내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둘째, 권력을 불신하며 삼권분립 등 견제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 

셋째, 인류의 진보를 믿는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지향을 놓지 않는다. 

넷째, 참정권과 같은 모든 이들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존중한다.

스스로를 ‘자유주의 좌파’라 소개하는 포셋은 특히 넷째 요소를 강조한다. 모든 이를 향한 시민적 존중 덕분에 자유주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관행으로 진화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목표와 이상이 (...)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서구 사회 네 곳인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에 잘 정착해 있는, 자유주의가 남긴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정치 관행이다. 그러니 자유주의자라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포셋은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역사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고 논쟁하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제 Liberalism: The Life of an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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