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는 받는 게 아니라 하는 거다

 

 

< 경향신문, 엄민용 기자, 2023.05.15  >



 
‘선생(先生)’은 보통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 쓰인다.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이 곧 ‘선생’이다. “엄 선생, 이것 좀 도와 줘” 등처럼 남을 높여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선생’은 요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지만, 옛날에는 주로 관직에 쓰던 말이다. 조선시대 때 성균관에 둔 교무 직원이 ‘선생’이고, 각 관아에서 전임 관원을 이르던 말도 ‘선생’이다. 고려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선생’이 쓰였다, “아무리 벼슬이 높은 사람이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그저 ‘대인’이라 불렀다”는 얘기가 <해동잡록>이라는 문헌에 실려 있다.

그렇게 대단한 ‘선생’을 더 높여 이르는 말이 ‘스승’이다. 특히 ‘스승’은 단순히 지식과 학예 따위를 전달해 준 사람보다 ‘가치와 이념 등을 깨닫게 해 삶을 인도해 준 사람’의 의미가 더 강하다. 우리가 매년 5월15일을 ‘스승의날’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승의날’은 충남 강경여자중·고등학교 청소년적십자단 단원들이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하기 위해 찾아가기 시작한 데서 유래됐다. 처음에는 5월26일이 ‘은사의날’이었는데, 1965년 교직단체 등이 기념일을 주관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와 교육에 큰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탄일인 5월15일(음력 1397년 4월10일)로 변경했다.

한편 스승과 관련해 자주 틀리는 말로 ‘사사받다’가 있다. ‘사사(師事)’는 “스승으로 섬김” 또는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을 뜻한다. 즉 ‘사사받다’는 ‘내’가 스승이 됐다는 의미가 되고 만다. 또 ‘사사’에는 이미 ‘받다’는 의미도 표함돼 있다. 따라서 ‘사사받다’는 ‘사사하다’로 써야 한다.

아울러 스승이나 윗사람이 남자인 경우 그 부인을 부르는 말은 ‘사모님’이고, 스승이나 윗사람이 여자라면 그 남편을 ‘사부(師夫)님’ ‘○ 선생님’ ‘○ 과장님(직함이 있을 때)’ 등으로 쓰는 것이 우리말의 언어 예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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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매운맛, 임춘애의 헝그리 정신… 라면 60년이 대한민국 현대사
1963년 국내 첫 탄생 라면
전국민과 함께하는 ‘환갑연’

 

 

<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2023.04.15.  >

 

 



“라면 먹고 갈래?”

이 말에 담긴 구애(求愛)의 속뜻을 모르면, 한국인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넷플릭스 보고 갈래?”(미국)보다 정겹고 “가려운데 좀 긁어줄래?”(홍콩)보다 간접적이며 “새벽에 같이 커피 마실래?”(일본)보다 푸근한 사랑의 대사. 양은 냄비에서 목구멍을 지나 비로소 한국인의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된 라면. 라면만큼 우리를 살 찌운 소울 푸드가 있으랴. 라면을 부숴서 과자로도 먹는 유일한 민족 아니던가.

라면의 생애 주기가 올해로 60갑자 한 바퀴를 돌았다. 라면 전문 사이트 ‘라면 완전 정복’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시판 중인 라면 종류만 555개. 이젠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살 찌운다. 즉석 면류 수출액은 지난해 처음 1조원(1조1400억원)을 돌파했다. 작년에 해외로 뻗어나간 라면은 26만톤, 면발 길이만 약 1억㎞다. 지구를 2670바퀴나 감을 수 있다. 배고파서, 심심해서, 즐거워서, 먹고살기 위해서, 오늘도 라면을 끓인다. 먹는다. 다음 60갑자를 향하여.

◇ 라멘 아니고 ‘라면’입니다

 


국민소득 104달러 시절, 63년생 토끼띠 ‘삼양라면’이 태어났다. 서울 남대문시장에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 먹으려고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서던 때였다. 그 가난의 행렬에서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은 일본 출장길에 먹어본 인스턴트 라멘(Ramen)을 떠올렸다. 만들기 쉽고, 국물까지 있다! 가난한 나라의 기업인은 일본 묘조식품을 찾아가 매달리다시피 라면 기술을 배웠다. 정부를 설득해 5만 달러를 지원받아 1961년 묘조식품에서 라면 기계 두 대를 들여왔다. 1963년 9월 15일, 라면 생산이 시작됐다. 중량 100g, 가격은 10원이었다.


시대가 라면을 원했다. 흉작이 이어지며 해마다 쌀 300만~600만석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혼식·분식 장려를 추진했다. 1969년 서울에 ‘종합분식센터’가 들어섰고, 각 도마다 라면과 빵 공장을 1개씩 세우도록 했다. 생산이 늘자 소비도 늘었다. 그해 3월 16일 자 조선일보에서 확인되듯, 신문에서 ‘라면 판매 급증’이라는 구절이 나오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다.

 


◇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속을 확 풀어주는 한국인의 매운 맛, 라면의 기본 소양이다. 본지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20~60대 성인 5025명을 조사한 결과, 라면이 생각날 때는 ‘출출할 때’(54.87%) ‘술 먹고 나서’(20.44%) ‘스트레스 쌓일 때’(14.03%) 순이었다. 후루룩, 시뻘건 국물이 땀을 쫙 빼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라면은 일본 라멘처럼 닭 육수 기반의 흰 국물이었다. 라면의 진화를 불러온 결정적 순간은 삼양식품 관철동 사장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된다. 1966년 가을이었다.

“대통령이 찾으십니다.” 청와대였다. 곧 박정희 대통령이 전화를 이어받았다.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에 공헌하는 삼양라면을 치하한 뒤, 예상 밖의 제안을 내놓는다. “한국 사람들은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니 라면에 고춧가루를 좀 넣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해장을 라면으로 하곤 하던 박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이 일화는 삼양식품 사사(社史)에 기록돼 있다. 국가가 나서 라면의 본색을 찾은 것이다.

 


◇ 라면 먹고 금메달 땄다

그 시절 인생 역전 스토리에는 늘 라면이 함께했다.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은 “대학 다닐 때만해도 라면 먹고 볼을 찼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야구 레전드 박찬호는 라면 때문에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부는 운동장에서 큰 솥에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다”는 것이다. 배 곯던 체육인에게 라면은 은혜와 같은 에너지원이었다.

163㎝에 43㎏의 깡마른 17세 소녀, 1986년 한국 육상 사상 최초로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른 임춘애 선수는 라면의 상징이다. 부친은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떴고, 모친은 성남 달동네에서 월 15만원으로 노모와 2남2녀를 건사했다. 임춘애는 달렸다. 이를 악물고 가장 먼저 골인했다. 우승 직후 “라면을 즐겨 먹는다”고 임춘애는 말했다. 이것이 ‘인생 드라마’에 과몰입한 어느 기자의 욕심으로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로 와전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춘애는 은퇴 후 용인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 판매 1위, 딱 세 번 바뀌다

 


2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달리던 삼양라면이지만, 1989년 ‘우지(牛脂) 파동’이 운명을 바꿨다. 공업용 소기름을 라면에 썼다는 이유로 관계자가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할 정도의 대형 스캔들이었다. 삼양은 당시 유통 중이던 100억원어치의 라면을 수거·폐기해야 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3일 후,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 결론은 “이상 없음”이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이었다. 1997년 대법원 판결도 무죄였으나, 삼양의 시장 점유율은 곤두박질친 뒤였다.

농심이 기회를 잡았다. ‘안성탕면’으로 1987년 판매 1위에 올라 1990년까지 왕좌를 지켰다. 한국인의 혀는 더 뜨거운 것을 원했으니, 그 결과가 1991년부터 1위를 놓치지 않은 ‘신(辛)라면’이다. 우주선에서 먹는 ‘우주 신라면’ 등 별별 파생 상품이 쏟아졌다. ‘신라면’은 농심 신춘호 사장이 지은 이름이다.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표지에 넣을 큼지막한 글자 ‘辛’이 골치였다. 당시 식품위생법은 “식품 상품명 표시는 한글로 해야 하고 외국어를 병기할 때에는 한글보다 크게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 농심은 비합리적인 규정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결국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건의를 받아들여 1988년 법 조항을 개정했다. 라면이 법을 이긴 것이다.

 


◇ 라면이 쌀을 위협하다


대한민국 주식(主食)도 변화를 맞이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후 라면 소비가 쌀 소비를 위협한 것이다. 1998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99.8㎏을 기록, 처음 10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그해 국내 라면 매출 실적은 1조966억원으로 전년 대비 16.5% 늘었다. 라면 가격은 변동이 없었으므로, 1인당 라면 소비도 16.5% 증가했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이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이었다. 2030년(45.4㎏)에는 이보다 10㎏ 넘게 줄어들 것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한국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3개, 전 세계 2위 규모다.



◇ 편의점에서 융프라우까지


용기(容器)가 생겼다. 1972년 국내 최초 컵라면 ‘삼양 컵라면’이 출시된 것이다. 봉지면보다 비싸 초기에는 인기를 못 끌었다. 삼양은 홍보를 위해 1976년 ‘자동판매기’까지 설치할 정도였다. 후발 주자 농심이 1981년 ‘사발면’을 출시했고, 이듬해 내놓은 ‘육개장 사발면’은 지금도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컵라면은 1990년대 편의점 열풍을 타고 훨훨 날았다. 전체 라면 판매 비중의 40% 수준까지 올라선 컵라면의 기세는 여전히 뜨겁다. 올해 인기 요리사 백종원이 자기 이름으로 승부를 건 ‘백종원 고기 짬뽕 컵라면’은 편의점 CU에서만 한 달 만에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융프라우 전망대에서는 1999년부터 신라면 컵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고지에 깃발을 꽂은 ‘K푸드’ 성공 신화로 곧잘 소개되곤 한다. 스위스 마터호른 전망대는 2016년부터 오뚜기 ‘진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간편하지만, 맘 편치 않은 구설의 음식이기도 하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현장을 찾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다가 ‘황제 라면’ 논란으로 면직된 것이 대표적 예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19세 청년의 가방에는 채 뜯지 못한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지난해 5월 추모 현장에는 컵라면이 놓였고 “천천히 먹어”라고 쓴 쪽지가 붙어 있었다.

 


◇ 구봉서, 강부자, 소녀시대, BTS


라면 광고는 당대의 스타만 거머쥘 수 있는 영예다. “아우 먼저~ 형님 먼저~”로 유명한 농심 라면 광고는 1975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 구봉서·곽규석 콤비를 섭외해 대박을 터뜨렸다. 국민 음식인 만큼, 정겹고 푸짐한 이미지가 중요했다. 농심의 얼굴은 그 후로 오랫동안 강부자였다. 1981년부터 13년간 내리 활약한 역대 최장수 모델이었다. 1993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불가피하게 광고에서 하차했지만 “농심 라면 외에는 사본 적이 없다”는 절개는 변치 않았다.

점차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2009년 삼양라면의 얼굴은 걸그룹 ‘소녀시대’였다. “10~20대 젊은 층에게 더욱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2019년 신라면은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과 손잡고 가족애를 자극하는 애니메이션 CF를 제작했는데, 이 때 캐치프레이즈는 “오빠 먼저~ 동생 먼저~”로 바뀌었다. 지난해 오뚜기는 주력 상품인 ‘진라면’ 모델로 방탄소년단 멤버 진, 팔도는 ‘틈새라면’ 모델로 국내 최초 가상인간 모델 ‘로지’를 발탁해 어린 입맛을 공략했다.

 


◇ 전국 제패 신라면… 경남만 놓쳤다


전국 최강 ‘신라면’이 제패하지 못한 지역이 딱 한 곳 있으니, 바로 경상남도다. 지난해 닐슨IQ코리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신라면이 1위를 놓친 곳은 경남뿐이었고, 이곳 판매 1위는 ‘안성탕면’(9%)이었다. 경남 출신 천하장사 강호동이 가장 애정한다는 안성탕면. 부산에서도 신라면(8.2%)과 안성탕면(7.8%)은 치열한 1·2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식품업계에서는 된장맛을 좋아하는 이 지역 소비자들이 된장을 기반으로 개발한 안성탕면 특유의 구수한 국물을 즐겨 찾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최전방 강원도에는 유일하게 컵라면이 3위권에 포진했다. ‘육개장 사발면’(3위)이다. 군인 정신으로 언제 어디서나 흡입할 수 있는 전투식량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국물 없이 세계를 호령하다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는 게 한국인이라지만, 서서히 판도가 바뀌고 있다. 1984년 등장한 ‘팔도 비빔면’과 ‘농심 짜파게티’의 무서운 기세 때문이다. 특히 짜파게티는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 인지도를 획득했는데, 극중에서 짜파게티·너구리를 섞어 끓이는 ‘짜파구리’ 덕분이다. 이 영화가 2020년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을 휩쓸면서 이제는 짜파게티보다 짜파구리가 더 유명해졌다. 게다가 짜파구리를 끓이려면 최소한 라면 두 봉지를 사야 하는 일타쌍피 효과까지. 기세를 놓칠세라 농심은 유튜브에 짜파구리 조리법을 11개 언어로 소개하는 영상을 올려놨다.

불을 토하는 극도의 매운맛, 2012년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괴식(怪食)이다. 동시에 삼양을 일으켜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해 삼양의 해외 매출은 처음 6000억원을 넘어섰는데, 이 중 80%가 ‘불닭볶음면’에서 나왔다. 동남아시아 시장의 열기를 중심으로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K컬처 확산으로 라면의 인기도 핫해지고 있다”고 했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 일본도 홀딱 넘어갔다. 닛신식품이 최근 ‘불닭볶음면’을 그대로 베낀 컵라면을 내놓은 것이다. 바야흐로 라면 강국 한국, 올해 1분기 라면 수출액(2억800만달러)은 사상 최대치였다.


◇ '먹방’이 불지른 라면의 진화


한국산 유튜브 트렌드 ‘먹방’(Mukbang)은 라면의 진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라면 15봉지를 한끼에 해치우는 유튜버 쯔양처럼, 대식가들이 매일같이 라면 먹방 영상을 올리고, 라면에 우유를 섞는 ‘우유 라면’에 이어 우유에 콜라까지 섞는 ‘우유 콜라 라면’에 이르기까지 온갖 변종 레시피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운 라면을 겁없이 먹어치우는 대회 ‘파이어 누들 챌린지’는 라면을 놀이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 입에 라면, 한 입에 용암….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이율배반의 눈물을 흘리며 군침을 자극하는 영상은 지금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라면 평가 블로거 ‘라멘레이터’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매운 라면 1위는 ‘핵 불닭볶음면 3배 매운맛’이었다. 라멘레이터 측은 “매년 불닭은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며 “맛도 좋고 아주 아주 뜨겁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물론 매일 먹다간 위벽이 다 헐어버릴 것이다. 라면에 대한 일반적 인식도 건강에 안 좋다는 것. 그러나 의외로 라면 마니아 중에는 장수한 사례가 많다. 젊은 시절 장 질환을 앓은 뒤 30년 넘게 세끼 ‘안성탕면’만 먹어 TV에도 나왔던 고(故) 박병구 할아버지는 92세까지 사셨고, 일본 닛신식품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는 컵라면을 발명한 1971년부터 2007년 세상을 뜰 때까지 매일 라면을 먹었다. 마지막 눈을 감을 당시 그의 나이는 9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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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량  [ 閑良 ]

 

<용비어천가>에는 한량의 뜻을 풀이해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 속칭한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의 한량은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에는 벼슬도 하지 못하고 학교에도 적(籍)을 두지 못해 아무런 속처(屬處)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무예(武藝)를 잘 하여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 한편 돈 잘 쓰고 만판 놀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한량이 직업이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해 존재했는데, 시대에 따라 그 뜻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부유하면서도 직업과 속처가 없는 유한층(遊閑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관직이나 학생이 될 자격이 있는 양인(良人) 이상의 신분으로서 하층 양반이나 상층 평민 중에서 배출되었다.

교적(校籍)도 없고 군적(軍籍)에도 오르지 않아 아무런 소속이 없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할 뿐 아니라 평소 유학이나 무예를 배워 관리나 고급 군인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국가에서는 이들을 추쇄(推刷)해 기간병종(基幹兵種)으로 흡수하려는 정책을 폈다.

국가정책상 한량에 대한 논의가 주로 군역과 관련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군역편제 조처는 조선 건국과정에서부터 이루어졌다. 과전법(科田法)에서는 경성에 거주하면서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에 소속해 숙위(宿衛)하는 한량에게 과전을 지급하였다.

그리고 외방에 거주하는 한량에게는 군전(軍田)을 지급하되 본전(本田)의 다소에 따라 5결 혹은 10결을 주고, 그 대가로 지방군에 충역(充役)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때 과전이나 군전을 받은 자는 관직을 그만둔 전함관(前銜官)이나 공민왕대 이후 잦은 전란 속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대가로 첨설직(添設職)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흔히 한량품관, 혹은 품관(品官)으로도 불렸다. 또, 비록 중앙의 벼슬아치는 아니라 하더라도 재산과 학력과 품계를 갖추고 있어서 잠재적인 지배층으로서 향촌의 유지(有志)로 행세하고 있었다.

한량품관은 군역에 편제되어 조선 초기 국방력 강화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한량으로 충원되는 병종(兵種)은 별패(別牌)·시위패(侍衛牌)·근장(近仗)·방패(防牌)·섭대부(攝隊副)·기선군(騎船軍)·수성군(守城軍)·영진군(營鎭軍)·방사군(放射軍) 등 다양하였다.

세조 때에는 하삼도(下三道) 지방의 한량 2,187인을 추쇄, 호익위(虎翼衛)라는 특별 부대를 조직하였다. 중종 때에는 정로위(定虜衛)라는 부대를 편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군역 복무에만 머문 것은 아니고,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또, 향촌에 유향소(留鄕所)를 설립, 향촌 자치를 주도하기도 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켜 나갔다. 한편, 품관으로서의 한량 문제가 일단락된 15세기 말 이후로는 새로운 형태의 한량이 대두,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다.

흔히 한량자제(閑良子弟)로도 불렸던 새로운 한량은 나이 20세가 넘고 재산도 있으며 유학과 무예도 어느 정도 익힌 사족이나 평민의 자제들로서, 학교에 입학한 학생도 아니고 군역도 지고 있지 않은 부류들이었다.

이들은 호적(戶籍)에도 올라 있지 않아 과거 시험도 치를 수 없는 등 양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지 않았다. 국가에서는 이들을 조사해 그 재능을 시험, 고급 군인으로 선발하기도 하고 강제로 군역을 지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량의 존재는 계속 늘어가기만 하였다.

조선 후기 1625년(인조 3)에 작성된 호패사목(戶牌事目)에는 사족으로서 속처가 없는 사람, 유생(儒生)으로서 학교에 입적(入籍)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평민으로서 속처가 없는 사람을 모두 한량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 전기의 한량 개념이 그때까지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정조 때 ≪무과방목 武科榜目≫에는 무과 합격자로서 전직(前職)이 없는 사람을 모두 한량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는 이 무렵부터 한량이 무과 응시자격을 얻게 되면서 무과 응시자 혹은 무반 출신자로서 아직 무과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의 뜻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  한량 [閑良]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건달과 한량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

 



북한 사전에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이라는 속담이 나온다. 이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 ‘건달’은 거들먹거려도 쓸 돈이 없어 처량한 신세의 사람이라면, ‘한량’은 속없어 보여도 흥청망청 쓸 돈은 있어 스스로는 신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건달’이건 ‘한량’이건 아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는 한심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건달’이라는 단어는 16세기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도 ‘게으른 사람’을 뜻해 지금의 ‘건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건달’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다. 범어(梵語, 산스크리트) ‘Gandharva〔樂神〕’를 한자의 음을 이용해 표기한 중국어 ‘乾闥婆(건달바)’에서 출발하여 그 어형과 의미가 달라진 말이다.

‘Gandharva’는 수미산(須彌山)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하늘 나라의 음악을 책임진 신(神)이다. 말하자면 ‘음악의 신’인 셈이다. 이 신은 향내만 맡으면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와 연주를 하며 살아간다. ‘Gandharva’가 노래와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신이었기에 인도에서는 이를 근거로 악사(樂士)나 배우까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Gandharva’를 한자의 음으로 표기한 ‘乾闥婆(건달바)’라는 단어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전해진 초기에는 그 본래의 불교적 의미인 ‘악신(樂神)’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불교 사회에서 일반 사회로 넘어와 쓰이게 되면서 어형이 ‘건달’로 축약되고 그 의미도 크게 달라졌다.

아마 일반 사회로 넘어와 처음으로 획득한 의미① ‘하는 일 없이 놀거나 게으름 피우는 사람’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이미 16세기에 확인된다. ①의 의미는 ‘건달바’가 본래 노래나 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악신(樂神)이라는 점이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파생된 것이다. 이는 ‘백수건달(白手건달)’과 같다.

‘건달’이 두 번째로 얻은 의미는 ②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이다. 이는 게으름을 피운 결과로서 생겨난 의미이다. 이쯤 되면 ‘건달’은 바가지나 깡통만 차지 않았지 ‘거지’나 다름없다.

세 번째로 얻은 의미는 ③ ‘난봉이나 부리고 다니는 불량한 사람’이다. 이것은 ‘건달’이 그저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족속이 아니라 허랑방탕한 짓까지 하고 다니는 족속이라는 데서 생겨난 의미이다. 이러한 족속은 ‘건달’보다는 ‘건달패’가 더 잘 어울리며 ‘난봉꾼’과 똑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건달’에 또 다른 의미가 생겨났다.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그것이다. 빈털터리인 ‘건달’이 먹고살기 위해 주먹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러한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가 ‘건달’이 ‘깡패’와 같은 족속이 된 것이다.

 


한편, ‘한량’이라는 말은 옛 문헌에 ‘한량’ 또는 ‘할냥’으로 나온다. 본래 ‘한량’은 한자어 ‘閑良’으로 조선시대에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지 못한 무반(武班)’을 가리켰다. 그런데 실제 옛 문헌에 보이는 ‘한량’이나 ‘할냥’은 그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 ‘일정한 직사(職事) 없이 놀고먹는 양반 계층’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여 놀고먹는 무반’에서 의미가 확대되어 그러한 처지에 있는 무반(武班)과 문반(文班)을 모두 가리키게 된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변화가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한량’은 ‘놀고먹는 양반’이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돈을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이라는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변한다. 돈푼깨나 있는 양반들이 하릴없이 돈을 펑펑 써 가며 잘 노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그와 같은 행위를 일삼는 일반인 모두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변화가 일어난 시기 역시 알 수 없다.

20세기 초에 출간된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이나 한글학회에서 펴낸 『큰사전』(1957)에도 ‘한량’에 그 본래의 의미인 ‘벼슬을 못 한 호반(虎班)’이라는 의미만 달려 있지 변화된 의미는 달려 있지 않다. 물론, 최근에 나온 사전에서는 그 본래의 의미를 포함하여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두 가지 의미 모두를 싣고 있다.

『큰사전』(1957)을 비롯해 그 이후에 나온 사전에는 ‘한량’과 더불어 그것에서 변형된 ‘활량’이라는 단어까지 싣고 있어 주목된다. ‘한량’이 동화 작용에 의해 ‘할량’으로 발음된 다음 다시 ‘활〔弓〕’과의 연상 작용으로 ‘활량’이 된 것이다. ‘할’을 통해 ‘활’을 연상한 것은, ‘한량’이 무인(武人)이고 이들이 ‘활’을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건달’이나 ‘한량’은 의미가 상당히 변했으며, 그것도 부정적인 쪽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할 일 많은 이 세상에 게으르고 무능한 ‘건달’, 그리고 돈 귀한 줄 모르고 흥청대는 ‘한량’은 모두 경계해야 할 인물이다.


-  건달과 한량 -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2009. 9. 25., 조항범)

 

 

3.

선량과 한량 

 


< 경남신문, 이상권 서울본부장,  2023-02-26  >



국회의원을 흔히 ‘선량(選良)’이라고 한다. 선택현량(選擇賢良)의 줄임말로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뽑는다는 의미다. 이면엔 인재에 대한 존경과 역할의 기대가 깔려있다. 유래는 중국 한(漢)나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관리를 선발한 기준에 효렴(孝廉)과 현량방정(賢良方正)이 있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하며, 경학에 밝고 품성이 어질며 행동이 방정한 사람을 칭한다.

이에 비해 무과에 급제하지 못한 무반(武班)은 ‘한량(閑良)’이라고 했다. 무과 응시를 준비하기 위해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 마치 노는 것처럼 보여 그렇게 불렀다. 현대에 이르러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돈 잘 쓰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을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민의를 대변하지만, 국회의원만큼 지탄받는 자리도 드물다. 국회는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이자 ‘한량 집합소’ 정도로 폄하되지만 한국 사회에서 출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율배반의 현실이다. 걸출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부나방처럼 달려든다. ‘헌법기관’으로 최고의 예우와 특권을 누리는 데다 돈까지 몰린다. 지난해 309개 국회의원 후원회가 585억7900만여원을 모금했다. 한데 의정활동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한량으로 시간을 때워도 선량으로 불리니 이만한 자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한번 ‘금배지’의 위용을 맛본 이들은 재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현재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내년 총선에서 350명으로 늘리자고 국회의장이 제안했다. 사표(死票)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늘어난 50석은 비례대표다. 한데 비례대표가 직능계를 대표한다는 애초 명분은 희미해졌다. 정쟁을 일삼아 볼썽사나운 이들을 늘리는 데 공감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불체포·면책 등 특권 내려놓기와 세비 감축 등 파격적 자구책이 전제돼야 한다. 국회의원 수가 적어 나라가 이 모양은 아니라는 중견 정치인 출신의 일갈이 더 현실감 있다.

이상권(서울본부장)

새봄을 보내며

 

 

< 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2023.04.06.  >

 


진달래 만나 반갑던 산행이 엊그제 같은데…. 한번 봄바람 탄 계절이 부리나케 달린다. 인적도 새소리도 드문 숲이 이다지 수선스러웠던가. 용써가며 밀어낸 새싹 봐 달라 서로들 아우성이다. 과연 멀리서 바라본 산은 온통 푸릇푸릇 새 단장! 더는 ‘새봄’이라 못 하겠네.

‘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마련하거나 다시 생겨난.’ 이 관형사(冠形詞) ‘새’는 어째서 봄하고만 어울릴까.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 말하지도 쓰지도 않는다. 아마도 봄만이 지닌 산뜻함, 생생함이 ‘새’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겠지. 사계절처럼 시간의 뭉텅이여도 ‘날’ ‘달’ ‘해’는 모두 ‘새’와 결합해 한 낱말이 됐으니 흥미롭다(새날, 새달, 새해).

‘새’가 이루는 합성어(실질 형태소 둘 이상이 합친 낱말)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가장 많다. 새댁, 새색시, 새아기, 새신랑, 새언니, 새아버지, 새어머니…. 한데 ‘새신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 ‘새며느리’ 역시 한 단어로 인정받지 못해 ‘새 며느리’라 띄어 써야 하니, 갈피 잡기 어렵다.

‘새장가’로 미뤄보면 ‘새시집’도 있을 법하지만, 머릿속에서나 가능할 뿐. 여자의 재혼을 금기시했던 남성 가부장제 사회의 영향이리라. 구시대적 언어라고들 하는 ‘시집’마저 언젠가는 듣거나 볼 일 없을지도 모르겠다.

‘새’의 반대편에 있는 말은 어떤가. 같은 관형사는 아니어도 ‘오래되거나 많이 써서 낡다’는 뜻인 ‘헐다’의 관형사형 ‘헌’과 짝지은 말은 드물다. ‘헌것’ ‘헌쇠’ ‘헌신짝’ 등등 한 손으로 꼽을 정도. ‘헌책’이 있으니 ‘새책’도 있지 싶은데, 아니올시다. 동요 ‘두껍아 두껍아’에서 주려는 집은 ‘헌 집’이요 달라는 집은 ‘새집’이다. 아리송아리송….

‘새 옷’ ‘헌 옷’ 확인하다 중학생 때 사진이 떠올랐다. 교복 바지에 체육복 윗도리 입고 산에 오른…. 무슨 청승이냐 싶다가, 지난해 이사 때 얼마 안 입은 옷 여러 벌 내놓은 생각이 났다. 결핍보다 풍요가, 헌것보다 새것이 부끄러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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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효를 거친 빵과 고기, 채소 등을 함께 먹는 영국 요리.

한국에서는 샌드위치라고 하면 흔히 식빵 두 장 사이에 재료를 넣어 차갑게 먹는 샌드위치를 떠올린다. 그래서 뜨겁게 먹는 것은 샌드위치라 잘 부르지 않는다. 둥그런 빵을 쓰면 '버거' 라고도 한다. 그러나 원류인 서양에서는 엄밀히 다진 소고기등을 쓴 패티를 버거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부르는 치킨 버거도 영미권에서는 엄밀히는 치킨 샌드위치로 분류된다. 그외에 국내에서는 대충 식빵을 쓴 뜨거운 샌드위치는 토스트로 부른다.

그러나 버거의 본고장 미국의 경우 버거와 샌드위치의 차이는 빵의 모양새가 아니라 사실 다짐육을 사용한 패티가 들어가느냐 아니냐로 갈리는게 정석이다. 흔히 한국에서 치킨버거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치킨 샌드위치로, 치킨을 다져 패티로 만들지 않은이상 버거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다짐육을 사용하였다고 모두 버거라고 부르지는 않는것이 샌드위치의 일종이라 보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의 경우 굽는 과정 속에 고기를 다지고 쪼개지만 버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써브웨이의 샌드위치처럼 둥글고 긴 빵을 갈라 재료를 속에 채워넣는 샌드위치, 따뜻하게 데우거나 그릴에 구워서 나오는 핫 샌드위치 등도 있으며 심지어 아예 카나페처럼 빵 한 장 위에 재료를 그대로 올려놓기만 한 '오픈 샌드위치'도 있다. 햄버거 역시 햄버거 패티를 넣은 샌드위치의 일종이며 핫도그 역시 핫도그 소시지와 그 소시지를 넣은 '핫도그 샌드위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는 구운 빵을 빵 사이에 겹치거나 땅콩버터에 잼 발라서 겹치면 끝인 메뉴가 될수도 있으나, 온갖 산해진미를 사이에 넣은 최고급 메뉴까지 존재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역사

 

18세기 영국의 귀족인 제4대 샌드위치 백작 존 몬태규(1718~1792)의 작위명인 샌드위치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요리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에 대한 기록에도 현재의 샌드위치와 거의 유사한 요리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으며, 고대 로마 시대에도 검은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었다는 비슷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와 같은 형태의 요리는 유럽권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애초에 빵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라면, 빵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빵 사이에 속재료를 넣어서 먹을 생각을 안해본 적은 없을테니, 애초에 샌드위치의 기원이 어디냐를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 다만 현대식 샌드위치를 정립한건 영국이기 때문에 영국 요리에 포함된다.

역사상 최초로 제공된 기내식 메뉴가 바로 샌드위치이다. 1919년 핸들리 페이지 수송(Handley Page Transport)의 런던 - 파리 노선에서 판매했는데 지상에서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바구니에 담았다가 승객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3. 이름의 유래

 

가장 잘 알려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존 몬태규 제 4대 샌드위치 백작은 트럼프 도박을 좋아했는데, 트럼프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트럼프 게임을 하느라 식사할 시간조차도 아까웠던 백작은 트럼프를 할때 자신의 손에 쥐고있었던 트럼프카드를 보고, 트럼프를 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빵 사이에 고기와 채소를 넣은 식사를 생각해냈다. 샌드위치 백작은 자신이 생각한 음식을 하인에게 주문했고 다른 사람들도 "샌드위치와 같은 걸로 주시오(The same as Sandwich)" 라고 하면서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기록은 1772년에 영국을 여행한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장 그로슬리가 출간한 책에 나와 있다. 그러나 샌드위치 백작 존 몬태규는 영국 해군 제1해군경이라는 요직을 맡아 바쁘게 지낸 일 중독자라 이 이야기는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  

이 요리는 선박위에서 간단하고 빠른 식사에 용이하며 또한, 선원에게 강제로라도 야채를 먹이는 효과가 있어 괴혈병 방지에도 탁월한 부분을 주목받아. 영국 해군의 식사로도 도입된다. 이후 19세기를 거치며 해군 강국 들인 영국과 스페인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많아졌으며, 자연스레 항만 노동자들에게 값싸고 빠른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런던에서는 이미 1850년에 햄 샌드위치를 파는 가판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쇠고기와 간을 소금으로 양념한 샌드위치를 팔았다고 한다.

 

 

 

4. 종류

 

현대의 샌드위치는 크게 2종류로 나뉜다. 구운 재료로 따뜻할때 먹는 핫 샌드위치와 불을 쓰지 않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콜드 샌드위치로 나뉜다. 대개 샌드위치 가게나 토스트 가게에서 주문해서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게 핫 샌드위치이며, 편의점, 카페, 빵집 등에서 냉장 보관하여 판매하는 게 콜드 샌드위치라 할 수 있다.

또한 2개 이상의 빵, 혹은 그 대용품 사이에 속을 채워넣는 클로즈드 샌드위치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의 빵 위에 속재료를 올려놓기만 하는 오픈 샌드위치이다. 카나페도 오픈 샌드위치의 일종에 속한다. 다만 대부분이 아는 것은 클로즈드 샌드위치. 돌돌 마는 종류는 '샌드위치 랩(sandwich wrap)'이라 부른다. 한국의 쌈 요리도 샌드위치 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외에 포켓 샌드위치(pocket sandwich)라는 배리에이션도 있는데 클로즈드 샌드위치를 이루는 빵 두 개가 아예 빈틈 없이 맞물리게 만드는 샌드위치이다. 

치즈 햄 샌드위치를 바삭하게 구운 것을 프랑스에서 '크로크무슈(croque-monsieur, 바른 표기는 크로크므시외)'라고 부르는데, 광산에서 광부들이 차게 식어 굳은 샌드위치를 난로에다 올려놓고 구워먹던 것에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 음식 이름을 직역하면 바삭한 아저씨이다. 여기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 먹으면 '크로크마담(croque-madame)'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흔히 알려진 네모지고 납작한 식빵을 써서 만든 형태는 영국, 미국에서 먹는 식이며,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남부 유럽 국가들은 샌드위치를 만들 때 대부분 바게트빵을 사용한다. 베이글 같은 빵을 쓰는 베이글 샌드위치도 있다.

바게트나 길다란 빵에 끼워먹는 경우 서브마린 샌드위치라 한다. 잠수함과 모양이 비슷하기에 따온 것이다. 다만 미국에서도 지역별로 서브마린을 줄인 섭, 이탈리안 샌드위치, 그라인더, 호기 (hoagie) 그리고 히어로 (hero) 등 제각각 다르게 부르며,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13가지의 다른 이름이 존재한다고 한다. 써브웨이의 이름도 여기서 따 온 것이다.

현재는 주로 학생과 직장인들이 샌드위치를 간단한 점심 식사나 간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으며 나라에 따라서 아침식사로도 먹는 경우도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땅콩버터 샌드위치가 인기 있다. 그 외에도 참치마요 샌드위치도 나름대로 맛은 있다. 단순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기를 듬뿍 넣은 햄샌드 같은 것도 괜찮다.

프랑스의 바게트 등으로 만드는 빵바냐라던가 이탈리아의 파니니, 스페인의 보카디요 같이 이름은 다르지만 비슷한 개념의 음식이 유럽 각지에 존재한다.

 

 

 

5. 대표적인 샌드위치 목록 


잼 샌드위치
딸기잼, 포도잼, 카야잼, 마멀레이드 등 잼을 바른 샌드위치. 잼이 없다면 청을 써도 된다. 별로 어울릴 것 같진 않은데 햄치즈 + 잼 샌드위치같이 육류 + 잼 조합도 간혹 보인다.


참치 샌드위치
안에 참치 혹은 참치마요를 넣은 샌드위치. 그냥 참치만 들어가기보단 야채 등이 함께 넣어지기도 한다.


치즈 샌드위치
크림치즈를 펴바르거나 슬라이스치즈를 넣은 샌드위치. 이를 기본으로 다른 재료들을 추가로 더 넣기도 한다. 바리에이션으로는 치즈 샌드위치를 한 번 구워 치즈를 녹인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grilled cheese sandwich)가 있다. 여기엔 크림치즈를 쓰지 않는다.


햄 샌드위치
저민 햄을 넣은 샌드위치. 얇은 햄을 한장만 넣거나 여러장을 넣고, 아니면 두툼한 햄 한장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진다. 여기에 슬라이스 치즈를 추가하면 햄치즈 샌드위치며, 달걀이나 야채를 추가하여 보다 고급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발전된 샌드위치로는 크로크무슈와 크로크마담, 몬테크리스토가 있다.


땅콩버터 샌드위치
안에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 여기에 포도잼을 추가하면 미국 잼민이들의 흔한 간식이자 식사메뉴인 PBJ(피넛버터 & 젤리) 샌드위치가 된다.


앙버터 샌드위치
팥앙금과 버터 도막을 넣는 샌드위치.


달걀 샌드위치
안에 달걀을 넣는 샌드위치. 지극히 간단한 구성으로 가면 라퓨타 샌드위치처럼 달걀후라이만 넣는 구성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복잡하게 가면 달걀 샐러드를 넣는 구성이 된다. 달걀을 반숙으로 익히느냐 완숙으로 익히느냐에 따라 식감이 은근 달라진다. 치즈, 햄, 야채가 추가될 때도 있다. 계란말이를 넣으면 일본식 달걀 샌드위치가 된다.


BLT 샌드위치
베이컨 (Bacon), 양상추 (Lettuce), 토마토 (Tomato)가 들어가는 샌드위치로 앞의 BLT는 주요 재료 3개의 첫 글자들에서만 따온 것. 추가로 달걀이나 양파 등을 넣을 수 있다.


연어 샌드위치
연어를 넣은 샌드위치. 보통 크림치즈와 야채 등이 함께 들어간다. 훈제연어가 자주 쓰이지만 생연어나 구운 연어도 쓸 수 있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
Philly Cheesesteak. 이름은 스테이크로 끝나지만 엄연한 샌드위치이다. 얇게 저민 고기와 치즈, 볶은 양파를 넣은 샌드위치. 서양판 불고기 샌드위치라 할 수 있다.


미트볼 샌드위치
미트볼 여러 개를 빵 사이에 끼워넣은 샌드위치. 타원형의 긴 빵을 반으로 갈라 넣는 편이 잡기 편해 이런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주로 토마토 소스에 담궈둔 미트볼과 토마토소스를 빵에 얹어 준다.


돈까스 샌드위치
돈까스를 끼운 샌드위치. 그냥 돈까스만 딱 하나 넣는 심플한 버전과 채썬 양배추 등 야채를 추가로 넣는 버전이 있다.


치킨 샌드위치
닭고기를 넣어 만드는 샌드위치로 배리에이션으로는 치킨버거가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치킨 샌드위치라 불리는 물건은 굽거나 튀긴 패티를 쓰는 대신 그냥 통 닭고기나 채썬 닭고기, 결대로 찢은 닭고기 등을 쓴다.


과일 샌드위치
과일이 들어가는 샌드위치. 과일과 빵을 붙잡아줄 잼이나 생크림이 함께 발라지는 경우가 많다.


크림 샌드위치
안에 각종 크림이 발라진 샌드위치. 편의점에선 포켓형 샌드위치로 판다.


야채 샌드위치
야채가 주재료인 샌드위치.


풀드포크 샌드위치
구운 돼지고기를 잘게 찢어 만든 풀드 포크(pulled pork)를 안에 넣은 샌드위치. 한국에선 써브웨이나 코스트코에서 만날 수 있다.


멘보샤
새우 샌드위치 튀김.


큐번 샌드위치
일명 쿠바 샌드위치. 서브마린 샌드위치의 일종으로, 일반인들에게는 큐번보다는 쿠바 샌드위치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름의 뜻 그대로 쿠바 사람들이 미국에 건너와 만들어 먹었던 것을 계기로 미국에 퍼진 샌드위치로, 생김새와 만드는 방식이 파니니와 굉장히 유사하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요 소재로 나와 대한민국에서도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6.  (사례) 샌드위치 만들기

 

(1) 재료 


식빵
토마토
양상추 
적양배추 (색을위해 넣고 있으니 빼셔도 무관)
체다치즈 (코스트코 얼리브 리얼체다 치즈)
슬라이스햄 (코스트코 더 건강한 허니 슬라이스 햄)
달걀 

 


(2) 소스 (샌드위치 3개 분량)


홀그레인소스 3T  (코스트코)
머스타드소스 3T  (코스트코)
피클 렐리쉬    3T  (코스트코)
레몬즙 반개
꿀 1T (기호에 따라 더 넣으면 달달하게 드실 수 있어요)

* 머스타드가 너무 강해 부드러운 맛을 느끼고 싶은 분들은 마요네즈 3T 추가 하셔도 좋아요


(3) 만들기


1)  토마토와 양상추를 깨끗이 씻기
2)  토마토를 약 7mm 두께로 썰기
3)  적양상추는 채썰어 씻어 물기 제거하기
4)  소스의 모든 재료를 넣고 섞어 준 후 하루 냉장 숙성 하기 
5)  달걀 삶기

     (실온에 미리 빼둔 달걀에 소금 조금을 넣어 2분 삶다가 저어 노른자가 가운데 가도록 한 후

       8분정도 더 삶아 찬물에 바로 담궈 식힌 후 사용)
6)  달걀 껍질 벗기고 슬라이스로 썰기
7)  빵에 윗면과 아래면에 소스 바르기 
8)  아래 빵에 치즈한장 - 햄3장 - 치즈한장 - 달걀 1개 - 토마토 3개 - 양상추 넣고 윗면 빵 덮기
      (기호에 따라 재료는 더 넣거나 뺄 수 있습니다)
9)  유산지로 싸기
10) 빵칼로 잘라 맛있게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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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락

 


< 중앙일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3.03.13 >

 



우리는 ‘기쁘다’와 ‘즐겁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悅(기쁠 열)’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마음(忄=心)’의 작용으로 인하여 ‘사람(儿=人)’의 ‘입(口)’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빙긋이 벌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다. 독서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미소와 함께 찾아오는 희열을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悅’과 ‘說’은 상통하는 글자이다.

‘즐거울 락(樂)’은 대부분 ‘나무받침대(木)’ 위에 ‘큰북(白)’과 ‘작은북(幺)’을 얹혀 놓은 모습을 그린 글자로 본다. 원형의 큰 북 모양이 해서로 변하면서 白자 형태가 되었고, 두 개의 작은 북 모양이 해서에 이르러 幺자 형태로 변했다. ‘樂’자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타악기를 두드리며 즐기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인 것이다.

< 說(悅):기쁠 열, 樂: 즐거울 락. 기쁨과 즐거움. 김병기 작. 26x58㎝ >



기쁨은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희열이고, 즐거움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느끼는 쾌락이다. 

 

그래서 공자는 배우고 익혀 안으로부터 깨닫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열(悅=說)’로 표현하고, 

외지로부터 찾아온 친구를 맞아 즐기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는 ‘락(樂)’으로 표현하였다. 

열(悅)과 락(樂)의 조화가 아름다운 삶이다.


 

 

 

 

 

논어(論語)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不慍 不亦君子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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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요수 인자요산

 

 

 

< 경남매일,  소설가 이광수,  2020.03.15  >




논어 전편 옹야(雍也)에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자왈(子曰)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인자수(仁者壽)`의 원문 문지(聞之)다.

풀이하면, 공자께서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조용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기고 어진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이다.

여기서 공자는 시인처럼 지자와 인자를 읊조리고 있다. 지자는 현실적이고 사물의 이해득실을 냉철하게 판단하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 유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현실에 적응하는 지성을 갖추고 존재하기를 원하며, 선악을 가려 분별하지만 성인(聖人)은 없다. 

 

그러나 인자는 이상적이며 사물의 이해득실을 떠나 만물과 더불어 변함없이 사랑하면서 존재한다. 항상 온갖 것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덕성을 지니고 존재하기를 바란다.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만물과 더불어 동고동락한다. 그래서 성인은 모두 인자이며 죽지 않는다(논어. 윤재근. 동학사 ).


공자와 노자가 보는 지자와 인자의 관점은 서로 다르다. 공자는 인자는 물론 지자까지 긍정하는 성인이라면 노자는 지자를 부정하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맹(孔孟)과 노장(老莊)의 사상은 지자를 보는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된 흐름은 지자의 슬기로움과 현명함이 대세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실현하고, 더 많이 소유해서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학습하고 인식되는 경쟁 사회이다. 그 결과 지자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낙오되고 도태되는 냉정한 세상이 됐다. 소위 시장 자본주의 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적자생존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공맹이 바라보는 세상사는 지자도 인자도 같은 기준에 놓고 판단한다. 지자의 냉혹함을 인자의 너그러움과 포용력으로 수용한다. 우주 만물의 위대한 섭리에 따라 변화무쌍한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을 인간의 근본으로 삼는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은 자신의 모습을 주변 환경에 맡긴다. 굴곡진 계곡을 흐르면 계곡의 생김새에 따라 굽이쳐 흐르고, 큰 강을 만나면 그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 흘러간다. 우뚝 솟은 산은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자는 변화하고 쉴 새 없이 의식하는 반면, 인자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물을 사랑한다.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동정유상(動靜有常)강유단의(剛柔斷矣)`라는 말이 있다. `동(動)과 정(靜)에는 변함없는 것이 있어서 강함과 부드러움이 판단된다`는 뜻이다. 지자동(知者動)은 강(剛)이요, 인자정(仁者靜)은 유(柔)인 것이다.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유약승강강 : 幼弱勝强剛). 산은 멈춰 제 모습을 누리기 때문에 인자수(仁者壽)가 된다. 

 

지자는 사물을 즐기고(탐하고), 인자는 생명을 즐기기 때문에 인자수의 수(壽)는 천명을 다 누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자는 세상사는 평범한 이치를 `지자요수 인자요산`에서 적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자가 지자를 이긴다는 말이지만, 요수(樂水)와 요산(樂山)을 두루 포용하는 도(道)가 공자가 말한 인(仁)의 사상인 사랑인 것이다. 공자는 나와 다름을 수용하고 나와 같음을 기꺼이 반기면서 동고동락하는 인애(仁愛)를 주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인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요산요수는 `너는 메광(山狂)이고 나는 물광(水狂)이다`는 식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갈등한다. 용서와 화해와 포용이라는 보편적 상식이 뿌리내리지 못한 사회는 굶주린 이리떼가 우글거리는 황야나 다름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쉽게 무너질 한국은 아니다. 우리의 저력이자 장기인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는 지(知)와 인(仁)을 발휘할 때이다. 이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역지사지하는 지자와 인자의 바른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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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古創新
법고창신


옛 것을 법으로 삼아 새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과거를 밑거름으로 해서 새로운 것을 도출해낸다는 의미.

• 한자 풀이:
法 (법 법): 법, 본받다, 법을 지키다, 나눗셈에서 나누는 쪽의 수, 프랑스.
古 (예 고): 예, 낡다, 선인(先人), 예스럽다, 오래 묵음.
創 (비롯할 창): 비롯하다, 상처를 입다, 상처, 괴롭힘, 부스럼.
新 (새 신): 새, 새로, 새로와지다, 새로움, 새해.

 

 

 

 

법고창신(法古創新)

 

< 중앙일보, 정옥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규장각 관장), 1999.12.06 >



현재 우리사회는 세계화의 거센 파고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1년이 지나면서 세계가 단일경제권으로 통합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살 길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잘 사는 방법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재온 결과 총제적 난국에 직면했다면 이제부터는 오히려 그 반대쪽에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은 18세기 선각자 박지원(朴趾源)이 설파할 말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니, 옛것을 익히고 나아가 새로운 것을 안다는 논어(論語)의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보다 적극적인 의미다.

'온고이지신' 이 옛것을 알아야 새로운 것에 대한 분별력이 생긴다는 앎의 문제라면, 법고창신은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실천의 문제다.

박지원은 조선고유문화가 만개한 진경(眞景)문화의 절정에서 다음 시기의 쇠퇴를 예상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선각자답게 문장론을 빌려 법고창신을 제창한 것이다.

그는 지나치게 옛것에 매달리면 때묻을 염려가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점에만 매달리다보면 근거가 없어 위험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법고(法古)에만 치중해 옛것에 얽매이면 고루해지고 창신(創新)에만 정신을 쏟다보면 정체불명의 근본없는 얼치기가 돼버림을 경계한 것이다.

옛것을 본받는 일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동전의 앞뒤와 같이 맞물리면서 균형을 이뤄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조선사회가 서구화되는 시점에서 또 하나의 변신으로 나타났으니 구본신참(舊本新參)의 논리다. 옛것을 근본으로 해 새로운 것을 참고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옛것이란 조선의 전통적인 문물이고 새로운 것은 서구문물을 일컫고 있다. 이는 조선문화를 근본으로 삼되 서구문화를 참고하겠다는 정도의 함의를 갖고 있었으니 적극적인 창조의 논리가 개입된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자세였다.

이 시기는 개방과 자기보존의 두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노선투쟁이 전개된 시기로 주체적인 노선 정립을 못한 상태에서 외세에 의하여 개방 쪽으로 선회한 때였다. 우리 나라는 역사적으로 전환기마다 이 두 노선이 치열하게 부닥치면서 상호 역할분담과 시대적 사명을 다해 왔다.

우수한 외래문화는 전통문화라는 거름종이에 걸러 수용했던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우리의 의지대로 주체적.선별적으로 필요량만큼 외래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또 그 수용대상인 일본화한 서구문화가 전통문화보다 우수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과학기술문명과 경제우선주의의 하부구조에 중점을 둔 서구문물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됐지만 우리 사회의 비인간화에 결정타를 먹였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생존전략으로 유의할 점은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과 그에 따른 일방통행의 모방을 경계하고 고급 전통문화의 현대화작업에 힘쓰는 일이다.

우리만의 색채감각과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통문화의 강점을 살린 문화상품을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개발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최근 서울대 규장각에서 옛 지도로 달력을 만들어낸 작업을 예로 들어보자. 옛 지도의 형태를 원전 그대로 살리되 디자인과 색감을 최대한 현대화해 현대인의 미적 감각과 취향에 맞췄다. 옛 지도의 예술성을 살리되 거기에 담겨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달력으로서의 실용성까지 곁들여 일석삼조 효과를 냈다.

그리하여 누가 봐도 전통문화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과 색채감각이 이를 받쳐주어 고졸하면서도 품격 높은 고품질의 문화상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결국 우리 시대의 과제는 주체적이고 선별적인 외래문화수용의 자세에 있고 그 종착역은 법고창신에 귀결된다 하겠다.

법고창신은 상학(上學.정신적 측면)과 하학(下學.물질적 측면)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21세기 우리 나라의 르네상스를 이루기 위한 문화운동의 기준은 법고창신의 정신에 둬야 하며 그 회귀점은 18세기 조선문화 전성기인 진경시대 이외의 선택은 없다. 세계화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의 열쇠도 거기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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