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참모 중의 참모 '노숙'
"장군은 제나라 환공이나 진나라 문공이 될 수는 없을 거외다. 고황제(유방)는 패업을 이루려고 애썼지만 결국 항우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소이다. 오늘날의 조조가 바로 당시의 항우와 같은 인물이오. 조조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장군이 어찌 제환공이나 진 문공이되겠소이까.”
노숙이 주유의 추천을 받아 손권을 만났다. 손권이 패업의 길을 묻자 노숙은 찬물부터 부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한 황실은 다시 부흥하지 못할 것이고,조조 역시 제거할 수 없을 거외다. 그렇다면 북쪽에서 많은 일이 일어날 때를 기다려, 서쪽으로 진군해 황조(黃祖)를 치고 유표(劉表)를 토벌하면 장강유역을 차지할 수 있을 거요. 그렇게 되면 장군은 제왕에 올라 천하를 꾀할수 있을 것이오"
18세의 손권에게 노숙은 동오판 융중대책인 ‘천하양분지계(天下兩分之計)’ 를 설명하였다.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노숙은 성실하고 온순하다. 아니 무골호인(無骨好人) 같아서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 사람처럼 그려졌다. 노숙이 주창한 천하양분지계도 제갈량 의 융중대책에 가려 빛을 잃는다. 그리고 제갈량의 영원한 우군이 되어 그의 추종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노숙의 진면목은 그렇지 않다. 호탕하고 의협심이 강한 성격에 사람들에게도 두루 신망을 얻었다. 유복한 지주출신이어서 베풀기도 잘했다. 일찍이 주유가 노숙에게 군량미를 빌린 적이 있었다. 이때 노숙은 곡식창고를 열어 모두 주유에게 주었다. 분연히 출자하여 친구를 돕는다는 ‘지균상증{指困相贈)’ 의 고사도 노숙으로 부터 생겨났다.
노숙은 주유, 장소와 함께 손권이 가장 신임하는 충신으로 그 영향력은 최고였다. 왜냐하면 노숙이야말로 앞날을 내다볼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도 저항할 것을 주장했고, 형주라는 요충지를 유비에게 빌려주면서까지 더욱 큰 비전을 성취하려고 했다. 오직 제갈량만이 노숙과 통했고 그래서 둘이 있을 때 촉오동맹은 견고했다. 힘들고 어렵고 변화무쌍한 난국에서도 비범한 배짱과 부드러운 전략을 구사하며 이를 타개해 나가는 인물, 그가 곧 노숙이었다. 눈앞의 사익(私益)만을 위해 함부로 지껄이고 주워 담으며 굽실거리는 신하가 아니었다. 그는 정확하고 확실한 전략과 비전을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위인이었다.
노숙이 46세로 죽자 촉에게 강경한 여몽(呂蒙)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서주공략을 포기하고 형주를 공략하자고 건의했다. 그리고 형주의 관우를 물리쳐 촉나라 멸망의 시작을 알렸다. 청나라 모종강이 이를 보고 탄식했다.
“노숙이 살아 있었다면 필시 서주를 차지해 유비와 중원을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손권이 관우를 공격해 조조를 도와주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서 노려보는 커다란 적은 보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귀찮은 동지를 제거했으니 그 칼날이 어찌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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