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 출신 조온윤 시인 “공감과 연대…詩로 긍정과 희망 회복했으면”

 

 

<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2022.03.08  >

 

첫 시집 ‘햇볕 쬐기’ 발간
“한국 현대문학 대표시인 박용철은 닮고 싶은 시인”
2019년 문화일보신춘 등단…문학동인 ‘공통점’ 활동

그는 용아 박용철 시인에 대한 경애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박용철 시인은 광주 광산이 배출한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용아 시에 담긴 무욕함과 무구함을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인간적으로도 작품적으로도 닮고 싶은 시인”이라고 덧붙였다.


광주 광산에서 나고 자란 조온윤 시인.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는 그는 박용철 시인을 좋아한다. “고향이 같다는 것뿐만 아니라 문우들과 시문학파 동인을 이루어 활동했다는 점”도 용아를 좋아하는 이유다.


조 시인이 대선배인 박용철 시인에 대해 경애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문학성이다. 구체적으로 “박용철 시인이 자신의 문학성만큼이나 자신과 교류했던 동료 문인들의 문학성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겼다”는 점에서 용아의 인간미를 엿보게 된다. 사실 박용철은 정지용과 김영랑 시집을 발행하는 등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의 시집은 뒤늦게 빛을 봤다.


아마도 조온윤 시인 또한 다분히 그런 기질이 몸에 밴 문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의 주인공보다 무대 뒤편의 조력자’로 누군가를 돕는 일에 보람을 찾는 인간미 넘치는 시인 말이다. 말수가 적고 진중한 그는 내면이 단단해 보였다. 설익은 말보다는 깊은 사유를, 행동의 가벼움보다는 오랜 침묵을 택하는 쪽이었다.


이번에 펴낸 첫 시집 ‘햇볕 쬐기’(창비)의 기저에 흐르는 주제랄까 지향점은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집약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이며 동시에 위로를 줄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나 또한 사람들에게 숱하게 상처받았고, 그 상처에 대한 위로도 사람들로부터 받았어요. 오늘의 시대를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집을 통해 한 줄기 실낱이라도 인간에의 긍정과 희망을 회복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의 시는 세상 모든 혼자의 곁에 함께 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묵시’)를 이해하고 “누군가 반드시 들어주길 바라며/ 누구도 필요 없다고 외치는”(‘공통점’) 안타까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확하게 혼자”(‘다른 차원에서 만나요’)라는 사실에 누군가 절망하고 있을 때, 그 절망은 혼자일 리 없다며 마지막까지 믿은 자의 것임을 일러준다.


“매일 빠짐없이 햇볕 쬐기/ 근면하고 성실하기/ 버스에 승차할 땐 기사님께 인사를 하고/ 걸을 땐 벨을 누르지 않아도 열리는 마음이 되며//도무지 인간적이지 않은 감정으로/ 인간을 위할 줄도 아는 것/ 혹은// 자기희생/ 거기까지 가닿을 순 없더라도…”


위 시 ‘중심 잡기’는 시집의 제목인 ‘햇볕 쬐기’를 떠올리게 한다. 나희덕 시인은 해설에서 “‘햇볕 쬐기’ 또는 ‘햇볕 되기’는 “언 땅 위를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골몰”하다가 발견한 ‘중심 잡기’의 방식”이라고 평한다. 시집 전체의 분위기를 ‘내향적 산책자의 수화’라고 정의한 것에 절로 수긍이 간다.


시인은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인 문우들의 도움이 컸다. 광주에서 ‘공통점’이라는 문학 동인 활동을 했다.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또 시집을 엮는 동안 문우들로부터 많은 힘을 얻었다”는 말에서 서로 ‘햇볕 되기’를 추구했던 문청들의 따스한 마음이 읽힌다.


“한창 열심히 활동할 때는 일주일마다 창작시를 가져와 몇 시간에 걸쳐 합평하고 책 얘기를 나눴지요. 학교(조선대 문창과)에서 합평 수업을 할 때면 지나치게 날 선 비판으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말고 서로의 작품을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암묵적인 규칙을 정했어요.”


2016년부터 시작한 공통점은 벌써 6년이 넘게 별 탈 없이 함께해오고 있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는 독립출판과 문학예술 프로젝트 기획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올해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연구생에 선정돼 다음 작품활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다음으로 쓰게 될 작품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으로 쓰고 싶다”고 한다. 무엇보다 동인들과 함께 추구하는 ‘같은 통점이 되는’ 문학을 할 계획이다.

 

 

 

2.

출판사 제공  ‘햇볕 쬐기’(창비)  책 소개

 


“잠시 무너지고 나면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슬픔의 뺨을 다정히 매만지는 따사로운 손길
가장 단단한 어둠을 녹이고 태어난 가장 환한 안녕

★ “이 시집을 통과한 뒤엔 사람들 속으로 되돌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안희연, 추천사)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온윤 시인의 첫 시집 『햇볕 쬐기』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삶을 향한 사려 깊은 연민과 꾸밈없어 더욱 미더운 언어로 온화한 서정의 시 세계를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어둠을 빛 쪽으로 악착같이 밀며 가”(안희연, 추천사)는 시편들을 통해 세계 속 선함의 자리를 한뼘 더 넓히고자 한다. 살아 있기에 견뎌야 하는 괴로움에 주저앉더라도 우리에게는 서로를 일으켜줄 손이 있음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시인의 “지극한 선량함”(나희덕, 해설)은 체념과 위악으로 가파르게 흐르기 쉬운 마음을 단단히 붙든다. 고립이 일상이 된 지금, 『햇볕 쬐기』는 타인의 온기를 잊지 않길 바라는 가장 순하고 정한 진심으로 내놓은 시집일 것이다.

조온윤의 시는 세상 모든 혼자의 곁에 선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묵시」)를 이해하고 “누군가 반드시 들어주길 바라며/누구도 필요 없다고 외치는”(「공통점」) 안타까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확하게 혼자”(「다른 차원에서 만나요」)라는 사실에 누군가 절망할 때, 그 절망은 혼자일 리 없다고 마지막까지 믿은 자의 것임을 일러준다. 순수하고 정직한 믿음일수록 더 깊고 짙은 절망을 드리운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이 외로움이 나쁘지만은 않”(「휴일」)다고 말하는 이의 눈에 어린 물기를 읽는다. 혼자라는 말 뒤에 숨은 이의 여린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혼자를 결코 혼자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자기 안에 슬픔을 가둔 이에게 다가가 슬픔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 어루만지는 시인의 손길은 밖으로부터만 가능한 온기가 있음을 실감케 한다. 눈을 감아도 들어오는 빛처럼 닫힌 마음을 비집고 스미는 따스함은 “길고 긴 복도 같은 일인칭을 걷”는 것만 같던 삶을 순식간에 “나란한 옆모습”(「유리 행성」)과 함께 나아가는 일로 바꾸어낸다.

우리가 손을 잡고 원을 이룰 때 피어나는 빛
고통의 세계 속에서 발명한 원주의 방식

조온윤의 시를 읽다보면 인간의 ‘손’이 그리는 선함의 풍경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손은 넘어진 이를 부축하고 떨고 있는 이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연결해 원을 이루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맞잡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원 속에서 “내 왼손을 잡은 사람과/내 오른손을 잡은 사람이 손을 놓지 않으며/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줄 때”(「주변인」) 시인은 손이야말로 인간 안의 한줄기 선량함의 증거이며 교감과 공존의 바탕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시간의 횡포에 무릎 꿇고 권태의 칼날에 찔리면서도”(추천사) 타인을 향해 뻗는 손만큼은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손의 윤리에 동참하는 것이 삶을 좀더 견딜 만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 또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혼자의 슬픔을 어르기 위해 가장 먼저 내미는 것도 바로 ‘손’이고, “죽은 듯이 보내던 인고의 시간”(「콘크리트 산책법」)을 통과해 우리 앞에 도착한 시인의 손은 이제 “햇볕에 몸과 마음을 내어 말리는 고즈넉한 시간”(해설)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햇볕 쬐기』는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무사히 고통의 세계를 건너기 위한 조온윤식 방법론이다. “모두가 조금씩만 아파주면/한 사람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물으며 “한 사람을 위해 팔을 꺾”어 “포옹”(「원주율」)의 원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시인은 ‘혼자 살아남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를 성실하게 꿈꾼다. 그 곧고 진실한 마음을 따라 원을 이룰 때, 그렇게 “슬픔 다음에 올 것”(「검은 돌 흰 돌의 시간」)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새롭게 피어나는 빛이 있다. 이 눈부신 빛이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함께 걷는 우리로부터 비롯되는 ‘햇빛’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시집을 덮을 때쯤 찾아온다. “눈을 감게 하지만 손을 더듬어/다른 손을 찾게도”(「백야행」)하는 빛 덕분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더욱 꽉 잡게 될 것임을,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고 전해지는 온기는 우리가 서로를 더 가까이 보듬도록 도울 것임을 『햇볕 쬐기』는 나직하게 전하고 있다. 

시인 이정록 "청춘을 향한 진심어린 위로"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이정록 저자 인터뷰

< 채널예스,  2020.12.28 >

 


청춘은 봄이죠. 마음에 봄 햇살과 새싹과 푸른 우물이 출렁인다면 모두 청춘 시집의 주인공인 것이죠. 아직 오지 않은 ‘참된 나’를 기다리는 사람 말이에요. 



김수영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등을 받은 이정록 시인은 30년 넘도록 시를 써온 시인이자, 30년 넘는 세월을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고등학교 한문 교사다. 

 

신작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는 시인이 특별히 ‘청춘 시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잘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하나로 불안한 하루를 보내는 청소년과 2030 청춘들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라떼 꼰대’처럼 청춘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청춘을 거창하게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고단한 감정의 파편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일상의 가벼운 언어로 펼쳐 보인다. 청춘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낸 선배로서, 또 그런 청춘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재야의 고수답게 다정하고 명랑한 시들은 짧고 명료하되, 깊이가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제목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요? 

출간 막바지까지 시집 제목을 정하지 못했어요. 글도 그렇지만 책은 제목 붙이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문패가 되겠다고 표지 앞에서 서성거린 제목이 많았죠. 마지막까지 문을 두드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제목은 ‘얼룩말은 얼룩이 생명이다’, ‘별명의 탄생’, ‘가시나무는 가시가 최전선이다’, ‘꽈배기의 시간’,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등이었죠. 어떤 제목은 예스럽고, 어떤 제목은 청춘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았어요. 또 ‘꽈배기의 시간’이란 제목은 시참(詩讖)을 불러올 것 같았어요. 제목 때문에 화를 입거나 독자에게 불행을 건네고 싶지 않았어요.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제자들이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를 뽑았어요. 반마다 70퍼센트쯤이 똑같은 제목에 손을 들고 자신들의 마음을 얹어 이야기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지금의 나보다 더 똑똑하고, 건강하고, 우람하고, 밝고, 예쁜 ‘내’가 막 오고 있다고. ‘아직 오지 않은 나’를 반갑게 마중하겠다고 손을 막 들더라고요. 어른들이 이런 막말을 할 때가 있잖아요. “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청년들은 모두 답을 갖고 있었던 거죠. ‘아직 오지 않은 나’가 될 거라고. 이 제목을 떡하니 올려놓자, 다른 제목들이 머리를 긁으며 시집 구석구석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더군요. 좋은 이름을 선물하게 되어 기뻐요. 

청춘은 봄이죠. 마음에 봄 햇살과 새싹과 푸른 우물이 출렁인다면 모두 청춘 시집의 주인공인 것이죠. 아직 오지 않은 ‘참된 나’를 기다리는 사람 말이에요. 아직 오지 않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환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깔보는 성깔도 담고 싶었어요. ‘맑은 분노’라는 게 있잖아요.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를 특별히 청춘 시집이라 칭한 이유가 있을지요?

그동안 어른이 읽는 시와 어린이가 읽는 동시를 많이 썼어요. 2017년에는 『까짓것』이란 청소년시집을 낸 바 있어요. 요번에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의 절망과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어린이가 읽는 청춘과, 청춘이 읽는 청춘과, 어른이 읽는 청춘을 그러안고 싶었지요. 어른의 과거와 어린이의 미래와 청소년의 현재를 두루 담아내고 싶었지요. 청소년이라는 독자를 핵으로 두고 과육을 넓혀보자는 마음이 생긴 거죠. 모자란 부분은 다른 작가들이 함께해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열심히 잇대어 쓰고요. 

‘아직 오지 않은 나’란 ‘꿈’의 다른 말이지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면에서 꿈은 곧 절망이자 희망이죠. 요즘 청소년들은 ‘절망’이란 말 대신 ‘빡치다’는 말을 쓰죠. ‘빡침’은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의 짜증을 말하죠. 파편으로 솟구치는 절망이랄까요. 날아가던 새가 유리창에 부딪혔다고나 할까요.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몸은 바닥에 떨어지겠지요.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자만이 빡치는 거죠. 산산조각으로 다시 산을 건축할 기회가 생기는 거죠. 땅속에 묻힌 돌을 발굴해서 주춧돌을 놓는 게 아니라, 내 이마로 깬 돌을 모아서 성을 쌓고 징검돌을 놓는 거죠. 

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이런 말씀을 건네고 싶어요. 내 꿈의 ‘빠’가 되자. 꿈빠순이, 꿈빠돌이가 되자. ‘청춘’은 인생 전체의 ‘땜빵’ 자리도 아니고 누군가의 ‘시다바리’도 아니죠. 스스로 청춘을 낮잡지 말아요. 청춘은 인턴(intern), 실습생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인(in)이 있어야, 턴(turn)이 있죠.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에 실린 58편의 시가 다 좋지만, 그 가운데서 이정록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한 편을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나에게 쓰는 쪽지」를 건네고 싶어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끼를 즐기자 

아무 목숨이나 잡아먹지 말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차갑게 살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푸른 하늘만 보자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별을 노래하자 

하늘에 대고 둥근 나팔을 불자 

꼭 하나, 내 우물은 내가 파자 

별에게서 가장 먼 깊은 우물이 되자

그리고 옆으로 곁으로 우물을 잇대자 

모든 별이 다 들어올 수 있게 한 우물만 파자  

우주 안 개구리가 되자 



먼저 꿈의 우물을 골라요. 남을 잡아먹지 말아요. 다른 이의 피와 고기 맛에 길들지 말아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살아요. 겨울 하늘처럼 별을 노래해요. 내가 판 우물이 둥근 나팔이 되어서 다른 이를 이끌어요. 신도 내려와서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해요. 말씀〔言〕은 하늘에 대고 나팔을 부는 모습을 그려놓은 한자(漢字)예요. 노래하는 이가 리더예요. 가장 깊은 우물이 가장 먼 별을 품어요. 그런 다음 옆으로 파요. 벗들 곁으로 다가가요. 초록 별이 다 한 우물이 되겠지요. 융합 말이에요. 세계가 하나의 꽃으로 피겠지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주 안 개구리로 신나게 노래하겠지요. 


「별명의 탄생」 「청춘 작명소」 「봉사 시간」 같은 시를 보면 학생들의 현실에 잘 맞닿아 있는데요, 학교에서는 어떤 선생님인지요? 

아이들의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위치라서 그런가 봐요. 「청춘 작명소」는 여러 학교, 삼천 개가 넘는 사물함을 살펴보고 쓴 시죠. 「별명의 탄생」과 「봉사 시간」도 사실을 그대로 옮긴 시고요. 

저는 그림을 좋아해서 만화가나 화가가 되겠다고 꿈꾼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진학 때 미술장학생으로 진학할 뻔도 했지요. 그리고 아이들과 학생 연극을 십여 년 했어요. 제 시 속에는 그림이 있고 등장인물이 있고 무대가 있지요. 독자를 유료 관객으로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등단이나 교단도 무대에 올라갔다는 뜻이지요. 유료 관객을 감동케 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주연 배우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자꾸만 자거나 딴짓하는 관객들이 많네요. 저는 끝까지 칠흑도 빛이고 침묵도 언어라고 우기면서 꿋꿋하게 지키려고 해요. “아이들아. 늙은 피에로를 잘 부탁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를 읽다 보니 작가님의 청춘 시절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지금 청춘들과 공통점이나 다른 점이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예나 지금이나 청춘은 매우 짧죠. 하늘로 솟구쳐 날고 싶은데 활주로가 짧죠. 그러니까 청춘 활주로의 끄트머리는 낭떠러지죠. 나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거죠. 떨어지면서 바닥을 칠 것 같은 공포와 솟구쳐 오르는 상승기류를 학습하죠. 

문명의 발달과 첨단과학의 발달은 새로운 청춘 문화를 불러오겠지요. 인간으로서의 근원적인 갈등과 고민은 같지만,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은 매우 다를 거라고 봐요. 열심히 엿듣고 연구해야지요. 달빛이나 신작로를 지나가는 트럭 불빛으로 바람벽에 스크린을 만들어 ‘별 헤는 밤’을 읽던 세대와 사방팔방(四方八方), 시방(十方)의 스크린으로 우주를 노니는 요즘 청년들과는 그림판 자체가 다르지요.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방탄소년단의 노랫말과 춤을 유심히 봅니다. 우리 마당문화가 어떻게 세계의 스테이지를 만드는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에게서 질문을 찾아, 다음 세대에게 파문을 건네는 새로운 문화 양식을 배우고 싶어요. 

책에 ‘히리위리’라는 웹툰 캐릭터가 그대로 들어갔는데요, 시와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그림은 마음에 드시는지요?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 다음 날 연락이 왔어요. 편집자가 원고를 읽으면서 떠오른 그림 작가가 있다고 웹주소를 알려왔어요. 최보윤 작가의 ‘히리위리’ 연작 웹툰을 보면서 금세 눈치를 챘죠. ‘한 식구구나!’라고요. 그림 속에 천진난만한 악동, 소심하지만 과감한 청년 정신이 있었죠. 웹툰 작가가 시를 읽고 협업을 허락하지 않으면 어쩌지? 바빠서 일정을 쪼갤 수 없다고 하면 어쩌지? 조바심이 났죠. 

시에 웹툰 그림이 자리를 잡자, 밋밋하고 쓸쓸하던 호수에 원앙이 날아와 앉고 가시연꽃이 피어났죠.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새가 날아오르고 물보라가 일었지요. 역동성이 생겨난 거죠. 풍경과 의미가 겹겹 회오리치는 활동사진이 된 거죠. 

좋은 그림 작가를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것에 감사드려요. 시와 그림이 서로를 억압하거나 밀치지 않으면서 오순도순 잘 논다는 평을 받았어요. 더구나 모자란 시를 살지게 한다는 섭섭한 이야기도. 하하!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를 읽으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작가는 독자님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죠. 잘 살아남아서 모자란 이야기를 더 쓸 수 있도록 당근을 많이 주세요. 독자님들도 ‘아직 오지 않은 나’를 반갑게 마중하는, 복된 시간을 누리시길 바랄게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시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윤동주문학대상을 받았다.

주요 도서로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어머니 학교』,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동화책 『나무 고아원』, 『황소바람』, 『달팽이 학교』, 『대단한 단추들』, 『미술왕』, 『십 원짜리 똥탑』, 청소년시집 『까짓것』, 동시집 『지구의 맛』, 『콧구멍만 바쁘다』 등이 있다.

유병록 시인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짊어진 당신에게”

『안간힘』 유병록 저자 인터뷰 슬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현재는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간힘’이 마치 ‘인간의 힘’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김윤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2019.11.26)

 
은 슬픔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병록 시인의 첫 산문집  『안간힘』  은 슬픔을 버티고 슬픔과 함께 살아온 기록이다.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감당하기 어려운 큰 아픔 속에서도 저자는 삶을 쓴다. “불행은 전염병이 아니”라는 깨달음, 아이의 침대를 기부하고 눈물로 돌아오던 길, 아내와 다투고 화해를 결심한 밤. 저자는 일상의 기억을 차분한 문장으로 쌓아나간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앙상한 다리로 그러나 단단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 자코메티의 조각 <걸어가는 사람>이 떠오른다. 안간힘을 다하며, 인간은 “이제 위로를 찾아서 한 발을 내딛는다.”

 

등단 10년 차 첫 산문집을 내셨습니다. 그간의 글들을 묶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그동안 시를 써왔고, 산문을 가끔 쓰기도 했지만 부지런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산문집을 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 가깝게 지냈던 이하나 편집자님께서 산문집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짐작건대, 산문집을 내는 일이 제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상 산문집을 내기로 하고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내보여야 하는 게 막막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산문을 쓰고 산문집을 내는 과정을 통해서 제가 얼마쯤은 회복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안간힘’이라는 제목과 버티는 인간의 스케치가 있는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슬픔, 위로 등 수많은 단어 중 왜 ‘안간힘’을 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산문집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면서, 제목들과 함께 산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불쑥 ‘안간힘’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살펴보니 제가 ‘안간힘’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는 걸 알았습니다. 노트에 써 보니, 산문의 결을 잘 담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조금이나마 나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간힘’이 마치 ‘인간의 힘’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으로 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이번 산문집은 작가님의 개인적이고, 깊은 슬픔의 기록입니다. ‘슬픔을 기록한다는 것’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슬픈 일을 겪으면서 ‘도대체 이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한편으로 ‘이 일을 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려 들기 마련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억을 기록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래서 선명하지 않은 흐릿한 상태로만 기억이 난다면, 그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기억을 분명하게 기록으로 옮겨두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작가님께 시와 산문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산문은 ‘유병록’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산문이 제 삶과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는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왜’ 그리고 ‘어떻게’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행복해하는지 보여 주는 장르이겠다 싶습니다. 시는 유병록이라는 ‘인간’에 관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하는지에 관해 쓰는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로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42쪽)”이라고 하셨습니다. 위로를 받는 입장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위로에 마음을 열 수 있을까요? 반대로 슬픔의 한가운데 있는 이에게 ‘위로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위로하는 것도, 위로를 받아들이는 것도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겪은 바를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위로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위로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어쩌면 상대의 상처를 헤집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위로가 자신한테 별 의미가 없으리라는, 아무도 자신을 위로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짐작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나눈 소소한 대화가 정겹습니다. 아내분과 나누는 대화는 작가님에게 어떤 시간인가요?

아내와 저는 대화하는 걸 즐거워해서 함께 있을 때면 지치지도 않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오래 이야기하다 보면 아내의 말에서 힘을 얻을 때도 있고, 상처를 받을 때도 없지 않습니다. 작은 칭찬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조그만 질책도 회초리를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함께 살아가고 서로 의지하는 부부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말보다 아내의 말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오래 나누는 게 단점이 없지 않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상대의 이야기에 오래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단단해진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아끼는 말」에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의 목록이 재미있었습니다. 반대로 작가님이 ‘아끼지 않고, 자꾸만 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어린 시절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동네는 물론이고 옆 동네 어른들까지도 대개는 알고 지냈습니다. 제가 상대를 몰라도 그분은 제가 어디 사는 누구 아들인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습니다. 버스라도 탈라치면, 빈자리가 있는 뒤쪽으로 갈 때까지 줄곧 인사를 하면서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게 갑갑한 면도 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주 인사를 주고받은 까닭인지 고향을 떠나서 생활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단순히 예의로만이 아니라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혹시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면 제가 작으나마 도움이 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주고받는다면 서로 마음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전하고 싶은 독자가 있나요?

저와 아내 모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짊어지고 있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도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그래서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 상황이 견디기 어려워서 주변 사람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가깝게 지내던 직장 동료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잘잘못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저더러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자신만의 힘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분들에게 제 책이 작은 용기를 건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나가고 싶으신가요? 작가님의 이후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안간힘』  이 출간되고 나서, 저와 아내를 함께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지난해에 아내의 산문집이 출간되었을 때, 글과 작가가 참 비슷해서 마치 아내가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산문집을 읽으면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저의 모습과 얼마쯤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실의 저보다 글 속의 제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살짝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니, 저는 제가 닿고자 하는 곳에 글을 먼저 가 있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더 자비로운 모습으로 저를 그려서 글 속에 담아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에 그려 놓은 모습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 삶 속에서 애썼던 게 아닌가, 그게 제가 글을 쓰면 살아온 인생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쓰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시, 좋은 산문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유병록

198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를 펴냈다.

『생활이라는 생각』, 이현승, 창비, 2016 


1. 출판사 서평 (2015.09.25.)

삶의 가장자리에서 시를 길어올리다

생동하는 몸의 세계를 꿰뚫는 투명하고 냉철한 현상학적 시선과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미지로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온 이현승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이 출간되었다. 『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네 2012)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은 “몸을 위한, 몸에 의한, 몸의 것일 수밖에 없을 나날의 삶의 육체성이 어떻게 조직되고 통제되는가를 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몸의 헌정서”(이찬, 해설)이다. 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과 예민한 감성이 어우러진 가운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정한 시편들이 신선한 공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양면적 속성과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위트와 유머 속에 슬픔이 깃든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생활이라는 생각」 부분)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현승의 시에는 말 그대로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시인에게 삶이란 “언제나 선택의 편에서 포기를 합리화하는 일”(「허수아비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만을 기도하”(「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영혼들이 “서로 권하고 축이고/또 이렇게 밥 한끼 얻어먹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다단계」)이다. “불행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삶”(「씽크홀」)의 비애 속에서 시인은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늘 각성과 졸음이 동시에 육박해”오는 “절박한 삶”(「봉급생활자」)을 살아가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생활인의 애환에 연민의 눈길과 “차가움에서 시작해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저글링」)를 건넨다.

이즈음의 삶이라는 것도 부황 자국 같다./살겠다고 제 피를 뽑은 자리의 피멍처럼/죽을 힘으로 살고 사는 힘으로 죽는다는 생각.//생각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결국은 생각이 없어지는 방식으로,/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지지도 못하고 매달린 목련의 부황 자국 같은 얼굴.//(…)//한주에 세번 문상을 하고 나서/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깨닫는 일은 공교롭고 새삼스럽다./죽음은 너무나 당연해서 생략 가능한 문장 같지만/생략된 것을 더듬을 때마다 가슴이 눌린다.(「부끄러움을 찾아서 2」 부분)

이렇듯 우리의 삶은 “피차 빤하고 짠하기만 하”고 “질문이 뭐였는지/답이 안 나오는 삶”(코뿔소」)처럼 무력하기만 한데, 세상은 또 어떠한가. 온통 모순덩어리이다. 시인은 “죄 안 지은 자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상처 많은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일생일대의 상상」)하는 부조리한 세상의 단면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겉은 젖고 속은 타들어가는 이곳에서/지금 살아 있다는 것보다 끔찍한 재앙은 없다”는 절망을 내비치면서, “죄송의 말이 재앙보다 더 잔인하게 들”리는 그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용서라는 말을 없애버리면 좋겠다”(「인정도 사정도 없이」)는 시인의 말은 세상에 던지는 절규에 가깝다.

먼바다는 아이들이 가라앉아 아직 시퍼렇고/사람 죽는 소리에 질린 하늘 아래/백일 동안 멍든 얼굴로 누운 그늘을 보면서/생각한다. 용서가 먼저인지 망각이 먼저인지./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견딤에 대해.//사람들이 곡기를 끊고 시나브로 제 생을 말리는/이곳은 어디인가./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세상은 구천 같다./세월은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사람들을 울려서 눈물을 짜낸다./사람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간신히.(「고통의 역사」 부분)

이 세계에서 “선망이란 언제나 현실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고 “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자라나는 손가락”(「일생일대의 상상」)이다. 시인은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오줌의 색」)에 이른다. 시인은 또 “극빈의 번데기를 열고 나온” “극악”이라는 절망의 극점에 다다른 삶 속에서 “순결을 경매하는 여대생”이나 “신체포기각서”(「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름 끼치는 현실에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희미하나마 희망의 불씨를 “어떤 암시처럼”(「코뿔소」) 간직한다. “내 손은 두개뿐이지만/여러개의 손을 잡고 있다”(「저글링」)는 발언은 고통이 없는 것은 윤리적일 수 없다는 저 레비나스의 윤리학적 시선에 가닿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죽지 못하고/살아 있지만 산 것도 아닌 세월에는 어떤 이름이 필요한가./충격과 분노, 비참과 울화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너무 비싼 삶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삶이 아닐까.//그러므로 기억도 망각이다./할부금을 갚느라 원금을 잠시 잊는 조삼모사,/정치적 무능과 부패를 덮는 대형 참사처럼/하나를 보느라 다른 하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맹목이지만/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하나가 아니다.//기억해야 할 억울이 너무 많은 삶에서/망각이 가장 흔하다는 것은 웃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죽음조차 놀랍지 않은 세상에서 무가치해진 것은 충격이 아니다.//자연이 실수를 한다면/우리는 실수조차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실수하는 것은 여전히 자연이 아니다.(「도그마」 부분)

세상 어디를 둘러본들 “구원도 없고 심지어 절망도 없”고 우리의 삶은 “낙관 자체가 곧 절망”(「고도를 기다리며」)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는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는” 이 불우한 시대에도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천국의 아이들 2」)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이 절망의 그림자일 뿐일지라도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고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기에. 더 나은 삶을 향하여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이 비록 “한심하게” 보일지라도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지만/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에고이스트」)기에.

상처는 상처로만 열린다./잔뜩 풀어 헤쳐논 이 상처들은 다 뭔가./요즘은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는데/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고,/조금 웃고, 조금 끄덕이고, 들렸다 가라앉았다 하면서//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시 쓰는 사람이다./여기 통증은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는데/봉인된 저 상자는 누가 무엇으로 열었는가./하긴 아픈 사람만 봐도 같이 아픈 곳이 천국일 테지.(「천국의 아이들 2」 부분) 


2.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서평 (2015.11.21.)

이현승 시인 ‘생활이라는 생각’

[편집자주] '시인의 집'은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와 시집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인의 집에 머무는 시인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가깝게 두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시와 시집을 소개한다. 여행갈 때,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시 한편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 시 한수를 외우고 읊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또한 시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의 집]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할 것 같다
몸은 떠났는데, 마음이 거기 남아 있거나 마음은 떠났는데 몸이 거기 남아 있다면 그건 진정 떠난 것이 아니다. 떠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눈감고 과감하게 길을 나서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간극이 없는 상태라야 진정한 의미에서 떠남, 즉 망명이라 할 수 있다.

이현승 시인(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의 세 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은 “절박한 삶”에 얽매여 세상 밖으로 망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부끄러움을 찾아 떠나는 한 운명론자의 기록이다. 현실에 머무는 것은 생활이고, 떠나고 싶은 것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생각에 그칠 뿐이다. 결여의 상태인 것. 그에게 생각이란 현실회피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하나의 강박”(‘이동’)이다. 그리고 “어디쯤에서 돌아온 자리를, 또 떠나온 자리를 보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그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가 이미 바깥”이고, “참으로 이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생활이라는 생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아내에게 필요한 사람은 아내였다는 생각,”,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 “나는 또 잠수정 생각,”, “불행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생각,”, “죽을 힘으로 살고 사는 힘으로 죽는다는 생각,” 등 생각 다음의 쉼표(,)는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삶, 떠나지 못하는 봉급생활자의 “되묻는 습관”이다. 자주 죽음을 떠올릴 만큼 답답한 현실에 “누가 나를 좀 때려주었으면 좋겠다./ 누가 여기서 좀 꺼내주었으면 싶다.”(‘인정도 사정도 없이’)는 하소연이다.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는데
새벽에 방문을 여닫는 인기척에 깬다.
자면서 한사코 이불을 걷어차는 유구한 역사의 식구들.

죽은 사람의 눈을 감기듯
이불을 덮어주고 간 아내의 손끝이 한없이 부드러워
잠 깨어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 앉아 자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눈을 감기고 옷 입혀줄 큰아이가
옹알옹알 잠꼬대를 한다.
몽텅뭉텅 잘린 말끝에 알았지 아빠? 한다.
잠꼬대를 하는 것도 나의 내력이라
내림병이라도 물려준 양 얼굴이 화끈거린다.

저 눈꺼풀 안에 눈빛이 사탕을 녹여 부은 듯 혼곤하리라.

-‘잠 깨우는 사람’ 전문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부는 각방을 쓰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잔다. 새벽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가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나간다. 이불을 덮어주는 아내의 손끝이 한없이 부드럽다면서도 “죽은 사람의 눈을 감기듯”이라 말한다. 인기척에 잠이 깬 그는 일어나 앉아 잠든 아이를 본다. “내 눈을 감기고 옷을 입혀줄 큰아이”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애잔함이 묻어난다.

어쩌다 부부사이가 “벼랑을 나눠 쓰는 이혼 법정의 부부”(‘롤러코스트’)처럼 되었을까. 이에 대해 그는 “우리의 시작, 우리를 이어 붙인/ 처음 바늘이 가장 아프다.”고 말한다.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 더 나아가 생활, 즉 이불을 걷어차는 “유구한 역사의 식구들”, “젊은 시절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나 있는 아들은 감옥으로 보내고/ 할머니는 독방을 차고앉”(이하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은 그의 가족사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활과 생각, 머묾과 떠남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그는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다”는 말을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할 것 같다”는 말로 바꿔 듣는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게 뭔가” 하고 자신에게 되묻는다. 결국 그가 ‘나’를 떠나 머물고 싶은 곳은 ‘우리’, 즉 ‘가족’이 아닐까.

1. 낮설게 하기의 아름다움



                      
저는 평소에 시는 언어로 짓는 사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시(詩)라는 말의 한자어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왜 절 사자를 거기에다 붙였을까요. 다 아시는 대로 절은 용맹정진하는 구도자들의 수행장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들도 구도자의 정신과 자세로 시를 쓰라는 뜻에서 '시(詩)'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언어로 사원을 짓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이화여대 3학년 때로,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서 등단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등단 통로가 두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과 {현대문학}지 추천 통과밖에 없었는데, 현대문학이 유일한 문예지였습니다. 올해로 내가 시인의 길을 걸어온 지가 35년이 됩니다. 시의 나이가 35세가 되는 셈이지요. 그런데 그 동안 걸어온 삶의 길이나 시의 길이 너무 꾸불텅해서 내 자신을 바꾸는 데도 20여 년이 걸렸습니다.

이 나이쯤에는 앞서간 여러 사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도 석가도 이 나이쯤에 삶의 절정에 다다랐지요. 예수는 33세에 인류를 구원했고, 소월(素月)도 영랑(永郞)도 파울 첼란도 실비아 플라스도 요절했지만 불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컴퓨터를 하지 못해서 원고지로 글을 쓰는데, 원고지 앞에 앉으면 사각의 모서리가 절벽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가 그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이 제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 시가 밥 먹여주냐고 물으면, 나는 "시가 내 정신의 밥이다"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쌀로 된 이밥은 우리 배를 부르게 하지만, 시는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편의 시를 가슴에 넣고 하루를 너끈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한 편의 좋은 시가 가슴 속을 따뜻하게 해서 평생을 거기에 기대면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한 끼의 밥은 굶을 수 있어도, 정신의 허기는 사람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시가 밥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시로써 배부른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시인이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돈도 밥도 안 된다고 주저하고 두려워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아예 다른 길로 가야지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피나는 노력 없이, 오랜 습작 기간 없이 시인이 되려 하고 좋은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니체는 일찍이 '좋은 글은 피의 여로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피로 쓴 글만이 진실하다고 얘기했고, 불멸의 명작을 남긴 플로베르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가리켜, '내 심장과 두뇌를 짜서 그걸 고갈시키는 과정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만큼 작품 쓰기가 어렵다는 걸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그는 '한 마디의 말을 찾기 위해서 나는 하루 종일 내 머리를 쥐어짰다'라고도 토로했습니다. 오늘날 활동 중인 시인들이나 시인 지망생들조차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두 사람이 얘기한 것은 그만큼 시인 정신이 치열해야 한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반문해 봅니다. 너는 과연 피의 여로를 거쳤느냐? 너의 심장과 두뇌를 짜서 토로하는 과정을 거쳤느냐? 그렇게 반문하면 어떤 때는 말문이 콱 막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수많은 밤을 정말 피 흘리는 것처럼 지샌 적도 많고 수많은 파지를 버렸습니다. 수많은 파지를 버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만나기 위해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몇 년 걸린 나의 시 중에 [직소포에 들다]가 있습니다. [직소포에 들다]는 13년 만에 완성된 시입니다.

[마음의 수수밭]은 8년 만에 얻어졌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얻어지는 시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그믐달]이라는 시는 30분 만에 썼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포도가 익어서 향기가 나듯이 어머니가 늘 내 가슴속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겁니다. 그런 게 흔하지는 않고 단 한 편밖에 없습니다.

나는 낯선 곳에 여행을 갔다가 오면 금방 시를 쓰지를 못합니다. 그때그때 메모해 두었다가 다시 한번 그곳에 찾아가서 그때 내가 왔던 심정과 지금 내가 여기 서있을 때의 심정이 어떤가 내 자신을 닦달해 봅니다. 너는 이걸로 올라가서 시를 쓸 수 있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느낌을 메모해 두었다가 와서 겨우 시를 완성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과작(寡作)인지 모르지만, 과작이라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다작(多作)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무슨 시를 몇 편이나 쓰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지하철 계단에서 번개 같은 시상을 매만지며

나는 메모지를 꼭 넣고 다닙니다. 그때그때 생각이 떠오르면 장소를 생각하지 않고 멈춰 서서 그 생각이 떠날까봐 메모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갈 때 사람들이 올라가는데 무슨 생각이 팍 떠오르는 겁니다. 생각이 떠날까봐 딱 멈춰 서 있는데,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가지를 못하고 짜증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서 있고 내가 타야 하는데 문득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눈총을 받는 게 차라리 낫지 싶어서, 옛날같이 연기처럼 날려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에 버티고 서 있다가 겨우 한 줄을 건졌습니다. 그럴 때의 희열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누가 미친 여자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기가 정말 붙잡아야 된다는 것을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집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메모한 노트가 지금 수십 권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나는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도 메모 부자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참 웃기는 여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참 행복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시에 대해서 이렇게 순정을 바치거든요. 그 순정을 시가 알아주었던지 시가 나를 받아줬어요.


옛날에는 내가 시를 받아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시가 나를 받아줘야지 한 편의 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 이 시가 나를 받아주고 있으니까 시와 함께 살면서 어떤 걸 겪더라도 나는 그걸 고통이던 괴로움이던 행복한 괴로움과 행복한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시를 내 생업으로 삼는 게 팔자라면, 시를 팔자로 삼아 세상을 남들이 아무리 빨리 가도 나는 터벅터벅 낙타처럼 걸어가려고 합니다.

등단 18년 만인 1983년에 첫 시집을 냈습니다. 굉장히 늦게 낸 셈입니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거치는 동안 시 한편 한편이 너무 구원이고 나의 구명줄이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감동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시 외에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를 구원으로 삼고 계속 시를 썼는데, 두 번째 시집 낼 때까지 내가 그렇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바쳤지만 짝사랑으로 그치고 마는구나 하는 괴로움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딱 차지 않는 시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상재한 시집이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입니다. 영국의 시인 셀리는 "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때때로 울었노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는데, 나도 그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눈물만 나는 겁니다. 두 번째 시집은 {사람 그리운 도시}인데, 도시에 그렇게 사람이 많아도 사람이 그립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시집 {하루치 희망}을 낼 때는 언어의 모순을 통해서 세상의 모순을 드러내는 전략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을 보면 언어유희, 동의어, 반복어 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에 대해서 발길질을 한번 한 거지요. 왜 말놀이를 많이 했느냐고 사람들이 할지 몰라도 내게는 타당성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혼자서 갇혀 있을 때 무엇과 놀며 지냈습니까. 만화를 보겠습니까. 무슨 게임을 할 줄 알겠습니까. 나는 말로써 놀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놀이를 그 책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다섯 번째 {오래 된 골목}에도 조금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외로움이 말놀이로도 다 메워지지를 않으니까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말놀이를 하고 동의어, 반복어를 씀으로써 내 의식의 전환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시집 {마음의 수수밭}을 내기 전까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다녔습니다. 관광여행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기가 너무 힘이 들면 살아서 돌아오려고 한 여행도 있었고, 여행을 가서 정말로 살아서 못 돌아오면 안 돌아와도 좋다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때의 여행이 나한테는 고행이었고 내 삶의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닐 때의 경험이 {마음의 수수밭} 속에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수수밭}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어떤 일이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죽고 나면 이 시는 남아 있을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다섯 번째 시집까지 나왔는데 생각해 보면 시의 길에는 에누리도 덤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라는 것이 예수의 고난을 상기시키잖아요. 왜냐하면 부활의 환희도 십자가의 수난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정도로 글쓰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글쓰기의 궁극은 불교에서 말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고 그 결과는 등신불(等身佛)이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시에 대해서 어떤 오체투지(五體投肢)를 해야 합니다. 자기 몸을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서 낮춰야 됩니다. 치열하더라도 겸허하게 치열해야 합니다.

자기 시가 조금 잘 써진다고 해서 턱을 쳐들고 못 쓰는 사람을 무시하면 발전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시를 써 나가야 됩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힘든 시하고도 나는 한몸이 되어서 정말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말입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시와 같이 있으면 내가 진실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진실하고 배가 맞는다는 확실한 느낌이 옵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시와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어느 시인은 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맨몸으로 철조망을 통과한 사람들의 등판과 같다.' 이성복 시인의 이 말을 들으니까 내게 전율이 오더군요. 이제 시를 쓰는 자체도 우리들 삶의 문제잖아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력의 하나라면 희망이 너무 넘쳐도 시가 안 되고 절망에 너무 질식해도 시가 되지 않습니다. 부정과 긍정이 이중적으로 교차하는 그 자리에 꽃이 핍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자기 폐쇄성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날 내가 한강을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을 보는 순간 '아, 시를 저기에 비교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도 가오리연과 방패연이었습니다. 가오리연은 가볍기 때문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시간은 굉장히 빠릅니다.


하지만 굉장히 까붑니다. 요리조리 공중을 까불다가 결국은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꽂히고 맙니다. 반면 방패연은 아주 의젓합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굉장히 힘이 듭니다. 상승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한번 공중으로 올라갔다고 하면 자기 스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그래서 꽂히는 일 없이 아주 의젓하게 하늘을 가릅니다. 가오리연과 방패연은 외형부터 다르고 몸집은 비교도 안 됩니다.


나는 가오리연을 조금 나쁜 시에, 방패연을 좋은 시에 비교해 봤습니다. 그리고 연도 날리기 전에 절대로 빨리 날려서는 안 됩니다. 잘 만들어서 띄울 때는 아주 높이 올라가고 오래 하늘을 납니다. 마음이 급해서 빨리 날리려고 하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연을 날릴 때는 얼레를 잡은 손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얼레를 잡고 당길 때 줄을 너무 많이 당기면 끊어지고, 느슨하게 당기면 풀어집니다. 그래서 손으로 당길 때는 당기고 놓아줄 때는 놓아줘야지, 균형을 잘 잡아서 높이 올라가고 하늘을 오래 날 수가 있는 겁니다. 연이 빨리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높이 올라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래 견디는 것도 아닙니다.



- 내가 아닌 것은 연줄을 끊듯 버려라


어느 스승이 거문고를 앞에 두고 제자한테 물었습니다. 줄을 너무 당기니까 어떻느냐고 했더니 줄이 끊어집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너무 느슨하게 하면 어떻더냐고 했더니 음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문학 지망생들이나 등단한 신인들은 가오리연처럼 너무 빨리,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오래 견딜 줄을 모릅니다.
시대가 너무 급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시를 써서 등단하려 하고 빨리 시집을 내서 유명해졌으면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하지만 시라는 것은 잡초 전략도 아니고 흥부전략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이디어를 쫓아가서 되는 것도 아니고 유행을 따라간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기 삶에서 체득을 해야 됩니다.
누구도 시를 써주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의 경험도 중요하고 평소의 마음 씀씀이도 중요하다는 게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아무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시에 임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좀 느리고 좀 미흡하더라도 나는 나여야 합니다. 내가 남이 아니잖습니까. 나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런 나의 개성을 버리고 괜찮다 싶은 것을 닮으려고 하면 그건 벌써 이미 자기가 아닙니다. 자기가 아닌 사람이 시를 써놓으면 좋은 시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닌 것은 따라가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연도 잘 날다가도 어느 순간 줄이 끊어져서 얼레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미련 없이 떠나 보내야 합니다. 그걸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시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언어들도 어느 땐가는 나와 맞지를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자꾸 거리에 매달리지 말고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버린다는 것은 자기 안으로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단단해진다는 것은 어떤 외부의 조건이 닥쳐도 견뎌낼 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견뎌낼 힘이 있다면 방패연과 같은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은 아주 평범한 것 같아도 중요한 일입니다.
독자의 관심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고 시 자체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을 만나보고 싶지만 그 시인의 시가 별로 아니면 시인도 만나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요즘의 시들은 너무 바깥에 민감합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나 세계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도 없이 아주 포즈에 능한 시들이 많습니다. 다변과 요술을 문학적 열정과 혼동하는 시들이 있습니다. 문맥이 잘 안 통하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시들이 있습니다. 이름만 덮으면 누구의 시인지도 모르게 비슷비슷한 시들이 있습니다. '

아, 이런 시들은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 그런 시들을 보면서 거울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어느 평자가 이런 말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이렇게 감동은커녕 공감조차 할 수 없는 시들이 양산되면 너무 위험합니다. 시 독자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자꾸 수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시도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시 독자 수도 줄어들고 그 동안 시인한테 갖고 있던 기대나 관심조차도 줄어들게 되면 참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독자들을 걱정하기 전에 시인들 자신이 그 치열성을 놓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시를 쓰실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걸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즘 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80년대를 시의 시대라 하고 90년대를 시의 소멸 시대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런 표현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소멸이나 쇠퇴라는 말을 쓰기에는 90년대 시가 80년대 시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고 있고 고립시킨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종이책이 줄어들고 전자책이 나온다고 해도 종이책은 종이책 나름대로 소중함을 갖고 있을 테니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문명이 디지털화되면 될수록 시의 세계는 자꾸 서정성을 회복합니다.


시라는 게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따라간다고 해서 좋은 시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 없이 어떤 실험시가 있겠습니까. 전통이 바탕이 되는 그런 실험시가 제대로 실험시가 되지 전통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면, 농부들이 그렇게 잘 가꾸어 온 밭에 형편없는 씨를 뿌려서 완전히 농사를 망치는 그런 실험시들은 실험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 중에 신춘문예에 응모자 수가 날로 늘어가고 문예지의 응모자 수도 늘어갑니다. 각종 문예 창작 학교의 프로그램들이 굉장히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시집이 줄어든다고 해도 많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뭐가 더 위기냐 하면 많이 양산되고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습니다만 시인을 양산하게 되면 치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치열성을 잃어버릴 경우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 공황이 생기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 오히려 위기가 아닐까, 청소년들의 왜곡된 시 교육이 대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되어도 시에 대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TV를 보고있는데 수능시험에 대비한 국어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의 시를 강의하고 있었는데 전문은 살짝 한번 보여준 다음, 시 한 구절 한 구절을 해체시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분석하더니 상징이 어떻고 비유가 어떻고 도치가 어떻고 난도질을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시 한 편은 어디로 가고 없고 아주 쓸모없는 수사만 남발되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왜곡된 시 교육을 하니 어떻게 우리 청소년들이 시를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고 시를 가까이 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우리 나라의 입시제도에 정말 분통이 터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걸 없앨까, 위기라고 하지만 경제위기만 위기겠습니까. 문화위기가 나는 더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시를 들려준답니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시를 자꾸 이해시켜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거의 100편을 외운다고 합니다. 그냥 외우는 게 아니고 자기의 가슴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같이 시를 획일화시키고 분석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미국의 엠허스터라는 대학이 있는데 문학창작이 유일한 필수 과목이라고 합니다. 그 교육 이념이 뭐냐고 하면 종합 사고력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경쟁력이 그 학교에서는 문학, 철학, 자연과학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학교랍니다. 그래서 1,600명밖에 안 되는 초미니 학교인데도 미국 전체 인문과학대학에서 1등 자리를 몇 년간 고수하고 있답니다.


이 창작강의를 패스하려고 과외공부까지 한답니다. 일본에도 자매학교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언제 이런 학교가 생기겠습니까. 맨 일류학교만 생각하다가 언제 제대로 된 훌륭한 시인 작가가 배출되겠습니까. 정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데 개인의 힘이 미약하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참 분통이 터집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왕에게 영국하고 셰익스피어 중에 뭘 택하겠느냐고 누가 물었는데 인도는 버려도 셰익스피어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답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뭘 택하겠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의 옛날 조상들은 시를 짓고 노래하는 걸 자기네 생활 속에서 아주 오랜 전통으로 여겨왔습니다. 왕에서부터 촌부까지 다 시를 사랑하고, 뿐만 아니라 시를 통해서 삶의 도리를 배우고 자기의 꿈을 드러냈습니다.


과거시험 제도에도 관리등용 시험을 보는데 시가 제일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잘 산다고 해서 과연 잘 사는 겁니까. 퇴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들이 시를 죽이고 시인을 죽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톰 슐만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소설을 보셨지요. 영화도 상영이 되었고 비디오도 나와 있으니까 안보신 분은 빌려보시고 아이들도 한번 보게 하세요. 공부만 하라고 해서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걸 보면 왜 인간한테 시가 소중한가를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굉장히 마음을 트이게 해줍니다. 대강의 줄거리를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명문학교인 웰튼 아카데미에 키팅이라는 국어선생이 새로 부임을 합니다. 첫날 첫 시간에 키팅 선생이 휘파람을 불면서 교실로 들어옵니다. 애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 선장이여, 우리 선장이여. 그러면서 이 시는 휘트먼의 시 한 구절인데 링컨 대통령을 찬양한 시인이 앞으로 자기를 그렇게 불러도 좋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엄격한 교육에 찌들려 있는 학생들이 너무 충격을 받고 어리둥절해 있으니까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제군은 알겠나, 너희들은 지금 전쟁중이란 말이야 전쟁. 그리고 너희들의 혼은 위기에 빠져있다. 나 너희들로 하여금 언어를 사랑하며 자비를 베푸는 일을 가르치겠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에반스 프리차드 박사가 쓴 감상문 21쪽을 찢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놀라서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찢습니다. 그걸 왜 찢게 했겠습니까. 이 키팅 선생은 너무 보수적이고 엄숙자의자의 교육장인 웰튼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이 가식과 강제의 허울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허울 속에서 아이들을 빼내어서 창조적인 인간들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를 했던 겁니다. 이런 시도가 사실은 에반스 프리차드 박사의 감상문을 찢게 한 데 대한 의미심장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시 쓰는 데 이론이 필요합니까. 물론 기초는 되어야지요. 하지만 이론에 대입시킨다고 해서 시가 안되거든요. 오히려 손해볼 일이 더 많습니다. 이론에 밝으면 시를 못씁니다. 사람들이 시를 읽는 것은 우리가 인류의 한 일원이면서 정열에 넘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의학이나 법률, 은행업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주 필요한 분야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시나 로맨스,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존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시는 우리 인간 삶의 양식이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렇게 화두를 던져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끊임없이 시를 읽히고 쓰게 하고 토론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토론문화가 없습니다. 내가 대학 모교인 이대에 가서 창작강의를 두 학기를 했었는데 죽 앉아 있는 게 싫어서 둥글게 앉혀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뭘 주면서 토론을 해보라고 했더니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겁니다. 우리 나라는 토론문화가 이렇게 안 되어 있으니 서로 주고받는 대화도 잘 안되고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요즘 학생들한테는 두 가지 결핍이 있다고 합니다. 감동할 줄 모르는 것과 자연하고 친화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데이트 할 때도 컴컴한 곳이 아니면 백화점입니다. 북한산과 청계산도 좋은데 거기는 갈려고 생각을 안합니다. 연애하는 애들이 한번도 산에 오는 것 보지 못했습니다.


돈도 들지 않고 얼마나 볼 게 많습니까. 그래가지고 나중에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니까 감동없는 인간으로 크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이 키팅 선생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을 구태의연한 틀 속에 가둬놓고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강제교육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정말 창조적인 인간으로 만들려 했는데, 보수적인 교장과 일류병에 병든 학부모들로부터 쫓겨나고 맙니다. 그래서 키팅 선생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쫓겨나지만 학생들은 자기들의 의식을 전환시켜 주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키팅 선생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 고정 관념을 깨고 자유로운 사유의 날개를


만일 이 키팅 같은 선생이 우리 나라에 있다면 아마 지금쯤 쫓겨났고 왕따당하고 있을 겁니다. 이 왜곡된 시 교육이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21세기 문학 행보를 늦추게 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좋은 시인, 훌륭한 시인이 어떻게 왜곡된 시 교육을 받고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이런 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이 많은 사회는 범죄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 시를 권하는 사회는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술을 권하는 사회였고, 요즘은 인터넷을 권하는 사회, 골프를 권하는 사회지요. 언제 시를 권하는 사회가 올까요.

'삶의 질'이란 어떻게 해서 생긴 단어일까요. 이 단어를 제일 먼저 쓴 사람은 영국 작가 프리스틸인데, 그는 1943년에 어느 글에서 '모든 시민에게 한층 더한 안정과 보다 나은 가치와 보다 고귀한 삶'이라고 쓴 데서 따온 거라고 합니다. 삶의 질이라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삶의 질이라는 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아름다운 생활을 설계할 수 있고 사람을 참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그게 될 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지 무조건 삶의 질이 높여집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물질이 풍부하면 삶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물질은 삶을 편리하게는 하지만 사람답고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게 하지는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질이 아무리 풍부해도 정신이 결핍되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947년에 사르트르가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뭐라고 했느냐 하면 미국은 물질은 풍부하지만 풍요로운 삶은 없다고 한마디로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미국이 달라졌지요. 그래서 밥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듯이 시를 가슴 속에 넣고 있으면 정신이 부릅니다. 시는 우리 정신의 밥입니다. 우리가 배가 부르다고 해서 살 수 있습니까. 밥이 아무리 배를 채워도 정신은 채워줄 수 없거든요. 그래서 밥이 행복의 기본 조건은 되어도 충분 조건은 못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질로 배가 부른 시대일수록 정신은 점점 더 고파갑니다.

예수와 석가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이 분들은 우리 인류가 출현한 이래 최고 최상의 정신을 보여준 분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분들이 말씀하신 거는 전부가 시입니다. 경전이나 성경을 보면 그토록 오래 되어도 뭐든지 사랑하고 읽고 또 읽어도 감동을 줍니다.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경전도 성경도 소중하게, 크리스천이나 불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일반 무신론자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그까짓 것 골치 아프게 읽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시는 우리의 삶의 중심과 정신의 정수를 한데 묶어놓는 그 어떤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함께 보여주는 황홀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 황홀한 세계를 여는 문이 바로 시입니다. 여러분들이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사랑하면 그 황홀한 세계를 자기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희열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옛말에 '시를 알아야 사람다운 말을 할 수 있고 또 모든 이는 자기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사십이 넘으면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관상이 다릅니다. 사람이 영혼의 기쁨이 고갈되면 피폐해진다고 합니다. 그 굶주림을 채우는 길은 시가 가장 좋은 치유 방법이고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시를 만나면 감동하게 되고 그게 바로 기쁨입니다. 그럴 때 마음이 환해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머리를 하고 마음에 들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듯이 하물며 좋은 시를 읽을 때의 감동이 금방 사라지겠습니까. 인류의 역사가 지속하는 한 우리의 시는 결코 멸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무리 위기라고 하고 다른 좋은 놀이기구들이 나와도 그건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시인이 시를 통해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거나 시를 정신의 밥으로 만들지 못할 때에는 진정한 시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로 밥을 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집이 많아도 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집이 많아도 시가 없고, 진정한 독자가 없다면 우리가 정신 공황에 빠져서 정신의 거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신의 거지라는 단어가 얼마나 슬픈 단어입니까. 그래서 시인을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입니다. 그리고 시를 판단하는 것은 진정한 독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독자가 되면 우리는 꼼짝못합니다.


어떻게 함부로 시를 써서 여러분한테 보여주겠습니까. 정신이 팍 차려지지요. 시인은 시를 끝낸 순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를 쓰는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시 읽기를 끝낸 순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시를 읽고 있는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겁니다. 독자가 없는 시는 있을 수도 없고 독자들도 시를 모르면 독자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독자의 위치라는 것은 상당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중에 시 창작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염원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시 창작의 방법을 얘기해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이게 시 창작의 기본 방법입니다. 이것 없이는 절대로 좋은 시를 쓰지 못합니다. 왜 많이 생각하라고 하느냐면 상상력이 아주 폭이 넓어집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던가 세상을 읽는다던가 사람을 읽는다고 하면 생각의 폭이 굉장히 깊어집니다. 많이 쓰라는 것은 저절로 문장수업이 됩니다.


만일 오랜 습작 기간도 없고 피나는 노력 없이 그냥 좋은 시를 쓸려고 과욕을 부리면 그나마 갖고 있던 사고도 흐려지고 재능도 박탈당합니다. 우선 창작하는 즐거움을 가지시고 그 다음에 욕심을 부려야지 창작하는 즐거움은 저쪽으로 보내놓고 과욕만 부리면 절대로 좋은 시가 나오지 않습니다. 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금방 붓을 떼고 말면 시는 가차없이 시 쓰는 사람을 처단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즐거움을 우선하지 않고 결과를 탐하면 언어 나열이 되고 남을 모방하기 쉽습니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낡은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어야 됩니다. 그리고 앵무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이 지저귀고 남이 한 말을 따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로 안됩니다. 내가 좀 서투른 목소리라도 내 지저귐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 속에 가위 하나를 넣어놨다가 내가 너무 잡다한 말을 많이 쓸 때에는 그 가위를 꺼내서 잘라 버리세요.


헤밍웨이가 지방신문의 기자로 있을 때 젊은 시절 문학에 대한 열망도 많고 해서 기사를 쓸 때마다 어렵게 쓰고 길게 써가지고 가면 부장한테 굉장히 야단을 맞았다고 합니다. 글은 간결하고 쉽게 써라. 그때의 문장 훈련이 자기가 명작을 쓰는데 굉장한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부장이 야속하고 미웠지만 정말 감사하다고 그는 회고록에 쓰고 있습니다.


어휘가 쉬워야 되고 외워서 읽기가 쉬워야 되고, 문장이 쉬워야 됩니다. 너무 어렵고 잡다하게 쓸려고 하면 오히려 맥을 못 찾습니다. 자기 글을 자기가 못 찾아서 폐쇄성에 빠져버리면 시를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역발상을 해야 됩니다. 미와 추, 추와 미 해도 되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 남자 여자, 나와 너, 체험이나 지식까지도 확 뒤집어야 합니다. 한번 깨보고 뒤집어 보는 겁니다.

내가 똑바로만 걸어가는 게 아니라 물구나무서서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똑바로만 걸어가려고 하는 겁니다. 시범을 보여줄 때 물구나무서서 걸어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고 독창적인 시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독특한 경험세계를 가진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도 독특한 시를 쓰게 되는데 기여를 하게 되는데,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구체화시켜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지 그게 없으면 주관적인 자기 폐쇄성에 빠져버립니다. 남들은 아무런 감흥도 없는데 저 혼자만 북 치고 장구 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시어를 잘 다뤄야 됩니다. 논개의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물결 위에' 하는 시구를 읽고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강낭콩이 놀랍게도 흰색이거나 약간 자줏빛, 아니면 연분홍색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이라고 했으니까 그건 시어로서는 맞지 않습니다.



- 어린애가 첫 세상을 보듯 시 앞에 앉을 때


어떤 신인이 나한테 시를 보여주는데 소쩍새가 겨울에 울고 있더라구요. 소쩍새는 초여름부터 웁니다. 그래서 내가 없는 것을 상상력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 좋지만 실제로 있는 것을 왜곡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여름에 우는 소쩍새를 겨울에 운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마음속에 생물을 넣고 다녀야 합니다. 살아있는 식물, 새소리 등 생물을 넣고 다녀야지 역동적인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계절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야 합니다.


비가 와도 그만, 달이 떠도 그만, 눈이 와도 그만 종소리를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으면 생각이 죽어버립니다. 죽은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있는 시를 쓸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 감정을 좀 가져 보세요. 그리고 자기를 살려보세요. 그러면 시를 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낯설게 하기를 해야 합니다. 낯설게 하기라는 단어는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이라고 일컫는 문학 이론가들이 있었는데 '시의 기능은 사물의 낯설게 하기'라고 쓴 데서부터 기인했다고 합니다. 낯설게 하기의 본보기의 시로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의 첫 구절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대목이 있는데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또 영국 작가 체스터튼은 가로수를 가리켜 '노상 누워 있던 땅의 일부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벌떡 일어선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새로운 인식입니까. 관습적인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지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앞으로 좀 써야 합니다. 남의 시를 읽되 자기가 쓸 때에는 보지 마세요. 그러면 비슷비슷한 시를 쓰게 됩니다. 그때는 떠나 보내버리세요. 완전히 자물통을 채워놓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게 좋습니다.


다음은 동심적 발상을 해라. 왜냐하면 어린애가 처음 세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신선합니까. 시인은 그런 발상을 해야 합니다. 맨날 나이만 먹다가 나는 늙었는데 하면서 왜 자기를 빨리 늙게 합니까. 주름살이 늘어서 늙는 게 아니고 영혼이 깜깜해질 때 늙는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도 마음이 늘 살아있고 마음에 언제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겠다는 사람은 얼굴이 훨씬 젊어 보입니다. 화장을 해서 젊게 보이는 게 아니고 마음을 색칠하라는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직시해라. 아무리 시를 잘 써도 자기 인생이 들어가 있지 않거나 존재의 그런 게 없거나 현실과 너무 분리된 시나 음풍영월조의 시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방법을 써도 시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울하고 죽어야 되나 살아야 되나 하면서 새벽시장도 가보고 미친 듯이 다닙니다. 낯선 곳도 가보고 어디 가다가 노을을 보고 앉아서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자꾸 닦달을 해야 됩니다. 고목도 바람이 흔들어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저는 거실에 풍경을 달아 놓았습니다. 풍경 밑에 물고기가 달려 있는데 왜 물고기를 달았을까요.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잔답니다. 그래서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처럼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자듯이 정신이 깨어 있으란 뜻으로 물고기를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 시인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남이 잘 때 잘 것 다 자고 남이 먹는 것은 다 먹고 배가 불러서 정신은 어디로 가고 배부를 때 시가 됩니까.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죽지 않습니다. 꼭 세 끼를 먹어야 합니까. 그 한 끼를 아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가 안될 때는 하루에 몇 번씩 풍경을 칩니다. 아마 옆집 사람은 스님이 와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나는 그럴 때 정신이 바싹 듭니다. 물고기한테 부끄럽습니다.

그 미물도 잘 때 눈을 뜨고 자고 스물 다섯 번을 허물벗기를 하고 공중으로 아주 멋있게 나르고 짝짓기를 한 다음 하루를 살다가 죽는답니다. 하루를 살다 죽는 그 미물도 성충이 되려고 천 일을 물 속에서 보내고 스물 다섯 번의 허물을 벗는데, 오관을 가진 인간이 허물도 하나 벗지 않고 고통도 받지 않고 고뇌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어려운 시를 쓸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는 미물한테서 시인의 치열성을 배웁니다. 그 미물의 치열함이 나의 새로운 가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치열한 깨우침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면서 그 시가 정신의 밥이 되거든요. 그리고 나를 잘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잘 산다는 거는 시로 된 정신의 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잘 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함민복 씨의 시 [긍정적인 밥]으로 강의의 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2. 시의 길을 묻다-⑦ /천양희 시인

 
  

  꺼지지 않는 시 정신, 세계와 화해에 이르는 길


  『경남작가』가 마지막으로 천양희 시인에게 시의 길을 물었다.
대담은 오인태 회장이 단신으로 상경하여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에서 이루어졌다.
사진은 서울에 사는 서양숙 시인이 찍었다.
11월 마지막 토요일인 28일, 달력이 막 초겨울로 넘어가는 무렵이었다.
  '길의 시인, 물의 시인'으로 불리며 여전히 시간에 굴하지 않는 시혼을 불태우는 천양희 시인과의
대담은 학림다방에서 인근 한정식 집으로 두 시간여 동안 숨가쁘게 이어졌다.
이날 <작은 詩앗-채송화> 동인 모임이 열리는 김해행 다섯 시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었다.
  이번 호로 일곱 차례에 걸친 '시의 길을 묻다'를 맺는다.
그동안의 대담을 한 데 묶어 단행본으로 내려고 한다.
 -편집자 주

 

 



오인태(이하 오) / 사진으로야 많이 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직접 뵙기는 처음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이십니다. 들어오면서 다른 분인 줄 알고 한참 두리번거렸습니다.


천양희(이하 천) / 무슨 말씀을……, 이제 많이 늙었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쑥스러워요. 오 선생이야말로 사진보다 젊고 인상이 참 좋아 보이네요. 『아버지의 집』 잘 읽었어요. 뭔가 짠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더군요.


오 /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2006년도에 냈으니 제 모습도 서너 해 전 것일 텐데요. 젊어 보인다는 말이 이렇게 좋은 걸 보면 저도 이제 나이가 꽤 들었나봅니다.


천 /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교대에 강의를 나간다지요? 요즘 같은 시절에 애들 속에 묻혀 지내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나도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 때가 있었는데……,


오 / 아, 그러셨어요? 그렇잖아도 요즘은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인터뷰를 당하는 것 같은데요(웃음).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천 / 지난 4월 25일 울산시가 주최하는 제1회 고래의 날에 선상에서 여러 시인들과 함께 시낭송을 하고 왔어요.
  

오 / 고래가 보이던가요? (웃음)


천 / 파도가 너무 심해서 고래는 못보고 왔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시를 낭송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7월에는 이육사 탄생 100주년 문학관 기념행사에서 강연을 했고, 9월에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관하는 한국과 스웨덴 수교 50주년 문학행사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20년만의 외국여행이라 낯설긴 했지만 새로운 세계를 접한 경험이 시 쓰는 데 힘이 될 것 같아요. 또 몇 군데 대학에서 특강과 문학행사 심사를 하기도 했고요.


오 / 여전히 바쁘게 사시는군요. 건강도 꽤 좋아 보이시고요. 다행입니다. 오랫동안 건강 잘 지키셔서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빕니다. 그런데 2005년에 내신 『너무 많은 입』 이후엔 시집이 안 보입니다. 새 시집을 내실 때가 된 것 같은데, 준비하고 계십니까?

 
천 / 시인이란 시를 끝낸 순간이 아니라 시를 쓰는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서둘러 시집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좀 덜 하는 편이에요. 2005년에 여섯 번째 시집을 내고 벌써 4년이 지났으니 이미 발표한 시만 해도 시집 한 권 분량은 충분히 되겠지요. 하지만 그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발표한 시들 중에 몸과 마음이 엇갈려 마치 병든 것처럼 시들한 시들이 더러 있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살릴 것은 살려야 할 것 같아요.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나 내놓을 수 있지 싶어요.


오 / 기대됩니다. 그런데 65년 『현대문학』에 「정원」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여 시력 40여년 만에 시집 여섯 권이면 과작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특별한 이유나 소신이 있는 겁니까.


천 / 대학 3학년이던 65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지만 이런 저런 일로 시도 제대로 못 쓰고 쓴 시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다가 등단한 지 18년만인 83년에 첫 시집을 냈어요. 그 이후 4, 5년 만에 한권씩 낸 셈이니 과작이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시에 모든 순정을 바치고 살아왔는데 좀 과작이면 어때요.


오 /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천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다작인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건 어렵지 않네 / 그보다 더 힘든 건 사는 일이라네"라고 한 마야코프스키의 시처럼 시인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시가 더 좋아지기 위해 스스로 궁하게 하는 것일까요. 나는 매일 나 자신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어요.


오 /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자의식이 아프게 다가오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그 자의식도 시집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변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천 / 그렇겠지요. 시와 시인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내 시에서 시인의 자의식이 유별나게 드러난다고 느꼈다면 잘 읽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자의식이 나이가 들수록 변해 온 것도 사실이고요.  


오 / 제가 이미 읽었거나, 또 현재 가지고 있는 시집을 가지고 선생님의 시력을 정리해보니 83년에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를 내신 이후 88년에 『사람 그리운 都市』 92년에 『하루치의 희망』 94년에 『마음의 수수밭』 98년에 『오래된 골목』, 같은 해에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그리고 2005년에 『너무 많은 입』을 내셨더군요. 빠진 것이 있으면 보충해주십시오.  


천 / 빠진 것 없이 다 맞습니다만, 98년에 낸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시로 쓴 것이 아니라 사실은 25년 동안 하루에 한두 줄씩 써놓았던 단상들을 묶은 것인데 서점에서 시집으로 분류했더군요. 그런데 그 책이 독자들에겐 쉽게 소통이 되어서인지 많은 공감을 얻었어요.

 
 오 / '시로 쓴 영혼의 자서전'이란 부제가 붙은 그 시집 말이지요? 아, 시집이 아닌가요?(웃음) 아무튼 그 책 서문에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먼 것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서성거립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하다가 나는 말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이 시집 이후의 시들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천 / 새삼스레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질문에서 벗어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시란 결국 우리 인생의 한 변용이며 결핍을 메우는 표현이며 마음을 헤집는 갈등이며 동시에 에너지란 생각이 들곤 해요. 


오 / 사실, 많은 평자와 독자들이 『마음의 수수밭』에서부터 선생님의 시세계에 일대전환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무엇이며, 어떤 계기로 그런 시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요?


천 / 맞아요.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시들은 철저한 자기응시에 근거하고 있고 무겁고 암울한 심상으로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데 치중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자아와 세계의 완결성이 거부되고 자아와 세계가 균열되던 시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죠. 내 시의 여정에서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가 두드러진 단계였던 것 같아요. 이런 경향이 세 번째 시집에서 세상의 모순에 대한 하나의 전략으로 언어유희에 빠져든 세계를 구축하게 된 거겠죠.


오 / 세 번째 시집이라면 『하루치의 희망』을 말씀하는 거지요? 그렇잖아도 이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세상에서 말처럼」, 「비, 비애」, 「선전하는 선전」, 「해가 된 해」, 「세운상가에서」, 「脫 춤놀이」, 「세상에서 말처럼」, 「복수」, 「외가리」, 「佛 행하리」, 「분당화」등 많은 시들이 동음이의어에 의한 언어유희적인 시들인데, 방금 세상의 모순에 대한 하나의 전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자는 단순한 언어유희라고 지적하기도 하던데요?

 
천 / 글쎄, 단순한 언어유희로 파악하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군요. 이것은 저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이며 앞으로의 시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준비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오 / 제 생각에도 말의 해체를 통한 말과의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은 말과의 화해를 위한 전조로 보아지는데요. 말은 곧 세상이기도 할 테죠?

 
천 / 그렇지요. 동음이의어에 의한 언어탐구와 유희는 『마음의 수수밭』으로 가는, 즉 세상과의 불화에서 친화의 길로 가는 전환기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마음의 수수밭』에서 보인 변화의 핵심은 그동안 자아와 세계의 균열을 기반으로 했던 자신의 생에 대한 성찰과 불화의 대상이었던 세계에 대한 진지한 응시와 모색 끝에 이른 불이의 세계, 곧 현실과 이상, 욕망과 허무, 너와 내가 양립되지 않는 시세계를 구축한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오 / 주로 동음이의어에 의한 언어탐구와 언어유희적인 시풍은 『마음의 수수밭』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요. 예컨대, 「진로를 찾아서」, 「미아리 엘레지」, 「원근리길」, 「새록이」, 「상상」등이 이런 부류의 시라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낸 『너무 많은 입』의 「수락시편」, 「상일동 아침」, 「다문이」, 「간절곶」같은 시도 이 연장선에 놓여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선생님의 유별난 언어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한 때의 전환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시어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인식을 반영한 하나의 일관된 시풍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시의 언어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천 / 시는 언어를 통해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고, 그래서 시를 쓰는 시인은 언어 가장 가까이에서 늘 언어에 촉수를 세운 채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결국 시란 언어탐구가 아니겠어요? 시인이 자신의 시의 도구인 모국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겠지요.


오 / 선생님의 초기 시들을 보면 세계와의 불화의 흔적들, 예컨대 어둠과 절망, 아픔, 슬픔, 자조의 정조들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그 무렵의 시대적인 배경도 작용했겠습니다만, 시인의 시세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시인의 개인적 체험이나 환경일 텐데요. 그 무렵의 개인적 삶이나 인식, 시적 세계관이 어떠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여『마음의 수수밭』에 도달하셨는지도 말씀해주십시오.


천 / 맞아요. 초기 시들에 나타나는 세계와의 불화의 흔적들은 8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다기보다 개인적인 시련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 무렵이 내 생애에서 가장 불행했던 때였으니까요. 사람은 물론이고 시와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무척 고통스럽고 외로워서 내 안에 내가 갇혀버렸지요. 자기응시가 강한 사람들이 시적 충동이 강렬하듯이 나의 시적 충동도 집요한 자의식 혹은 자기응시를 배양토로 삼을 수밖에 없었어요.


오 / 아, 그래서 자의식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거군요.


천 / 그렇게 보이지요? 이 무렵의 시적 세계관은 자연이나 사회 또는 타인보다는 내 삶의 상황과 일상적인 감정에 더 치우쳐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선지 초기 시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어둡고도 무기력한 자아의 세계를 고백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어요.

 
오 / 그렇지만 『마음의 수수밭』에 이르러서는 그런 자조적인 자의식들이 많이 누그러지고 한층 투명해진 내면세계가 외부세계와 융화하려는 시도와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내면의 자정력을 발휘하여 세계와 화합하고 일체화한 동기와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천 / 바로 나를 죽고 싶게 한 상처였지요. 역설적으로 그 상처로 인한 극한적 고통이 나를 살고 싶게 했어요. 어디에선가 밝힌 대로 절망과 고통이 극에 달했을 무렵 신문에서 '직소폭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통으로 썩어가는 내 몸을 거기에 던져버릴 작정으로 찾아가서 망연히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너 죽을 만큼 살았느냐"고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면서 살고 싶은 욕망과 의지가 폭포처럼 솟구치더라고요. 결국 몸 대신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극한적인 절망을 던져버리고 왔지요. 그 무렵에 알았어요. 어설픈 상처는 악취를 풍기지만 온전히 썩은 상처에서는 향기가 나는 법이라고 깨달은 거지요.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이 『마음의 수수밭』이었어요.


오 / 온전히 썩은 상처에서는 향기가 난다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래서 김선태 시인이 선생님의 시를 일러 '상처 위에 핀 눈부신 생명의 꽃'이라 한 거로군요. 


천 / 그렇게 표현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오 / 『너무 많은 입』의 「물에게 길을 묻다」연작들이 보여주는 대로 지금까지 전개된 선생님의 시적 작업이 길 찾기의 과정으로 상징화되고, 그것이 시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길'이라는 시어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시에서 '길'은 어떤 의미소인지요?


천 / 지적한 대로 내 시들은 일관되게 내 삶의 길을 가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나는 시에 대한 열정이나 삶에 대한 모색을 길에다 두고 시를 쓰는 시인이므로 그 지혜로서 길의 영채를 갖는다고 어느 평자는 말했지만 내 시에 담긴 길의 이미지는 자기 성찰과 삶에 대한 완성으로서의 길을 그려내고 있는 거지요. 내 시 속의 길 속에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내 생이 숨쉬고 있고, 그 길 끝에는 내 생을 바쳐서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또 직접적인 길을 얘기하지 않는 시들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모두 길 위의 시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 점에서 나를 길의 시인, 길 위에 선 시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오 / '길'과 함께 '물'도 선생님의 시를 읽는 핵심키워드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에서 '물'은 고여 있는 물이라기보다 흐르는 물의 이미지가 더 강한데요.


천 / 물은 어떤 특정한 형태를 고집하지도 않고 거슬러 오르는 법도 없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요. 내 시에 있어서의 물은 겸손의 미덕과 부드럽게 포용하는 모성(母性)의 다른 모습이기도 해요. 나는 물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물에게서 배워요. 내가 물에게 길을 묻는 것은 물처럼 살고 싶은 내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한 거지요. 이것은 사라지는 삶을 살아지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며, 답답한 자신의 존재나 막혀 있는 삶의 통로를 흘러가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뚫고 나아가려는  스스로의 의지이기도 하겠지요.


오 / 『마음의 수수밭』 이후 줄곧 보여주셨듯이 선생님의 시적자아는 이미 세계와 화해하신 듯합니다. 선생님의 시가 활기차면서도 편안하게 읽히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자아와 세계의 일체화는 바로 시적 세계관이자 불교적 세계관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

천 / 자아와 세계의 일체화는 바로 시적 세계관이자 불교적 세계관과 일치한다고 보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나는 어릴 때부터 불교의 향기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랐어요. 불심(佛心)이 깊었던 할아버지와 절(寺)에 대해 지극했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내 정서는 늘 불교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요. 경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불교가 종교지만 깊은 학문 같고, 명상은 자의식과 진정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종교란 그 시대의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말이 있는 거겠지요.

오 / 제 전공이 어린이문학이고, 그래서 특히 선생님의 시 가운데 『마음의 수수밭』에 있는 「여름 한때」를 관심 깊게 읽었는데요. 이 시에서 선생님은 두 살배기 아이에게서 생기가 넘치는 뭉클한 우주를 발견하고 이것을 시인의 자아로 전이하여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 / 아기가 넘어질 듯 뒤뚱뒤뚱 걷는 것은 불안하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경이로운 모습이 아닐까요. 이 세상의 모든 부도덕과 불온과 사악함을 무화시키는 것을 보는 경이로움이지요. 그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시인이 아닐까요. 나는 그때 내가 다시 살아난 듯, 숨이 막힐 정도로 살아 붐비는 생의 기미를 느꼈어요. 두살배기 아기에게서 여성으로서의 속박과 인생의 굴레를 단숨에 벗어버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오 / 대상과의 일체감에서 오는, 말하자면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겠지요. 사실 아동성의 중심속성이 바로 세계와 자아를 일체화하는 동일성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동성, 불성, 시성이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는 입장에 서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에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겠는지요.


천 / 맞아요. 동심이 천심이며 시심과 일치한다고 보는 견해에도 동의해요. 그것이 시인의 본성, 인간의 본성에 귀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도요. 아동성의 중심 속성이 바로 세계와 자아를 일체화 하는 동일성이라는 말이 특히 가슴에 다가오는군요. 


오 / 정리하는 차원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시가 무엇이며 시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만의 고유한 시 쓰기방식이나 발상법이 있으면 함께 밝혀주시지요. 

 
천 / 많은 사람들이 시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지만, 나에게 시란 절망이 부양한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며 절로 나를 새롭게 하고 절로 나를 밝게 하며 절로 나를 철들게 하는 삶의 고전(古典)이라고 생각해요. '시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 탈출'이라고 말했듯이 시를 쓸 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보다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시는 긴장과 절제와 구체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해요. 시는 오래 숙성하고 되새김질하되 반복하지 말아야 해요. 동어반복은 시를 변화, 변모시키지 못하는 시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죠. 나만의 시 쓰기 방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 쓸 때를 위해서 메모를 많이 해 두는 편이에요. 시상이 문득 떠오를 때 마음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아무래도 옛날보다 기억력이 떨어져서 메모를 하게 되는 것이겠죠. 메모를 해 두었다가 나중에 보면 그 순간의 어떤 생각이나 상상력과 어우러지게 되어 한 편의 시가 탄생하곤 하죠. 그리고 또 말을 거꾸로 읽거나 역발상을 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것이 시 쓰는 데 일조를 하기도 해요.

 

오 /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후배 시인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천 / 후배 시인들, 특히 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거예요. 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무통분만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덧붙이자면, 아니 이거야말로 꼭 하고 싶은 말인데, 자발적 소외를 자청하는 지독한 고독을 가지라는 거예요. 고독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시는 고독을 자양분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오 / 긴 시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시 많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경남작가』2009년 하반기호. 제17호

 

 

 

3.

 

 


아침마다 거울을

             

            천양희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나를 본다
거울이 물 속 같다
물 속에 내가 빠져 있다. 물 먹고 있다

잡을 것이 없는 물 속에서
나는 허우적거린다
아무도 물 속에 있는
내 속을 모른다. 몰라준다
내 심장의 고랑
내 늑골 밑의 습지
내 머릿속 웅덩이 그리고 나의 무덤

나에게는 다시 써야 할 생이 있다
세상이 잘못 읽은 나의 生
수몰된 生
암매장된 生

누가 읽기도 전에 나를 써버렸다

그들에게 도난당한 장편의 문장들
그 때문에 틀린 생의 제목들
내 생, 너무 오래 생매장되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나는 곧 재조명될 것이다. 밝혀질 것이다
거울같이 환하게.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창비시선 122)

 

 【천양희 시인】

출생 1942년 1월 21일 (부산광역시)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 학사

데뷔 1965년 현대문학 '정원 한때'외 발표 수상 2007년 제2회 박두진문학상
2005년 제13회 공초문학상
1998년 현대문학상
1996년 소월시문학상

 


 천양희 시인을 몇번인가 뵌 적 있다. 전주 한옥마을 골목에서였고 어느 시상식장에서였다. 그러다가 2007년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천양희 시인과의 대담을 하게 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저 스치듯 잠깐씩만 이런저런 자리에서 뵙다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주변이 없는 나로서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평소 따르고 싶은 시인을 풋내기인 내가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예상했던 대로 시인은 무척 다정다감했다. 또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삶과 시에 대한 시인의 열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감동적이었고, 정말이지 어떤 귀한 성품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때 시인은 공식적인 대담 말고도 참 좋은 얘기들을 내게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시인과 만나 대담을 했다기보다는 시인이 발라주는 빨간약으로 시와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고 온 셈이었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했다. “시에 마음 전부를 걸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시를 쓰는 것은 레일 위를 급히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낙타” 같은 것이라고 나직이 말하던 시인은 릴케의 말을 빌려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는 엄혹한 말”도 들려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정말이지 시의 길을 가는 시의 구도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나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 세상에 내가 살아남아도 될까.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뭘 하고 이 세상을 살아왔나 나 자신에게 물어보니까 아무것도 마음속에 넣을 만한 게 없더라고요. 너무 울부짖었다고 할까요. 그 상처에서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어요······ 그러다 돌아보니까 내가 뚜렷이 보이더라고요. 세상을 버릴까 하는 것도 접고, 내가 죽을 만큼 제대로 살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시 시에 매달렸죠. 그때부터 다시 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쯤해서 「아침마다 거울을」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물 속’에 빠져 있었을 시인을, 세상에 실컷 ‘물 먹’었을 시인을, 어지간히도 ‘허우적거’렸을 시인을, 그야말로 ‘무덤’ 같았을 시인의 마음을. ‘수몰’되고 ‘암매장’되는 것처럼 느껴졌을 시인의 비참한 고통을 떠올려보면서, 그가 걸어온 길 또한 쓰라리게 깊은 서정시처럼 여겨졌다. 「직소포에 들다」나 표제작인 「마음의 수수밭」 같은 시편을 함께 읽어도 좋겠다. 시인은 거의 십년 넘게 고뇌하고 울부짖고 한 뒤에야 『마음의 수수밭』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여전히 아침마다 세번 절하고 반야심경 읽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말도 예사롭지 않게 들려왔다. 습관 같은 건 없냐고 여쭈니, 시를 쓰기 전에는 아무리 급해도 꼭 손을 먼저 씻는다는 말이 돌아왔다.

 
“원고지에 글을 쓰다보면 원고지 사각형 모서리가 진짜 벼랑 같아요. 거기서 안 떨어지려고 매달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시를 쓴 지 사십년이 훌쩍 넘어도 그래요. 그런 마음이 나를 시 속으로 몰아넣어요.”

 
그는 여전히 교자상에 낮게 앉아 원고지에 한행 한행 시를 써내려간다고 했다. 산문 또한 마찬가지란다. 여전히 컴퓨터도 없고 집에 있는 기계라고는 원고를 보내기 위한 팩스가 전부란다.

 

                                                    <추천시> 아침마다 거울을/ 천양희 시인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
시인이 되는 것이다

 
(* 백석의 시「흰 바람벽이 있어」중에서.) 

천양희 「시인이 되려면」전문

 

시인의 『너무 많은 입』(창비시선 245)에 들어 있는 이 시는, 내가 엄살 피우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는 시편이다. 한동안 이 시를 책상에 붙여놓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필경, 시인이 되기 위해서만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의 행간에 나오는 ‘···같이’와 같은 노고 없이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을 터. 우리가 무엇인가가 되려고 얼마나 끙끙거리고 있는지 되짚어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거울같이 환하게” 밝혀질 내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저마다 이루고 싶은 꿈을 “시인” 자리에 넣고 읽어봐도 좋겠다. 유심소작(唯心所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짓는다고 했던가. 이 세상 모든 것은 오직 마음가짐 여하에 달려 있다는 말이 새삼 다가오는 봄이다.

 
접어둔 마음을
책장처럼 펼친다
머리 끝에는 못다 읽은
책 한권이 매달리고
마음은 또
짧은 문장밖에 쓰지 못하네
이렇게 몸이 끌고 가는 시간 뒤로
느슨한 산문인 채
밤이 가고 있네
다음날은
아직 일러 오지 않는 때
내 속 어딘가에
소리없이 활짝 핀 열꽃 같은
말들, 言路들
  
  
오! 육체는 슬퍼라. 나는 지상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노라던 말라르메의 그 말이, 비가 오고 있
다. 움직이는 悲哀를 알고 있느냐던 김수영의 그 말이, 흠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던 랭보의 그
말이,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소라던 브로드스키의 그 말이, 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느냐던 니체의 그 말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그 말이······
  
  

나는 본다
나에게로 세상에게로
내려앉는 말의 꽃이파리들
내 귀는 듣는다
나에게로 세상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말의 발자욱 소리들
나를 끌고 가는 
밑줄친 문장들.
  
  
천양희 「그 말이 나를 살게 하고」전문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18>  이정록의 ‘의자’

 

세계일보 조용호 선임기자 

2019. 1. 16

“세상사는게 별거냐 … 의자 몇개 놓는거지”
 
그는 튼튼해 보였다. 널찍한 어깨에 듬직한 키, 호방한 웃음과 ‘붕붕거리는 목소리’, 어떤 이야기든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걸쭉한 만담으로 육화되어 들리는 재미, 저 속에 슬픔이 깃들일 틈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워 실눈을 뜨고 쳐다보면 이내 속을 알 수 없는 심상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는 사내, 그이가 이정록(45) 시인이었다. 천안중앙고등학교 교정에서 시인을 만나 그의 모친이 홀로 사는 홍성 ‘황새울’까지 내려가는 내내 그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노모가 홀로 집을 지키는 시인의 고향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 ‘황새울’ 들판에 선 이정록 시인. 옛날 이 들녘에는 우렁과 미꾸라지들이 풍부해 황새 왜가리 두루미들이 집 뒤 선산의 소나무 가지에 하얗게 척척 늘어앉아 있었노라고 시인은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를 자주 보면 시가 너무 많이 나와서 안 된다고 웃었다. 데뷔 20년째 접어든 그가 내놓은 5권의 시집에는 고루 어머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친이 말씀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툭툭 던질 때마다 그대로 아들은 밤을 줍듯 시로 주워 올린다. 그가 최근 ‘웅진웹진 뿔’에 보낸 ‘엄니의 화법’이 생산된 배경을 보면 그 과정이 손에 잡힌다. 장발을 하고 다니던 시절 어느 날 파마를 하고 집에 갔더니만 모친이 고개만 내밀고 “큰애야, 너는 왜 농사도 안 짓는 애가 검불은 이고 다니냐?”고 말했다. 5개월 후 머리를 짧게 깎고 파마기를 없앤 후 갔을 때 엄니는 “어째 나라 경제가 어렵다더니 농사 채 다 팔아먹었냐?”고 다시 말했다. 몇 달이 흘러도 잊지 않고 안쪽 바깥쪽 대구를 맞춰버리니, 거기다가 몇 줄만 첨가하면 그대로 시가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배냇짓부터 가르쳐준 엄니와 말싸움 해봐야 뭐하나?/ 선산 쪽에다 혼잣말 던진다// 머리칼에 불두화 수북헌 거 보니께/ 엄니가 내 땅 다 훑어갔구먼그류// 뽑지도 않은 배추밭에 함박눈 내린다/ 하느님도 농사 채 다 팔아잡쉈나?/ 그득그득 내려앉는 하늘 검불들.”(‘엄니의 話法’ 부분)

모친의 머리에 불두화 같은 허연 검불이 수북이 늘어나 있어 아들은 “엄니가 내 땅 다 훑어갔구먼그류”라고 말대답하려다가 애먼 함박눈 타령만 한다. 홍성군 홍동면 대영리 ‘황새울’에서 고추 고구마 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홀로 지내는 이의순(70) 여사는 일행이 황새울에 도착해 “아들에게 시를 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몰러유, 나는…”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사실, 시인의 명민한 감수성이야말로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시로 승화시킬 수 있었고, 모친을 시인 반열로 치켜세운 동력일 터이다. 하지만 모친의 지혜와 애정이 없으면 이 또한 불가능했을 건 자명하다. 이들 모자의 대표적인 합작 명품이야말로 2006년 다섯 번째 시집 표제작으로 내세운 ‘의자’라는 시가 아닐까.

 ◇이정록 시인과 어머니 이의순 여사. 글감이 떨어질 만하면 ‘엄니’가 던지는 짧은 한 마디는 시인에게 그대로 시가 된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세상 사는 게 별거 아니라 서로 의자가 되어주는 일이란 말씀, 그것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낼 수 있는 이치라는 모친의 그 말씀은, 시인 아들의 가슴에 벼락 치듯 박혀 들었을 게다. 황새울까지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집에 계실지 모르겠다고 시인이 미심쩍어 했던 데다 모친을 뵈러 간다는 생각보다 그냥 시인의 고향집을 찍으러 간다는 무심함까지 가세해 불손하게도 빈손으로 시인의 고향집에 들어섰던 것인데, 모친은 아들이 부르자 잠시 뜸을 들이다가 환한 얼굴로 슬며시 나타났다. 아들이 “엄니, 어떻게 우리 올 줄 알고 머리까지 감으셨네”라고 농을 건네도 엄니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다.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은 6살에 학교에 들어갔다. 영재여서가 아니라 동네 아이가 못살게 굴어 일찌감치 학교로 피신시킨 거였다. 학창시절 내내 시인의 별명은 ‘애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내 반에서 1번을 차지했는데, 대학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시자 갑자기 키가 1년 사이에 9㎝나 커버려 지금의 장한이 됐다고 시인은 말했다. 그가 시인이 된 내력을 들어보면, 역시 시인은 타고나는 것이란 생각이 다시 굳어진다. 아버지가 대학은 못보내 준다고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 하여 고등학교에서 직업반인 ‘상과’를 선택했는데, 친구가 자기는 은행시험을 봐야 한다고 사정하여 ‘문과’로 바꾸어주었고, 공대를 가려고 이과를 선택했는데 눈이 나빠서 문과로 바꾸어야 한다는 친구가 쥐포 3마리를 사주며 다시 바꾸자 하여 이과로 간 것인데, 문과 이과 상과를 다 거치게 된 그가 반에서 글짓기 숙제를 대표로 내야 하는 국면에 이르러 이정록이 문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얼떨결에 선수로 뽑히는 바람에 글쓰기의 운명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세 살 위의 누나가, 시인이 일찍 학교 들어가는 바람에 한 학년 차이밖에 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딸내미까지 고등학교는 보내지 못한다 하여 단식투쟁까지 했건만 끝내 공장에 취직했고, 첫 월급으로 누나가 한국여류수필문학전집을 샀다가 보너스로 나온 만해 한용운 시집을 동생에게 주었던 것인데, 후일 시인이 된 그 고등학교 2학년 동생은 한참 상고 다니던 여학생을 짝사랑하던 때여서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에 꽂혀버렸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로 시작되는 그 시는 짝사랑하는 여학생 집 소유의 저수지 나룻배에 앉아 있곤 하던 그의 심정에 절절히 박혔다. 대학 2학년 때 다시 우연히 서점에서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사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고 또 읽으면서 “시가 사람을 울릴 수도 있다”는 사실(정희성 시인은 1회 김수영문학상을, 이정록은 20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에 놀랐다. 

 

이후 시라는 것을 쓰기 시작해, 아버지가 이장이어서 집에 ‘샘터’가 배달되던 시절 우연히 그 잡지의 독자투고란에 시를 응모해서 ‘지난 가을’이라는 시가 최초로 활자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펜팔이 쇄도했다. 후일 약혼자의 성화에 응모했다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다시 4년 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뽑혔다.

워낙 그의 재담이 승한 편이어서, 한 가지 이야기에도 길게 흠뻑 빠져버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그에게서 슬픔의 정서는 얼굴만 맞대고 있으면 느껴지지 않는 편이어서 짐짓 어깃장을 놓았더니 그는 자신의 ‘고난의 깃발’을 가까운 사람들은 안다고 했다. 가깝지 않아서 그가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지 못해 아쉬웠고, ‘황새울’에 도착할 무렵 길가를 가리키며 저곳이 삼촌이 서울에서 죽어 내려와 상여로 떠났던 자리라고 스치듯 말했던 기억도 났다. 할머니가 아들을 못 낳은 집의 후처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아들을 줄줄이 낳았지만 장남인 아버지 밑으로 삼촌들이 세 명이나 연달아 자살했다. 

 

성장기 시인의 가슴에 파인 그 검은 우물이야말로 “켜놓고 잠들어도 눈부시지 않은 빛, 백열전구처럼 몸을 날려 목숨을 끊는 일은 이제 나의 가계에서는 없어야겠다. 터져 버린 알전구의 날 선 밑동을 돌릴 때, 섬뜩해라. 그 칼 가는 소리는 마치 이승의 빛을 서둘러 꺼버린 삼촌들의 신음 같다”(‘형광등’ 부분)는, 적어도 겉으로는 만담가에 가까운 그가 울림이 깊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동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사적인 시보다도 이정록 시인의 가장 빛나는 매력은 ‘한 소식’에 가까운 짧은 시들이다. 이를테면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는 ‘더딘 사랑’이나,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 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는 ‘줄탁’ 같은 시는 시사에 남을 만하다. 지구라는 알에 갇혀 있는 병아리가 우주에서 쪼아주는 어미(혹은 신)의 부리질을 별빛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감수성은 놀랍다.

한 번은 친구가 참치회를 산다 하여 제법 급이 높은 비싼 걸 시켰더니 취중에 기가 막힌 시가 떠올라 자신이 술값을 계산하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다시 맥주집에서 2차를 산 뒤 서둘러 집에 가 책상머리에 앉았더니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 했다. 다시 그 집에 가서 똑같은 안주를 시켜놓고 술을 마셔도 짧고 명쾌하게 왔던 그 시구는 종적을 감춰버려, 안 써도 되는 술값만 아깝게 탕진한 적도 있었다.

황새울에서 나와 시인의 각별한 누님 이정희 여사를 홍성읍에서 잠시 일별한 뒤 서해의 궁리포구로 갔다. 포구의 밤, 시인은 그가 동화와 동시에 빠져 지내는 근황을 설명했는데(최근 ‘창비’에서 첫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를 출간했다), 시인의 모친이 황새울에서 당신은 평생 머슴처럼 일했지만 자식들은 농사를 도와주지 않고 연필만 잡고 있다고 푸념했는데, 최소한 7편 이상 비축돼 있지 않으면 청탁에 응하지 않는다든지, 벌써 두세 권 분량의 시를 써놓고 차기 시집에 넣고 빼는 일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정록은 어머니 못지않은 부지런한 농사꾼이라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왜 동시나 동화에 꽂히는지 물었을 때에서야, 그에게 시라는 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장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는 앞발을 그러모아서 날카로운 것으로 지 가슴을 짜야 나오는 것이고, 스트레칭을 해서 등딱지를 긁는 것이 아동문학이여. 시는 가슴의 상처와 펜 끝이 너무 밀착돼 있지만 동화나 동시는 달빛 출렁이는 밤바다처럼 여유가 있어. 여튼 가슴을 후벼 파는 게 시라면, 아이들 문학은 따사롭고 위무를 받는 느낌이유.”


그녀, 에로티즘을 노래하다
     - 박이화의 시

 

<오홍진 문학평론가, 박이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흐드러지다] 추천사>


1. 에로티즘의 향연을 열다

박이화 시는 에로티즘의 향연장을 방불케 한다. 에로티즘은 생명의 진원지이다. 생명의 탄생이 에로티즘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거라면, 에로티즘에 대한 갈망은 실상 생명을 향한 무한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문제는 에로티즘의 시적 현현이 아니라, 그러한 에로티즘으로 발산되는 시적 분위기, 곧 에로티즘의 정치학일 것이다. 정치학이라고 했지만, 시에서 그것은 미학의 범주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박이화의 시가 에로티즘을 지향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에로티즘을 통해 시인이 구현하려는 세계의 실재(the real)가 있다. 실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쉽게 융합될 수 없는 세계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계-현실의 너머를 사유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에로티즘이란 실재는 이런 점에서, 지금 이곳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어떤 실재를 계속해서 사유하도록 만든다.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에로티즘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박이화 시의 에로티즘은 어떤 실재의 세계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을까?

「봄과 여자와 고양이」라는 시를 먼저 보자. 이 시에서 시인은 봄과 여자와 고양이의 공통점을 시화한다. “이제 막 겨울에서 젖 뗀/ 호기심 가득한 봄”이라는 시구에 나타나듯, 시인은 봄-여자-고양이의 속성을 사춘기의 예민한 감수성에서 찾는다. 예민한 존재는 한편으로는 반항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다정다감하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존재의 삶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봄의 날씨와 상당히 닮아 있다. 시인은 이러한 봄의 특성을 여자와 고양이에게 부여함으로써 사춘기의 호기심에 짙게 물든 존재를 시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요컨대 에로티즘을 향한 시인의 관심은 무엇보다 사춘기 소녀의 성(性)에 대한 호기심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중년 여성과 사춘기 소녀의 시간적 경계를 넘나들며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 시절의 감수성을 거듭 확인한다. 이를테면 「청보리밭」의 시적 화자는 “몇 날 며칠 깎지 않은 수염처럼/ 거칠고 꺼끌꺼끌한 보리밭을 지날 때면/ 옛 남자를 본 듯 반갑고 가슴 뛴다”고 고백한다. “억센 야성의 그리움”이라는 시구에 드러나는바, 시인은 잘 정돈된 잔디밭이 아니라, 정돈되지 않은 청보리밭에서 생의 희열을 느낀다. 바람이 불수록 청보리밭은 “고랑마다 더 비리고 축축한 청보리 냄새를 풍”긴다.

이처럼 이 시에는 중년 여인의 완숙한 에로티즘이 펼쳐져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모습과 다른 대상을 향한 사춘기 소녀의 반항적 심성 또한 그 이면에 깔려 있다. 사춘기 소녀의 ‘봄’은 중년 여성의 ‘가을’과 어울려 사춘기 소녀도, 중년의 여성도 아닌 에로티즘의 새로운 형상을 빚어낸다. 박이화는 한창 피어 흐드러진 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이 상습적인 봄날”(「중독」)의 환각에 중독된 여성 화자를 시의 전면에 내세운다. 해마다 봄-계절은 오지만,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한 몸-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 봄과 돌아오지 않는 몸 사이에서 박이화의 에로티즘이 탄생한다면, 그리하여 “백주 대낮/ 푸른 잎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출렁이는 왕벚꽃의 싱숭생숭한 체위”를 그녀의 시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면, 박이화의 시가 에로티즘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봄’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봄도 봄 나름일 터, 사춘기 소녀의 봄은 여전히 봄이지만, 중년의 나이를 넘긴 여인에게 그 봄은 다시 와도 즐길 수 없는 봄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중독된 봄은 도대체 어떤 ‘봄’일까? 표제작 「흐드러지다」를 보도록 하자.


그러나 으스러질 듯 나를 껴안고 있던 그대 팔이
잠들면서 맥없이 풀어지듯
때가 되면
저 난만한 꽃잎도 시나브로 가지를 떠난단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눈꺼풀 스르르 내려앉는 그 천만근의 힘으로

때가 되어 떠나는 일 그러하듯
때가 되어 꽃피는 힘 그 또한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때가 되어
그대 앞에 만판 흐드러진
내 마흔 봄날도 분명 그러했을 터
- 「흐드러지다」 4~6연


간밤의 거친 비바람을 견뎌낸 “꽃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리어 화사하다”(같은 시 1연). 아무리 거세게 비바람이 몰아쳐도 꽃은 떨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아직 때가 안 되”(2연)었기 때문이다. 수분(受粉)을 위해 꽃은 온 힘을 다해 악착같이 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것은 강요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꽃의 자연(自然)이다. 시인은 이러한 꽃의 자연을 인간의 삶에 대입한다. 수분을 끝낸 꽃은 시나브로 가지를 떠난다. 이 또한 꽃의 자연이다.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떠나지 않았다면, 때가 됐으므로 이제는 주저 없이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흐드러지는 순간은 한창의 시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지를 떠나야 하는 ‘낙화’의 순간을 예기하기도 한다. 때가 되면 악착같이-으스러지게 나를 껴안고 있던 그대의 팔도 맥없이 풀어진다. 영원히 가지에 붙어 살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당신을 껴안고 있는 그 순간의 감각만은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다. 한때 흐드러졌던 존재의 감각은 몸의 감각으로 살아남아 “거대한 비밀의 제국”(「나의 몽유도원」)처럼 상황이 무르익으면 언제가 표면화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내가 아는 모든 거품은 포근했다”(「거품」)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한순간 꺼지는 것이 거품이라지만/ 그 거품 속에서 애벌레는 네 번의 허물을 벗고/ 우화등선 곤충이 된다”. 허물을 벗는 건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라는 표시이다. 허물을 벗고 흐드러지게 피어 한 생을 누린 존재는 이제 그 거품의 포근함을 기억 속에서나마 감각으로 느낀다. 박이화의 이번 시집에는 자연 속 생명의 적나라한 에로티즘이 묘사되고 있는바, 시인은 그러한 생명들의 에로티즘을 눈으로 ‘느끼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희미해진 몸의 욕망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생명들의 에로티즘은 항상 기습적으로 시인의 시선에 포착된다. ‘기습적’이란 말의 의미는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는 순간 몸이 반응하는 감각의 향연이 박이화 시에 나타나는 에로티즘의 본질에 해당되는 것이다.


대낮도 벌건 대낮에 발정 난 도둑고양이 두 마리 난데없이 내 집 담장을 타 넘어와 다짜고짜 짝짓기한다. 몸이 있는 것들은 짝이 있고 짝이 있는 것들은 저렇듯 발칙하게 후배위를 아는구나. 아침저녁 공공연하게 내 입속을 들락이는 숟가락도 수저통 안에선 버젓이 후배위로 누워 있고 퍼런 군용 담요 위에서 삼팔광땡 철썩 들러붙던 화투패도 그 아니 기막힌 후배위냐? 아랫도리 미끈한 배롱나무 아래서 저놈들 마침내 제 볼일 다 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리나케 담장 너머 내뺀다. 끝내 서로 일별조차 없이! 하기사 한때 사랑의 불길도 활활 달아오른 연탄처럼 타오르면 오를수록 이별의 밑장 쩌-억 달라붙던 후배위 아니더냐? 아무리 누가 걷어차거나 찬물 끼얹어도 벌겋게 한몸으로 나뒹굴던 저 환장할 후배위 아니더냐
- 「후배위」 전문


발정난 도둑고양이 두 마리가 후배위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시적 화자는 목격한다. “난데없이”라는 시어에 드러나듯, 화자는 고양이들의 후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라본다. 하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색정에 들뜬 고양이들의 소리가 싫어 훠이훠이 손을 들어 내쫓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실제의 현실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다. 시의 공간에서는 시인이 꿈꾸었던 모든 일들이 실현된다(실현되어야 한다). 상상의 힘으로 구축되는 시의 세계는 지금 이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꿈꾼다는 점에서, 정확히 실재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실재는 상징계의 바깥에서 상징계에 갇힌 존재들의 삶을 끊임없이 교란한다. 벌건 대낮에 펼쳐지는 도둑고양이들의 질퍽한 정사-후배위가 시적 소재로 문제시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도둑고양이의 후배위를 목격한 시적 화자의 눈에는 일상의 온갖 일들이 후배위의 장면과 교차된다. 이를테면 숟가락은 수저통 안에서 후배위로 누워있고, 군용 담요 위의 화투패 또한 후배위로 누워 있다. 화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후배위로 불타오른다. 뜨거운 사랑을 끝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리나케 담장 너머”로 내빼는 도둑고양이들을 보며 시인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질 수 없는 열정을 확인한다.

「붉은 화병」을 참조한다면, 그 열정을 품은 존재는 “아무도 갈아 주지 않는 사이/ 꽃도 물도 마른 지 오래”일 때조차 “그 한철/ 그때가 내 몸을 열어/ 수련처럼 깊숙이 긴 대궁 적시던” 감각을 여전히 품고 있다. “한때 내 안의 7할을 채웠던 물기”가 마른 지 오래이지만, 그 물기를 향한 욕망은 지금도 살아남아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다. 물기 어린 몸을 향한 욕망은 사랑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놓을 수 없는 게 사랑이라면, 봄과 여자와 고양이의 에로티즘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본질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시인은 몸에 새겨진 사랑의 감각을 끊임없이 바깥으로 불러내고 있다. “내 안의 이 속일 수 없는 짐승의 냄새”(「덫」)가 사랑의 감각을 암시한다면, 그녀의 에로티즘은 무엇보다 이 냄새-감각과 연동됨으로써 시의 언어로 표현된다고 하겠다.


2. 범람하는 향기에 젖다

박이화는 이번 시집에서 냄새=향기에 대한 감각을 다양한 맥락으로 시화하고 있다. ‘비 냄새’에서 당신의 몸 냄새를 떠올리는 「범람」에서 시인은 감각으로 각인된 그리움의 양상을 시로 표현한다. 그리움의 감각은 몸에 새겨진 감각으로부터 뻗어 나온다. 그리움은 정신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당신의 몸 냄새를 지울 수 없어 시적 화자는 당신을 그리워한다. “시시때때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 격렬한 당신 땀방울 때문”에 내 몸의 제방 또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당신의 땀방울이 내 몸의 제방을 무너뜨린다는 상황 설정이 암시하는 대로, 감각은 아주 세밀하게 몸속으로 스며든다. 사람은 잊을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몸에 대한 감각은 쉽게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시인은 냄새라는 감각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범람’이라는 시의 제목에 나타나는바, 몸속의 물기는 상황만 설정되면 쉽게 몸 밖으로 흘러넘친다. 그것은 이성(理性)의 문제도 아니고, 감정의 문제도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감각의 문제에 해당되거니와, 감각이 문명 세계의 외부로 쫓겨난 이유는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를테면 「밤꽃」에서 시인은 “첩첩산중 깊은 밤 깊은 곳에서 하필 내 남자의 체취를 풍기며 나를 휘영청 흔들어 놓는” 밤꽃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밤꽃 냄새 자체가 아니라, 그 냄새가 “깊은 밤 깊은 곳”에서 스며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대낮의 밤꽃 냄새와 깊은 밤 깊은 곳에서 맡는 밤꽃 냄새는 얼마나 다른가. 이성의 그늘로부터 생성되는 밤꽃의 향기는 냄새를 맡아도, 맡지 않은 척 해야 하는 실재-금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밤꽃 냄새에서 “내 남자의 체취”를 맡았다고 고백한다. 냄새를 맡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밤꽃 냄새를 맡는 순간, 다시 말해 내 남자의 체취를 맡는 순간 몸의 물기는 말 그대로 범람한다. 몸속에 새겨져 있던 온갖 감각의 기억체들이 밤꽃 향기를 계기로 하여 몸 밖으로 한없이 밀려나온다. “월경마저 찔끔거리는 이즈음 나”(「꽃들에겐 미안하지만」)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펼쳐지는 몸의 감각-혁명은 에로티즘이 결국은 감각의 문제임을 에둘러 드러낸다. 감각은 인위적인 게 아니다. 「시절, 시절들」에 표현된 것처럼 감각은 “풀밭만 보면/ 무작정 달려가 얼굴을 묻던 시절”의 경험이 아니면 몸속에 새겨질 수 없다. 감각은 만든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새겨진 것이다. “토끼풀꽃보다 더 비릿한 날비린내”의 이 감각을 문명-이성이 지배하는 이 세계로 어떻게 하면 이끌어올 수 있을까?

피차 짐승 아닌 꽃 없고」에서 시인은 “갑자기, 느닷없는,/ 이 기습적인 향기에 화들짝” 놀란 존재를 묘사한다. “여러 날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꽃대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국화”가 “발정난 짐승처럼 컹컹 맹렬한 향기 풍기고 있다”. 식물의 향기를 발정난 짐승의 향기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국화의 “이 기습적인 향기”에 저도 모르게 몸이 단 시적 화자의 모습이다. 국화는 향기로 자신의 살아 있음을 표현한다. 그러니 그것을 발정으로 표현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다면 시적 화자의 발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살아있는 것들은 그리움 또한 필사적”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상처끼리는 한 핏줄이었구나”라며 애달픈 마음을 슬쩍 내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은 항상 상처를 전제로 한다.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그 무언가가 지금 여기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차 짐승 아닌 꽃이 없다면, 사람들이 벌 나비가 찾아드는 꽃들의 화려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당연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사람들이 페로몬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페로몬」에서 시인은 “가임과 불임이 오락가락하는 경계에” 처한 시적 화자를 호명한다. 몸을 속여야 마음 또한 속일 수 있다. 죽은 자들이 남긴 체액으로 사람들은 회춘(回春)을 기약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입은 상처를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무언의 체액”을 통해 치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간의 폭력 앞에서도 멈출 수 없는 이 생식에 대한 욕망을, 시인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벗어날 수 없는 자연으로 간주한다. 숨을 내려놓지 않는 한 몸은 살아 있고, 몸이 살아 있는 한 생식을 향한 욕망 또한 여전히 살아 있다. 「감물」을 따른다면 그것은 “한번 들면 절대 빠지지 않는 감물처럼 한평생 치대고 비벼도 어쩔 수 없는 이 시퍼렇고 떨떠름한 그리움”의 욕망과 전혀 다르지 않다. 박이화는 지금 시간의 폭력을 견디며 오롯이 제 길을 걸어가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 에로티즘에 상기된 얼굴로 그녀는 세상을 직시한다. 페로몬으로 잃어버린 야성을 찾고 싶어 할 정도로 그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나브로 변화해가는 몸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거기서 그녀는 무엇을 찾았을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은 듯한
새끼 고양이가 아파트 화단 구석에
무심히 방치되어 있다

어미가 그 곁을 수시로 맴돌므로
치워 주지도 묻어 주지도 못하는 사이
벌써 한 패거리 파리 떼들
풍악 소리 울리며 몰려와 붕붕거리고 있다

저 비릿한 주검의 자리가
어떤 놈들에겐 흥청망청 꽃자리였다니
누렇게 달라붙은 눈곱마저 달디단 꿀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이따금
커다란 화병 속에 한 아름 꽃을 꽂아 놓고
시시때때 코를 박고 킁킁대던 나도 어쩌면
저 몹쓸 파리 떼와 다를 바 없었구나
시름시름 비명 같은 향기 지르며 시들어 갔던
꽃들에게 나는,
한없이 치사하고 야속한 그 어떤 놈이었구나
- 「어떤 놈」 전문


살아 있는 생명에게 에로티즘은 아름다운 행위이다. 동물의 생식 본능을 넘어서는 쾌락이 인간의 에로티즘에 내재되어 있든, 아니든 에로티즘 자체는 생명의 연속성을 잇게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살아 있는 존재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분명히 형성하고 있다. 위 시에서 시인은 꽃의 향기가 죽음의 향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예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새끼 고양이의 시취(尸臭)를 맡고 몰려온 파리 떼를 보며 시인은 “저 비릿한 주검의 자리가/ 어떤 놈들에겐 흥청망청 꽃자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리 떼들이 서 있는 자리는 꽃향기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서 있는 자리와 동일하다. 고양이의 시취가 꽃향기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적 기제로 작용한다.

잃어버린 야성을 찾기 위해 페로몬을 사용하는 인간의 방식은 “한없이 치사하고 야속한 그 어떤 놈”의 방식에 불과하다. 다른 생명의 죽음(페로몬은 시취가 아닐까)을 자신의 새로운 탄생으로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은 고양이의 시체 위를 붕붕 날아다니며 시취에 탐닉하는 저 파리 떼들의 욕망과 정확히 닮아 있다.


시인은 「색계」라는 시에서 “성과 속 해탈과 일탈이 따로 없는/ 저 징-한 꽃들의 세계”를 ‘색계’로 표현했다. 색계는 말 그대로 색(色)의 세계이다. 색은 욕망을 욕망한다. 색에 탐닉하는 자는 색의 이면에 또 다른 무엇이 있는가를 사유하지 않는다. 파리 떼에게 시취-향기 너머의 세계를 탐색하라고 요청할 수는 없다. 파리 떼는 시취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자연이다.

요컨대 파리 떼들은 몸에 각인된 자연에 따라 죽은 고양이의 주변으로 모인다. 그렇다면 사유하는 인간이 죽은 고양이의 시취에 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로 인간의 색-욕망이 파리 떼의 욕정과 다르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박이화 시의 에로티즘이 육욕의 세계를 넘어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과 속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육욕의 세계-色과 해탈의 세계-空 또한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적과의 동침」을 예로 든다면, “극이 극을 극하여 상생”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녀에게 적은 무엇일까? 에로티즘-육욕일까, 아니면 에로티즘-해탈일까?


3. 에로티즘의 그늘을 보다

박이화의 시에 표현되는 에로티즘은 육욕과 해탈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 통속적인 봄날의 선데이서울”(「선데이서울」)로부터 도둑 고양이들의 후배위에 이르는 여정이 육욕적 에로티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면, 「구르메 달 가드키」 「잠들면 다 꿈이고」 「다시, 미혹」 등에 이르는 작품들은 에로티즘을 통해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려는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르메 달 가드키」에서 시인은 황진이와의 스캐들로 파계승이 되었다는 지족 선사를 시의 세계로 불러낸다. 당대의 가장 존경받는 선승이었던 지족 선사가 “그만 술 중의 술 방중술에/ 십 년 염불 도로아미타불 공염불”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은 ‘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지족 선사라고 해도 “더욱이 때는 봄밤이고 보면/ 소쩍새 만공산 좆죠 좆죠 울어 쌓는/ 달빛 질펀한 봄밤이고 보면” “상기병통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일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시의 제목을 빗대어 표현한다면, 욕망은 구름에 달 가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욕망 자체를 내려놓지 않는 한 시시때때로 스며드는 욕망의 그늘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시인은 “알고 보면 그는 이미/ 만중운산 구름처럼/ 몸과 마음의 경계가 없었던 거라/ 무주강산 달밤에 빈 배의 노를 젓듯/ 유유히 여인의 뱃전에서 노를 저었던 거라”고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의 경계가 없다면 ‘배’의 구분 또한 없다는 것일까? 하긴 여인의 뱃전에서 무심하게 노를 저을 줄 아는 이라면, 육욕의 세계는 허무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무는 허(虛)와 무(無)의 복합어이다. 육욕의 대상을 향한 마음-욕망이 없는 상태라면, 지족 선사의 파계는 세속에 젖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시인의 말마따나 “그에게는 해탈도 열반도/ 이화에 월백하는 것이어서/ 구르메 달 가드키 가는 것이어서” 황진이와의 스캔들을 주저 없이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지족 선사의 스캔들을 육욕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자체가 일장춘몽의 미혹 상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은 강조한다.

다시, 미혹」에서 시인은 “고색창연한 햇살 아래/ 하해 같은 봄날을 기다리는 저 나무”의 꿈을 일장춘몽으로 표현한다. 봄이 되면 나무는 “저 처처의 가지마다/ 삼천 송이 꽃”을 피울 거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봄만 되면 피어나는 나무의 꿈은 가을이 되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가지마다 꽃을 피우는 현상은 가지마다 꽃이 지는 현상과 더불어 진행된다. 나무의 꿈은 그러므로 미혹일 뿐이다. 봄이 되면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자연인 것처럼, 가을이 되면 꽃을 떨구는 나무 또한 자연이다.

봄 나무가 가을을 꿈꾸지 않아도 가을은 오고, 가을 나무가 봄을 꿈꾸지 않아도 봄은 온다. 무언가를 꿈꾼다는 건 시간적으로 보면 이미 와 있는 것을 꿈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꿈에서 깨어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꿈속에서는 그 일이 현실이 되어 꿈꾸는 이를 미혹에 빠뜨린다. 황진이와 만난 지족 선사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리고 지족 선사의 스캔들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들이 벌인 일이 다만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그 일을 마치 사실처럼 뇌까린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한 것일까?


이건 농담이지만 춤 중에는 우선멈춤도 있고 엉거주춤도 있다는데 각설하고, 어떤 춤꾼도 춤만으론 살 수 없어 주춤주춤 고픈 배 채우러 들리는 간이식당. 그 한쪽 벽면엔 낡은 선풍기 한 대 온종일 허공을 껴안고 슬로우 슬로우로 돌아가고 그 맞은편엔 특선 점심 메뉴표가 바람 앞에 치맛자락 펄럭이듯 펄럭이고 있다. 거기 가라사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돼지는 죽어 위대한 순댓국을 남긴다나? 나 오늘 저 불멸의 말씀 한술에 더 이상 배고프지 않나니. 먹지 않아도 배부르나니. 그런데 한술 더 떠 저 늙은 식당 여자, 허름한 불빛 아래 산전수전 다 겪은 뻐드렁한 얼굴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듯 제 팔자 뒤집듯 누런 호박전 히떡 잘도 뒤집는 여자, 산은 산이나 물은 셀프란다. 나무관셈! 선승은 첩첩골골 기암절벽 천년 암자에 있지 않고 이 속세 지하 무도장 한켠 간이식당에 계셨고녀!
- 「산은 산이나 물은 셀프다」 전문


간이식당에는 여자는 없고 선승만 있다. 아니 여자만 있고 선승은 없는지도 모른다. 산은 산이나 물은 셀프라는 말장난을 말장난이 아닌 것처럼 만드는 이치는 사실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나온다. 누가 제일 먼저 말했던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려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니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된다는 선승들의 게송을 저 멀리에 두고, 시인은 “산은 산이나 물은 셀프다”라고 외친다. “이 속세 지하 무도장 한켠 간이식당” 여주인은 누런 호박전을 잘도 뒤집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셀프다’라고 소리친다. 선승이 첩첩산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들끓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속세의 장삼이사(張三李四) 중에서도 선승에 못지않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세속이 곧 깨달음의 장소로 화하는 변곡의 지점은 무엇일까?

시인은 “저 늙은 식당 여자”의 거침없는 말 속에서 그 길로 나아가는 계기를 본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돼지는 죽어 위대한 순댓국을 남긴다면, 저 늙은 식당 여자는 죽어 무엇을 남길까?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우주의 진리가 실려 있다는, 어떻게 보면 가장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비일상적인 화법을 통해 시인은 에로티즘으로 물들어 있는 자신의 시 세계를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배치한다. “구르메 달 가드키” 제 몸의 허물을 벗은 지족선사처럼, 식당 여자 또한 “구르메 달 가드키” 제 몸에 달라붙은 업장들을 말로써 풀어냈다.

이렇게 본다면 박이화의 시는 정확히 식당 여자의 화법과 닮아 있다. 산은 산이고 물은 셀프라고 식당 여자는 말한다. 산은 산이고, 시는 에로티즘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와 물의 거리가 셀프와 에로티즘의 거리를 만든다. 하지만 그 거리를 ‘거리’라는 말로만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물은 셀프라는 식당 여인의 말을 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시는 에로티즘이라는 시인의 말을 일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요컨대 시인은 에로티즘을 통해 일상의 내부로 다시 들어오는 역설적 도정을 시화한다. 그것이 설사 미혹이더라도,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면 꿈속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이 더욱 더 커질지라도, 시인은 이 에로티즘의 시업(詩業)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황혼이
내 집을 향해 기우는 건 우연한 일이 아니다
빈집에 적막처럼 숨어도
복사꽃보다 불콰히 나를 덮쳐 오는 건
그래, 놀빛에 흐드러져
너를 마중 가는 건
저무는 바람 탓이 아니다
도중에 술집과 여관이 추문처럼 꼬리 물고
약국이 많고
멀리 주유소 불빛이 추억처럼 점멸하는
너의 집 신호등 앞에서
날마다 이렇게 자청하여 섰는,
매연보다 탁한 그리움에 정체되어 보는
이 일이 결코 일몰 때문만은 아니다
- 「서향」 전문


이번 시집의 4부에는 “비릿한 날비린내”(「시절, 시절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하수」를 참조한다면, 이러한 그리움은 무엇보다 “구석구석 음악이 배암처럼 스며들 때 비로소 능글능글 춤을 갖고 놀게” 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몸을 갖고 놀 때가 되어야만 제대로 춤을 출 수 있다. 돌려 말하면 그 상황은 “지난 내 검도 사부님은 시선을 칼끝에 집중시키지 말라셨지 두 눈이 매이면 생각이 매이고 생각이 어딘가에 붙들리면 검의 길을 알 수 없다고 그때 일촉즉발, 상대의 칼날이 바람처럼 내 몸을 지나”(같은 시 2연)가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몸을 갖고 놀려면 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칼을 갖고 놀려면 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천하제일 춤꾼은 몸과 음악이 하나 된 사람 천하무적 검객은 몸과 검이 하나 된 사람”(같은 시 3연)이라는 시적 진술은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킨다. 거리가 있되, 그 거리를 거리로 생각하지 않는, 달리 말해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이 제거된 상태를 시인은 “하나 된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움은 따라서 이러한 경지를 향해 시나브로 나아가는 존재의 그리움이 아니면 안 된다. 요컨대 그리움에는 그리워하는 대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위에 인용한 「서향」에 나타나듯 이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일이 인과관계에 묶여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위 시에서 시인은 긍정어법이 아니라 부정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아니다’라는 시어를 반복함으로써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다’라는 말을 단순한 부정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아니다’의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그리하여 딱 하나로 집어 말할 수 없는 긍정어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이화는 시를 통해 에로티즘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의 이면에는 그러나 여전히 말하지 않은, 혹은 말할 수 없는 ‘아니다’의 기억들이 숨어 있다. “어제 건드렸던 누군가 내일도 모레도 다시 손길 주면 죽지 않는”(「유츄프라카치아」)다는 유츄프라카치아(꽃)를 “또 다른/ 내 음지의 이름이여!”라고 시인은 외치듯이 고백한다. 음지가 있다면 양지가 있을 것이다. 그녀 시의 양지에 에로티즘이 있다면, 그녀 시의 음지에는 유츄프라카치아가 있다. 「서향」이라는 시는 어떻게 보면 박이화의 시가 이 음지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에둘러 보여준다. ‘서향’이라는 말이 의미하는바 그대로 그녀는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곳이 음지인 까닭이다.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읊조리며 비릿한 것을 향한 그리움에 몸을 떠는 시인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뒷모습이 에로티즘의 그늘 속에 감추어진 그녀의 시라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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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말의 어려움을 찾아서 *

 

                               이성부

아스팔트길을 오래 걷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산행을 마친 뒤 걸어 내려와야 하는 어떤 길이 그러한데, 잘 닦여져서 발걸음은 편안하지만 왠지 마음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게 여러차례 마음에 안 드는 하산을 되풀이하다가, 어느날 나는 다른 길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계곡을 가로질러 숲속 길에 들고, 다시 능선에 올라 여러차례 내리락오르락을 해야 하는데, 힘은 들더라도 여간 깔끔한 맛이 있는 길이 아니다. 다 내려왔는데 다시 산길로 들어가 체력 소모를 차초하다니! 비록 어떤 때 몸이 고단하여 그냥 아스팔트길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능선길을 알고부터는 계속 그 길로만 하산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어떤 바윗길에는 위태로운 꼭지점을 올랐다가 6,7미터 직벽을 내려와야 하는 곳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꼭지점에 오르지 않고서도, 옆구리를 돌아 좀더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어떤 날 혼자 가다가, 전에 없던 무서움이 몰려와 이 길로 들어선 적이 있다. 산행을 다 끝낸 뒤의 마음이 개운하지 못했다. 부끄러움과 함께 내 생의 전체가 슬퍼졌던 까닭이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다시는 그 안전한 길로 접어들지 않았다.

힘들고 위태로운 길에서, 나는 시쓰기의 편안함과 어려움을 생각할 때가 많다. 사는 일과 시쓰는 일의 어려움은 이런 길에 든 것과 같고, 아스팔트길의 마음에 안 드는 편리함은 어쩐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일로만 여겨지기 십상이다. 시쓰기를 선택한 이들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고집한 사람들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세속의 안일함이나 행복 따위의 추구보다는, 그것들을 오히려 슬픔이나 아픔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까지도 자기 것으로 껴안으려는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삼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이 아프게 만들어 낸 시는 읽는이들에게 편안한 위안으로, 혹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말을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든 그만큼, 읽는이들에게는 반대로 행복감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말과 시의 길이란 언제나 힘들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말의 길을 편안하게만 가버린다면 정신은 황폐해진다. 힘들게 가야 하는 말의 길은 어떤 길인가. 그 길은 무엇보다도 가는 사람 스스로를 무겁게 지고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렵다고 피해 가는 길을 애써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마지막에 오는 성취감은 훨씬 더 큰 것이다. 이같은 마음가짐은 시인의 본질적 덕목이자 당위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무거움과 깊이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이다.

최근 우리나라 시인들 가운데는 말을 가볍게,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쏟아 버리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본다. 이것이 무슨 새로운 실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 자기 특유의 빛나는 상상력의 발로인 것처럼, 성실하지 못하게 말을 함부로 다루는 시인들이 눈에 띈다. 경박하고 폭력적인 언어들도 시의 한 속성이나 개성이라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박한 언어가 시의 한 속성이라 할지라도, 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아름다움의 세계라는 생각이다. 경박한 언어들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박함 자체가 주제가 되고 목적이 되는 경우는 특정한 시대, 또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부분적이고도 병적인 증후일 뿐이다. 언어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로, 자동차가 달리듯 가볍고 시끄럽게 가는 길이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거창한 주제를 내세우거나, 엄숙하게 폼을 잡고 시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벼운 것, 하찮은 것,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 따위들이 시가 되는 경우에도, 그 말들은 무겁고 깊은 사유를 통해, 진지한 성찰의 체를 통해 걸러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에 나온 황지우. 백무산. 정규화. 권경인의 시집들은 고달픈 시대에도 시의 길을 어렵게 찾아가는 성실함이 돋보인다. 이들 가운데 앞의 세 시인은 80년대 들어 시쓰기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뒤틀리고 뒤엉킨 그 시대의 아비규환을 겪어낸 이들이 어느덧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권경인은 90년대 초에 등단했는데,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시의 틀과 개성으로 나를 놀라게 한 시인이다.

권경인이라는 낯선 시인을 만난 것은 나로서는 하나의 큰 기쁨이다. 시를 만들어내는 솜씨도 만만치 않으려니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가 무겁고 깊게, 긴장된 떨림으로 전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는, 우리가 항상 오가는 '길'의 세계이며 그 길에서 내다보고 돌아보고 생각하는 성찰의 세계이다. 그는 삶을 기쁨이나 즐거움, 빛남이나 화려함 따위의 수식으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낮은 곳과 어두움이 항상 그를 따라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삶의 길에서 체험하고 터득하는 것들이, 그대로 어떤 영혼에 닿아 감전을 일으키는 모습인가. 그의 고통이나 슬픔, 쓸쓸함, 너무 오래된 상처 등은 아직 파닥거리는 원형질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권경인은 아마도 산꾼의 한 사람일 터이다. 산꾼은 산꾼의 냄새를 금방 맡는다. 외로움의 냄새다. 시집 『변명은 슬프다』는, 애써 산을 가리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산을 마음놓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의 '길'은 틀림없이 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일을 대체로 현실사회에서의 일탈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위해서라든가, 자기충전을 위해서라든가, 현실 도피 또는 탈속의 경지를 갖기 위해서라든가, 알피니즘의 구현이라든가...... 여러 가지 차별화된 목적이 많을 터이지만, 산행은 일단 집(조직)을 벗어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이 벗어남은 곧 그때마다 새롭고도 다양한 세계의 열림을 약속해준다. 산에서 겪는 자연, 힘겨움, 외로움, 두려움, 자기와의 싸움 등을 통해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시간들이 주어진다. 이때 내가 만나는 자아는 집과 사회에서 느꼈던, 결코 나 같지 않은 나의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산길에서 나는 또 하나의 나를 여유있게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하여 산행이 끝나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 일탈에서 소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어느 길을 걸어 나를 만날까
돌아가지 않는 여행이란 없으니 - 「회귀」부분

단 한번의 비상을 꿈꾸어 전생애를 탕진하고도
가장 힘든 길은 언제나 내 안에 있으니 - 「변명은 슬프다」부분

멀어서 아름답고 곁에 있어 다정한
별 욕심없이 그저 그런 것들에 취해 있으면
숨이 턱에 닿을 때쯤
산은 절로 내 안에 들어와 자리하리라 - 「삶의 형식」부분

'길 - 산'은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이행의 과정에 있다. 그 길은 아무래도 평탄하지 않다. 그 길은 힘이 들면 들수록 걸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내 안의 길"이기도 하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내 안에 산이 자리잡는다. 마침내 내가 나를 만나는 경지이다. 산의 아름다움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자기와의 만남'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안에 길과 산이 자리잡고, 또하나의 나를 내가 들여다보는 일에는 분명 어떤 초자연의 신명이 깃들여 있기 마련이다. 산 체험이 삶과 연계된 명상으로 이어지는 권경인의 시편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권경인은 지리산을 가리켜 "너는 언제나 내 안의 길이었다"고 말한다. 앞서 인용한 "가장 힘든 길은 내 안에 있으니"의 그 '안'과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언제나'라는 시간 개념이 먼저 불거져 있다. '언제나'는 산에 들었을 때나 산밖에 있을 때를 모두 포괄하는 때매김이다. 집에 있을 때에도 도시의 빌딩숲을 지나칠 때에도 지리산은 '내 안에' 있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은 집을 벗어나와 달려가 "마주 보아도 이렇듯 그리워서/ 살아 있었구나"(「지리산, 지리산」)의 길이다. 내 안에 있으면서 내가 마주 보아도 그립다? 그렇다. 내 안에 항상 있는 것은 사실 내 밖에, 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어서 언제나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움의 대상은 그러므로 그 실체를 마주 보아도 그립다. 그리움은 내 의식의 깊은 골짜기에 잡아두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렇게 내 안과 밖을 넘나드는 길 또는 산은 끊임없이 내가 나를 만나는 순환이면서 자유이다. 산은 이제 내가 그리워하는 먼 데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가 밤마다 잠드는 집에까지 내려와 있다.

사람의 길이란 지상에서 가장 낮은 길이 아닐까
낮아서 오르는 길밖에 갖지 못한 - 「낮아서 오르는 길」부분

길은 언제나 제 자리를 향하고 있음을
떠나보면 안다
그리하여 이승의 가지 못할 길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 「솟대를 찾아서」부분

온갖 길 다 섞으며 스스로 길에서 놓여나는 바람같이
얼마나 더 헤매어야
헛된 것들에게서 비로소 자유로울까 - 「먼 길」부분

사람이 살면서 걷는 길이란 땅위의 가장 낮은 곳에서 점차 고도를 높여가는 길일 따름이다. 아무리 올라가보아도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기에 길들은 헛된 길일수밖에 없다. 내가 만나는 또하나의 내가 그러한 것처럼.

시집 『변명은 슬프다』의 거의 전편에 흐르는 세계는 길과 삶의 '헛됨'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넘치고 있다. 그러나 이 헛됨은 불교적.철학적 허무주의와는 빛깔을 달리하는, 인간의 본질적 고독에 닿아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떠도는 영혼은 언제나 포구에서 길을 잃는다
여기까지 끌고 온 길은
또 어디까지 끌고가야 할 길이냐 -「감포」부분

사람 사는 일의 어려움이 이 세 줄 행간에 모두 스며들어 있다. 너무나 아름답다. 

 

 

길과 말의 어려움을 찾아서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백무산 시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 창작과비평사 1999, 정규화 시집 『다시 부르는 그리운 노래』, 경남 1998,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 창작과비평사 1998)

 

 

 
* 권경인

1957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고, 서울에서 성장함.
1988 부산 MBC 신인상 당선
1991 <한국문학> 신인상에 「인동초」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변명은 슬프다>(창작과비평 1998)
1999, 한국문학 특별 창작지원금 수혜 권경인-정작 외로운 사람은 말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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