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우크라, 이스라엘 다음은
한반도라는 美 전문가
굴종하느니 싸우겠다
결의 가지면 전쟁 막고
‘전쟁이냐, 평화냐’ 구호에
휘둘리면 전쟁 못 막아

 

 

<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2023.10.12.  >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는 것을 보고 전쟁 날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전쟁의 눈’은 정말 놓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을 질병이 찾아가듯 전쟁은 터질만한 곳을 어김없이 찾아간다.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모두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근래 우크라이나는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분열돼 지독한 내분 상태에 있었다. 분열된 국민이 전쟁을 두려워해 러시아가 영토를 침략해 병합하는데도 보고만 있었다. 극심한 내분은 정치 코미디 주연 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코미디 제작사 간부들이 국가 요직을 맡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이 예상외로 전쟁을 잘 지휘하고는 있지만 전쟁의 눈이 보기에 이곳은 명백한 먹잇감이었다.

이스라엘 역시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파동으로 전례 없는 국민 분열을 겪고 있었다. 군과 경찰의 현역 간부들이 정부에 공개적 반기를 들고 국방 주력인 예비군의 복무 거부 사태까지 일어났다. 도저히 이스라엘답지 않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더니 결국 전쟁의 눈에 띄고 말았다. 군 최전방 초소가 테러리스트 수준의 무장대에게 털려 여군들이 줄줄이 붙잡혀 끌려가고 아기들이 떼로 참수당했다.

전쟁의 눈이 지구본을 돌릴 때 한반도에 눈길이 가지 않을 리가 없다. 조셉 보스코 전 미 국방부 중국 담당 국장은 이스라엘 전쟁이 터지자 다음 순서는 중국·대만이고 그다음이 한반도라고 했다. 그중에서 북한이 가장 악성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 삶은 원시 수준으로 팽개친 채 온갖 핵무기 개발에만 혈안이 돼 있다. 공예품이라며 미사일 도자기를 만드는 집단이다. 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비정상 권력의 비정상 행태는 영원할 수 없으며 그 끝은 대부분 폭력적이었다. 전쟁을 막아야 할 한국은 국민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국가 수호의 ‘결의’도 흐트러져 있다.

지금 한국에선 북의 도발을 응징한다고 하면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우리가 당해도 전쟁 날지 모르니 그냥 넘어가자는 주장이 인기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한다. 북한 공격에 천안함이 폭침당해 우리 군인과 국민 56명이 떼죽음을 당했을 때 민주당은 대북 반격은 물론이고 경제 제재도 반대하며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거 구호를 내걸었다. 그 선거에서 민주당은 승리했다고 한다. 당시 군에 간 자식들이 부모에게 ‘정부가 전쟁을 하려는데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전화했다. 이런데 북이 도발할 유혹을 느끼지 않겠나. 한반도는 전쟁의 눈이 보기에 전쟁 터지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민주당은 2007년 정권을 잃고 80여 석 소수당으로 전락했을 때 광우병 괴담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괴담에 매달리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쟁이냐, 평화냐’ 슬로건 성공 사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어떤 양보를 해서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전쟁을 사실상 포기한 나라가 조선이다. 그 결과 전쟁도 못 해보고 나라를 뺏겼다. 그때 이완용은 ‘그래도 전쟁한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했다.

전쟁 나면 사람이 죽으니 무조건 양보해서 피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대중을 겁주고 현혹하는 것은 전 세계 정상배들이 하는 일이다. 이들은 국민과 국가를 병들게 해 결국 전쟁으로 이끈다. 책임 있는 지도자는 ‘전쟁은 막겠지만 주권과 독립이 위협받는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하고 국민을 국민답게 해야 전쟁을 막는다. 주권과 자존을 지키는 일에 공짜는 없다. 용병을 쓴 나라는 예외 없이 다 망했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소중한 지금의 일상을 모두가 지키고 싶어 한다. 깡패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일상을 지킬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국민, 대통령, 정당, 기업, 사회가 어떤 경우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 나라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세상에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외적에게 굴종하며 살고 싶은 사람도 없다. 둘이 충돌할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 굴종을 택하면 전쟁이 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하면 전쟁을 막는다. 더 이상 ‘전쟁이냐, 평화냐’는 없어야 하고 휘둘리지도 말아야 한다. 그게 자신과 가족과 나라를 진정으로 지키는 길이다. 누구나 두렵다. 그 두려움을 부추기고 구차함을 유혹해 표를 얻으려는 것은 정상배 행태다. 지도자는 국민의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서 결의를 모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전쟁의 역사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 명언 중에서도 정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대전의 끔찍한 재앙 속에서 유럽이 신음하고 지식인 사회에 반전주의가 퍼질 때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관심이 없으시다고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전쟁의 본질적 속성이 이 말에 담겨 있다. 전쟁은 자신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간다. 올 테면 오라고 하는 사람들은 피한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한 이재명 대표가 깊이 새겨야 할 진리다.

21세 안세영이 준 두 가지 커다란 교훈

 

 

<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3.10.8 >

 

 

 


세계 랭킹 1위의 한국 여자 배드민턴 안세영(21)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것은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 충격은 '압도적 기량'과 '(듣는 이를) 짓누르는 언어'에서 나왔다.

단식 경기에서 안세영은 약간의 차이나 아슬아슬한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믿기 어려운' 실력으로 상대의 공격 의지마저 꺾을 정도였다. 8강전에 나선 태국 부사난 옹밤룽판(27) 선수는 (자신이) 아무리 강한 스매싱을 내리쳐도 모두 받아내는 안세영의 수비에 혀를 내두르며 허탈한 웃음을 내비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심지어 경기를 마친 뒤엔 한국어로 "안세영, 대박"이라고 외치며 그의 압도적 기량을 치켜세웠다.

결승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3위 천위페이(중국)를 2대 1로 제압할 때도 그 기량은 촘촘히 빛났다. 안세영은 첫 번째 게임 마무리에서 극적으로 수비하다 무릎을 다쳤다. 가까스로 이 게임을 가져갔지만, 두 번째 게임은 상대에게 내줘야 했다. 이 흐름을 보고선 마지막 게임은 부상의 위험과 다음 올림픽 경기를 위해서라도 질 수밖에 없거나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하지만 안세영은 마지막 게임을 21대 8로 간단히(?) 제압했다. 경기를 마친 뒤 안세영은 "무릎 쪽이 많이 아팠다"면서 "걸을 정도는 돼 정신력으로 뛰었다"고 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중국 여자 역도 선수 리아오 구이팡이 용상 2차 시기에서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3차 시기를 포기해 실격 처리된 사례 등과 비교하면 불굴(不屈)도 이런 불굴이 없을 정도다.

안세영의 압도적 기량은 상대 선수의 어떤 공격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받아내며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인다는 점에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안세영의 전 경기를 종합하면, 그의 기량은 '압도적'이라는 말 외에 따로 쓸 수식어를 찾기 어렵다. 안세영은 우선 코트 바로 앞에서 콕 찍어 넘기는 헤어핀이나 코트 멀리 보내는 하이클리어 같은 비교적 '약해 보이는' 기술을 아주 영리하고 감각적으로 사용한다. 상대가 이런 기술을 약점 잡아 스매싱 기회로 이용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처럼 '기술적'으로 방어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상대의 빈자리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라인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보내는 '신기의 기술'은 어떤 선수에게서도 보기 힘든 최고의 공격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해설자들이 저마다 'AI 안세영'이라는 별칭을 붙였을까.

안세영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내 연습량을 믿었다"는 말을 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연습량'을 운운하지만, 이날 그의 이 멘트는 특별했다. 하루 10시간씩 독서실에 있다고 반드시 학습 능률이 올라가지 않듯, 그의 연습도 양 뒤에 숨겨진 어떤 특별한 '무엇'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엿보게 했다.

그만큼 그의 경기는 어떤 특별한 연습이 아니고선 증명될 수 없는 결과를 선보였다. 예를 들면, 어떤 공격도 다 받아내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받아내는 연습만 수없이 했다거나, 자신이 보낼 셔틀콕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강약 조절을 끊임없이 연습해 본능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방식들이 그것이다.

잘하는 것과 매일 하던 패턴을 계속 연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못하는 것과 힘든 걸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연습으로 양을 채우는 방식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연습량의 의미인 셈이다.

이용대 SBS 해설위원은 "안세영 선수를 몇 년 전 만났을 때, (네가 승리하려면) 강한 공격을 연습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 그 말을 취소해야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다. 승리가 정해진 툴이나 방향이 아닌, 각자의 연습과 해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안세영은 기꺼이 증명했다.

안세영의 기막힌 충격과 감동의 언어는 단식 결승전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무릎이 '딱' 소리가 나면서 어긋난 느낌이 들어 고통스러웠다"면서 

"지금 같은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을 이겨내고 뛰었다"고 했다.

안세영은 모든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자신이 해온 연습량을 믿고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 21세 국가대표의 땀의 결실이었다. 

21세의 어린 국가대표 선수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이야기할 때 머리에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다. 반백 년을 살아도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절실히 느끼며 사는 인생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삶을 절실하고 소중하게 꾸리는 인생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니. 안세영은 자신이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지만, 그 사실이 주는 충격과 감동은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하루를 특별한 연습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했을까. 그리고 그런 날은 또 얼마나 될까. 우리는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까. 아니, 지금 다시 달아나는 이 순간을 잡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있을까.

안세영이 모든 경기가 끝나고 한꺼번에 터뜨린 눈물과 포효의 의미가 이제야 비로소 각인되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차근차근 쌓아 올린 작지 않은 삶의 교훈들에도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한다. 탱큐, 안세영!!!

'실명 직결' 황반변성…치료할수록 시력 안좋아져 포기 많아 [건강한 가족]

 

 

< 중앙일보, 이민영 기자, 2023.10.10 >

업데이트 2023.10.10 09:11

 


황반변성 바로 알기

환자 42만8404명 매년 증가세
노화 주원인, 시력 저하 등 증상
완치 안 돼 시력 유지·보존 치료


한 눈씩 가리고 봤을 때 손으로 앞을 가린 듯 시야가 답답하면 단순한 시력 문제가 아니다. 저시력(교정시력 0.3 이하)과 실명의 주원인인 황반변성의 그림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22년 42만8404명을 기록했다. 환자 수가 4년 전(2018년 30만5305명)의 1.4배다. 시각세포의 95%가 밀집한 황반은 폭 0.5㎜, 두께 0.3㎜의 타원형 신경 조직이다. 시각세포가 빛·색상을 감지할 수 없는 흉터 등으로 대체되면 시력이 뚝 떨어진다. 대개 노화가 주원인이다.

여의도성모병원 안과 노영정 교수는 “노인성(연령 관련) 황반변성 중 안구 주사 치료가 필요한 습성(삼출성) 황반변성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지정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데, 임상에서 환자가 너무 많아져 안구 주사 치료가 매년 급격히 증가한다”며 “노화와 관계없는 성인형 황반변성도 증가세로, 근거리 작업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 고도근시(안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짐)가 황반부 변형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습성 황반변성은 산소·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층(맥락막)에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 황반부에 출혈을 일으키고 삼출물(고름·진물)이 쌓여 실명을 초래한다. 안구 주사는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기는 걸 억제해 습성 황반변성 진행을 늦춘다. 

 

건성 황반변성은 노폐물(드루젠)이 쌓이는 것으로 시력이 갑자기 떨어지지는 않으나, 이 중 일부는 습성으로 진행한다.

 

저시력이어도 보존 땐 일상생활 가능


황반변성은 과거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돼 온 질환이었지만 지금은 치료 환경이 좋아졌다. 치료제와 고난도 수술이 가능한 장비 도입으로 실명 위기를 극복하는 환자가 많다. 치료의 주목적은 시력 개선보다는 유지·보존에 있다. 손상된 신경은 재생이 안 되므로 완치되는 질환은 아니며 언제든 재발할 수 있어서다. 질환의 진행을 늦춰 시력을 보존해야 하므로 만성질환처럼 관리가 필요하다. 치료를 받아도 시간이 지나면 시력은 점차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질환 특성을 오인해 황반변성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가 있다. 노 교수는 “치료 횟수에 비례해 시력 개선을 기대하거나 초기에 좋은 시력 개선 효과를 본 경우, 본인 스스로 치료 효과를 판단하고 진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급격한 시력 저하로 이어지거나 재발 시 빠른 대응을 어렵게 해 시력 손실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안과 질환은 사회생활 제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자의 정신적 충격이 크다. 연령 관련 황반변성을 앓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 발병 위험이 15% 높다는 국내 연구결과(삼성서울병원 안과, 2023)가 있다. 반복적으로 안구 내 주사를 맞아야 하는 피로감, 실명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다.

실명 위험이 높은 중증 황반변성이어도 적극적으로 치료해 남은 시력을 지키면 삶의 질을 유지한다. 노 교수는 “완전 실명 가능성이 높은 환자가 수술받은 뒤 안전수지 50㎝(손가락 개수를 50㎝ 거리에서 구별) 정도의 시력을 되찾으면 저시력이어도 실제 사회에서 영위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집 안에서 개인 생활을 스스로 하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안전수지는 시력표로 측정이 어려운 경우 손가락 개수를 구별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말한다.


한 눈씩 가려 보며 시력 점검해야


좀 더 나은 시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과 치료가 답이다. 대한안과학회에 따르면 황반변성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어 환자의 질환 인지율이 4%에 불과하다. 이에 학회는 본격적인 노화가 시작되는 40대부터 안저검사를 권장한다. 1초 안에 망막이나 시신경의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는 간단한 검사다. 황반의 미세한 변화와 다양한 질환을 찾아내는 빛간섭단층촬영(OCT) 검사도 있다. 노 교수는 “습성 황반변성의 경우 황반부 변화 부위가 넓은 부위로 확대되기 전 초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시력을 보존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리면 황반 반흔(흉터)이 형성돼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자가진단은 질환을 일찍 발견하는 데 도움된다. 황반 시각세포가 손상되면 손으로 눈앞을 가린 것처럼 물체 중심이 검게 보이고(중심 암점), 계단·바둑판 같은 직선이 휘어져 보이는 증상(변형시)이 나타난다. 두 눈으로 볼 땐 자각하기 어려우므로 한 눈씩 가려 보며 시력에 변화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좋다.

국내에서 연령 관련 황반변성의 사회적 비용은 약 7000억원으로 추산된다(대한안과학회지, 2019). 황반변성은 실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생산성 손실과 같은 비용을 증가시킨다. 치료·예방에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 교수는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건성 황반변성의 실명 원인인 지도상 위축 진행을 억제하는 안구 주사제를 승인했다. 국내 도입 시 1~2년 안에 안구 주사가 현재보다 최소·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즉각적인 실명에 직면한 습성 황반변성 환자에게도 건강보험이 확대돼야 하는 상황에서 전체 황반변성 의료비 상승이 불가피한 만큼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류 시민’ 취급 받던 계약직의 인생 역전…엄마는 노벨상, 딸은 올림픽 金
[테크노 사이언스의 별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백신의 어머니’ 커털린 커리코

<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  2023.10.10.  >

 


1928년 여름휴가를 마치고 연구실을 찾은 스코틀랜드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특이한 푸른 곰팡이를 발견했다. 실수로 열어놓은 배양 접시 안에서 자란 이 곰팡이는 플레밍이 연구하던 포도상 구균을 파괴하고 있었다. 인류가 첫 항생제이자 ‘20세기 최고 발명품’이라는 페니실린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플레밍 사례처럼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뜻밖의 행운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 의대 전염병 학과장으로 갓 부임한 드루 와이스먼과 계약직 여교수 커털린 커리코(Katalin Kariko·1955~)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전혀 다른 부서의 두 사람은 학교 복도의 제록스 복사기 앞에서 자주 마주쳤다. 도서관에서 논문을 구해 일일이 복사하던 시절이었고, 두 사람은 비슷한 시간에 먼저 복사기를 차지하려는 경쟁을 벌이다 친해졌다. 와이스먼은 에이즈를 비롯한 바이러스 연구에 단백질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와이스먼에게 커리코가 말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에요.” 이 대화가 생명공학과 의학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둘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타임 '100인의 인물'에 선정된 커리코 -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타임 '100인의 인물'에 선정된 커털린 커리코(오른쪽)와 딸 수전 프랜시아. 어머니가 연구원으로 일했던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프랜시아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이다.  

 

 

 


◇미국행 편도 티켓과 전 재산 147만원

커리코는 헝가리 커르처그의 가난한 정육점 딸로 태어났다. 갈대로 지붕을 얹은 흙벽돌 빈민가 집은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없음은 물론 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커리코가 기댈 곳은 공부뿐이었다. 8학년 때는 헝가리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3위를 차지했다. 1978년 세게드대에서 생물학 학사를 받았고, 1982년에는 유전 물질 리보핵산(RNA)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헝가리 생물학 연구센터(BRC)에서 일할 때 커리코는 헝가리 비밀경찰 정보원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해고하겠다거나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면서 “실제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의 연구실은 1985년 연구비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았다. 유럽 대학 문을 두드렸지만 누구도 답을 주지 않자 미국행을 결심했다. 커리코와 남편은 차를 팔아 편도 비행기 표를 사고 나머지 돈은 두 살짜리 딸의 곰 인형 배에 넣어 밀반출했다. 당시 공산 국가인 헝가리에서 100달러 이상 해외 반출은 금지돼 있는 시절이었다. 900파운드(약 147만원)가 당시 이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커리코는 손수 꿰맨 이 곰 인형을 아직도 딸의 방에 보관하고 있다.(훗날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딸 수전 프랜시아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커리코는 템플대에서 3년간 일하며 전공인 RNA를 활용해 에이즈, 혈액 질환 등을 치료하는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도서관이 오후 11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논문을 읽다가, 친구 집에서 자거나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들었다. 아침 6시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고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


◇아메리칸 드림 꿨지만

메릴랜드의 미국 국립군의관의대를 거쳐 1989년 펜실베이니아 의대로 자리를 옮겼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교수 직함을 달았지만 정규직 교수에게 고용된 계약직이었다. 의사가 주류인 의대에서 이학 박사 커리코는 ‘2류 시민’ 취급을 받았다. 동료였던 데이비드 랭어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민자이자 여성 과학자라는 점이 모두가 커리코를 간과하게 만들었다”면서 “그는 학내 정치나 연구비보다는 과학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커리코는 실험광이었다. 동료들에게 “실험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당신의 기대가 실수할 뿐”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자주 들려줬다. 1995년 학교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학교는 커리코에게 정교수직을 제안하면서 메신저 리보핵산(mRNA) 연구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mRNA를 고집하면 연구원으로 강등하고 연봉은 절반 줄이겠다고 했다. 당시 과학계에서 mRNA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였다. 1961년 프랑스 과학자들이 생체 내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mRNA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혔다. 질병과 싸우거나 예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가능성에 수많은 과학자가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람 몸이 외부에서 들어온 mRNA를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여기고 염증을 비롯해 강력한 면역반응을 일으켰다. 커리코를 비롯한 극소수만 mRNA의 가능성을 믿었지만 1990년대에는 아예 연구비 지원조차 끊겼다. 커리코는 승진 대신 강등과 연봉 삭감을 택했다. 모두 ‘멍청한 선택’이라며 비웃었다. 영주권도 없었고, 대학생 딸의 학비도 마련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뉴욕타임스는 “커리코는 실험실을 옮겨다니며 계약했지만, 연봉은 6만달러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와이스먼과 공동 연구로 돌파구 찾아

1995년은 커리코의 굴곡진 인생에서도 유독 잔인한 해였다. 아파트 관리인이던 남편이 미 영주권을 받으러 헝가리에 갔다가 문제가 생겨 돌아오지 못하는 사이 커리코는 암 진단을 받고 두 차례 수술을 견뎌야 했다. 끝없는 고난 속에서 1997년 우연히 와이스먼을 만나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실험실에서는 얼마든지 원하는 단백질을 유도하는 mRNA를 만들 수 있었지만, 동물실험은 번번이 실패했다. 해결책을 찾는 데 8년이 걸렸다. 2005년 RNA의 한 종류인 전달RNA(tRNA)를 이용해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mRNA 합성법을 찾아낸 두 사람은 특허를 등록하고 논문을 썼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저명 학술지들은 연구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게재를 거부했다. 결국 ‘이뮤니티(면역)’에 발표한 논문조차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몇 년 뒤 스탠퍼드대 박사 후 연구원 데릭 로시가 이 논문을 읽고 사업을 구상했다. 로시는 하버드와 MIT의 교수들, 벤처 투자자를 찾아다니며 mRNA로 백신과 치료법을 만드는 거대한 사업 구상을 설명했다. 생명공학계 창업의 아이콘 로버트 랭어 MIT 교수가 앞장섰고, 불과 1년 만에 3억5000만달러가 넘는 투자금이 모인 이 회사 이름은 모더나였다. 

 

모더나 탄생을 본 커리코와 와이스먼은 mRNA를 상용화하겠다는 독일 스타트업 바이오엔테크에도 특허 라이선스를 줬다. 충분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 커리코는 2013년 학교에 교수 신분 복원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사실상의 해고 통보였다. 커리코는 바이오엔테크 부사장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학교에 “떠나겠다”고 통보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그 회사는 홈페이지도 없어요”라며 조롱했다.

 


◇”그의 집착이 인류를 구했다”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의 목표는 mRNA로 암 면역 치료, 심혈관 및 대사 질환 치료제 같은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단숨에 세계 바이오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없자 바이오엔테크는 차선책으로 화이자와 인플루엔자 mRNA 백신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가능성을 낮게 본 화이자는 연구비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몇 년 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꿨다. 펜데믹에서 mRNA 백신이 구세주로 떠올랐다. 모더나는 임상에 필요한 백신을 25일 만에 만들었다. ‘빛처럼 빠른 개발’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최소 4년이 걸리는 종전 방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은 “수십 년에 걸친 커리코의 집착이 백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이 억만장자가 됐지만 ‘백신의 어머니’ 소리를 듣게 된 커리코의 선택은 달랐다. 커리코는 지난해 바이오엔테크를 떠나 세게드대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mRNA로 모든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유였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의 mRNA 기술을 현재 의학·바이오 업계에서는 ‘게임 체인저’라 부른다. 내년에 mRNA 독감 백신이 등장하고, 암과 에이즈 백신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커리코와 와이스먼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은 세계적으로 수십억 회 투여한 코로나 백신의 전례 없는 개발 속도를 이끌었고, 암과 같은 수많은 치명적 질병에 걸린 인류를 구하는 백신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했다. 커리코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가을마다 ‘네가 노벨상을 받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면서 “그때마다 ‘난 연구비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던 이민자이자 여성인 무명 과학자가 30년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만둬라’ ‘포기해라’였다. 커리코는 “’난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고 했다. 미련할 정도로 고집한 그의 신념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고, 앞으로 구하게 될까.

☞mRNA(메신저 리보핵산)

DNA(유전자) 유전 정보를 복사해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물질. 신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설계도 역할을 한다. mRNA의 정보 전달 원리를 응용하면 바이러스 항체 등 원하는 단백질을 우리 몸에서 만들 수 있다. 커털린 커리코는 외부에서 주입한 mRNA를 사람의 몸이 이물질로 여기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았다.

 

 

 

 

1. 김관우 소개 (자료 : 나무위키)

 

(1) 개요
- 대한민국의 대전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
- 무려 KOF 96부터 활동을 시작한 1세대 원로 격투 게이머로 KOF 외에 소울 칼리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도 플레이를 하며 어느덧 40대를 넘겼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전드 프로게이머로 대전액션 뿐 아니라 슈팅, 횡스크롤 액션, 리듬게임 등 오락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게임을 다 잘하고 좋아한다. 역시 관운장의 클라스는 어디 안간다

-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으로 돌격형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며 마구 쳐들어가 두들겨패는 타입. 성격상 니가와를 못 한다.
- 캐릭터: 종목과 시리즈를 불문하고 개캐를 절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성능과는 관계 없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고르는데 다음 시리즈에서 그 캐릭터가 개캐가 되면 하지 않는다. 킹오파 시리즈의 경우 96에서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베니마루를 97 들어가면서 버렸고 97에서 재미 본 크리스는 98에서 놓았다. 반대로 늘 개캐라 못했던 이오리를 마침내 99에서 잡았다.
- 연습벌레: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스틱을 잡으며 자리만 깔리면 밤샘도 마다하지 않는다. 멀쩡히 직장생활 하면서 대회 입상할 정도로 엄청나게 수명 깎아먹으며 게임을 한다.


(2) 수상 이력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  96시절 H. I.라는 팀의 팀장으로 데뷔, 곧 최강라인에 올랐다. 당시 베니마루, 로버트 최강자. 시리즈 끝물이었기에 대회입상경력은 없지만 팀배틀과 개인배틀 모두 국내에서 손꼽는 실력이었다. 또한 개캐 없이 중상캐로 다른 팀을 털어먹은 H. I. 특유의 심리전 플레이는 잡기캐릭터+이오리에 집중돼있던 96배틀계전반의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는 데에 일조했다.   97발매와 함께 SNK가 주최한 Asia Tour대회에서 김관우가 8강, 부팀장인 최형일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H. I.는 이후 98발매전까지 시즌통합챔피언이라해도 무리가 없는 성적을 냈다. 현역시절 그들의 활약상은 배틀페이지의 회상글에서 엿볼 수 있다. KOF96시절, KOF97 시절. 97시절 김관우의 대표 엔트리는 클래식쿄, 테리, 마리, 랄프, 야시로, 크리스를 꼽을 수 있으며 크리스는 당시 배틀계 유일의 초고수였다.  팀원과 팀명의 변경이 이루어진 98, 99에서도 여전히 최강라인이었으나 그는 99에서 도입된 스트라이커 시스템을 매우 싫어했고 결정적으로 00발매 직전 군대에 가면서 KOF배틀계에서 모습을 감췄다. 

- 소울 칼리버 시리즈 :  킹오파 팀배틀을 접은 뒤, 개인플레이어로서 소울칼리버를 시작했다. 1부터 5까지 꾸준히 플레이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KOF시절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손꼽는 고수였으며 2012년 초청받은 샤돌루쇼다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스트리트 파이터 4부터 시작하여 당시 크림슨 바이퍼 고수로 이름을 알렸다. 투혼 2009대회 16강에서 인생은 잠입을 탈락 시키며 최종 3위에 입상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는 중캐 정도밖에 안 되는 발로그(Claw)를 사용하면서도 국내 정상급의 실력을 발휘, 일찌감치 마스터를 달성하는 관록을 보여주었다. Online Warrior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끝에 9회차에서 홍콩 유저이자 Talon 소속의 프로게이머인 Hotdog29를 꺾고 마침내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직장인 신분이면서도 프로 실력자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어 격투게임커뮤니티 내에서 많은 리스펙을 받고 있다. 그의 높은 온라인 랭크 덕에 해외에서 컴필레이션 영상이 제작되는 등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온라인 프리미어는 아쉽게 우승에 실패했지만 월드 워리어 한국 대회를 우승하면서 커리어 처음으로 캡콤컵에 진출하였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같은 조에 배정받은 멤버 중 영국의 엔딩워커라는 유저가 있는데 2006년생밖에 되지 않아서 본인에게는 아들뻘 나이다.

 

(3)  국가대표 경력 -  2023 항저우 아시안 게임 
- 스트리트 파이터 5 종목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 2차대회에서 우승하여 1차대회 우승자인 연제길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 9월 26일, 일본의 강자 카와노와 대만의 시앙유린(게이머비)를 차례로 꺾으며 승자조 결승전에 진출해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 9월 27일 대만의 오일 킹을 잡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후 패자조 결승에서 시앙유린이 오일 킹을 누르고 최종결승에 올라갔다.
- 9월 28일, 대만의 시앙유린을 상대로 7라운드 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으로 승리, 전승우승으로 대한민국 e스포츠 종목 첫 금메달을 획득함과 동시에 대회 최고령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 김관우 선수를 응원하는 한국 격투 게임 커뮤니티조차, 김관우 선수의 금메달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당장 격투 게임 최고 권위 대회인 EVO 2022 우승자인 일본 대표 카와노와 스파5로 치러진 마지막 메이저 대회 EVO JAPAN 2023 우승자인 대만 대표 오일킹이 참전했기 때문. 거기에 다른 국가의 대표 선수들조차 큰 대회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반면 김관우 선수는 한 캐릭 장인으론 유명했지만, 경력은 확실히 밀리는 상황. 컨디션과 운이 좋다면 동메달 정도는 노려볼 수 있을까 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대회가 시작되니 상황은 반전.  대진표 덕이 아니라 EVO 2022 우승자 카와노, EVO JAPAN 2023 우승자 오일킹을 연달아 격파하며,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2. [항저우AG] "매일 게임했더니~!" 마흔넷 스트리트파이터 국대된 사연

 

<엠빅뉴스, 2023.9.22>

 

- 항저우 입국 소감 :  와보시니까 좀 어떠세요?


저는 기다리던 순간이었고요. 긴장보다는 좀 더 기대되는 마음이 큽니다.

 

- 적지 않은 나이에 이제 시작하게 됐잖아요.  여기까지 와보셨는데 그래도 성취감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좀 어떠세요?


정말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이 자리까지 오게 됐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더 잘해 나가겠습니다.

 

- 이번 대회 목표는

 

이번 대회 목표 메달 딸 수 있을 거라고 일단 자신감을 가지고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만큼 열심히 연습했고 제가 연습한 만큼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소감은

 
정말 제가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는 이런 자리가 생길 줄은 꿈도 못 꿨습니다.  근데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정말 기쁘고 앞으로도 큰 발전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보고 있을 가족들에게 한마디


꼭 금메달 따서 자랑하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맨날 게임하는데 뭐라고 안 하시고 이 나이에도 지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3. 44세 격투게임 金 김관우 "오락실에서 맞아도 의지와 승부욕으로"

 

<뉴시스, 박지혁 이명동 기자, 2023.09.29  >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스트리트파이터5 우승
e스포츠 첫 정식종목…한국 최초 금메달리스트



[항저우=뉴시스] 박지혁 이명동 기자 = "오락실에서 옆구리를 맞아도 기술 콤보를 넣는데 손을 놓지 않았던 의지와 승부욕으로 지금까지 왔다."  한국 e스포츠 최고령 국가대표 김관우(44)가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섰다.

김관우는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스트리트파이터5 결승전(7전4승제)에서 대만의 샹위린(44)에게 극적인 4-3(2-1 0-2 1-2 2-0 2-1 0-2 2-0)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에서 나온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이다.  1979년생이다. 20대가 주축인 e스포츠 국가대표 내에서 적잖은 나이다.  

게임 비용이 50원일 때부터 제 집 드나들 듯 오락실을 즐겼다. 당시 오락실은 유해 장소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오락실에 갔다가 들통 나면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혼이 나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스틱을 놓지 않았고,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게임의 위상 속에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관우는 29일 오전 항저우 시내 한 호텔에 마련된 대한체육회 스포츠외교라운지에서 열린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스트리트파이터5가)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고 했을 때, 도전적으로 참가했다. 최선을 다해 선발전에서 우승해 국가대표가 됐을 때도 체감이 안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오기 전에 함께 힘들게 훈련했다. 정말 오래 했던 게임임에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아시안게임에서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금메달을 따서 기쁘다.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모두 감사하다"고 했다.

PC를 기반으로 한 e스포츠가 주를 이룬 요즘 1987년 출시된 '스트리트파이터'는 격투 게임의 고전 격이다. 1990년대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경험하지 않은 40~50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선풍적인 인기였다.  당시에는 격투 게임의 폭력성, 선정성을 지적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김관우도 부모님에게 혼이 나면서도 게임에 열중한 경우다.  당시 김관우를 나무랐던 이들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관우는 "그때 혼내셨던 분 중 지금은 어머니 밖에는 없다. 어머니는 이런 걸 아직 잘 모르신다. 찾아보기 힘드신 연세다. 다른 분이 연락을 주셨다. 어머니 아시는 분이 '거기 아들 금메달 땄다'고 연락을 주신 것 같다. 어머니께서 치기 어려운데 카카오톡을 쳐서 문자를 보내주셨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요즘 e스포츠하면 보통 떠올리는 게 PC게임일 것이다. 스트리트파이터는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이다. 가면 항상 혼나던 게임"이라고 회상했다.

격투 게임의 경우, 동전을 순서대로 두고, 이기는 사람이 계속 상대를 바꿔가며 하는 방식이 당시 '오락실 룰'이었다. 이기는 사람은 계속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지면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추가로 동전을 넣어야 했다.

김관우는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편이었다. 오락실에서 격투 게임을 잘하면 항상 근처 형들에게 끌려가서 혼났다. 게임을 잘했던 분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며 "동네에서 맞아보지 않았다면 실력을 의심할 수 있다. 옆구리를 맞아도 기술 콤보를 넣는 데 손을 놓지 않았던 의지와 승부욕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이라는 결실을 맺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 옆자리에 동석한 펜싱의 구본길은 "솔직히 저도 격투게임을 잘한다. 철권을 잘한다. 철권을 했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게임을 한다. 대단한 건 집중력이 중요하다. e스포츠든 스포츠든 다 같은 것 같다"며 김관우에게 "정말 축하드립니다"라고 했다.

김관우는 "감사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4. 우승 인터뷰 내용

 

- 항저우에 을 때만 해도 저는 아직 제가 국가대표라는 게 어떤 건지 아직 체감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시안게임에 오기 전에 이제 같이 정말 힘들게 훈련을 하면서 그리고 정말 오래 해왔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아시안게임에서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금메달을 따는 결과를 얻어서 정말 기쁩니다.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옛날에 혼내셨던 분은 지금 아직은 이제 저희 엄마밖에는 없고요.  저희 어머니도 저희 어머니도 이제 이런 걸 아직은 잘 모르십니다.  잘 찾아보기 힘드신 연세이기도 하시고요.  그래서 다른 분이 연락을 해주셨대요.  어머니 아시는 분이 거기 아들 금메달 땄는가 그런 식으로 아마 연락을 해주셨나 봅니다.  그래서 그쪽을 통해서 이제 약간은 어설픈 카톡 친 것처럼 어설픈 문자로 아들 나 너무 좋다. 그렇게 이제 그런 식으로 문자가 와서 이렇게 보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던 친척 형한테도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오늘 경기에 임하는 각오는 경기력을 최대한 잘 내기 위한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꼭 금메달을 따겠다. 그런 여러 가지 생각보다는 지금 내 앞에 있는 경기를 최대한 잘해서 이기겠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금메달 이거 정말 텔레비로만 보던 거를 제가 한번 이렇게 실제로 직접 해보니까 아직 뭔가 큰 거를 했다라는 느낌은 나는데 대체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약간 멍합니다.  좋습니다. 일단은 좋습니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셔서 너무 저도 기쁘고요. 
제가 금메달 딸 때 같이 기뻐했을 거를 생각하니까 저도 처음 금메달 딴 보람이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여기  항조우 아시안게임에서 애국가 하나가 저로 인해서 울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벅찬 느낌, 진짜 그 자체였습니다. 
감동적이고, 이런 순간을 내가 또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 정말 모든 지원 아끼지 않고 해주신 한국e스포츠협회에 정말 감사드리고요.  제가 금메달 딴 걸로 그동안의 고생 앞으로도 고생 아직 더 하시겠지만 고생하신 거 조금이라도 보람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입니다.  신나게 멀리서 응원해 주신 팬분들 그리고 친구분들 고맙고 마지막에 저로 인해서 이제 급하게 중개가 하나 잡힌 것 같지만 같이 결승전 보면서 재밌게 봤을 친구들 그리고 또 금메달 땄을 때 기뻐했을 응원해 주신 분들한테도 좀 고맙고 그리고 많이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 가족들은 이제 잘 모르실 거예요.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실 텐데 가서 약간 서프라이즈로 금메달 딱 바로 보여드리면서 내가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금메달 애국가 올라가는 장면 다시 볼 수 있으면 그거 같이 한번 보면서 제가 한번 직접 보여드리면서 좋아하시는 모습 보고 싶어서 아직 정확히 안 알려드리고 있는데요.  가서 제대로 서프라이즈 하겠습니다.

 

- 40대에 보내는 메시지  :  

  뭔가가 잘 안 되면 항상 떠오르는 게 이게 나이 때문인가?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나이긴 한데 그런 생각하지 말고 좀 더 연습하면 되겠지.   그리고 옛날에 우리가 잘했던 거 생각하면서 연습하면 게임뿐만이 아니라 사실 뭐든지 아직 많이 더 역시 옛날에 우리가 잘했던 전성기 시절처럼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40대 화이팅.

 

 

放於利而行 多怨(방어리이행 다원)

 

 

< 중앙일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2023.09.28 0 >

 



이익을 앞세우면 원망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자를 계승한 맹자도 특별히 이익을 경계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은 “장차 무엇으로 이 나라를 이롭게(利) 하시겠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 이를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바른 정치는 이익보다 인의를 중시해야 함을 설파한 답이다. 여기서 ‘하필왈리(何必曰利)’라는 4자 성어가 생겼다. 왕이 이익을 챙기면 신하나 백성도 당연히 이익에 눈이 멀어 하극상도 서슴없이 벌이게 될 것이라는 게 맹자의 설명이었다.

 

放: 놓을(둘) 방, 利: 이익 이, 怨: 원망 원. 이익에다 (마음을) 두고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 23x75㎝.


인의(人義)를 홀시한 채, 이익에 함몰되면 원망이 많아져서 못 할 짓이 없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개·돼지로 보는 현상이 속출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다분히 그런 양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이익만을 향해 치달릴 게 아니라, 이익사회일수록 인의를 중시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그런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인의가 없는 이익사회는 ‘동물의 왕국’과 다를 바 없다. 설탕물처럼 단 ‘이익’이 살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갈증에 시달리다 죽는 길이다. ‘인의’만이 사는 길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누구나 조금씩은 틀린다

 

 

< 중앙일보,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2023.09.28  >

 

 




2023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 『트러스트』는 대공황 시기 공매도로 거대한 부를 이룬 한 투자자와 그 아내에 관한 액자소설로 시작한다.

안타까운 아내의 죽음과 이어지는 우울한 삶으로 소설이 끝나나 싶은 순간, 새롭게 등장한 화자의 자서전이 다시 시작된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인데, 동시대를 살아간 다른 이름의 투자자의 삶이 좀 더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자서전이 미완성으로 끝나고 바로 세 번째와 네 번째 화자의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짐작하셨겠지만 이 네 이야기는 모두 같은 사람에 대한 것으로서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 작 영화 ‘라쇼몽(羅生門)’과 흡사한 구조다.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의 1959년 작 『설산비호』에서는 더 나아가 두 개의 연관된 사건에 관한 여러 사람의 조금씩 왜곡된 진술이 이어지고 이들을 다 듣고 나서야 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기억은 오염되고 왜곡되어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진술이 나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저장된 정보를 읽어내거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때도 매 순간 오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 안전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오류 수정(error correction) 방법들을 연구해왔다. 잘 알려진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진술이 10%의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면, 독립적인 세 명의 진술을 듣고 다수의 의견을 취할 경우 오류 가능성이 3% 이하로 떨어진다. 다섯명의 진술을 모을 수 있다면 오류 가능성을 1%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나 영상을 시청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오류 수정은 쉬지 않고 이루어진다.

오류 수정을 일상화해야 잘못된 판단을 피할 수 있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주장을 폭넓게 청취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으로 나아가는 동서고금의 지혜인 듯하다.

김영훈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학부모, 학교는 편의점처럼 생각하고 자기 책임은 뒷전...정부 차원 대책 지속돼야”


오노다 마사토시 오사카대 명예교수 인터뷰

 

 


< 조선일보, 최은경 기자,  2023.09.29.  >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원단체들은 앞다퉈 교권 침해 사례를 수집해 공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지난달 공개한 ‘교권 침해 사례 모음집’도 그 중 하나다. 총 121쪽에 달하는 사례 모음집에는 교사들이 교실 안팎에서 겪어야 했던 고충 1만1628건이 고스란히 담겼다.

놀라운 점은 제보 접수된 교권 침해 피해 사례 71.8%(8344건)의 주어가 ‘학부모’였다는 사실이다. 지난 두 달간 ‘학부모의 악성민원’은 교사를 우울증에 빠뜨리고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가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요즘 학부모들은 왜?”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일본판 교권 침해 전문가 오노다 마사토시(68) 오사카대 명예교수(교육학)를 최근 전화 인터뷰했다. 자녀를 앞세운 학부모의 악성민원 문제는 이웃나라 일본이 20년 전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를 지칭하는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단어도 널리 쓰였다. 오노다 교수는 이 같은 학부모 민원을 둘러싼 교육 현장 갈등을 2000년 처음으로 논문으로 발표했던 인물이다. 이후에도 교육 현장을 직접 찾아 교권 침해 피해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오노다 교수는 “악성 민원은 학부모·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며 “정당한 요구와 악성 민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악성민원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부가 이 문제를 교사와 학교 현장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며 “교사 당사자들과 정부가 대응책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전망이 밝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부모의 악성 민원 문제는 왜 나타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성숙해서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엔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는 마땅히 있어야 할 당연한 존재’다. 학교·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부모의 민원, 요구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복지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학교와 같은 기관이 편의점처럼 빨리, 편리하게, 무엇이든 다 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급속히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래 가정·보호자가 책임져야 할 자기 아이의 일조차 학교·교사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주말 학교 밖에서 아이가 사고를 쳐도 그 책임을 ‘지도를 제대로 안 한 학교·교사’에 돌리는 게 현실이다. 청소년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정부, 국회의원, 교육계, 언론 너나 할 것 없이 ‘학교의 책임’을 찾는 것도 문제다. 학부모도 똑같이 자기 책임을 돌아보지 않고 학교·교사의 책임만 찾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표현도 널리 쓰인다.

“학부모를 ‘몬스터’라고 부르는 건 맞지 않는다. 애초에 미국에서는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를 지칭하려고 만든 단어다. 또 학부모라는 집단 전체를 악마화 해봐야 이 문제 해결엔 도움도 안 된다. 사실 학부모의 요구 전부가 ‘악성민원’인 건 아니다. 나는 학부모의 요구를 ①교사가 꼭 들어야 할 정당한 요청 ②듣고 대응 가능한 수준의 불만 ③무리한 악성 민원 등 세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개념을 명확히 하려면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악성 민원’으로 분류되는 학부모 요구에는 교사가 ‘그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거절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교사에 대한 학부모 악성 민원 문제, 일본에선 해결됐나?

해결되지 않았다. 학부모의 행동력, 에너지를 학교·교사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요즘은 인터넷에서 ‘학교에 민원 하는 법’을 배우고 정보도 공유한다. 일본 정부 대응도 문제다. 학교 내 문제는 학교 세운 사학법인이나 지역자치단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발을 빼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 악성 민원에 대응하는 방식이 지역별로 다 다르다.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기도 어렵다. 2005년 문부과학성(일본의 ‘교육부’에 해당)을 직접 찾아가 정부 차원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최근엔 ‘학교 변호사’ 제도도 도입됐다. 하지만 잘 안 된다. 변호사 상담료가 1시간 2만엔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예산으로는 1시간 상담 받는 게 고작이다. 이러면 변호사도 교사·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몇 마디 자문해주는 게 전부다.”

-학부모의 악성민원 현상이 일본 교육계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일본 학교는 심각한 교원 부족 문제에 시달린다. 교사를 구하고 싶어도 교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일본 교사는 수업, 아날로그 방식의 행정업무, 동아리 활동 지도 등 너무 많은 일을 맡아 노동시간이 길다. 잔업 수당이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교사-보호자 사이의 갈등도 교사가 기피직업이 된 이유 중 하나다. 2000년대 수 차례 교사를 대상으로 업무 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 장시간 노동과 보호자 대응이 교사를 괴롭게 하는 이유로 꼽혔다.”

-일부 학부모가 교사를 대하는 방식,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일부 학부모들의 태도는 자기 자녀에게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악성 민원 내용을 살펴 보면, 그 뿌리에 지나친 ‘내 아이 중심주의’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기념사진 가운데에 우리 아이를 세워달라’, ‘동아리에서 우리 애가 활약할 기회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이런 부모들은 사실 자녀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단, 자신의 액세서리처럼 취급하곤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선 자녀도 자립심을 기를 기회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호자들의 이런 ‘내 자식 중심주의’가 강해지고, 악성민원 수준도 황당해지고 있어 문제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내놔야 할까

“안타깝지만 이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특효약은 없다먼저 한국 교육학자, 사회학자들이 이번 사건을 지금 이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연구해야 한다. 왜 한국의 학부모들이 교사에 과도한 요구를 반복하는지, 일부는 왜 수사기관에 신고까지 반복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학부모 개인의 인격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걸 찾고 개선해야 한다. 사실 교육계에선 학생의 문제만 늘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따돌림, 등교거부, 학교폭력 등은 큰 문제로 인식하고 깊이 연구하려 하지만, 교사의 스트레스 등은 교사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넘어가기 일쑤다.

정부가 책임지고 대응한다는 의지도 중요하다. 교사가 해결할 수 없는 학부모의 요구는 교장·교감이 대신 맡도록 정부가 분명히 정리를 해줘야 한다. 교장·교감 등 단위 학교가 대응하기 어렵다면, 지역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이 나서줘야 한다.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중간에서 지속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일본보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고소 사건이 많은 한국의 특성을 고려해, ‘학교 변호사’ 등 법률 자문 지원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꾸준히 예산을 확보하고 지원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한가

한국 교육부가 학교 내 ‘민원전담팀’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방식에 찬성한다. 학부모를 담임교사 1명이 상대하게 내버려두기 보단, 관리자급인 교장·교감이 전담하는 방향이 맞는다. 다만 인력을 추가로 보충해줘야 할 것이다. 또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교육상담·심리상담 교사도 전담팀에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소통기구를 학교 밖, 즉 지역 교육청 단위로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는 절차를 늘려봐야 결국은 학부모의 화만 돋운다. 그 피해는 담임교사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교사들에게 조언한다면?

“20년째 전국 학교를 찾아 학부모-교사 트러블 문제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교사를 만날 때마다 나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한다. 교사들 대부분은 학창시절 부모·교사의 말을 잘 듣고, 성실하게 공부했던 모범생들이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의 악성민원에도 ‘NO’를 말하지 못한다. 자기 일이니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도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학부모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교장·교감, 지역 교육청에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해도 된다. 교직이나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래도 한국은 교사들끼리 집단 행동을 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도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을 한 달 만에 발표했다. 20년 전 일본에선 없었던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사회적 의지가 크다는 건 대단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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