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언어로 세태를 풍자하다
- 박제영 시집 『안녕, 오타 벵가』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문학나무사에서 2009년에 인물시집 『사랑했을 뿐이다』와 『노래했을 뿐이다』를 펴냈었다. 시인과 소설가 28명이 인물을 소재로 쓴 시 52편을 나누어 실은 두 권 시집은 그 인물의 특징을 한 편의 시로 요약ㆍ정리한, ‘언어로 그린 초상화’ 시집이었다. 각 시마다 이인 화백이 그린 인물의 초상 및 시인과 인물이 맺은 각별한 인연이나 인상을 적은 시작노트가 곁들여져 있어 보고 읽는 즐거움이 아주 쏠쏠했었다. 박제영 시인의 제6시집 『안녕, 오타 벵가』를 읽으면서 서평자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 바로 그 두 권 시집이었다. 박제영의 이번 시집은 ‘인물시집’이라 일컬을 만하다. 제일 먼저 다룬 인물이 화자의 장돌뱅이 (외)할머니다.
전국 방방곡곡 안 댕긴 장이 없니라
바다 건너 제주장 빼곤 다 가봤니라
이 할미 광주리에 안 담아본 게 없니라
글카다 정선장에서 그마 그니를 만난기라
아라리가 뭔 줄 아나
창자가 열두 번 끊어졌다 속에 암 것도 없을 때
그런 담에야 나오는 소리니라
삼십 년 이슬 맞으며 하늘을 이불 삼아봐야 나오는 기라
ㅡ「아라리」 앞 2연
제 1부의 시 10편은 할머니가 자신의 과거지사와 삶의 철학을 외손자에게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장이 서는 고장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이는 대체로 남자인데(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에 잘 나타나 있다) 화자의 할머니는 아녀자의 몸으로 “바다 건너 제주장 빼곤 다 가본” 장돌뱅이였다.
만주 땅이 얼매나 먼지 아나
만주서 배따시게 해주겠다던 말
다 거짓부렁이었니라
얼어죽을 나랏일!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어린 색시와 세 살배기 딸만 남겨놓고
북망산으로 즈그 혼자 훌쩍 가버렸니라
만주 땅이 얼매나 먼지 아나
세 살배기 업고 넘는 거먹뫼는 얼매나 높던지
세 살배기 업고 건너는 압록강은 얼매나 깊던지
세 살배기 느그 어매 아니었으면
첩첩 뫼를 우예 넘었을깐
굽이굽이 시커먼 강을 우예 건넜을깐
ㅡ「만주」 제 2, 3연
이 시에 따르면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갔지만 일찍 돌아가셨다. 넓디넓은 만주에 화자의 외할머니와 세 살배기 어머니가 남게 된 것이다. 악착같이,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외)할머니는 광주리장사를 하면서 딸을 키웠나 보다.
장똘뱅이들은 본디 집도 고향도 없니라
이 장에서 사흘 살고 저 장에서 닷새 살고
평생을 번지 없이 살았니라
그리 한 생이 갔니라
아라리 고갯길이 뭔 줄 아나
애시당초 길이 아니었네라
장똘뱅이들이 수수백 년 밟아 맹근 길이네라
그니들이 아라리 부르며 넘다 눕다 생긴 고갯길
그기 아라리 고개니라
신식길이 나기 전엔 말이다
ㅡ「가는 날이 장날」 부분
『객주』의 세계가 이 한 편의 시에 압축되어 있다. 수십 년 동안 장에서 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살아간 할머니의 생애는 간난고초나 인생유전 같은 네 글자 한자성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회한에 젖어 푸념을 늘어놓고 때로는 한이 맺혀 세상 원망도 한다. 당연히, “우리 강생이 그저 할배랑 반대로만 살면 되니라/ 하모 그라믄 되니라!”(「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하면서 먼저 간 남편 욕도 한다. 할머니의 넋두리로만 10편의 시를 꾸려간 입담은 실존인물일 법한 할머니의 입담 덕분인지, 시인의 능청스런 재담 실력 덕분이지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이 나라 민중에 대한 신뢰감을 시인이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시에서 ‘할배’는 만주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듬치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 10편의 할머니가 몽땅 동일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땅의 할머니, 그 시대의 할머니(들)였다.
그때는 다 동학이었네라
누구라 할 것도 없네라
왕과 양반들 친일 모리배들 빼곤 죄다
남자고 여자고 애고 어른이고
조선 사람이믄 죄다 동학이었네라
저 무너미 고개 넘어 곰나루 돌아
우금치에서 다 죽었네라
몽둥이 들고 죽창 들고
왜놈들 신식총과 맞섰으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네라
우금치 마루는 시체로 하얗게 뎊였고
시엿골 개천은 아흐레 동안 핏물이 콸콸 흘렀네라
준자 봉자 최준봉
녹두장군 뫼셨던 할배도 게서 죽었네라
니는 우금치가 낳은 씨알이네라
우금치를 잊으면 사람이 아니네라
ㅡ「우금치」 전문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소설도 여러 종 나와 있고 장시도 있지만 길지 않은 이 시 안에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왕과 양반들 친일 모리배들 빼곤 죄다/ 남자고 여자고 애고 어른이고/조선 사람이믄 죄다 동학이었네라”라는 할머니의 말 속에는 민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다. 민중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었지만 힘이 없었다. 힘은 일본과 일본의 지시를 받는 이 땅의 관군들이 갖고 있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모셨던 외할아버지의 함자가 나온다. 최준봉. 그 당시 희생된 이가 몇 만 명이었는지 숫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희생자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어 줄기차게 이어진다. 을미사변의 의병, 징병과 징용, 가미카제 특공대원, 일본군 위안부…….
제2부의 10편은 기리봉동에 사는 부부 58년 개띠 가만덕 씨와 61년 소띠 마귀순 씨의 집안 이야기다. 부부는 늘 티격태격 싸우지만 이혼하지 않은 채 해로하고 있다. 이 땅 서민들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까, 시를 끌고 가는 구수한 입담이 된장 맛이고 고추장 냄새 같다. 가만덕 씨는 당진 출생으로 중견 기업에 취직해 부장까지 올라갔지만 정년 전에 정리해고 되어 집에서 놀고 있다. 그의 아내 마귀순 씨는 가리봉동의 소갈빗집에서 서빙을 하고 불판을 닦고 있다. 텔레비전을 끼고 사는 남편이 못마땅해 “수건으로 남편의 대굴빡을 후려갈기기”(「그 궁뎅이 좀 치워줄래」)도 하지만 두 사람, 속정은 깊다.
김치전 냄새가 노릇하니 허기를 부르는 참이었나
귀순 씨가 그러는규
와유, 어서 와유
그만 뒹굴고 김치전이나 먹어유
어여 먹고 제발 정신 좀 차려봐유
그래서 만덕 씨가 정신을 차렸을까유 못 차렸을까유?
못 차렸다구유?
틀렸슈 정신 차린 만덕 씨 택시 기사로 취직했슈
참말로 다행이쥬 암만유
ㅡ「와유」 후반부
다행히도 만덕 씨가 택시 기사로 취직한다. 그런데 이 집의 아들 영찬이는 법대를 나와서 고시 준비를 5년 하다 포기하고 부동산중개업자로 나선다. 딸 영심이는 이화여대 대학원을 나왔는데 9급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영찬이 그눔아 고시 포기하고 취직한단 게 기껏 복덕방이 뭐래?
그게 은젯적 일인데 왜 또 그놈의 복덕방 타령이래유 글구 복덕방이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회사라잖아유
그게 복덕방인겨 법대 나와서 복덕방이 뭐여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는 법인디 고작 5년 만에 포기하는 그기 사내새끼가 할 일이냐 이 말이여 누굴 닮아 그러나 몰러
이 양반이 애먼 사람을 왜 또 긁는대유
영심이 그년도 똑같여 넘들 다 부러워하는 이대 대학원까지 나왔으면서 맨날 빈둥거리는 꼴 좀 봐 애들이 다 누굴 닮았나 몰러
시방 그게 말이유 가마니유 영찬이 영심이가 가씨유 마씨유 누구 씨유 글구 영심이가 뭘 빈둥거려유 공무원 준비한다고 그러는 거잖유
그니까 하는 말이여 이대 나온 애가 7급도 아니고 9급이 뭐여 그럴 거면 대학원은 왜 댕겼대
그런 당신은 택시 몰 거면 대학은 왜 댕겼대유 그리 잘났으면서 회사는 왜 짤렸대유
ㅡ「영찬이와 영심이는 누구를 닮았나」 앞 연
부부의 말다툼 속에 네 식구의 면면이 다 드러난다. 이 네 식구는 우리 사회의 압축파일이자 민중적 삶의 척도이다. 오래 실업자로 있다가 택시를 몰게 된 아버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어머니,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하는 아들, 9급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딸은 그야말로 이 땅 서민의 초상이다. 네 식구가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아옹다옹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특히 충청도 사투리가 이 시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다른 시에서도 박제영 시인은 민중의 쌩얼, 즉 서민의 민낯을 그리고 있다.
평생을 졌다
평생을 진 사람들이다
식솔들의 짐을 대신 지고
식솔들을 대신해서 치러야 했던
아비규환의 밥그릇 전쟁
끝내는 질 때까지
세상의 모든 전쟁터를 누볐다
지고 또 지고, 기꺼이 지면서
마침내 졌다
ㅡ「지는 세계」 제 1연
시인은 “평생을 진 사람들”이 이제는 이기기를 바라고 있다. 얼굴을 들고 걷기를, 어깨를 펴고 걷기를 바라고 있다. 지고 또 지고, 기꺼이 지더니 마침내 졌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세상이 제 것인 양 으스대는 정치배들, 고급공무원들, 재벌 2세들, 종교귀족들……. 왕조시대에는 “왕과 양반들 친일 모리배”들이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자들이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침내 졌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지는 세계가 아닌 이기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려니.
이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한 폭을 본다.
코로나 씨에게 세상을 초토화시킨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세상이 아니라 당신들이 망한 거다 오히려 세상은 안정되고 있고 지구는 안전해졌다
코로나 씨에게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처음부터 당신들과 함께 있었다 본래 우리는 한 몸이었다 균형을 깬 건 당신들이다
코로나 씨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냐고 물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마침내 사람의 씨가 마르면 암흑천지와 혼돈천지가 걷히고 세상은 새로운 빛과 질서를 찾을 것이다
ㅡ「코로나 씨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부분
시인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내습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대유행, 창궐, 팬데믹 운운하지만 생태환경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세상은 안정되었고 지구는 안전해졌다. 비행기나 배, 승용차 등 운반수단이 덜 다니면 지구는 그만큼 정화될 것이다. 지구온난화도 늦춰질 것이다. 인구가 과밀해지면 과밀해질수록 지구 오염은 심해질 테니 인류가 적당히 줄어주는 것도 전 지구적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다. “마침내 사람의 씨가 마르면” 즉, 인류의 멸종이 오면 “암흑천지와 혼돈처지가 걷히고 세상은 새로운 빛과 질서를 찾을 것이다”는 말은 얼핏 보면 역설인데 가만히 바다의 오염과 열대우림 지역의 개발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시인은 흡사 예언자처럼 이렇게 말한다. “천 년 후, 코로나 씨는 코와 입이 사라진 신생 인류의 신이 되었다”고. 즉, 자손 대대로 마스크를 쓰면 코와 입이 가려진 신생 인류가 나타나 돌아다닐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는 유모차를 타고 가는 신생아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써야 함은 물론 동네 한 바퀴 산보를 하더라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우리는 그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퇴치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독감바이러스가 그렇듯 이 지구에서 내쫓을 수는 없다. 바이러스라는 것이 없었는데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구제역, 메르스, 라사열, 마르부르크, 리프트계곡열, 로키산홍반열, 주닌출혈열, 뎅기열, 크리미아-콩고출혈열……. 이런 것들이 총궐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브라질 밀림 개발, 아프리카 코끼리 사냥, 덴마크령 페로제도와 일본 타이지 마을의 고래 대량 학살 같은 것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인간의 추악함이 이야기되고 있는 표제시를 보자.
1906년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 사장은 모처럼 붐비는 사람들로 희희낙락 콧노래를 불렀어. 특별히 거금을 들여 데려온 동물이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지.
원숭이 우리 앞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
<나이 24세, 키 150㎝, 몸무게 45㎏, 인간과 매우 흡사함>
난생 처음 본 동물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들은 이내 빵 부스러기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좋아했어. 물론 몇몇 어른들은 기대했던 눈요깃거리에 못 미친다며 야유와 욕설을 내뱉기도 했지만 말이야.
ㅡ「안녕, 오타 벵가」 앞부분
콩고의 한 전통부족인 ‘오타 벵가’라는 남성이 미국인들에 의해 인간임에도 동물로 취급되었다. 20대 초반으로 결혼하여 아내와 아이도 있었다. 뾰족한 치아와 작은 키(151cm)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주목한 미국인 몇이서 구경거리 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미개인이다, 진화가 덜 되었다, 구경거리로 삼으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타 벵가는 미국의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오랑우탄 우리에 지내게 되었다. 추운 날에도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없었다. 인간을 닮은 동물이 있다는 소문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했다. 세월이 꽤 흘러 그는 미국 내 흑인 관료들에 의해 동물원에서의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브롱크스 동물원 측에서는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1904년 벨기에군이 콩고를 침략했을 때, 콩고 원주민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을 때, 스물네 살의 피그미족 청년 오타 벵가도 비극을 피할 수는 없었어. 일가족이 학살당하는 생지옥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결국 붙잡혔고 노예 상인에게 팔렸지. 이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으로 팔려와 원숭이 우리에 전시된 것이었어.
1910년 인권운동가들의 항의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1916년 벵가는 권총 자살로 서른네 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
ㅡ「안녕, 오타 벵가」 중간부분
오타 벵가는 뉴욕에 정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고향으로 가는 하늘길이 막혀버렸다. 그는 거기서 취직을 하여 돈을 번다. 구경거리가 아닌 일을 해서 돈을. 그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권총을 한 자루 샀고, 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브롱크스 동물원과 야생동물 보존협회(WCS)는 114년 만에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오타 벵가 이야기를 시인이 왜 시집의 표제시로 삼은 것일까. 먼 미국에서의 일이고 1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구태여 시로 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시인의 꿈이 만민평등사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 이야기도, 우금치 농민봉기 이야기도, 가리봉동의 네 식구 이야기도, 사실은 우리 사회의 평등하지 못함을 들려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시가 있다.
오십 평생 한눈팔지 않았는데, 잘못 살았다네
배운 대로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잘못 살았다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겠네
귀신도 곡할 노릇이라
어느 날 문득 깨어보니
아내도 없고 아내와 살던 집도 없어졌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대답하는 이 하나 없네
막다른 섬 여기는 어디, 오륙도*라네
고립무원 무인도 여기는 어디, 오륙도라네
오늘은 내가 오르지만
내일은 당신이 올라야 하는
여기는 어디, 오륙도라네
ㅡ「오륙도」 전문
시인이 붙인 각주를 보니 오륙도를 “오십세 육십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이 되는 세상이라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각박한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시편이 아닌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땅값, 집값이 빈부의 격차를 더욱더 벌려놓고 있다. 권력과 금력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상의 구분이 뚜렷했던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시인은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공자도 맹자도 예수도 석가도 불평등함이 세상의 순리이니 불평하지 말라 했다”(「불평등이 순리다」)고. 과연 그렇게 말했을까? 물론 “당신이 생떼를 쓴다고, 억지를 쓴다고 바뀔 일이 아니다”라는 말도 서평자에게는 역설로 들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제1항이 무색한 오늘 대한민국을 향해 던지는 정문일침 같은 시집, 바로 『안녕, 오타 벵가』이다.
■ 이승하
시집 『뼈아픈 별을 찾아서』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외. 평전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최초의 신부 김대건』 『마지막 선비 최익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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