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오히려 혼자가 되면 편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명기

 



1. 평생 친구는 없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사라지는 이유.

   우리들의 친구는 주로 어렸을 때 친구들로 구성이 되는데,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고 원래 있던 곳에서 떨어져서 살게 되고 서로 있는 곳이 멀어지다가 보면 1년에 한 번 모임에서나 만나다가 점점 멀어지게 되고 그 사이 나이가 들게 되면 우리는 점점 자신의 주장과 의견이 확고해지게 되어서 어렸을 때는 그저 남의 의견에 쫓아가는 대로 해서 친구들이 구성됐는데 이제는 나와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만나게 된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친구가 없으면 이상해’ 해서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고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친구 관계 자체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시는 사람들은 40대, 50대가 되면서 내가 혼자 있는 쪽도 굉장히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친구관계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2. 진정한 친구가 없어도 정말 괜찮은 이유

   친구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친구가 적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 친구가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점점 다른 것이 중요해져서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 친구의 수효와 범위가 결정된다.


3. 나이 들어서 인간관계에 집착하면 ‘이렇게’ 됩니다

   인간관계에 집착하시는 사람들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나를 좋아하기를 원하지만 실생활에 있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원하는 ‘내가 만났으면 하는 사람’의 수와 ‘사람들 중에서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수의 비율이 맞지 않게 된다.

 
4. 주위에 친구는 많은데 늘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

   친구가 많은데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점은 복수심이다.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내가 손해 볼 때가 있는데 친구라는 관계에서는 손해를 보건 이익을 보건 간에 서로 개의치 않아야지 친구가 형성이 된다. 친구가 나한테 실수를 싫은 말 한마디 하면 꼭 사과를 받아 내거나 나도 똑같이 복수해야 한다면 친구와의 관계에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겁이 많은 사람들은 친구가 나를 싫어할까 봐 무지 걱정을 하여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고통에 처해 있는 경우도 있다,

 


5. 친구 없이 혼자 잘사는 사람들이 가진 마인드 

 (1) 자율성이 강함

   친구가 없고 혼자 있어도 할 게 많다. 너무 바빠서 친구가 있건 없건 간에 시간이 굉장히 잘 간다.  심리검사에서 외향성 내향성 척도, 사회적 민감성 척도, 사회적 불편감 척도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좋은 사람이 있고 많이 안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 있다. 후자의 유형은 굉장히 독립적인 성향이 있고 자율성이 강한 경향이 있는데 자신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또 친구를 안 만나도 된다. 또 사람들과 있는 것 자체는 싫어하지 않지만 시끄러운 걸 되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사회는 sns가 발달해서 친구가 항상 끊이지 않게끔 되어 있다. sns로 무슨 모임을 하다가 만나게 되면 만나서 잠깐 친하면 되기 때문에, 친구가 많지만 오히려 깊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한테는 사실은 독립심을 키우는 게 아니라 끝없이 친구들이 공급되는 좋은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2) 힘든 상황에 친구를 찾지 않음

   친구가 전문가면 여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친구는 괴로울 때 내가 그거를 얘기하고 위로받고 버틸 수는 있지만 그 친구가 궁극적으로 문제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친구를 찾지 않는다. 


5. 무례한 친구가 고민이라면 ‘이렇게’ 해 보세요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이 세상에 별로 없다. 우리가 누구와 멀어지는 건 대부분 싸움을 수반으로 삼아서 멀어지거나  아니면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누군가랑 멀어지게 된다. 현명한 해결은 싸우지 않으면서, 혹은 싸우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두려움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불확실성이든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서 누구와 멀어지면서 오히려 내가 굉장히 잘했어, 지혜로웠어 하고 뭔가 성취감을 느끼면서 누구랑 멀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이 세상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거를 선택할 수 없고, 이렇게 나쁜 것과 저렇게 나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가 있다.  자꾸 현명하게, 지혜롭게, 싸움 없이 관계를 갖다 정리하고 싶어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관계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명한 해결 방법은 기분 좋게 끝나는 법은 없고, 내가 기분이 안 좋건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게 결국은 끝난다는 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해결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6. 진정으로 ‘좋은 친구’는 나에게 달려 있다


   진짜로 좋은 친구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진짜로 좋은 친구라고 할 때는 보통 위기를 전제로 한다. 만약에 살면서 나도 아무런 위기를 맞이하지 않고, 친구도 지혜롭고 현명한 친구여서 위기를 맞이하지 않는다면 그럼 그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 진정한 우정으로 잘 지내게 된다. 왜냐하면 둘 다 괜찮기 때문에 이 우정에 흔들림이 없게 된다. 사실은 위기가 닥쳤으면 무너질 친구들도 위기가 안 닥쳤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친구로 믿으면서 지내는 것이다.


   인간은 위기 앞에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사실 진정한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흔들리게 되는 게 아니고 인생에서 내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나의 우정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자기가 어떤 위기를 맞이할지 알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은 진정한 친구가 될지 안 될지는, 내가 어떤 위기에 처하는지를 알아야 된다. 우리는 그 위기를 알 수도 없고, 내가 결정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어한다. 


   오히려 진정한 우정을 유지하고 싶으면 가급적 내가 삶의 위기와 곤경이 있으면 안 된다. 내 삶이 안정되면 왠지 몰라도 내 주위에는 진정한 친구가 많고, 내 삶이 위태위태한 일이 많으면 내 주위에는 가식적인 친구밖에 없게 되거나 아예 친구 하나 없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https://youtu.be/MKNj6oEqPUc

 

 

나는 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 중앙일보, 황주리 화가,  2023.09.26  >

 

 



그 옛날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오늘까지도 유효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거나 자기가 누군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게다가 날이 갈수록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도 밥 같이 잘 먹다가 기분이 상하기 일쑤다. 같은 일에 대해 너무 다른 견해를 갖고 서로 옳다고 우겨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치 보며 말없이 밥만 먹는 자리는 피곤하고 재미없다. 내 가까운 사람의 진짜 속내도 모를 판에 매스컴에서 매일 보는 정치인을 너무도 잘 아는 듯 핏대 올리며 욕하든지 역성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순진하고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도 때론 외계인처럼 보여
모르는 일에 핏대 내는 사람들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오래된 인연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낯선 외계인으로 느껴진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길에서 처음 본 사람보다 더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도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에 관해 그를 잘 아는 듯 생각하고 말한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알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가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보장해” 등등.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이런 확신이 사라져가는 게 정상이다. 그게 누구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욕을 하거나 무작정 편을 들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비록 그 상대가 내 혈육이거나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비현실적인 과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무조건 자신에게만 관대한,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자기애성 성격장애, 심하면 자기애성 인격 장애라 부른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런지 인식 못 하는 채 그 병에 걸려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다. 습관적으로 모든 게 거짓말이기 일쑤이고, 수치심과 죄의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결국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이는 병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늘 우리 가까이 편재해 있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한동안 그 옆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몹시 개인적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린다. 그때는 몰랐으나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 환자에게 내 허약한 영혼을 기대 본 사람은 안다. 한때 혹은 오래도록 우리가 기댔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가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래전에 이렇게 예언했다. “대다수의 편에 서는 게 꼭 옳은 건 아니다. 우리는 광기 있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걸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무릇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다. 생각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건 사이비종교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칼 융에 의하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 사고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이 자식이 저 자식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편애하고 더 잘해주고, 그렇게 생각에 속고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걸 너무 뒤늦게 알게 되는 우리는 늘 어리석다. 다음 생이 있다면 지혜롭게 살리라.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지닌 지혜는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다일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수명은 인간이 그렇듯 무한하지 않다고 말한다. 매 순간 죽어가는 지구인, 우리는 누군가 말하듯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악한 사람들이다. 이 사실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너그럽게 대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브리지드 딜레이니 『불안을 이기는 철학』)

하지만 인간은 계속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살다가 죽는 게 일반적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개인이, 그렇지 않은 세상이 존재한다면 인류의 전쟁은 오래전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끝없이 되풀이해온 분노와 복수를 드디어 끝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지혜로운 세대를 감히 우리가 꿈꿀 수 있을까. 뿌연 거리감이 걷히고 세상 풍경이 또렷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또 가을이다. 문득 엉뚱한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내 사랑은 얼마인가요?” 내게 그것은 “내 그림은 얼마인가요?” 같은 질문으로 들린다.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 물질이 마음을 이긴지 오랜 세상, 오늘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살아있다는 건 참 쓸쓸하고도 아름다워라.

김수철 "전 재산 국악에 쏟아부어…나 같은 놈도 하나 있어야지"

 

< 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2023-09-25 >

 

 


데뷔 45주년 맞은 '작은 거인'…"유행은 지나가는 것, 남는 건 문화"
내달 세종문화회관서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음악 집대성
데뷔 45주년 맞은 김수철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1983년 노래 '못다 핀 꽃 한송이'로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김수철은 이듬해 발매한 '왜 모르시나'와 '젊은 그대'도 대히트를 기록하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남자 가수 중 하나였다.

KBS 가요대상에서 남자가수상을 받으며 인기의 정점에 오른 그때 김수철이 매진한 건 또 다른 유행가 작곡이 아니라 우리 소리를 현대화하는 국악 작업이었다.

"'돈은 다른 가수로 버시고, 나는 내버려 둬라. 대신 국악으로 잘 됐을 때 의리를 지키겠다.' 당시 레코드 회사에 이렇게 통보했죠. 대신 제작비 달란 말도 안 했어요. 내 돈으로 내가 한 거예요."

1987년 이렇게 야심 차게 내놓은 국악 1집 '영의 세계'는 1억여원의 빚만 남기고 대중에게 외면 당했지만 그의 국악사랑은 일탈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40여년 간 25장이 넘는 국악 앨범을 내며 국악의 현대화에 전 재산과 인생을 바쳤다.

다음 달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 모든 노력을 집대성한 공연을 여는 김수철(66)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시대에 모든 국악의 현대화 작업을 완성하려는 마음은 없다. 우리 음악으로 가는 다리 역할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1집의 실패 이후에도 꾸준히 국악에 매진해 온 김수철은 이후 영화 '서편제' 주제가와 1988년 서울올림픽 전야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 등을 맡으며 서서히 결실을 거뒀다.

이번 공연은 40여년에 걸쳐 완성한 김수철의 국악 세계를 라이브 연주로 선보이는 첫 무대다.

코리아모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피리, 대금, 국악 타악기 등을 더해 구성한 100인조 동서양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 김수철이 작곡한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영화 '서편제'의 주제가 '천년학'과 '소리길', 88 서울 올림픽 주제곡 '도약' 등을 들려준다.

2부에서는 화사, 백지영, 양희은, 성시경 등 동료 가수들이 '정녕 그대를', '정신차려', '내일' 등 김수철의 히트곡을 부르며 김수철도 '별리', '못다 핀 꽃 한송이' 등의 무대를 꾸민다.

1부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도 직접 하는 김수철은 "국악이 이끄는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15년 전부터 계획해 온 꿈의 무대"라고 소개했다.

"'못다 핀 꽃 한송이'로 한창 잘 나가던 때도 내 이름 걸고 이렇게 큰 공연을 연 적이 없어요. 15년 전부터 내 국악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려주고 싶었는데 후원사를 못 구해 번번이 좌절됐지. 결국 이번에 내 자비와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으로 공연을 열게 됐어요."

그는 이번에 10억원 가까운 공연 제작비의 대부분을 자비로 충당한다.

좌석 일부는 문화 취약 계층에게 무료로 제공되며 나머지 유료 좌석은 전석 매진됐지만 그에겐 "어차피 적자"인 공연이다.

첫 국악 앨범을 냈던 1987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돈 안 되는' 길만 걸어온 그는 "나처럼 음악을 하는 놈도 하나쯤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돈 안 되는 국악을 왜 하냐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좋아서 하는 거고, 자존심이에요. 우리도 (현대화된)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젊을 때부터 돈으로 계산하고 인기 쫓아가는 것과는 안 맞았어요. 돈 벌면 다 음악 장비 사고 공부하는 데 썼지. 그래서 가진 빌딩이나 재산은 없지만 내 손으로 세운 '음악 빌딩'은 정말 많아요."

그가 바라는 국악의 현대화는 우리 고유의 음악이 문화재처럼 그저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동시대의 문화로 지금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것이다.

김수철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경제적 지원엔 야박한 사회 분위기가 이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문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그걸 그 시대에 맞게 현대화한 콘텐츠가 있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어요. 돈만 많다고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라 이런 문화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데, 기업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하죠. 가진 돈을 여기에다 쏟아붓는 '미친놈'이 나밖에 없어요."

록 밴드 '작은 거인'으로 음악을 시작해 가요, 국악, 영화 음악까지 섭렵한 김수철은 만화 영화 '날아라 손오공'의 주제가 '치키치키차카차카'를 작곡하고 한때 인도 전통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음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해왔다.

그에게 음악은 인기나 돈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 삶과 철학을 담는 그릇이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대중의 인기는 "입산하면 하산하듯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화가가 평생 그림을 그리듯 저는 평생 작곡을 하는 거예요. 내가 40년 넘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계속 공부할 게 생겨서 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대중의 인기는 잠시 몇 년 머물다 가는 거고, 그 나머지를 채우는 건 내 철학과 내 삶의 희로애락이에요. 유행은 지나가는 것이고, 남는 건 인간을 본질에 둔 문화고 예술이죠."

그는 이번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가지고 세계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여기에서 만족할 거면 일을 벌이지도 않았다"는 그가 음악을 대하는 마음은 40여년 전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부르던 스물여섯 청년이던 때와 달라진 게 없다.

"'못다 핀 꽃 한송이'는 사랑 노래 같지만, 사실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위인들을 뒤따라 그들이 못다 피운 꽃을 내가 피우겠다고 말하는 곡이에요. 지금 내 마음이 그때와 똑같아. 그때는 몸이 팔팔했고 지금은 좀 힘들다는 거, 그 차이 뿐이지.(웃음)"

뱃살 빼기가 가장 어렵다?…'비만 명의'의 대답은 "거짓말"

 

<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  2023.09.25  >

 



현대인은 거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같은 수퍼 히어로의 민첩성은 없습니다.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볼록 나온 ‘거미형 비만 인간’이 책상과 소파에서 꼼지락 댈 뿐입니다. 근육 없이 체중만 느니 무릎·허리 곳곳에 2차 가해가 발생합니다. 단시간에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면 근육만 빠질 뿐입니다. 윗배-상체지방-아랫배 순으로 내장지방을 빼는 법은 뭘까요?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백발의 비만 명의’이다. 30년 가까이 비만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해 왔다. 각종 지상파 방송의 단골이다. 최근엔 EBS의 ‘귀하신 몸’ 1, 2편에서 마른 비만 해결사로 활약했다. 오 교수는 잘못된 정보, 상업적 정보를 극도로 경계한다. 잘못된 다이어트,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송곳처럼 파고든다. 그는 체질량지수(BMI,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비만보다 복부비만의 위험성을 중시한다.

 


복부비만이 뭔가.


“키와 상관없이 허리둘레를 따진다. 남자는 90㎝(35.4인치), 여자 85㎝(33.5인치) 이상을 말한다.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하고 운동은 잘 하지 않으면서 저녁에는 술을 즐기면 배가 볼록하고 팔다리가 가는 거미형 비만이 된다.”


그게 위험한가.


“내장지방은 매우 위험하다. 팔다리 지방보다 나쁘다. 뱃속 지방은 내장과 장기 사이에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게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뇌졸중·녹내장을 야기한다. 심근경색도 야기한다. 신장·갑상샘·전립샘·유방·대장 등의 암 발병과 밀접하다. 피하지방도 위치에 따라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목 주변에 지방이 쌓이면 심한 코골이가 돼 깊은 잠을 못 자고 수면무호흡증이 돼 급사의 원인이 된다.”


비만은 유전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순수하게 단일 유전자에 의해 생기는 비만은 5% 미만이다. 다만 부모가 비만이면 자식도 비만일 확률이 40~70% 정도로 보면 된다. 다양한 유전자가 주변 환경, 생활습관, 식습관과 연관돼 나타난다. 이런 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오 교수는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다이어트를 “권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단기간에 살이 빠지는 건 맞다. 그러나 몇 달 못 간다. 에너지가 있어야 뇌와 심장이 돌아간다. 포도당이 공급되지 않으면 뇌에 문제가 생긴다. 또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면 근육 소실로 이어진다. 근육이 줄어 기초대사량이 부족하면 나중에 요요현상이 생긴다. 장수나 뇌 건강을 위해서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뱃살 빼기가 가장 어렵다는데.


거짓말이다. 잘못된 다이어트를 해서 그렇다. 제대로 다어이트하면 뱃살부터 빠진다. 얼굴부터 빠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근육이 빠진 것이다. 제대로 하면 내장지방이 빠지고 뱃살도 빠진다. 윗배-상체 지방-아랫배 순으로 빠진다.”


오 교수는 저소득층의 비만 치료에도 관심이 많다.


“저소득층 고도비만 환자 중에는 우울증·불안증 등을 앓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저소득일수록 고도 비만, 초고도 비만이 많다. 이들이 비만약이 절실한 사람인데, 월 40만원, 100만원짜리 약을 먹을 수 있을까. 저소득층 비만인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힘들다. 열심히 치료를 받아서 어느 정도 살을 뺀 여성이 어렵게 카페 인턴 자리를 구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진료실을 찾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 와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인이 ‘손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나오지 말라’고 했다더라.”


청소년 중 거식증·폭식증이 적지 않다.


“이런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심하면 우울·불안·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이 생기고, 근육 소실 증세가 나타난다. 20~40대에 당뇨병·심혈관질환·고지혈증·고혈압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며칠 안 먹다가 폭식하면 그걸 병이라고 알아차리고 정신건강의학과로 데려가야 한다. 건강하게 먹는 법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보건교사나 영양 교사가 안 한다. 습식 장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고위험군을 가려내 진료실로 이끌어야 한다. 학교가 나서야 한다.”


갱년기 여성은 어떻게 비만관리 하나.


“에스트로젠(여성호르몬)이 줄면 내장지방이 쌓이고, 당뇨병·고지혈증·대사증후군으로 뱃살이 나온다. 살이 확 찌는 시기다. 식욕이 많이 증가하고 스트레스나 우울증세가 비만을 악화시킨다. 운동이 더 필요하고, 식사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 호르몬 치료는 논란이 있다.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 갱년기 장애가 매우 심하고 우울증세가 엄청 심한 경우는 호르몬 치료를 고려해봄 직하다.” 

獨지식인들이 ‘쓰레기’ 취급한 K팝의 힘… “학생들, 북핵서 윤석열까지 훤히 뀁니다”


[김윤덕이 만난 사람]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교수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장은 "2022년 한국학과 신입생 53명 중 한국어를 배우지 않고 들어온 학생은 단 3명"이었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 식으로 한국 전문가를 키워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김윤덕 선임기자,  2023.09.25. >

 

 


베를린자유대 한국학 박사과정에 있는 궨돌린 덤닝은 원래 이 학교 의대생이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동방신기 팬이었던 그는 의대를 다니다 한국학으로 전과(轉科)했다.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 남자랑 사귀냐?”였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지식인의 대다수는 K팝을 ‘쓰레기’라 여겼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K팝에서 한국 정치, 역사로 폭을 넓힌 그는 현재 ‘대통령제에서의 권력형 부패’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궨돌린 뒤엔 그가 ‘닥터 무티’로 부르는 이은정 교수가 있다. 이 대학 역사문화학부 학장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인 그는 2008년 25명에 불과했던 한국학 전공생을 현재 300명으로 늘린 주역이다. 입학 경쟁률이 6대1. 칸트, 헤겔, 아인슈타인이 속한 프러시아 왕립학술원(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 최초의 비유럽 학자이기도 한 그는, “유럽 외교 무대에 한국의 역사, 정치,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차세대 전문가들을 육성해 진출시키는 게 내 목표”라고 했다.

 


◇한국 야당 이슈까지 꿴다


-독일은 한국학 불모지라고 들었다.

“전세계가 K팝 열풍이라지만, 독일 지식인들은 K팝을 하위 문화로 여겼다. 한국 드라마를 분석한다고 하면 왜 그런 쓰레기를 연구하냐는 비난을 받았다.”

-요즘은 다른가.

“2010년부터 한류에 열광한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2020년대 들어서 상륙했다. 동네 수퍼에서 한국 라면과 고추장을 팔고, 시내 옷 가게에서 BTS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국 아이가 독일 학교로 전학 오면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는 친구들이 줄을 길게 선단다. 지식인 사회도 변하고 있다. 박찬욱·봉준호 영화에 대해 토론하자는 동료들이 있고, ‘사랑의 불시착’을 몰아서 보느라 밤을 새웠다는 교수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는 한국이 가진 최고의 문화 외교 수단이라는 한 교수는 한국 갈 때 자기도 꼭 데려가 달란다(웃음).”

-한류가 한국학 연구에 자양분이 됐을까.

“독일 언론은 북핵 문제를 제외하면 한국에 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보도가 급증하고 있다. 가장 권위 있는 신문 중 하나인 디 차이트(Die Zeit)가 ‘한류로 인해 대중문화 역사상 처음으로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깨졌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독일 지식인 사회에 한국을 심고 말 걸기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입학 경쟁률이 중국학과, 일본학과보다 훨씬 높다더라.

“90년대까지 한국학은 일본학과 수업 중 하나였다. 2008년 내가 부임했을 때도 정교수인 나와 한국어 강사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교수진이 12명으로 늘었다. 다른 학과생도 지원할 수 있는 교환학생 신청자는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서 정원을 3배 늘렸다. 올해만 60명이 한국에 온다.”

-한국학과엔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나?

“초창기 지원자가 많지 않을 땐 아비투어(독일 수능) 성적이 낮은 학생도 들어왔는데, 지금은 커트라인이 높아져 의대나 법대 갈 실력의 아이들이 입학한다. 신입생 90%가 한글을 읽고 한국말로 자기 소개를 할 줄 안다. 배꼽 인사를 하며 ‘수고하셨습니다’ 할 땐 영락없는 한국 청년들이다(웃음).”

-대부분 K팝 팬들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K팝을 접한 아이들이지만, 졸업 논문을 K팝으로 쓰는 학생은 한두 명뿐이다. 대개는 K팝에서 한국의 정치·역사·문학 등으로 관심이 확장된다. 나보다도 한국 뉴스를 더 많이 보는 학생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근황은 물론 한국 야당이 어떤 이슈로 싸우는지도 훤히 꿴다.”

-남학생은 얼마나 되나.

“K팝 팬의 대수가 여성이기도 하지만, 입학 경쟁이 치열하니 한국처럼 공부 잘하는 여학생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웃음). 의과대는 남학생이 전체의 3분의 1이라도 되는데 우리는 5%도 안 된다.”

 
◇K팝보다 북핵


-무엇을 가르치나.

“고대 메소포타미아 연구를 하는 사람이 쐐기문자를 모르면 안 되듯 입학 첫 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한국어 수업이 이뤄진다. 문학작품과 논문을 읽고 한국어로 토론할 수준이 돼야 졸업할 수 있다. 전공 커리큘럼으로 한국사, 한국 문화, 한국 정치를 1학년 때부터 배우고, 2학년 때부터는 조선 시대와 남북한까지 아우른다.”

-한문도 배우나?

“물론이다. 고전과 현대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한자는 필수다. 궨돌린이 베를린에도 서울처럼 ‘학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한다(웃음).”

-학생들 졸업 논문 주제가 궁금하다.

“남북 관계, 북핵이 가장 많다. 한국에서 학폭이 큰 이슈로 떠올랐을 땐 청소년 자살을 주제로 한 논문이 많았다. 페미니즘 연구도 활발하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학기에 특히 많았다.”

-진로는 어떻게 되나.

“한국 관련 업무를 하는 기업, 한국 기업의 유럽 지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엔 독일연방정부와 베를린 시정부 같은 공공기관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같은 정치 재단에도 진출하고 있다. 독일과 유럽 공공기관엔 한국 전문가가 거의 없다. 일본·중국 전문가들이 커버한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에 한국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한국유럽센터를 만들었다. EU와 독일 정부의 외교관들, 수상청 공직자들과 워크숍하며 전문성과 인맥을 쌓는다.”

 


◇유럽 오리엔탈리즘에 맞서


-괴팅겐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 비유럽인으로 처음 프러시아 왕립학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돼 화제였다.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1700년에 만든 학술원이다. 유전자 가위로 노벨상을 받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나란히 선출돼 기뻤다. 칸트, 헤겔이 회원이었다는 건 나중에 학술원 홈페이지를 보고 알았다(웃음).”

-어떤 연구를 인정받았나.

“1650년부터 2000년까지 유럽 사상가들이 동아시아를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했다. 17세기엔 동아시아 국가를 이상적 국가의 모델로 봤지만, 18세기를 지나면서는 전제 군주의 억압에 순종하는 몽매한 사람들의 나라로 폄하한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엔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적 성공 비결이 유교 문화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양극을 오가면서도 ‘동아시아인은 근면하다, 순종적이다, 권위에 충성한다’는 고정관념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유럽 정치 상황과 개별 사상가의 필요에 따라 이상화하거나 폄하하면서 타자화했다는 것이 내 연구의 초점이다. 학술원은 문학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있다면 정치 사상 분야엔 내 책 ‘안티 유럽’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대중문화를 보는 유럽의 시각도 마찬가지라고 했더라.

“독일 언론과 인터뷰하면 기자들이 으레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하기 때문 아니냐고 묻는다. 그래서 ‘양극화는 전 세계적 문제이고 이를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K팝과 관련해서도 아이돌 멤버들의 혹독한 훈련과 자살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래서 나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연습생 제도와 독일 축구 클럽이 어린 축구 영재들을 키워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다른가?’라고 묻는다.”

-일반 시민은 어떤가.

“우리 학생들이 베를린 시민을 설문조사했더니 나이가 많을수록 일본과 중국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는 응답이 많았고, 나이가 어릴수록 동아시아 3국 중 한국을 제일 먼저 접했다는 응답이 많았다. 19세기 후반 우키오에 판화를 시작으로 일본에 열광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한국은 힙하고 잘사는 나라’로 인식한다. 독일 일간지에 17세 K팝 팬이 보낸 독자 편지를 읽었다. ‘서구·유럽·독일의 기준으로 한국 문화를 폄하하지 말라’고 썼더라. 이런 아이들이 성장하면 독일 주류 사회의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통일? 왜 벌써부터 걱정인가


-10년에 걸쳐 독일통일총서를 집대성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양국 관료들 통역을 했다. 통일 조약을 쓰고 협상을 주도한 주역들이 다 살아 있던 때라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총서는 이명박 정부 의뢰로 2010년 시작했다. 우리 연구소 6명이 팀을 꾸려 5000개 문서를 요약·해제·분석해 30권의 총서로 발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더라.

“독일에서 교수는 공무원이라 외부에서 돈을 받을 수 없어 무보수로 일했더니 미안해서 주신 것 같다(웃음).”

-통일의 비결이 담겨 있나?

“두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정리했다. 행정, 군사, 보건, 교육 등 통일 후 공무원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 보여준다. 다만 통일이 되기까지는 정치 역량으로 풀어야 한다. 독일의 한 원로 학자는 ‘독일이 세계사에서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도 하나님이 독일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세계사에서 결코 오기 힘든 짧은 기회를 헬무트 콜이 빨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그 말에 내가 울었다.”

-대한민국 통일부는 축소되고 있는데.

“그러게 좀 잘 하시지(웃음).”

-젊은 세대는 통일에 관심이 없어 걱정이란 사람도 있다.

“내가 80년대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할 때 통일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는 밥 먹듯 여행해도 고작 50km 떨어진 동독은 아주 먼 나라였다. 그러나 동독에 변화가 오니 아무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에게 통일에 관심 가지라고 강요할 필요 없다. 지금처럼 대한민국을 전 세계인이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어떤가.

“궨돌린이 권력형 부패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지만, 한국과 독일 정치의 청렴성, 부패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요지다. 실제로 독일에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정치인 부패 사건이 급증했다. 궨돌린 논문은 아시아 정치인은 무조건 부패하다는 기존 부패분석이론을 비판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밖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해낸 나라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오고 싶어할 만큼 충분히 멋진 나라다.”

 

 


☞이은정

1963년 대전 출생.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8년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장으로 부임해 현재 역사문화학부 학장, 동아시아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2016년 비유럽 학자 최초로 ‘베를린-브란덴부르크 학술원’ 정회원으로 선출됐고, 2010년부터 ‘독일통일총서’를 집대성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 ‘베를린, 베를린’이 있다.

“김창옥 말대로 해라, 그러나 김창옥처럼 살지는 마라”

 


강연 20년, 그리고 인생 50년
‘소통령’ 강사 김창옥 인터뷰

 

<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2023.09.23.  >

 


사람 슬픈 건요, 손바닥 뒤집듯이 구원이 안 돼요. 특별한 해답도 없죠. 그냥 지나가야 하는 거예요.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게 해주는 말은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재작년, 그날도 저는 강연장에 있었어요. 주제가 ‘유쾌한 소통의 법칙’이었습니다. 웃기죠? 여의도에 있는 어느 기업 초청이었는데요, 강연이란 강연은 모조리 취소되던 시기였는데,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힘내고 싶어서 저를 부른 거예요. 힘을 줘야 하는데, 정말 기운이 생기질 않았어요. 그냥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오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힘이 안 난다고. 죄송하다고. 제 땅의 지력(地力)도 끝나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쉬지 못했거든요.

청중이 100분 정도 계셨는데요, 동시에 탄식을 터뜨리셨어요. 아…. 이런 울림으로. 저를 위로해주려고요. 저랑 그날 처음 만난 거잖아요. 근데 그 소리가 무슨 큰 종소리처럼 울리더라고요. 그런 소리는 처음이었어요. 처음 만난 사람의 슬픔에 같이 흔들려주는,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소리요. 백 마디 말이 아니라 그 짧은 소리가 사람을 일으키더군요. 갑자기 강연이 너무 잘되는 거예요. 말미에 청중 한 분이 그러시데요. 기왕 이렇게 된 거 30분만 더 해달라고. 음, 이래서 머리 검은 것들은 거두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온 거 아닐까요.

소통 강연 시작한 지 20년, 전국 순회 강연만 1만회를 넘겼습니다. 서울대부터 초등학교, 전경련부터 교도소까지 안 가본 데가 없어요. 고검·대검·경찰청·국정원에서도 불러서 다녀왔고요. 거절하면 후환이 있을 것도 같고…. 유튜브 구독자 수도 110만명을 넘겼습니다. 내일부터는 tvN에서 제 이름을 건 소통 강연 방송도 시작해요. 그리고, 올해 제 나이가 오십이 됐어요.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죠. 이제야 1학년이 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나이요. 인생을 마스터했다기보다, 제3의 눈으로 나를 직면할 수 있는 나이.

◇모발 이식의 나이, 내가 보인다


제일 달라진 건, 머리카락요. 모발 이식을 총 세 번 받았어요. 결혼은 선택, 모발 이식은 필수입니다. 얼마 전 게임 회사에 강연을 하러 갔는데, 대표님이 저보다 훨씬 젊더라고요. 예전엔 강연 가면 항상 입구에서 제지당했어요. 무슨 일로 오셨냐고. 늘 눈치가 보였죠. 어쩌다 보니 사람들 앞에 섰지만, 내가 뭘 안다고 떠드나, 너무 자격이 없다…. 그래서 더 미친 듯이 달렸어요. 명절은커녕 주말도 없었어요. 시간당 2만원 소규모 레슨에서 시작해, KBS ‘아침마당’에도 나가고, TV에 나오니 일이 늘었죠. 몸은 계속 빠그라졌어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직접 운전해 전국을 돌며 하루 네 번씩 강연했거든요.

그러다 깜빡 졸았던 거예요. 앞차를 들이받았죠. 안전벨트 안 했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 순간에도 처음 든 생각이 뭔 줄 아세요? 내가 명색이 소통 전문가인데, 이거 해결 잘해야 돼, 정신 똑바로 차려. ‘또라이’처럼요. 이상 징후가 계속 나타났어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표지판이 돼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방향은 알려주는데, 정작 나는 가만히 멈춰 있는. 행복을 안내하는 건 자신 있어요. 워낙 임상시험도 많이 접해왔고. 그런데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잖아요. 그럼 속이는 거잖아요. 김창옥이 말하는 대로 해라, 그러나 김창옥이 사는 것처럼 살지는 마라. 내 안에서 이 소리가 자꾸 들렸어요.

강연에서 자주 인용하는 문구가 있어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동의보감’에 나오는 말이에요. 소통하면 고통이 없고,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 근데 소통이라는 게 타인하고만 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와도 친해야 해요. 그동안 저를 움직인 건 결핍의 에너지였던 것 같아요. 가난했고, 원치 않게 공고를 갔고, 재수까지 했는데 대입에도 실패했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제대하고 신문 배달로 레슨비 벌어가며 어렵사리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했는데, 결국 그 길로 성공하지 못했죠. 내가 성악을 못하니 그 대신에 ‘말’을 하는구나…. 결핍의 에너지는 폭발력은 좋은데, 유해가스가 나오는 것 같아요. 필터에 안 좋은 게 끼고, 결국 막혀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 에너지로만 목적지까지 갈 수는 없어요.

 


◇결핍의 에너지도 결핍이다


어머니는 무학에 글을 모르세요. 소학교 중퇴하고 노동 일을 하던 아버지는 귀가 들리지 않으셨죠. 그림을 좋아했어요. 화투요. 가산을 사회에 환원하셨고, 어머니와 자주 격투를 벌이셨죠. 도망치고 싶었어요. 화목해질 수는 없는 걸까? 근데요, 사람이 나약해지니까 아버지가 보이더군요. 힘도 있고 뜻대로 잘될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거든요. 귀가 안 들리는 남자. 부모를 일찍 여읜 장남. 의욕 있고 머리도 좋은데 교육의 기회는 사라지고, 남의집살이하며 동생들 학교에 보내야 했던 남자. 저는 아이가 셋인데, 이 남자는 여섯이었어요. 저는 힘들면 오토바이를 타거나 어디 여행 가서 숨을 데라도 있는데, 제 또래의 그 남자에겐 없었어요.

고향이 제주도예요. 아버지 돌아가신 해에 고향 내려가서 아버지 하시던 일을 한번 체험해봤어요. 현무암을 깨서 돌담 쌓는 일이었죠. 방송국 다큐멘터리 촬영용이었는데요, 땡볕에서 딱 하루 했는데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무엇보다 배가 너무 고프더라고요. 고기가 먹고 싶어요. 자연스레 술을 찾게 돼요. 몸이 힘드니까.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잖아요. 그냥 ‘노가다’잖아요. 아, 아버지에게는 도망칠 곳이 없었겠구나. 용서라기보다는 이해가 됐어요. 왜 저리 사나 싶었는데, 나도 그가 짊어진 짐 중의 하나였겠구나….

제가 해온 강연은 이런 내용이에요. 제가 겪어온, 어찌 보면 너무 뻔한 이야기. 그걸 대중의 언어로 전달할 뿐이죠. 제가 처음 섰던 대규모 강연장이 ‘새마을연수원’이었어요. 2005년 무렵요. 강당에 어르신 500분이 ‘새마을운동’ 조끼를 입고 쫙 앉아계신데, 기존의 ‘빠다’ 바른 목소리로는 도저히 진행이 안 되겠더라고요. 부모님 얘기를 꺼냈습니다. “저희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이 있습니다. ‘화상’이라고. ‘말종’도 많이 쓰고요.” 그제야 웃음이 터지더군요. 말하는 이유는 마음을 얻기 위함이잖아요. “어머님, 그간 힘드셨죠?” 물으면 “네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대답이 오죠. “그래도 살은 안 빠지셨네요.” 그러면 막 웃으세요.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시선 같아요. 그 시선이 따뜻함을 공유하고 있다면, 말은 잠깐 내려놔도 문제가 안 생기는 것 같아요.

 


◇덜 익은 말에서 진심의 언어로

컴플레인도 있었어요. 어느 결혼정보 회사 초청 강연이었는데요, 분명히 현장 반응은 좋았는데 강연 끝나고 ‘사과문 써서 보내라’고 항의를 하더라고요. 강연 내용이 다른 곳이랑 겹쳤다고요. 한마디로, 신곡 발표가 아니라는 거였죠. 저는 제 경험을 이야기하니까 레퍼토리가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지어낼 수는 없잖아요. 그때 또 느꼈어요. 너무 젊은 나이에 갓 담근 김치를 막 나눠줬구나. 말을 줄이고 숙성시켜야겠다. 말이라는 게 내 주변에 예리한 덫을 쳐놓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거거든요. 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리면 안 되니까. 내 말을 완성하는 게 내 삶일 수밖에 없다면, 조금 천천히 해야겠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말 있죠.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과 안 훌륭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들킨 사람과 안 들킨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실수를 한다면,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그 시간이 충분했다면 용납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공적인 일에 나서지 못하고 개인으로 살 수밖에는 없을 거예요.

몇 년 전 국회의원 공천을 주겠다고 정당에서 섭외 연락이 왔었어요. 좌·우 양쪽에서요. 거절했어요. 인기만으로, 제가 지닌 말솜씨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걸 아니까요. 소명 의식도 있어야 하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죠. 어릴 적 꿈이 선교사였는데요, 선교사 되려면 오지(奧地)에서도 잘 견뎌야 하니까 해병대까지 지원해 다녀왔는데요, 어찌 보면 정치인이 성직자보다 힘든 일이잖아요. 말로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양심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며칠 전에 제주경찰청과 얘기가 됐는데요, 순찰차든 특공대 버스든 그 안에서 경찰 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려고요. 바닷가에서 시체 건지고, 범죄자들 상대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되겠어요. 세상을 지키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해요. 영상으로도 만들려고 해요. 감동을 주려면 돈을 안 받아야 하거든요. 공짜 강연을 늘리려고요. 사실 코로나로 타격이 컸어요. 오프라인 강연은 없는데, 유튜브도 해야 하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고…. 신용보증재단에서 돈도 빌렸거든요. 그럼 다른 걸 팔자. 예를 들면 농산물 같은. 그걸로 돈을 벌어서 진짜 필요한 말만 하자. 그래서 최근에 유기농 식품 회사랑 계약 맺고 계란도 출시했어요. 이름 따서 ‘옥란’이라고. 저는 계란을 더 많이 팔아야 합니다.

기억에 남는 청중이 많아요. 울음이 터진 적도 있어요. 천안에 사는 마흔다섯 살 남성 분이 강연장에 앉아계셨는데요, 마흔에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재활중이시래요. 내년부터는 돈을 벌어서 집에 갖다주기로 결심하고, 저 보고 직접 얘기하러 오신 거예요. 강연이 잘 안 되고 힘들더라도, 밤에 새벽에 당신 이야기 듣고 힘내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누구나 힘든데,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사람요. 그럴 수 있다면, 그걸로 제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끝났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도 변치 않는게 있다, 1000명 노화과정 추적해보니
 

< 조선일보,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2023.09.20.  >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을 수십 년 추적 관찰한 연구가 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가 진행하는 볼티모어 노화 종적 관찰 연구는 1950년대 말부터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간의 노화 과정을 추적 분석한다. 2년마다 각종 신체 및 생리 지표를 분석했다. 현재는 그들의 2세, 3세들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안에 노화와 관련된 엄청난 자료가 있는데, 비만에 관한 분석 사례를 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비만으로 체중이 느는데, 비만 위치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결과가 전혀 달랐다. 내장 지방 위주 복부 비만은 심혈관 질환, 당뇨병, 고혈압 및 암의 주요 인자로 작용했으나, 피하 지방 위주의 엉덩이 쪽 둔부 지방은 질병과 상관이 없었다.

늙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이 연구로 밝혀졌다. 바로 목소리다. 젊었을 때 헤어진 친구나 연인이 사오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을 때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목소리 어조나 강도, 속도 등이 달라질 수 있지만 성문(聲紋)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성격도 변하지 않았다. 연구 대상자 주변 4~5인을 상대로 십 년, 이십 년이 지난 뒤 대상자의 성격 변화를 물었을 때 70% 이상이 똑같았다고 했다. 100%는 아니었지만 대개 나이 들어도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때, 그 인연이 평생 가려면 성격을 중요하게 검토한다는 점이다. 변하지 않는 지문이나 홍채 같은 생체 구조와 달리 목소리나 성격과 같은 생체 기능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노화가 일방적으로 일어나지 않음을 알려준다.

잡범과 정치범을 구별하는 법
중립 지대는 교도소 닮아
정치범은 나라 미래 생각하고 잡범은 오로지 출소 후 걱정
‘정치 잡범’ 농단 막아야

 

<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2023.09.18.  >

 



‘3류’는 딱 봐도 그의 직업을 알 수 있다. 3류 경찰, 3류 기자, 3류 주먹, 3류 국회의원 등은 겉으로 표시가 난다. 어깨 흔들며 거들먹거리고, 힘없는 상인에게 돈 뜯고, 장관에게 반말로 다그치고, 무엇보다 특권 의식에 절어 있고, 부끄러움이 없다. 소설가 김영하가 일찍이 한 말이다. 그들은 잡범 라벨을 이마에 붙이고 다닌다. 3류 땟국이 줄줄이 흐르는 그들이 노는 동네가 있다. 주인 없는 곳,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서 활개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게 되면 배신감을 느낀다.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깨진 연애의 후일담 같은 것이다. 그러다 무당층, 중간파, 중도, 부동층 같은, 뭐라 불러도 좋은데, ‘그냥 나좀 내버려 둬 그룹’이 되는 것이다. 이해한다. 양심 엿 바꿔 먹고, 남 생각 절대 안 하고, 국민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부류들 때문에 울화가 치밀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인지 ‘여의도 3류 건달들’인지 그들에게 실망하고 관심을 끊어버렸던 심정, 누가 모르겠는가. 차라리 무기를 든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 한 분은 젊었을 때 열렬한 좌파 ‘데모꾼’이었다. 머리 희끗해진 뒤로 열렬한 보수 우파로 변했다. 그런데 최근 만나면 “나는 중도야. 중립이라고. 원래 그랬어”라고 한다. 이해한다. 친구들도, 자식들도, 그리고 배우자까지도 그분의 ‘정치적 선택’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선택을 드러내놓고 밝히는 일’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잖은 것이다, 무책임한 염세주의자 소릴 들을망정.

이런 분들이 정치적 선택을 포기하고 등 돌린 사이에 ‘중도’라는 미명 하에 누적되는 ‘빈 공간’을 먼저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동물적 본능으로 먼저 달려와 빈 곳을 차지하는 세력은 능력과 혜안을 갖춘 미래파가 아니라 귀 얇은 유권자의 약점을 귀신같이 파고드는 야바위 협잡꾼이다.

잠정적 무주공산인 중립 지대는 기묘한 교도소를 닮았는데, 그곳에는 정치범과 잡범이 뒤섞인다. ‘범털’인 정치범은 삭발, 단식, 분신 시도 같은 투쟁을 할 때가 있다. ‘개털’인 잡범도 가끔 흉내를 낸다. 정치범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는 반면, 잡범은 오로지 출소 후를 생각한다. 정치범은 이념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잡범은 졸개를 모아서 선동을 한다.

팩트와 진실은 중립이 아니다. 가짜 괴담의 반대편에 있다. 2024년 봄 총선 이튿날 미래 세대에게 해명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것에 덧붙여 행동해야 했을 때 침묵한 것까지 포함한다. 침묵하는 중립은 잡범을 돕는 것이다.

광복 후 해방 정국 몇 년 동안 이른바 중간파는 자유 대한민국 출범을 망칠 뻔했다. 1948년 남한에서 총선이 치러졌을 때 이승만은 선거의 본질은 자유주의를 따르는 민족주의자들과 전체주의를 따르는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대결임을 일깨웠다. 소설가 복거일이 본지 연재물에 인용하고 있듯이 이승만은 “민족 진영에서 어떤 개인이나 어떤 단체가 승리할까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요, 오직 독립주의와 독립 반대주의와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기회만 엿보는 중간주의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주의가 성공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투표해야 한다”고 했다.

2020년 총선 결과는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가 엄청나게 왜곡됐다. 득표율에 비해 80석을 더 얻은 정당이 있는가 하면 5분의 1로 졸아든 정당도 있었다. 국민의 뜻이 극적으로 전도된 의회 구성은 정치 잡범들의 농단으로 선거제가 유린됐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같은 결과를 막으려면 ‘중간주의 잡범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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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주장하는 논리는 좋지만 실제 다수 정당들이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데도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협박이다. 

 

  선택을 하되, 결과가 또 현재처럼 다시 혼란한 정국이 계속되면 이 또한 나라의 수준이고 국민의 수준이니 이 땅에 사는 죄로 감내해야 한다.

 

  모름지기 실력이 없으면 몸이 고달픈 법이다.  

 자기가 실력 없는지도 모르고 노~력도 안 하면 정신 차릴 때까지 계속 고생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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